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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17화 (117/200)

제117화

오랜만에 느껴보는 현기증과 함께 몸이 허물어진다.

‘하긴, 몸을 그렇게 혹사했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천무진의 검강의 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석찬은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스윽-

눈을 뜬 석찬은 익숙한 천장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아왔구나.’

며칠 동안 계속 머물고 있는 여관방 안이었다. 아마 엘리자베스가 옮겨준 것일 터. 게다가 여관방에는 자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깼나?”

“그래.”

하나 더 놓인 침대 위에 누워있는 천무진. 그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이려던 찰나, 붕대로 칭칭 감싸인 그의 왼팔이 보였다.

어깨 밑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팔에 석찬이 놀라 물었다.

“팔, 어떻게…?”

“전혀 기억이 안나나 보군.”

천무진은 붕대를 툭툭 건드리며 마지막 합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네 녀석이 사용했던 초식, 내 비기를 소멸시키다 못해 내 몸까지 갉아먹으려 들더군. 네놈의 종자께서 조치를 취해주지 않으셨다면 난 필시 죽었겠지.”

그 말에 석찬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분명 정도를 넘어서긴 했지만, 이번 싸움은 어디까지나 대련, 그런데 상대를 죽일 뻔하다니.

‘안일했다. 파괴를 써도 천무진이 무사할 줄 알았는데.’

본래 석찬이 파괴를 사용한 목적은 오직 강기의 검을 파괴하려고지, 천무진의 몸에 위해를 끼치기 위함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때문에 석찬은 사과했다. 사과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할 것 같았다.

‘큭.’

신력의 후유증 때문인지 몸이 삐걱거렸지만, 석찬은 개의치 않고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괜찮네. 사과할 필요 없어.”

다행히도, 천무진은 석찬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이번 일은 나의 수련 부족으로 일어난 바. 더욱 정진하면 될 뿐이다.”

게다가 팔이 잘려나갔음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더 감사하지. 자네 덕분에 새로운 경지를 살짝 엿봤으니.”

“새로운 경지?”

“마지막에 사용했던 기술 말이다.”

“아.”

[새로운 경지라….]

어느샌가 날아온 라우르도 천무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라우르.’

[저놈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어.]

‘예?’

라우르의 인정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내다니?

[예사 놈이 아닌 것은 확실해. 특히 마지막의 그 기술. 신력이 없는, 온전한 너의 힘으로 막는 게 가능했을 것 같냐?]

‘확실히….’

신력을 사용했어도 그의 기술이 석찬에게 위협이 전혀 안 된다고 볼 수 없었는데, 신력이 없는 상태로 막는다라.

‘당근 죽겠죠.’

[그래. 녀석은 너와 같은 층에서 저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거다. 게다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예전부터 익히고 있었던 게 분명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천무진의 대단함이 더욱 실감났다.

[네가 아니라 저 녀석이 먼저 내 신전을 방문했다면, 화신이 바뀌었을 수도 있겠어.]

‘그 정도군요.’

[네 눈에는 부족해 보이냐?]

‘전혀요.’

부족하기는 개뿔, 차고 넘쳤다.

“왜 그렇게 쳐다보나?”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살짝 놀랐어. 솔직히 네가 이렇게 강할 줄 몰랐거든.”

“피차 마찬가지다. 원래 검강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거늘… 그러지 못했어.”

‘하하….’

천무진도 저와 하는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동안 두 남자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100년을 넘게 살았다고?”

“원래 세계에서는 그렇게 살았고, 탑에 들어온 지는 13년 됐다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는 거야? 100살이면….”

“환골탈태를 두 번 거치니 육신이 더 이상 노화하지 않게 되었다만.”

“와. 그건 부럽네.”

이런 이야기부터.

“역시 마력 운용자란 말이지.”

“천운이었지. 덕분에 천마로서 사용하던 모든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등급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

“얼마 전에 파랑 등급이 되었다만.”

“와….”

[역시 재능있는 녀석이야. 탐나는데?]

저런 이야기까지.

“진짜 무림에서 왔다고?”

“무림을 아는가?”

“우리 세계에서는 무림이라는 게 소설 단골 소재였거든. 당신처럼 천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도 많았고.”

“호오? 자세히 들려줄 수 있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지금 두 사람은 친한 친구와도 같았다.

어느새 대화 주제가 대련을 벗어나, 전혀 쓸데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쯤.

끼익-

문이 열리고, 두 여인이 들어왔다.

“응?”

이브와 엘리자베스. 두 사람은 한창 이야기 중이던 두 남자를 바라보고.

스윽.

방 밖에 적혀 있는 방 번호를 다시금 확인하고 나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왔어, 이브?”

“언제 깼어요?”

“아까 전에.”

이브는 가져온 물수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석찬의 상태를 살폈다.

“어디보자, 아직 조금 아플 텐데 그렇게 움직여도 돼요?”

“조금 아프긴 한데….”

석찬은 이브를 바라보며, 목구멍 밑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

미안하다.

차마 이 소리를 하지 못하겠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과도 한두 번 해야지. 암 그럼, 그렇고 말고.]

