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쿵!
명치 부근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연격이 석찬을 향해 날아들었다.
훙- 훙-
마구잡이로 들어오는 주먹이었지만, 시전하는 상대가 남작급 악마에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지컬의 소유자이다. 한 대라도 맞으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실제로 방금 얻어맞은 한 대만으로 석찬은 꽤나 큰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한 방에 금이라…’
즉시 치유 마법을 퍼부은 석찬.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그의 몸을 보며, 레벨리온이 작게 웃었다.
“해괴한 몸이군.”
“너만큼 이상할까?”
석찬은 사라진 연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레벨리온을 보며 침을 삼켰다.
뿔은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졌으며, 몸집도 더욱 거대해졌다. 5m 정도 됐던 키가 7m 정도로 커지고 몸집도 그만큼 더 불어났다. 조금만 더 컸으면 천장을 뚫었을 것이다.
“뭐, 진화 그런 거냐?”
“진화는 무슨, 봉인해 두었던 힘을 풀었을 뿐이다.”
‘봉인?’
질문에 대한 답은 라우르에게서 나왔다.
[귀족 녀석들은 저마다 ‘권능’을 가지고 있지. 이건 알지?]
‘그렇죠.’
[권능은 가장 쓰레기 같은 것도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어서 말이야, 함부로 내보이면 안 돼. 잘못했다간 큰일이 일어날 수 있거든.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석찬은 주변을 둘러보고, 침음했다.
치직, 치지직.
바닥에 널브러진 책이나 도구들이 찢기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권능, ‘디스트럭션’의 힘이다.”
‘디스트럭션.’
꽤나 많은 육체 전투 계열 악마들이 지닌 파괴의 권능이었다.
“디스트럭션을 발동한 것만으로도 격이 떨어지는 녀석들은 파괴되어 버리지.”
파괴.
그 말을 들은 석찬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파괴라고? 진짜?”
“물론이지. 보아라!”
순간, 레벨리온의 몸에서 강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콰광! 쾅!
간신히 버티던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진 벽 너머로 렐이 보였다.
석찬은 그녀의 몸 주변으로 펼쳐진 장막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레벨리온을 바라봤다.
“그게 전부냐?”
동시에, 석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짓으로 풍압을 일으켜 기운을 상쇄했다.
그의 도발에 레벨리온의 얼굴이 진짜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애송이 녀석이… 진짜 디스트럭션의 힘을 보여주마!”
쾅!
그가 손을 뻗자, 검은 구가 생성되었다.
콰아앙!
검은 구에서 펼쳐진 거대한 파동이 닿는 모든 것을 산산이 분쇄했다.
하지만, 석찬의 표정은 여전히 평안했다.
‘장난하고 있네, 파괴?’
석찬은 생각했다. 차라리 처음 날렸던 일격이 더 위협적이면 위협적이지, 지금 날리는 공격들은 하나도 강해 보이지 않았다.
“진짜 파괴는 그런 게 아냐.”
“뭐? 무슨 소리냐, 인간.”
석찬은 대답 대신, 미소와 함께 손을 펼쳤다.
휘오오-
거대한 폭풍이 석찬의 손 안에 모여들더니.
파아아.
새하얀 빛의 기운을 만들어냈다. 아직 완전한 백색이 아닌, 조금은 탁한 은빛이었지만, 일전보다는 꽤나 밝아진 신력이었다.
“진짜 파괴란 말이다.”
석찬의 손에 모인 신력이 작게 뭉쳤다. 어느새 녹안으로 변한 석찬이 레벨리온을 향해 구를 날렸다.
“뭐냐, 인간?”
레벨리온은 솔직히 석찬이 날린 구에 대해 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천계 소속, 그것도 천사장과 계약을 했다고 해도 아직 70층까지밖에 오르지 않은 인간.
벨리아스를 격퇴했다고 했지만, 솔직히 레벨리온은 그가 혼자 악마 대공을 물리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님이 아니더라도, 천사들이 끼어들었겠지. 보나 마나다.’
