제165화
[찾았다.]
귓가로 들리는 의문의 목소리.
[젠장. 빨리 내려가라니까….]
그것을 들은 라우르가 허탈하게 말했다.
‘왜 그러는 거예요? 저 목소리는 또 뭐고?’
[뭐냐고?]
후우웅-
마을 쪽에서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직감한 석찬이 팔을 올렸다.
쾅!
“커헉!”
하지만 가드를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바닥을 몇 번 구른 석찬이 통증에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뭐야, 이거.”
무엇이 때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고, 위력도 어마어마했다.
후웅- 훙-
이어지는 의문의 공격들. 그것들을 몇 번 받아내고 나니 공격의 정체가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마력을 응축해 날리는 공격.’
일반적인 마력탄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정도로 마력을 응축해 공격을 하려면 어지간한 컨트롤 실력과 근력, 그리고 마력의 총량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이런 걸…?’
쾅!
그래도 공격이 눈에 익기 시작하자 반격도 자유로웠다. 자색으로 물든 손등으로 마력 공격을 쳐낸 석찬이 쭉 공격이 날아온 곳을 노려봤다.
‘저 사람은….’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거구의 남자와 눈이 마주친 석찬은 확신했다. 저 남자가 범인이라고. 그 순간, 남자 또한 씩 웃으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아직 안 죽었네?’
팟.
그리고, 남자의 몸이 사라졌다.
쐐애액-
이내, 무서운 속도로 이곳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하는 무언가. 석찬은 마력을 가동해 거대한 방어막을 생성했다.
콰광!
순식간에 방어막을 뚫고 석찬 앞에 선 남자는 바로 조금 전 눈이 마주친 남자였다.
‘벌써 오다니, 무슨 스피드가….’
석찬을 위아래로 훑어본 남자가 고개를 갸웃대며 말했다.
“생각보다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누구냐, 넌.”
“내가 누구냐고?”
남자는 씩 웃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물건 되찾으러 온 사람이다.”
그와 동시에 주먹을 내지르는 남자.
픽!
스치기만 했건만, 어깨가 저릿저릿했다.
“오? 피했네. 역시 꽁으로 얻은 건 아닌가 봐?”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남자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훙! 훙!
자기 할 말만 하고 계속 공격해대는 무뢰배를 배려해줄 정도로 석찬은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콰직!
그의 주먹이 남자의 턱을 강타했다.
“컥!”
남자가 뒤로 고꾸라졌다.
“사람이 얘기를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지, 그래?”
“흠….”
남자는 턱을 쓰다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공격, 꽤나 매콤했어.”
“듣고 있는 거냐?”
“생각보다 강하네, 너.”
남자는 주먹을 풀더니 긴 금발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싸울 맛이 나겠어.”
“뭐?”
그렇게 말하며, 남자가 마력을 개방했다.
콰아앙!
‘크윽, 이건.’
터질 듯이 뿜어져 나오는 보라색 마력.
‘천무진보다 강한 마력이다. 이 정도면… 랜스?’
페널티 없는 랜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석찬이 생각할 때 눈앞의 남자가 내뿜는 마력의 위력은 적어도 랜스급이었다.
‘도대체 왜.’
그때 여태 가만히 있던 라우르가 입을 열었다.
[야, 강신이나 한번 하자.]
‘예?’
지금껏 라우르가 먼저 강신을 요구한 경험은 전무했다. 게다가 상대가 누군지 제대로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강신이라니?
[강신 안 하면 너 죽어. 그러니까 빨리…]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석찬은 미처 묻지 못했다.
훙!
조금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뿜어내는 남자의 주먹.
석찬도 결국 마력을 사용했다.
“보라색이라. 너도 도달한 거구나.”
“…….”
자꾸만 흥미롭다는 듯 자신을 뜯어보는 남자의 모습에, 석찬이 마력을 듬뿍 담아 그의 전신을 두들겼다.
퍽! 퍼벅!
‘테크닉은 그리 뛰어나지 않군.’
몇 번 공방을 주고받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의 기술은 80층 수준에 한참 모자랐다. 사실상 그저 본능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콰직!
그 주먹 한 방 한 방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바닥에 생긴 크레이터를 보며, 위기감을 느낀 석찬이 빠르게 그를 제압하기 위해 강수를 두었다.
강마력.
다시금 폭발적으로 상승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남자를 몰아가기 시작한 석찬이 싸움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퍼벅! 콰직!
몇 번의 정타가 허용되자, 남자가 몸을 휘청였다.
“으… 파워업? 굉장한데?”
그래도 그는 여전히 흥미롭다는 듯이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워가 더 실렸어.’
아까 공격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는데, 지금 것은 더욱 심했다. 하지만 석찬은 마구잡이로 난사해대는 주먹에 맞을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피할 것은 피하면서 과감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쿵!
그러나 문제는 또 하나 있었는데.
‘맷집도 괴물이군.’
바로 강철과도 같은 남자의 몸. 근육이 어찌나 단단한지 때린 주먹이 아파 왔다.
“재밌다, 이런 싸움은 오랜만이야!”
후웅!
찌직, 쿵!
“큭.”
충격파에 중심을 잡는 사이, 박치기로 석찬을 밀쳐낸 남자.
‘돌대가리냐, 무슨 공격력이….’
평범한 박치기가 아니었다.
“으럇!”
기세를 잡고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 남자.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는 와중, 라우르가 계속해서 권유했다.
[그러지 말고 강신하자니까?]
‘그러니까 왜 자꾸 강신을… 이유가 뭔데요?’
[그야 저 새끼가….]
후웅- 콰지직!
공격을 피하자 등 뒤의 산이 괴멸되었다.
탁-
석찬은 거리를 벌리며 공격할 타이밍을 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남자는 덤벼들지 않고 그를 지켜봤다.
