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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10화 (110/200)

제110화

엘리자베스와 에피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철천지원수.

그래,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별거 아닌 것에서 시작한 그들의 악연은 먼 훗날, 악마와 천사들의 전쟁인 천마대전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천사장과 공작급 악마라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인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싸우기 바빴고, 와중에 에피르는 가슴에 큰 상처를 입고 패배했다.

이후로의 일은 별거 없었다. 치료가 끝나니 전쟁도 끝나 있었고, 전쟁에서 패배한 악마들이 탑으로 들어가며 더 이상 그녀를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조용히 살던 엘리자베스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강석찬의 후견인이 되었다. 하지만 에피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로의 이득을 위한 일회성 계약에 불과했고, 그 일이 끝나면 두 사람이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것도 51층에서 말이다.

퍽.

분노에 찬 주먹이 수정구를 강타했고, 화면에 금이 쩌적 갔다.

‘…….’

그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에피르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뭐지? 고장인가? 설마….’

방금 전의 충격으로 수정구가 망가진 듯했다.

‘젠장… 괜한 짓을 해가지고…’.

대화가 궁금했던 에피르는 다른 수정구를 가져오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에피르는 보지 못했다.

엘리자베스의 검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법진을, 그녀가 그렇게 우려하고 우려했던 텔레포트 마법의 발동 장면을 말이다.

* * *

“그러니까, 텔레포트 마법을 쓸 수 있다고?”

“네.”

야영 장소를 만들고 있는 와중 엘리자베스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이 무엇인가. 파랑 등급의 마법사인 이브도 아직 다룰 수 없는 최고의 이동 마법 아닌가.

그녀가 텔레포트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경위는 이러하다.

‘빨리 사냥 끝내고 방에 가서 쉬고 싶다고 했었지, 분명.’

사냥 나온 이후 엘리자베스가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생각보다 게으르단 말이지. 이 여자.’

[원래 악마는 다 게으른 법이야.]

‘그래요?’

[공작급이 저렇게 나태한데 다른 애들은 오죽하겠냐?]

하긴, 따지고 보면 서열 3위 악마도 저런데, 그 밑의 녀석들은 안 봐도 뻔했다.

‘어쨌든 귀찮아서 텔레포트 마법을 써주겠다니.’

노예 계약을 하며, 엘리자베스와 이야기한 조건이 하나 있었다.

‘전 어지간해서는 힘을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응, 왜?’

‘한 가지 말씀드리면, 악마는 탑의 층간 페널티를 받지 않아요. 들려요?’

‘어. 대박이네.’

1층에 갈 때마다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몸을 생각할 때 정말이지 부러운 능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가 힘을 쓰면 위쪽에서 눈치챌 거예요.’

‘위쪽? 천사?’

‘네.’

악마와 천사가 대립되는 관계임을 알고 있던 석찬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저를 주시하고 있을 텐데 힘까지 쓴다면…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 그럼 탑에 피바람이 불 거고요.’

섬뜩한 말에 석찬은 닭살 돋은 팔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힘 쓰지마. 아니, 말아주세요. 제발.’

‘물론이죠. 저도 전쟁은 싫으니까요, 더 이상.’

그렇게 말하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왠지 슬퍼 보였다.

“분명 그랬으면서….”

지금은 귀찮아서 텔레포트 마법을 쓰겠단다.

“뭐하는거야, 엘리?”

“이 정도는 괜찮아요. 텔레포트 마법이 공격 마법도 아니고, 텔레포트로 이상한 데 가는 거 아니잖아요? 사냥하러가는 거지.”

“그렇지….”

뭔가 묘하게 설득되는 그녀의 말에 결국 석찬은 텔레포트 마법 사용을 허락해 주었다.

“좋아요, 그럼 마법진을 그릴 테니 위에 올라서요.”

검은 마력으로 그려진 텔레포트 마법진은 엄청 복잡했다. 겉핥기식으로 마법진을 공부한 석찬은 이해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고, 마법 엘리트인 이브 또한 어려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마법진을 분석했다.

“자자, 딴짓은 거기까지 하고, 다 탔으면 다시 설명할게요.”

엘리자베스는 말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발동되면 각자 텔레포트 마법식이 10개씩 새겨질 것이며, 한 포인트의 몬스터를 전부 처리하면 다음 포인트로 순간이동 되고, 마지막에는 마법진이 새겨진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라고 했다.

“이게 진짜 가능해?”

솔직히 의심이 먼저 들었다. 말로만 들어도 복잡한데 이걸 마법식으로 구현해 냈다고?

이브도 옆에서 이해를 포기한 것인지 고개를 저었다.

“꽤 복잡한 마법이긴 하지만, 가능해요. 저라면 말이죠.”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그리고 저 마법진, 빈틈은 전혀 보이지 않아.]

‘저게 이해가 돼요?’

[물론이지. 이 몸은 투신이니까.]

‘예이. 나도 빨리 마법을 배우든가 해야지.’

잡담 중에,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시작되는 건가….’

잠시 후, 층 이동 때처럼 시야가 점멸했고, 몬스터 떼 앞으로 텔레포트 된 석찬이 신기한 듯 몬스터들을 쳐다보았다.

“크륵, 크륵.”

“진짜야? 대박이네.”

달려오는 녀석들을 쳐내며, 석찬은 손바닥 위에 새겨진 9라는 숫자를 확인했다.

“이게 남은 텔레포트 횟수인가?”

