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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08화 (108/200)

제108화

“그렇단 말이지….”

해명을 전부 들은 프레드릭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석찬을 노려봤다.

“그렇다니까요… 저 여자가 말을 이상하게 해서….”

“석찬 님 말이 맞으니까 너무 뭐라하지 마세요, 고집불통 영감님.”

“뭐, 그렇게 말한다면… 그나저나 고집불통 영감이 대체 뭐야?”

“맞잖아요, 고집불통 영감님. 아닌가요?”

엘리자베스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딱밤 백 대가 마려운 조소와 함께 프레드릭을 약 올렸다.

“말버릇 하고는… 그나저나 자네는 처음 본 게 아닌 거 같은데? 낯이 익어.”

“어머,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네요. 예전에 자주 뵀었는데.”

“자주? 언제?”

“한 70년 전에? 매일 왔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70년 전이라….”

잠시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던 프레드릭은 무언가 떠오른 듯 손바닥을 치며 외쳤다.

“아, 그 붉은 머리. 설마 엘리자베스 님?”

“어머, 이름을 기억해 주시다니… 이거 영광이네요.”

“어르신, 엘리를 아시나요?”

“모를 수가 없지. 그 다크니스 길드의 지부장 중 한 분이신데.”

그나저나 프레드릭이 존대할 정도라니.

“제가 이런 사람이에요, 석찬 님. 어때요? 색싯감으로 딱이지 않아요?”

“응?”

“조용히 하시고요… 어르신,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저 여자가 헛소리하는 거예요.”

게다가 여기서 다른 말을 더 들으면 이브의 눈빛에 타버릴 것 같다.

“그나저나 그 엘리자베스 님을 노예로 두다니. 확실히 범상치 않은 놈이군, 자네는.”

“그러니까 만들어 주시죠. 장비.”

“따라오게나. 작업실로 안내하지.”

석찬이 움직이자, 세 사람이 그 뒤를 따랐다.

“저희도 가도 상관없죠?”

“뭐, 다른 곳에 발설만 하지 않는다면야, 상관없소.”

“나이스. 드디어 보는구나. 저 영감탱이의 작업실을….”

“거 영감탱이, 영감탱이 거리지 마쇼. 나보다 나이도 더 먹은 분이….”

“조용히 해, 영감.”

“아, 알았소.”

강한 살기에 프레드릭이 꼬리를 내렸다.

엘리자베스는 항상 나이 얘기가 나오면 예민해지는 것 같다.

‘저번에 들었을 때 분명 1만….’

“석찬 님? 이상한 생각하면 가만 안 둬요?”

엘리자베스의 주먹에 검은 마력이 둘러졌다.

“옙.”

[까불지 마. 아무리 노예여도 공작급 악마니까.]

‘옙.’

약간의 소란을 뒤로하고,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자, 거대한 프레드릭의 작업실이 드러났다.

“우와.”

작업실을 본 진현이 작게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그의 작업실은 엄청났다.

펄펄 끓고 있는 용광로를 비롯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장비들, 벽 한 쪽에 잘 정리되어있는 재료와 자재들. 그의 작업실 또한 위층의 주거공간처럼 깔끔했다.

“여기서 작업하시는 건가요?”

“그럼, 내가 여기서 장비를 만든 지 100년이 다되어가는데, 굳이 다른 데 갈 필요 없지.”

“와오.”

100년이라니. 상상만 해도 거대한 숫자였다.

그때 작업실을 구경하던 석찬의 눈에 상자를 가득 채운 장비들이 들어왔다.

“이거 전부 어르신이 만드신 겁니까?”

“당연하지!”

“한 번 봐도 됩니까?”

“알아서 해!”

상자를 뒤적이는 석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엄청나.’

하나같이 최상급의 품질을 가진 장비들이었다. 정보를 확인하니 지금 쓰는 서리 거인 방어구 세트를 아득히 넘어서는 성능이었다.

‘역시 여길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아직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완성될 장비의 성능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프레드릭에게 불려간 석찬은 장비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특별히 원하는 장비 있나?”

“방어구를 원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좋은.”

“방어구 한번 꺼내봐.”

그 말에 석찬은 군말 없이 서리 거인 방어구 세트 전부를 프레드릭에게 건넸다. 그는 장비 정보를 확인하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딴 싸구려로 50층까지 올라왔다고?”

“하하….”

50층 스펙을 기준으로 하면 서리 거인 방어구 세트는 싸구려가 맞았다. 세트 효과도 지금의 석찬에게는 별 효력이 없었고 말이다.

“아무 재료로나 만들어도 이거보단 좋겠다.”

“10층에서 얻은 거라서요. 오래되긴 했죠.”

“10층? 허….”

놀라기도 잠시, 장비를 조금 더 살핀 프레드릭이 석찬에게 물었다.

“10층부터 지금까지 쓴 거 보면, 나름 몸에 맞았다는 게지?”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움직이기 편한 걸 선호한다고 했으니까… 어디 보자.”

프레드릭은 종이와 펜을 꺼내오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기 시작했다.

‘이건….’

장비의 도면이었다.

순식간에 도면을 완성한 프레드릭이 석찬에게 도면을 건넸다.

“어때?”

그의 물음에 석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부족한 건 없나?”

“아닙니다. 굉장해요.”

자신이 바라는 이상(理想), 그 이상의 디자인이 그려진 도면에 반대할 부분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호? 대단한데.]

라우르도 도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료는 어떤 걸 원하나?”

“아, 재료는 제게 있습니다.”

“오? 한번 꺼내봐.”