“뭐냐.”
“너, 진짜 재밌어. 너라면 이것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갑자기 자세를 잡았고 동시에 천진난만하던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변의 공기도 작게 울기 시작했다.
“뭣.”
잠시 후, 석찬은 놀라운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크윽…”
남자가 몸을 웅크리자, 그의 몸이 천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아악.
밝은 금발이 희게 물들었고, 오크처럼 거대한 몸이 줄어들더니 석찬과 비슷한 키로 변화했다.
하지만 석찬이 놀란 것은 이런 신체적 변화가 아니었다.
‘이 힘은…’
변화가 시작된 직후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힘, 그것은 석찬도 잘 아는 것이었다.
신력. 그런데 천사에게 빌린 신력 따위가 아닌 진짜 신력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왜 저 녀석이 라우르의 신력을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 물음에, 라우르가 오랜만에 영혼 형태로 나타나 답했다.
[아무래도… 저 새끼가 내 남은 영혼 조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꾸드득.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남자가 변화를 마쳤다.
번쩍-
눈꺼풀 사이에 감춰져 있던 진한 녹안이 모습을 드러냈다. 영락없는 투신의 눈빛이었다.
“흠… 네 녀석이냐?”
말투가 바뀌었다.
“대답이 늦군.”
남자의 몸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석찬의 뒤로 이동한 남자가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쾅!
석찬의 몸이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큭…”.
전혀 인지조차 할 수 없는 속도와 위력, 확실했다.
‘강신인가.’
그렇다면 지금 남자의 몸으로 움직이는 자는 바로 라우르.
“이럴 수 있는 거였어요? 왜 저 녀석이 영혼 조각을….”
[조건만 맞으면 누구든 영혼 조각을 소유할 수 있게 해서 그런가… 느껴지는 힘으로 봐서는 세 조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세 조각. 자신보다 하나 많으며, 총 여섯 개의 영혼 조각 중 절반을 소유한 남자가 천천히 석찬에게 다가왔다.
“긴말하지 않으마. 내 일부를 돌려주면 죽이지는 않도록 하지.”
요구보다는 통보에 가까운 말이었다. 명색이 신이라서 그런지 위압감도 장난이 아니었다.
‘알렉산더도 대단하네. 이런 양반이랑 어떻게 싸울 생각을 했대.’
[그래서, 어떻게 할래? 이대로 뺏길래? 아님…]
‘당연한 거 아니에요?’
[좋았어.]
석찬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석찬은 더 이상 쓰러져 있지 않았다.
쾅!
역으로 남자를 날려버린 석찬, 아니 라우르가 녹안을 번뜩였다.
“어디, 한번 해볼까?”
“네 놈은… 방금 그 애송이가 아니군. 혹시 ‘나’인가?”
“그럼 나지 너냐?”
석찬의 주먹을 신력으로 덮은 라우르가 주먹을 맞부딪쳤다.
“어디 한번, 얼마나 뛰어난 애를 화신으로 삼았나 확인해볼까?”
“내가 할 소리.”
두 신神이 똑같은 자세를 잡았다.
잠시 후.
콰앙!
천지가 요동하는 충격이 두 절대자의 싸움을 알렸다.
* * *
“에피르 님!”
에피르의 방에 도착한 아이테르는 급하게 그녀를 찾았다.
“에피르 님!”
침상 위에 앉은 채 수정구에 집중 중인 그녀에게 다가간 그는 순간 멈칫했다.
“이게 무슨….”
에피르가 보고 있는 수정구에 비친 모습.
- 콰아앙!
땅이 폭발하고, 마그마가 치솟아 오른다. 그 한가운데에는, 예의 남자가 서 있었다.
석찬이 아니었지만, 라우르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 앞에서 보란 듯이 같은 힘을 사용하고 있는 석찬까지.
‘이런….’
예전에도 몇 번 보란 듯이 강신이나 부분 강신을 사용했던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라우르나 석찬이 알아서 신력을 컨트롤해 투신의 존재를 감췄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강대한 신력을 뿜어내는 두 남자. 덕분에 변명할 틈도 없었다.
“아이테르 님? 제가 지금 뭘 잘못 보고 있는 거겠죠? 왜 석찬 님과 저 인간의 몸에서….”
“에피르 님.”
“분명 그는 과거 천마 대전에서 모든 힘을 잃고 추방당하셨다고.”
에피르가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는 것을 알아챈 아이테르가 급하게 말을 둘러댔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지금 상부에 보고를 올리고 오는 길입니다.”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지금 위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래도 당신에게는 피해가 없을 거다 등등, 천사로서 100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거짓말을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이나 하는지 몰랐다.
“걱정 마십쇼. 별일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간신히 그녀를 안심시킨 아이테르는 수정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쿠궁! 쿠구궁!
일격 하나하나에 지형이 파괴되는 공격들.
[큭.]
정타를 허용한 석찬이 더욱 큰 힘으로 남자를 패대기쳤고, 이후로도 무자비한 공방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테르가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비등비등해 보이지만, 둘 사이 힘의 차이는 명확하다.’
그가 향한 곳은 안내자의 공간.
그중에서도 유난히 독특하게 홀로 홍차를 마시고 있는 안내자에게 다가간 아이테르가 그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겼다.
“악!”
고통에 홍차를 뿜은 남자는 안내자 G. 그는 이게 무슨 횡포냐는 듯이 아이테르를 노려봤지만, 그가 보여준 석찬과 남자의 싸움에 침을 삼켰다.
“이런 미친, 제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겁니까?”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빠르게 정신을 차린 그가 아이테르에게 물었다.
“그냥 보여준 건 아닐 거고,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말에 아이테르가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넘겨주었다.
“이건….”
그것을 본 G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