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쐐애액.
날아오는 마력의 창검을 보며, 랜스는 침착하게 머리를 회전했다.
‘수는 총 아홉 개.’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피하며 양옆에서 날아오는 창과 화살을 쳐낸다. 직후 아래에서 올려 쳐 오는 도끼를 허리를 꺾어 피하고, 위에서 쇄도하는 대검을 몸을 굴려 피해냈다.
이후로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네 개의 무기.
푹.
“큿.”
아무리 랜스라고 하더라도, 모든 무기를 피해낼 수는 없었다. 등 뒤에서 날아오는 장창에 찔린 그가 신음을 삼켰다.
촤악.
창을 뽑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강마력으로 만든 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대미지가 강력했다.
“꽤 하는군.”
“당신이야말로.”
솔직히 석찬도 꽤나 놀랐다.
‘세 번 정도는 적중할 줄 알았는데….’
랜스는 무작위로 날아오는 아홉 번의 공격 중 무려 8번을 회피했다. 마지막에 적중한 일격에 대한 대미지도 실시간으로 회복하고 있어 별로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아직 마력이 남았나?”
렌스는 질색한 눈으로 아직도 떠 있는 아홉 개의 무기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석찬은 한 개의 검을 더 만들어내 총 10개의 무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미친놈.”
애송이 녀석이 마력의 총량이 얼마나 많은지 저렇게 많은 마력 무기를 동시에 다루고 있었다.
‘남색 마력 맞아?’
마력의 총량이 보라색 마력을 지닌 자신보다 많은 것 같았다.
“메리, 저거.”
“응… 대단한데?”
드레이븐과 메리도 침을 삼키고 있었고, 찰스는 놀랐다는 듯 동그란 눈으로 석찬을 바라봤다.
‘저 정도까지 성장했다고?’
수년 전에 보았던 석찬도 충분히 강했지만, 절대 랜스를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도 랜스와의 정면 대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마력 무기가 드러난 후로부터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이 싸움, 해볼 만할지도?’
원래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이는 절대 메꿀 수 없는 큰 격차가 있었지만, 1층에서는 극한까지 발휘된 층 페널티로 격차가 많이 좁혀진 상태.
게다가 마력 무기가 랜스에게 조금은 위협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석찬이 싸움에서 약간의 유리한 요소가 생겼다는 소리.
‘조심히 그리고 노련하게 싸우면 승산이 있다.’
랜스. 오랜 옛날이긴 했지만 한때 자신에게서 무기술을 배운 천재. 드레이븐과 더불어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만큼 그가 배신했어도 그에게 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을 위해 기꺼이 분노하고 복수해 주겠다고 다짐한 석찬에게 더 정이 갔다.
그렇기에 찰스는 조용히 석찬을 응원했다.
‘조심해야 한다.’
걱정도 잊지 않으며.
그는 안다.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지만, 랜스에겐 아직 남겨진 한 수가 존재했다. 그것을 이겨내야만, 석찬은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석찬과 랜스가 다시금 격돌했다.
“애송이, 꽤 하는걸?”
“과찬…이십니다!”
랜스는 어느새 석찬과 똑같은 수의 마력 무기를 만들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10개의 보라색 병장기가 석찬의 무기를 난타했다. 마력의 차이 때문인지 일방적으로 밀리며 점점 빛이 옅어지는 마력 무기.
석찬은 미련을 가지지 않고 무기를 전부 치워버렸다. 그리고 마력의 갑주를 두르며 랜스에게 돌진했다.
“합!”
강화 얼티밋 피스트. 진현이 만들고 석찬이 보완한 기술이 랜스를 강타했다.
“켁!”
명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랜스가 훈련장 벽에 처박혔다.
그는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이거지.”
랜스의 눈빛이 변화했다. 옅은 붉은빛이 도는 안광에 근육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눈을 보면 천무진의 악마화 같긴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악마화와 달랐다.
‘저것은…’
[분노, 그리고 즐거움.]
라우르가 랜스 주변에 떠다니는 감정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저거, 광전사 같은데?]
‘광전사?’
들은 적 있다. 광전사는 탑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히든 스킬 중 하나로, 분노와 상처를 양분 삼아 본신의 무력을 수배, 혹은 수십 배를 증폭해주는 말도 안 되는 스킬이었다.
‘그런데 랜스는 마력 운용자 아닌가? 어떻게 저것을…’
그의 의문을 알고 있다는 듯, 랜스가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애송이는 아직 몰라도 되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등 뒤에서 나타난 기척. 피할 시간 따윈 없었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시야가 암전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붉은 액체가 눈앞을 가득 가리고 있었고, 그 사이로 근육질의 사내가 보였다.
랜스. 그는 천천히 석찬을 향해 다가왔다. 그가 손을 뻗자, 무기가 만들어졌다.
여태껏 그가 다루던 창이 아닌, 거대한 할버드였다.
“호오….”
그것을 본 드레이븐이 작게 감탄했다.
“저것까지 꺼낸다라…”
“위험하지 않아?”
그가 할버드를 꺼내자마자, 메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베로니카를 쳐다봤다. 그녀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손에 하얀 기운을 가득 머금고 두 사람을 유심히 지켜봤다.
스윽.
랜스가 할버드를 석찬의 목에 겨눴다. 날카로운 예기에 목에서 핏방울이 맺혔다.
석찬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굴렸다.
‘광전사라…’
오른팔은 부러진 상태. 몸은 한계에 가까웠지만, 정신력은 아직 꽤 남아 있었다.
