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텔레포트 마법진은 유용한 수단이다.
사냥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동 시간을 대폭 줄여줄 뿐만 아니라 자동 귀환까지 갖추고 있으니, 사실상 사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럼에도 식사 도중 석찬은 더욱 기발한 것을 생각해냈다.
“엘리. 차라리 몬스터들을 마법진 쪽으로 유인하는 방법은 없어? 역으로 텔레포트를 타게 만든다거나.”
“오호?”
설명을 들은 엘리자베스가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요.”
“가능해?”
엘리자베스는 말했다.
“수백의 몬스터를 동시에 텔레포트시키는 건 아무리 저라도 무리예요. 기껏해야 50마리 정도가 한계예요. 그렇다면 이 사냥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죠.”
“그치.”
“하지만 첫 번째 방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어요. 몬스터 유인 마법진이라면 마력 소모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할 때보다는 덜할 거고, 미리 준비하고 맞이할 수 있으니 사냥 속도도 빨라질 거예요.”
“그래?”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굉장한 호재다.
“오랜만에 재밌는 걸 보겠군요.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생각해낸 거예요?”
“이거?”
유인 사냥법은 진현의 잡탕 라면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진현이 했던 말.
‘재료를 모아서 냄비에 다 때려 박고 끓인다.’
“몬스터들이 재료, 마법진이 냄비가 되는 거지.”
“신기한 사고방식이네요. 호호.”
“시간은 얼마면 되겠어?”
“조금만 수정하면 되니까,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마법진 쪽으로 가 몇 가지의 술식을 다시 새겨넣었다. 잠시 후, 마법진을 새로 완성한 엘리자베스가 마법진 앞에 섰다.
“그럼, 시작할게요.”
“수는 얼마 정도로 예상돼?”
“범위를 최대로 잡았으니, 못해도 3-400 마리는 걸려들 거예요.”
400마리라니, 굉장한 숫자였다.
석찬의 허가가 떨어지고, 곧바로 마법진이 가동되었다.
우우웅-
검은 마력이 숲 전체에 가득 흩뿌려졌다.
‘다시 봐도 굉장한 마력량이야.’
600을 넘은 석찬의 마력조차 엘리자베스의 마력 앞에서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어떻게 해야 저런 마력량을 가질 수 있는 거지?’
[너는 어차피 쭉쭉 회복 잘 되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거랑 저거는 다르죠.’
[뭐가 달라? 하긴 사기로 따지면 네 거가 더 사기지. 무한의 회복 속도라니, 몇 번을 생각해봐도 얼탱이가 없어, 아주 그냥. 내가 그것만 있었어도….]
부러워하는 라우르를 뒤로하고, 석찬은 서서히 떨리기 시작하는 지면을 바라보며, 곧 닥칠 몬스터 웨이브를 기다렸다.
진현 또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곧 오나?”
“쿠어어어!”
“키에엑!”
말하기가 무섭게, 수풀 너머에서 몬스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왔다.”
파밧!
한 고블린이 수풀 사이에서 뛰어오르며 입에 파이프를 가져다댄다.
“독침이야, 피해!”
물론 자신은 레플레시아의 효과로 독이 면역이지만, 다른 애들은 그렇지 않았다.
퓩, 퓩!
공중에 뜬 고블린뿐만 아니라, 사방에서 고블린의 독침이 날아왔다.
팅-
석찬은 독침을 가볍게 쳐내며 침이 날아온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키엑?”
“어딜 깔짝대!”
자신들의 독이 통하지 않는 모습에 당황하던 고블린들은 마지막까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죽음을 맞았다.
“쿠어어!”
그때 석찬의 뒤에서 오크 하나가 기습했다.
“쿠우어!”
녀석이 거대한 도끼로 석찬의 머리를 내리찍으려는 순간.
펑!
거대한 불덩이가 오크의 머리를 관통했다.
마법진 위에 서있던 이브가 날린 파이어 볼이었다.
후우웅-
곧이어 생겨난 여덟 개의 마법이 각각 오크 같은 정예 몬스터들을 격추했다.
“땡큐!”
석찬은 오크의 시체를 걷어낸 뒤, 끊임없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처리했다.
10분 가량이 흐르고, 모든 몬스터를 잡아낸 석찬 일행이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오, 생각보다 많이 잡았는데?’
대략 400개 정도의 카운트가 세어진 것으로 보아, 확실히 텔레포트 마법진보다는 효율이 좋았다.
“엘리, 한 번 더 해줄 수 있어?”
“물론이죠~.”
이후로 몇 번이나 똑같은 작업을 반복한 석찬 일행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닷새가 흐르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유인 마법진을 사용해 신나게 사냥을 이어가고 있던 석찬은 레벨업 메시지를 확인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이스, 레벨업.”
“오, 굿.”
“어떻게, 앞으로 몇 번 더 하실 거예요?”
엘리자베스의 물음에 석찬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이만하면 됐어.”
“생각보다 일찍 끝내시네요?”
석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유가 있지, 오늘이 바로….”
“새 장비 받으러 가는 날이죠!”
이브가 말을 가로채며 벌떡 일어났다.
“빨리 50층으로 돌아가죠, 석찬 오빠.”
“그래, 그래야지.”
“먼저 가 계세요. 마법진에 조치를 몇 개 취해놓고 따라갈게요.”
“얼마나 걸리는데? 그냥 기다리지, 뭐.”
그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먼저 가 계세요. 저녁 전에는 여관으로 돌아갈게요.”
“그렇다면, 뭐. 알았어.”