잠시 후, 몬스터 떼가 전멸하고 엘리자베스가 말한대로 석찬의 몸은 곧장 다른 곳으로 텔레포트 됐다.

[8]

줄어든 숫자를 보며 석찬은 확신했다.

‘맞네. 남은 횟수.’

그리고 엘리자베스에 관한 경외감이 생겨났다.

‘이런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니.’

대단하다는 생각 말고는 들지 않았다.

‘뭐, 이렇게까지 도와주는데…’

석찬은 불청객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숲 고블린 떼를 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후딱 끝내고 쉬게 해줘야지.”

주인된 도리로서 말이다.

* * *

엘리자베스의 텔레포트 마법 사용 이후, 어느덧 닷새가 흘렀다.

약간의 충전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그녀의 텔레포트 마법진을 애용한 이후, 사냥 속도는 눈에 띄게 상승했다.

닷새 만에 만 마리에 가까운 몬스터를 잡았으니, 말 다했다.

‘그래도 많이 남긴 했지만…’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고맙다. 덕분에 사냥이 많이 편해졌어.”

“헤헤, 별말씀을.”

석찬의 칭찬에 기뻐하는 엘리자베스와.

“…….”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이브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네 사람은 각자 분배된 일을 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석찬이 주변 정리, 이브와 엘리자베스가 식기 세팅, 진현은 가장 중요한 요리를 담당했다.

“오늘도 기대할게요, 진현 님.”

“헤헤! 기대하세요!”

수많은 고급 음식을 먹어온 엘리자베스도 진현의 요리 실력은 인정한 지 오래다. 진현은 헤벌레한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요리에 돌입했다.

오늘의 메뉴는 잡탕라면.

물론 탑에 라면은 없었지만, 비슷한 맛을 내는 식재료를 배합해 진현이 만든 메뉴였다. 썩 좋지 않은 비주얼과는 다르게, 맛은 훌륭했다.

“다 됐습니다!”

어느새 나온 라면 그릇을 바라보며, 네 사람은 군침을 삼켰다.

“잘 먹겠습니다.”

식사를 하는 와중, 식탁에서 연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요리를 만드시는 거예요?”

이브의 물음에 진현이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별거 없어. 그냥 숲에서 난 재료를 전부 한 냄비에 넣고 면과 함께 끓인 것뿐이야.”

“그래도 대단해요.”

“하하, 이브도 배우면 다 할 수 있어!”

“나중에 가르쳐 주세요.”

“물론이지.”

친근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석찬은 말없이 라면을 들이켰다.

역시 일품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진현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재료를 전부 한 냄비에 넣고.’

탕!

그 순간, 석찬이 식탁이 박살날 정도로 세게 그릇을 내려놓고는 텔레포트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석찬 오빠?”

“뭐해? 밥 먹다가.”

“응?”

마법진을 살펴보던 석찬은 엘리자베스를 불렀다.

“엘리, 잠깐 이리 와볼래?”

“뭔데요?”

엘리자베스는 석찬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더니,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그런 방법은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해요.”

“한 번, 시도해볼 수 있겠어?”

“물론이죠. 오랜만에 재밌는 걸 보겠네요.”

엘리자베스가 천천히 마법진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점점 바뀌는 마법진을 보며, 석찬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 * *

“젠장.”

아름다운 천사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온다.

“젠장, 젠장.”

천사장, 에피르는 새로운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며, 수정구를 박살내고픈 욕구를 간신히 참아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

엘리자베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 그 불안감이 결국 맞아 떨어졌다.

그녀의 텔레포트 마법을 활용한 끊임없는 이동으로 석찬 일행은 편안하게 사냥을 이어갔다.

물론 자동 텔레포트 마법은 떨어지는 위치를 정확히 특정할 수 없어 몬스터 떼 근처로 좌표를 잡아놔도 오차 범위가 존재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오차 때문에 몬스터 떼 한가운데 떨어져도, 석찬 일행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몬스터를 처치해 나갔다.

‘보스 몬스터라도 있었다면…’

하지만 석찬 일행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퀘스트 몬스터. 그리고 퀘스트 몬스터 목록에 보스급은 없었다.

만약 엘리자베스가 공격 마법을 사용해 석찬을 도왔다면, 상부에 보고해 페널티를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이동 마법. 밸런스를 붕괴할 만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 그녀를 제재할 수도 없었다.

‘젠장.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낭패라면 낭패다.

[크롸아아-]

수정구 속의 석찬이 몬스터를 처리하면 처리해 나갈수록 에피르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전보다 사냥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은데?’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오, 벌써?]

석찬의 앞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벌써 레벨이 오른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레벨은 오르면 오를수록 올리기 힘들어진다. 보통 50층대의 인간이 레벨 하나 올리는 데 한 달쯤 걸린다는 걸 생각해보면,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퀘스트가 요구하는 몬스터의 양이 많은 만큼, 석찬은 층을 거듭할수록 더욱 많은 레벨을 쌓을 거고, 안 그래도 괴물 같은 스탯을 더욱 뻥튀기할 것이 분명했다.

“모르겠다… 이젠.”

결국 해탈한 에피르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석찬의 기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또 뭘 하려는….”

수정구를 바라보는 에피르의 눈이 동그래졌다.

[크에엑!]

언뜻 봐도 수백은 되어보이는 몬스터 떼가 마법진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뭔….”

[모두 잡아 족쳐!]

[끄르르….]

즐거운 레벨 업 파티에 돌입한 석찬 일행을 본 에피르가 결국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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