‘팔은… 버린다.’
석찬은 과감히 선택했다.
괜히 팔을 치료하느라고 정신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마력 그리고 신력으로 승부를 본다.’
그의 눈이 다시금 신의 눈으로 변했다.
탕!
마력으로 할버드를 떨쳐낸 석찬이 멀찍이 자리를 벌렸다. 오른팔이 덜렁거렸지만, 적당히 거치적거리지 않게 고정하는 것이 끝이었다. 치료는 없었다.
“치료하지 않는 거야?”
“…….”
“건방져.”
랜스에게서 가공할 만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석찬은 떨리는 몸을 진정하며, 무기를 만들어낸 후, 검을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정면 승부냐?”
랜스가 할버드를 들었다. 그리고 휘둘렀다.
콰광!
그저 무기를 휘두른 것뿐이지만, 훈련실 벽이 갈라졌다.
‘저게 버티지 못할 정도라니.’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석찬은 할버드를 피해내며 천천히 랜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광전사의 특징이라는 지치지 않는 체력 때문일까? 할버드에 실린 힘은 도저히 빠질 생각을 안 했다.
콰창-
“쳇, 랜스! 적당히 해라!”
공격을 막을 때마다 반파되는 보호막을 보며, 드레이븐이 소리쳤지만, 랜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석찬에게로 향해 있었다.
그것을 안 석찬이 일부러 사람들의 피해가 가지 않는 곳으로 가 랜스의 공격을 받아냈다.
파직, 팍!
보호막이 작살나고, 하나 남은 팔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눈도 조금씩 색이 옅어지기 시작한다.
‘한계야.’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치명적인 결정타가 필요한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더 공격을 받아냈을까. 튕겨 나간 팔이 덜렁거렸다.
‘팔이 빠졌어.’
양팔이 봉인된 상황에서, 석찬은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놓였다. 공격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낼 것인가.
‘젠장.’
솔직히 말이 선택이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공격을 피해낸다 한들, 다음 공격을 막아설 힘이 없었다. 그래서 맞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저 말도 안 되는 공격을 말이다.
살짝 떨렸지만 석찬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어차피 다른 선택지도 없는데,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차하면 심판이 막아주겠지.’
석찬은 멀찍이서 하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베로니카를 힐끔거리며, 힘을 해방했다.
콰아앙!
석찬의 주변으로 거대한 남색 오라가 일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쿠구궁-.
허공에 거대한 주먹이 생겨났다.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던 주먹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주먹에 신력이 추가되었다.
알렉산더와 싸울 때 사용했던 기술의 거대화 버전. 크기가 거대한 만큼 그 안에 들어간 힘도 엄청났다.
남아 있는 힘 따위는 없는 완전한 전력.
‘이름은… 모르겠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 때문인지 기술명 따위를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호오…”
굉장한 힘이 집약된 주먹의 모습에 랜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거… 재밌어 보이는군!”
그가 할버드를 치켜들었다. 주변으로 보라색 오라가 일었다. 그도 할버드에 모든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드레이븐이 벌떡 일어났다.
메리 또한 아공간에서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두 사람은 알 수 있었다. 저 미친 기술들이 부딪친다면, 반드시 피해가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막아야 해.’
판단은 빨랐다. 드레이븐은 랜스의 쪽으로, 메리는 석찬의 쪽으로 달라붙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부딪치는 속도가 두 사람이 석찬과 랜스를 떼어내는 속도보다 빨랐다는 것.
“메리, 충격에 대비해!”
드레이븐이 보호막으로 랜스를 둘러싸며 외쳤다. 그때.
탓.
베로니카가 두 사람 사이로 이동했다. 그녀의 눈은 평소와 같은 죽은 눈이 아니었다.
밝은 이채가 맴도는 백안을 크게 뜬 그녀가 합장했다.
짝!
그녀가 손바닥을 맞대자, 그녀의 손에 뭉쳐 있던 흰 기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막 부딪치려는 석찬의 거대 주먹과 랜스의 할버드를 감싸는 거대한 구로 진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훈련실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크읏.”
이에 찰스가 몸을 휘청였고, 드레이븐과 메리 또한 불안한 눈으로 거대한 백구(白球)를 살폈다.
그런데 조금 전의 폭발이 거짓이었다는 듯, 구는 멀쩡했다.
훈련실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었지만, 흔한 실금 하나 가지 않은 구. 그것을 보며, 드레이븐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역시 베로니카, 고마워.”
“천만…의… 말씀.”
딱.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백구가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와장창 깨지며 사라졌다. 베로니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냉소한 눈으로 고개를 돌리며 찰스에게 향했다.
“일… 끝…, 쉴… 곳…”
다시 죽은 눈으로 돌아온 그녀의 멍한 시선에 찰스가 큼큼거리며 말했다.
“그…그래, 잠깐만 기다리게.”
베로니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며, 그가 드레이븐을 향해 당부했다.
“석찬이랑 랜스 좀 잘 부탁하네. 금방 오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십시오, 선생님. 메리가 알아서 잘해줄 겁니다.”
“나만 믿어!”
“그럼, 믿고 다녀오지.”
정말로 훈련실을 떠나려는 찰스.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저 멀리서부터 작은 진동이 울렸다. 진동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문 앞에서 느껴졌다.
문 뒤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위압감에 훈련실 내부의 자들이 전부 긴장했다.
끼이익.
그리고, 천천히 열린 문 사이로.
“네 녀석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붕대를 칭칭 싼 거한의 푸른 눈이 밝게 빛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