옆에서 라우르가 저러고 있기도 하고 석찬 본인도 사과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천무진의 팔을 자른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이미 이브에게는 다음에 무리 안 하겠다고 수 차례나 약조한 상태인데 그걸 또 어긴 것이다.

그런데 이미 화나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더 무서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가슴 깊숙한 데서부터 써늘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그리고, 이 감정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사과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수도 있다고.

“미안해, 이브.”

결국 석찬이 두 눈 딱 감고 고개를 숙였다.

“…….”

이브는 말이 없었다.

“잘못했어. 진짜로.”

양손까지 합장하고 용서를 구하는 석찬. 그제서야 이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로만요?”

“응?”

“그래, 보스 몬스터랑 싸우다가 다치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꼭 처리해야만 하는 녀석이고, 못 죽이면 오히려 죽을 수 있으니까.”

“으, 응.”

“그런데, 저번에도 그렇고, 저저번에도 그렇고. 도대체 왜 오빠는 대련만 하면 죽자 살자 덤비는 거예요?”

사실 석찬이 죽을 뻔하거나 크게 다친 적의 대부분이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가 아닌, 대련에 의해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 아버지나 진현 오빠랑의 대련에서는 그래, 그나마 나았지. 이번에는 진짜 죽을 뻔했어요. 알아요?”

“응….”

“아는 사람이 어떻게 그래.”

석찬은 깨달았다. 어떻게 말하든 현재 자신은 죄인이다.

[죽도록 빌어라. 내가 볼 땐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미안하다. 앞으로….”

차마 ‘앞으로는 안 그럴게.’라는 말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 뭐요.”

“앞으로는 주의할게.”

“그래요. 제발 주의라도 해줘요. 걱정되니까.”

“미안. 그리고 치료해줘서 고맙다.”

눈물을 글썽이는 이브를 다독이는 석찬.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천무진이 작게 말했다.

“내가 네 처를 걱정시킨 것 같군.”

“아니라니까… 너까지 왜 그래?”

오늘도 극구 부인하는 석찬, 그런 그를 보며 엘리자베스가 천무진에게 속삭였다.

“원래 저런 애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런가… 그나저나, 이전의 조치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네.”

천무진은 잘려나간 팔을 가리키며 고개를 숙였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어. 이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때, 엘리자베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무언가를 요구했다.

“그래? 그러면 그때 썼던 기술에 대해 가르쳐줄 수 있어?”

“기술? 어떤….”

“우리처럼 변하는 기술 말이야.”

순간 엘리자베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기운에 천무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인간의 것이 아니군.”

“너도 피차 마찬가지잖아?”

“그렇지.”

천무진의 눈이 옅은 붉은색으로 빛났다.

“그래, 그거 뭔지 좀 말해줄 수 있어? 대련 때부터 엄청 궁금했거든.”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그 정도라면… 좋네. 자리를 옮기지.”

“그래! 들었지? 얘 좀 빌릴게!”

기뻐하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브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상처 벌어지지 않게만 조심해줘요.”

“고마워!”

“어어….”

검은 마력으로 천무진을 띄운 엘리자베스가 창문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둘만 남은 방안.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고요해진 상황 속.

“크흠….”

“할 말 있어요?”

“어… 딱히?”

어색한 상황이 계속됐다.

“…….”

이브와 수년간 같이 살아왔건만, 이렇게 어색한 적은 또 처음이다. 비단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석찬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하지?’

이브 또한 겉으로는 고고한 척 굴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게다가 석찬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너무 세게 말했나?’

처음엔 화가 나서 말을 세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석찬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대련도 어떻게 보면 전투야.’

전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실제로 대련 중에 상대를 죽이거나 크게 다치는 일은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너무 이기적이었어.’

사과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사과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안절부절못하길 어언 30분. 이브가 잠깐 뭘 좀 가지러 간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석찬이 참고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파하아…”

[띨빵이가 한 놈이 아니라 두 놈일 줄이야… 답답하다. 고구마 천 개는 먹은 기분이야….]

“예?”

[있어, 띨빵아.]

석찬은 라우르의 말을 알아챌 수 없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천무진과의 대련이 무사히(?) 끝났고.

석찬 일행은 다시 탑을 오르기 위해 준비했다.

“준비됐어?”

“물론이다.”

새로운 동료와 함께.

펄럭펄럭-

천무진의 왼쪽 소매가 바람에 펄럭거린다.

처음 봤을 때처럼 윤기가 좔좔 흐르는 흑발과 조각 같은 외모에 주변 여자들이 한두 번 그를 흘끔 쳐다봤다.

“이야, 우리 천마 씨, 인기 많으시네~.”

옆에서 진현이 부러운 듯 천무진을 향해 툴툴거렸다.

“…….”

하지만 천무진은 대꾸조차 하지 않으며 석찬에게 물었다.

“네 친구 말이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질투가 심하군.”

“진현이가 그런 면이 조금 있긴 해.”

“닥쳐라, 강석찬이….”

“맞잖아?”

“틀린 말이라도 있나요?”

“본좌도 그렇게 생각한다만.”

“큭….”

어느새 석찬 일행에게 동화되어 진현 놀리기에 동참하게 된 천무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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