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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04화 (104/200)

제104화

안내자. 말 그대로 탑에 들어온 사람들을 안내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라우르의 말에 따르면 탑을 만든 자들의 수족인 천사,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이 바로 안내자였다.

그리고 석찬은 수차례 추가 페널티를 받을 만큼 천사에게 밉보인 상황.

그렇기에 그는 생각했다. G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천사의 편이면서 자신을 돕다니.처음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는 줄 알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고.’

조건 없이 정보를 주거나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등, 여전히 G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때문에 그와 만날 때마다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엘리자베스, 갑자기 여기서 무슨 행패이십니까.”

“오랜만이야, ■■■.”

“뭐라…고?”

들리지 않는다.

“석찬 님은 아직 몰라도 되는 겁니다. 엘리자베스. 제 질문에 대답이나 해주시죠. 당신, 석찬 님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사납게 그녀를 노려보는 G의 눈빛에,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기운을 풀었다.

팡-

“허억!”

숨을 옥죄던 마력이 사라지자마자, 석찬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너가 알 필요 없잖아? ■■■.”

“지금은 G입니다.”

“너 정도 되는 놈이 안내자라니, 웃기네.”

“말을 아껴주시면 좋겠습니다.”

G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한없이 어두웠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엘리자베스가 두 팔을 들었다.

“알았어. 미안, 미안. 그나저나 안내자면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입해도 되는 거야?”

“당신이야말로, ‘공작급’이나 되면서 이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공작급?’

알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었다.

“석찬 님. 잠시 나가계시겠습니까. 잠시 둘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그치만….”

“부탁드리죠.”

[여기 네 방 아니냐? 왜 지들이 나가라 마라야.]

라우르의 퉁명스러운 중얼거림에 G가 그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신도 조용히 계세요. 확 위쪽에 말해버리기 전에.”

[쳇.]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장에서 G의 협박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라우르는 한마디 반박도 하지 않고 방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석찬도 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기척이 사라짐을 확인한 G가 검은 공간을 펼침과 동시에 작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여긴… 무의 공간인가. 아직 녹슬지 않았네.”

엘리자베스는 공간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매섭게 G를 노려봤다.

“왜 방해한 거지.”

“그걸 지금 이유라고 묻습니까? 당신 정도 되는 분이 이유를 모를 리가 없으실 텐데요?”

“쳇.”

“그리고 지금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당신, 석찬 님을 필요 이상으로 몰아붙이던데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정곡을 찔린 엘리자베스가 한동안 G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예전부터 네 눈을 속일 수는 없었지. 좋아, 까짓것 말해주지.”

“고맙….”

펑!

검은 마력구가 G의 얼굴을 강타했다.

“라고 말할 줄 알았냐? 잊지 말아줘. 너와 나는 적이야.”

연기가 사라지고, 피투성이가 된 G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그렇죠. 저희는 적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알려주시겠습니까. 싸울 겁니까?”

G가 기운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당황하기는커녕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G를 바라보았다.

“허세 부리지 말지? ‘그 일’을 겪었으니 몸이 예전과 같지는 않을 터.”

고오오-

엘리자베스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에 G의 기운이 가볍게 묻혔다.

“당신은 여전하시군요.”

“너와는 다르니까 말이야.”

잠깐의 기싸움이 지나가고 엘리자베스가 피식 웃었다.

“뭐, 몸뚱이는 몰라도 정신은 내가 아는 그 녀석이 맞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당신도 여전하네요. 삼천 년 동안 발전한 게 하나도 없어요. 몸도, 마음도 말이죠.”

“개기지 말지?”

싸우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두 사람은 가볍게 농담을 따먹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어졌다고 판단한 G가 슬슬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언제 대답해주실 겁니까. 아까 행동의 이유 말입니다.”

이에 엘리자베스는 말했다.

“뭐, 별거 없어. 확인할 게 있었거든.”

“확인한다고 한 거치고는 죽이려는 거 같던데.”

“그렇게 해야 확인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음?”

무슨 말인지 설명하라는 G의 표정에 엘리자베스가 말을 이었다.

“저 녀석이 나한테서 가져간 게 하나 있어. 그거와 관련해서 조사하고 있는데 얼마 전에 갈피를 잡아서,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했어. 그게 전부야.”

“당신에게서 가져간 것? 설마 그 보석을 말하는 겁니까?”

“뭐야, 다 보고 있던 거야?”

질린 표정의 그녀를 향해 G가 작게 웃었다.

“잊지 마십시오. 저는 안내자. 석찬 님의 동향을 시시때때로 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내용들은 보고에서 빼긴 했지만 말이다.

“재미없는 녀석.”

“뭐, 오랜만에 만난 기념으로 말씀드리자면, 당신이 생각한 게 맞을 겁니다.”

“응? 네가 뭐인지 알고?”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한 거라면 맞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말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놀라움의 감정이 나타났다.

“진짜야? 녀석이 ‘그’의 장기말이라고?”

“네. 다른 곳에는 발설하지 마셨으면 하네요. 당신도 그걸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엘리자베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 녀석이 진짜 그의 장기말이라면 언젠가는 정체가 들통날 거야.”

“그 전까지 그가 제대로 성장하길 바라야죠.”

진심이 가득 담긴 그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피식 웃었다.

“너, 방금 그 말. 위에 들키면 반역죄 아냐?”