실제로 치료 중인 벨리아스의 몸에서는 대량의 신력이 검출되었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힘을 봉인한 자신과 동급의 강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레벨리온은 석찬을 저평가했다.
그리고, 이는 그가 석찬의 최강의 기술, 라우르의 비기 중 하나인 파괴(破壞)를 정통으로 얻어맞게 된 계기가 되었다.
쿠궁-.
파괴의 힘이 담긴 구를 잡았을 때, 그제야 레벨리온은 깨달았다.
‘위험하다.’
구에게서 느껴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성을 느낀 그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구는 레벨리온의 손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 가는 손을 보며, 레벨리온은 구에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구는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오며 천천히 몸을 갉아 먹었다.
어느새 팔꿈치까지 사라진 왼팔을 보며, 레벨리온이 외쳤다.
“뭐냐, 인간!”
이에 석찬이 씩 웃으며 답했다.
“뭐긴 뭐야, 진짜 ‘파괴’지.”
‘진짜 파괴?’
의구심이 들었지만, 레벨리온은 그것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깻죽지까지 타고 올라온 파괴의 기운을 느끼며, 결국 그는 선택해야 했다.
‘왼팔은 버린다.’
파괴의 기운이 몸을 감싸기 직전, 레벨리온은 오른팔에 검은 마력을 가득 둘러 얼마 남지 않은 어깨를 절단했다.
툭.
떨어진 어깨가 바닥을 구르더니,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재생되지 않는 팔을 보며 잠깐이지만, 레벨리온은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말이다.
“인간…”
시뻘게진 눈으로 석찬을 노려본 레벨리온이 하나 남은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죽인다.”
“할 수 있으면.”
석찬이 또 다른 구를 만들어냈다. 신력의 구를 본 레벨리온이 잃어버린 왼팔을 떠올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런 그를 보며, 석찬이 씩 웃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오지 마라!”
쾅!
그가 바닥을 내리찍자, 거대한 벽이 생겨나 석찬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구에 벽이 소멸하며 레벨리온의 맨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라.”
“큭! 네놈!”
레벨리온이 사력을 다해 빛의 구를 피하기 위해 달렸다.
쾅!
그것에 닿은 벽이 산화하는 것을 보며, 레벨리온은 식은땀을 흘렸다.
‘정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또한, 분노도 함께 차올랐다.
‘내가 지금 인간을 상대로 떤다고?’
자존심이 높은 악마에겐 이것보다 더욱 수치스러운 것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벨리온은 선택했다.
다리 하나쯤은 버리더라도, 아니 사지가 없어지더라도 맞서 싸운다.
악마이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고, 사지에 몰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악의 선택이었다.
“도망치는 게 아니었나?”
멈춰선 그를 보며, 석찬이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레벨리온은 진중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겠다.”
그 순간, 레벨리온이 풍기던 디스트럭션의 힘이 한층 더 강해졌다. 아직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듯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석찬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움머어!”
강해진 힘에 맞춰 레벨리온의 몸이 한 번 더 변화했다.
외형은 인간의 모습에서, 전체적으로 동물에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손발에는 발굽이 생기며, 날카로운 꼬리가 돋아났다.
얼굴은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진 것이 마치 신화 속 미노타우르스를 닮은 모습이었다.
‘이래서 블랙카우였던 거냐?’
마지막으로 검은 털까지 돋으니 완전한 검은 소, 블랙 카우의 모습으로 변한 레벨리온이었다.
“이것이 내 본래의 모습. 이 모습으로 변한 나를 본 녀석 중에 살아남은 놈은 없었다.”
거칠어진 그의 말을 들으며, 석찬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첫 번째가 되겠는데?”
그의 손에 다시금 빛의 구가 생성되었다.
“같은 수법에는 안 당한다!”
레벨리온은 빛의 구가 완성되기 전에 석찬에게 달려들었다.