그 말에 석찬은 지금까지 모아온 재료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하이 오크 킹의 뼈부터 시작해 자이언트 몽키의 가죽, 자이언트 피시의 이빨, 바실리스크의 비늘 등등 귀중한 재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냐, 이것들은….”

프레드릭 또한 재료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다 네가 구했다고?”

“고생 좀 했죠.”

“허, 이건 뭐야? 우베의 비늘?”

재료를 살피는 프레드릭의 눈이 순수한 아기처럼 변했다.

재료를 전부 살핀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호화로운 재료라니… 이거, 만드는 맛이 있겠구먼.”

“시간은 얼마면 가능할까요?”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걸세.”

“일주일….”

“너무 기나?”

“아닙니다. 이 주라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최상급의 장비를 얻는데 일주일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뭐, 그럼 다행이고. 방어구만 만들어주면 되지?”

“예. 부탁드립니다.”

“그려. 완성되면 연락할 테니까, 이만 가봐.”

프레드릭이 다시금 재료로 눈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저기….”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진현이 프레드릭의 소매를 붙잡았다.

“응? 뭔가?”

“혹시 저도 뭐 좀 만들어주실 수 있나 싶어서….”

“내가 왜?”

매정한 프레드릭의 말에 진현이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재료라면 얼마든지….”

진현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진귀한 재료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이건 또 뭐야?”

석찬의 것에 비해 질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이것들만 해도 충분히 가치있는 것들이었다.

곧이어 이브도 부탁한다며 재료를 꺼내왔다.

역시, 그녀의 것도 엄청났다.

‘흐음….’

프레드릭이 고뇌했다.

과거에 비슷한 재료를 여럿 다뤄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옛날 이야기. 진귀한 재료를 다뤄본 게 어느덧 80년 전이다.

감을 잃지 않게 작업하면서도 몇 번을 떠올렸다.

‘그냥 철이 아니라 한철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여기서 만약 블루 하이 오크의 뼈가 들어갔다면….’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지금 좋은 재료에 대한 갈증과 욕망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들의 재료로 만든 질 좋은 장비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젠장….’

하지만 자신은 신조가 있었다.

‘탑의 끝을 볼 그릇이 있는 자에게만 장비를….’

그때 그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잠깐… 강석찬이라는 녀석. 성격상 함부로 동료를 받아들일 리가 없어.’

분명 인성과 실력이 검증된 녀석들일 터.

‘그렇다면 장비를 만들어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자기합리화라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프레드릭이 결정을 내렸다.

그의 손가락이 동그랗게 말렸다.

오케이 사인이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시끄럽고, 무슨 장비를 원하는지나 말해라!”

진현과 이브는 신이 나서 원하는 장비에 관해 열심히 설명했다.

그렇게 결정된 장비 제작 의뢰는 이러했다.

진현 - 건틀릿, 방어구 전체.

이브 - 지팡이, 로브, 신발.

“이거면 된다는 거지?”

“예. 대금은 어떻게….”

“대금은 됐네.”

“예?”

프레드릭은 한가득 쌓여있는 재료를 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이런 보물을 다루는 데 돈을 받을 수는 없지.”

“아닙니다. 좋은 장비를 얻는 데 돈을 내지 않을 수는 없죠.”

결국 석찬은 강제로 프레드릭의 손에 이백만 골드를 쥐어주었다.

“허, 이렇게 많이 줄 필요 없는데 말이지.”

“괜찮습니다.”

어차피 돈은 차고 넘쳤다. 이 정도 지출은 조금도 지장이 가지 않았다.

“일주일만 기다리게나. 최고의 물건을 보내주지.”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이야기를 마친 석찬은 그의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온 석찬 일행은 곧장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항상 머물던 여관을 지나친 석찬 일행은 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판타스틱 액세서리]

“여긴가?”

“맞는 것 같은데요?”

판타스틱 액세서리. 프레드릭의 집을 떠나기 전, 그에게 소개받은 장신구 전문 공방이었다.

원래 프레드릭에게 장신구 제작까지 전부 맡기고 싶었지만, 대장일과 세공일은 엄연히 분야가 달랐다.

그에게 묻자, 프레드릭은 흔쾌히 자신이 아는 최고의 세공사가 있는 가게 주소를 적어주었고, 그렇게 곧장 그곳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딸랑딸랑-

“어서옵쇼.”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남자가 그들을 반겼다.

단정한 양복 차림에 동그란 안경이 인상적인 노신사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매? 아니면 제작?”

“프레드릭 씨의 소개로 오게 되었는데요.”

그 말에 노신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프레드릭? 레나토를 말하는 겁니까?”

“예.”

“허, 그 친구의 소개라니. 당장 안으로 들어오시오.”

석찬 일행을 안으로 들인 세공사, 클레드 퍼지는 그와 있었던 일에 관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그 친구. 드디어 다른 이를 위한 장비를 만들기 시작한 거군요.”

“두 분, 상당히 친하신가봐요.”

“두 말하면 잔소리죠. 예전엔 말이죠….”

잠시 옛날 이야기를 꺼내던 클레드는 지루해하는 엘리자베스의 표정에 아뿔싸 싶은 얼굴과 함께 안경을 고쳐 썼다.

“크흠. 제가 너무 제 이야기만 했군요.”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그 친구의 소개라면 제작이시죠?”

“맞습니다.”

원하는 장신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클레드가 드디어 그 질문을 꺼냈다.

“혹시 재료를 준비하셨다면 한번 확인해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석찬 일행은 하나둘 장신구 세공용 재료를 꺼냈고.

“이것들은…?”

프레드릭과 마찬가지로, 클레드의 표정도 점점 평온함에서 경악으로 바뀌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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