말투나 행동이 조금 의심되긴 했지만, 노예 계약서에 적힌 주인에게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는 조항을 상기한 석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엘리자베스만 남고, 석찬 일행은 50층으로 내려갔다.
* * *
“오, 사냥 끝나신 겁니까?”
“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에 만난 경비와 인사도 나누고.
“올킬러다!”
“옆에 일행들도 있어!”
“저기 봐, 은발의 천사다!”
언제나처럼 달려드는 팬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석찬 일행은 몰래 프레드릭의 집 앞에 도착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기가 무섭게 인기척이 들려왔다.
“왔나? 기다리고 있었….”
“빨리 들여보내주세요. 잘못하면….”
말하기 무섭게 땅이 울리고, 석찬 일행은 가벼운 은신 마법으로 몸을 숨겼다.
‘마법까지는 안 쓰고 싶었는데.’
마법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팬들한테 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여기로 갔는데?”
“어디지? 흩어져서 찾아보자!”
“…….”
“갔나?”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그들을 보며, 프레드릭이 혀를 찼다.
“쯧, 자네들도 고생이구만. 들어오게나.”
“감사합니다, 어르신….”
끝까지 주변을 살피며 프레드릭의 집에 들어온 석찬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후우….”
“탑을 오르려면 자네들처럼 사냥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참. 저 사람들도 할 일이 없지.”
차를 타던 프레드릭이 연거푸 한탄했다.
“그러게요.”
석찬이 이례적으로 동의했다.
50층 마을에 온 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인데,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자신 일행만 보면 달려들어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팬한테 귀찮은 감정을 느끼면 안 되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사생팬들도 몇 생겨나 잠을 잘 때도 마력을 뿌려두고 자야 했다.
“고생이 많아. 자, 여기.”
“감사합니다.”
프레드릭이 타준 차를 마시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아, 맛있다.’
“얼마 전에 새로 발견한 찻잎이라네. 어떤가?”
“좋습니다, 어르신.”
“그래서….”
차를 마시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담소의 장이 열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이었다.
“맞다, 자네들. 그거 아는가?”
“네? 뭐를요?”
“얼마 전에, 키메라가 마을에 출몰했다는 소식이야.”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단어에 석찬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키메라라고요?”
“그래. 키메라를 본 적이 있나?”
있다. 40층에서 탈리야를 구출하기 위해 키메라 제작자와 싸웠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키메라가 나타났다고요? 마을에?”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많이 심란해하고 있지. 몬스터가 마을에 들어온 거니까.”
그러고 보니, 특별한 이벤트가 없으면 몬스터는 마을에 쳐들어올 수 없는 것 아닌가?
마음속의 의문에 대답한 건 라우르였다.
[일반적인 키메라면 확실히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사람의 신체 일부가 들어갔다면 이야기가 달라.]
‘뭐라고요?’
[인간의 신체 일부가 들어가면 몬스터와 인간, 그 중간의 것이 되기 때문에 몬스터 판정을 받지 않을 수도 있어.]
40층에서 한 번 맞서봤기에, 사람을 재료로 한 키메라가 얼마나 끔찍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인지 아는 석찬이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걱정스러워하는 이브의 물음에 프레드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키메라가 저녁에만 출몰한다는 거네. 때문에 밤에만 밖에 안 돌아다니면 무사하지. 낮에 녀석들이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군.”
“그 키메라들, 그렇게 강해요?”
“심부름꾼 말에 의하면 이틀 전에 1급 사냥꾼 둘이 녀석에게 당했다고 하더군.”
“1급 사냥꾼 둘이요?”
진현이 놀라워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또 키메라라….’
석찬의 머릿속에 키메라 제작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자신이 일곱 번째라고 했지.’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일으킨 주범은, 다른 여섯 키메라 제작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같은 인간을 실험 재료로 사용하고,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러다 우리에게까지 마수가 뻗칠 수도 있고.’
조만간 키메라 제작자에 대해 조사해 봐야겠다고 다짐한 석찬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여관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프레드릭이 그들을 만류했다.
“지금 나가는 건 그닥 추천하지 않는다네.”
“예?”
“키메라가 나타날 수 있다네.”
“아직 밖이 밝은데….”
조금 어두워지긴 했으나, 집 밖은 아직 밝은 축에 속했다. 그럼에도 프레드릭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들을 만류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이상 녀석들이 안 나온다고 보장할 순 없어.”
확실히, 창문 밖을 바라보니 유동 인구가 확 줄어 있었다. 길을 거닐던 사람들도 초조한 얼굴과 함께, 낮에 비해 훨씬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리고 자네들, 일주일 넘게 사냥만 하지 않았는가. 아무리 자네들이 대단하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나?”
“그렇죠.”
“차라리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게나. 잠자리를 내어줄 테니.”
“그래도 되나요? 너무 실례인데요.”
“아닐세. 남는 이불이 꽤 있으니 신경쓰지 말고 기다리게나.”
이후 프레드릭은 정말 이부자리를 깔아준 후 석찬 일행을 눕혔다.
“피곤할 텐데 빨리 자게나.”
“하지만….”
아직 새로운 장비를 못 봤는데?
“장비를 생각하는 거라면 내일 일어나자마자 보여주겠네. 그러니, 오늘은 푹 쉬게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지금 장비를 보겠다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쇼, 어르신.”
“내일 보세.”
프레드릭이 방에 들어간 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세 사람이 속닥거렸다.
“이렇게 일찍 자는 건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오히려 좋아.”
“둘 다 빨리 자. 내일 무기 보려면.”
“예이~.”
그렇게 세 사람에게는 유독 더 긴 밤이 지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