쾅!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그를 피해 공중으로 날아오른 석찬. 집중력이 흐트러져서인지, 신력은 산산이 흩어졌고, 석찬의 녹안도 옅어졌다.
“그래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군.”
“그 기술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놈이 입만 살았구나!”
레벨리온의 발굽에서 디스트럭션이 발동되었다.
콰아앙!
석찬을 향해 쏘아지는 검은 광선. 이를 보는 석찬의 눈이 부릅떠졌다.
쾅!
석찬의 몸에 직격한 광선. 이를 보며 레벨리온은 승리를 직감했다. 천사처럼 날개가 있어 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공중에서 낙하하는 중에 공격을 피할 수는 없는 일.
실제로 석찬은 공격에 직격당했다. 탑의 제약을 배제한 채 완전한 힘을 발휘하는 디스트럭션에 말이다.
그가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한 레벨리온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내 승리다, 인간.”
그렇게 안심한 순간이었다.
“누가 네 승리래?”
연기 속에서 들리는 석찬의 목소리와 함께, 레벨리온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왔다.
푸슉, 퓩!
“큭?”
어깨나 등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충격에 레벨리온이 검은 마력으로 몸을 방어했다.
텅!
방어막에 튕겨 떨어진 것을 확인한 레벨리온의 표정이 악에 물들었다.
“고작 이런 걸로… 그보다 살아 있는 거냐? 어떻게?”
“날 얕보면 안 되지.”
촤악!
파공음과 함께, 자욱했던 연기가 한순간에 흩어진다. 그곳에는 남색 날개를 단 석찬이 있었다.
디스트럭션에 직격해 파괴된 왼쪽 날개가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얼음송곳이 들려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레벨리온은 바닥에 떨어진 얼음송곳을 무참히 짓밟으며 그를 노려봤다.
“아프지? 이래 봬도 강마력을 섞어놨거든.”
이와 함께 추가로 송곳을 날리는 석찬. 이에 레벨리온이 분노해 소리쳤다.
“잡기를!”
텅! 텅!
쏟아지는 얼음송곳을 모조리 막아내며, 레벨리온이 석찬을 향해 도약했다. 하지만 석찬은 날개를 펼쳐 상공을 날았다.
좀 전의 충격으로 천장이 완전히 무너졌기에,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했다.
쾅!
조금 남아 있는 천장을 완전히 반파하며 도약한 레벨리온이 쓰레기 더미로 이루어진 블랙카우 본거지의 꼭대기 위에 섰다.
끼긱- 끼기긱-
녀석의 워낙 거대한 몸집 때문일까? 꼭대기가 점점 기울기 시작했고, 주변을 거닐던 사람들도 그를 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뭐야? 저거?”
“소 같은데?”
“소가 저렇게 커?”
빠직.
그들이 말하는 ‘소’라는 키워드에 레벨리온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다 닥쳐라! 음머어어!”
그의 우렁찬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막았다.
“죽어라, 강석찬!”
분노하며 석찬을 향해 다시금 도약하는 레벨리온.
석찬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생각했다.
‘여기는 외부다. 지금 내가 피하면 아래쪽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땅에는 석찬과 레벨리온의 전투를 지켜보는 사람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싸움에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던 석찬은 레벨리온의 공격을 맞받아치기로 결정하고 힘을 모았다.
찰나의 순간. 석찬의 눈이 녹색으로 빛났다. 양팔에 강대한 투신의 힘이 흘러들어 왔다.
‘여기서 조금 더.’
석찬의 상체가 부풀어 올랐다.
7년의 수련으로 얻어낸 새로운 비기.
‘강신 – 반신(半身) ver.’
몸 절반에 신의 기운을 받아들인 새로운 기술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흐읍!”
신력과 강마력의 힘이 동시에 담긴 주먹이 레벨리온의 머리를 강타했다.
콰과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레벨리온의 몸이 추락했다.
본거지 중앙에 처박힌 그는 말이 없었다. 소에서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그는 쓰러진 채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석찬의 승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