“그래서 이 공간을 만든 거 아닙니까.”

“철두철미하네. 나쁘지 않아.”

“쨌든, 비밀 유지 부탁드립니다. 당신이니까 말해주지, 다른 분이었으면 절대 알려주지 않았을 겁니다.”

“뭐, 그래. 고마워. 그리고 걱정하지 마. 나도 말할 생각 없으니까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거 좀 열지? 녀석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 사과할 것도 있고 말이야.”

그녀의 말에 G가 순순히 공간에 출구를 생성했다.

“아, 맞다.”

밖으로 나가려던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돌려 G에게 물었다.

“그쪽은 어때? 뭐, 새로운 천사장이 생겼다거나 그런 소식은 없어?”

“거기서부터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단호한 G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흥’ 하는 콧소리와 함께 공간을 빠져나왔다.

G 또한 공간을 해제한 뒤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음… 이번에는 어떤 변명을 대야 할까?”

무의 공간은 천사, 심지어 신들의 눈조차 피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술이다. 그만큼 사용할 때마다 신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사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사용할 때마다 변명을 생각해내야 하는 까닭에 G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 *

“…….”

[들리냐?]

“아뇨.”

건장한 남자가 방문에 귀를 가까이 대며 허공에 말을 하고 있다.

“뭐….”

눈앞에 보이는 기이한 상황에, 이브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뭐…하세요?”

그제야 이브를 확인한 석찬이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일어났어? 크흠….”

“라, 그…분이에요?”

라우르의 이름을 꺼내려던 이브는, 주변을 확인한 뒤 ‘그분’으로 말을 정정했다.

[역시, 눈치 빠른 꼬맹이군. 좋아.]

“어… 일이 조금 있어서.”

“무슨 일이길래 안 들어가고 밖에서 그러고 계셨어요?”

“설명하자면… 조금 길어.”

석찬은 이브에게 조금 전 일어났던 상황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다짜고짜 찾아온 엘리자베스의 공격부터, 안내자 G의 등장까지. 듣는 내내 이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고개를 흔들었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 뭐 오빠니까.”

“그나저나 궁금하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이 안…되네요.”

그렇다. 무슨 조치를 해둔 것인지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예 감지할 수 없었다.

‘무슨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길….’

덜컥.

그때 문손잡이가 돌아갔다.

“엇.”

이브와 석찬은 숨을 죽인 채,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끼이익-

천천히 열린 문 뒤에 나타난 사람은 엘리자베스였다.

‘G가 패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 그녀의 등 뒤로 멀쩡한 모습의 G도 보였다.

싸웠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눈 모양이다.

“어머, 너도 있었구나!”

엘리자베스는 이브를 보더니,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멈춰요.”

하지만 그녀가 석찬을 공격하려했다는 사실을 들은 이브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화르륵.

엘리자베스의 로브가 불타올랐다.로브 안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붉은색 드레스가 드러났다.

“어머나, 왜 그래?”

“왜 그래? 다 들었어요. 당신이 석찬 오빠한테 하려던 짓.”

“아, 그거. 마침 그거 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

“할 말?”

엘리자베스는 석찬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응?”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예상 외의 사과에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뭔 꿍꿍이야, 당신.”

의심 어린 석찬의 물음에 엘리자베스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물론 진심이야.”

엘리자베스는 말했다.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는데. 너무 과격한 방법을 썼던 거 같아.”

“확인?”

“예전에 나한테 받아간 거랑 관련된 거였는데, 됐어.”

석찬이 엘리자베스에게 받은 물건은 하나다.

라우르의 두 번째 영혼이 담긴 보석.

그거에 대해 물어볼 거라면.

‘라우르 님에 대해 눈치 챘다는 거 아녜요?’

[흠. 그럴 수도 있겠어.]

심각한 문제라면 문제였다. 라우르의 존재가 세상에 밝혀지는 것은 좋지 않았다.

걱정하는 듯한 낌새에 엘리자베스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 입은 생각보다 많이 무겁거든.”

“그런가요?”

“물론, 이게 있어야겠지만 말이야~.”

엘리자베스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냈다.

“역시 당신은 돈이 우선인가요?”

“돈이 최고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이쯤되니 신기했다.

“돈이 그렇게 좋아요? 도대체 왜?”

지구에서도, 탑에서도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부를 쌓은 석찬이었지만, 단 한 번도 부 때문에 기쁜 적은 없었다.

“어떠한 강함도 돈 앞에서는 다 무릎 꿇거든.”

[지랄하고 자빠졌네. 공작급이 그렇게 말하면 퍽이나 믿겠어.]

‘그러고 보니 공작급이 도대체 뭐예요?’

라우르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졌다.

[저번에 말했지? 악마의 계급.]

‘네.’

분명 악마의 등급은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의 등급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그게 끝이 아니야. 최상급 악마 위로 귀족이라는 계급이 있다.]

‘귀족?’

[그래, 남작부터 자작, 백작, 후작, 공작까지. 총 다섯 계급이 존재하지. 공작으로 갈수록 터무니없이 강해지고, 위에 대공이랑 마왕도 있긴 한데… 걔들은 예외야.]

석찬의 귀에 대공이니 마왕이니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최하급 악마에게도 그렇게 고전했다. 그런데, 귀족급? 공작급? 지금의 자신으로는 비할 수 없는 강함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석찬?”

그때 엘리자베스가 다가왔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장착한 채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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