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102화 (102/200)

제102화

이번에 시행된 50층 시험은 탑 내에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한 명 통과할까 말까 한 시험에 무려 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통과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기 여관에 머물고 있다고요?”

덕분에 석찬은 어렵지 않게 시험 합격자인 이브와 진현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 근데 조심해, 형씨. 지금 사람으로 꽉 차 있어서 잘못했다간 압사당할 수도 있다고?”

길을 알려준 남자의 재치있는 말에 석찬이 작게 웃었다.

“하하, 조언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엄청나지 않아? 이번 시험 통과자들 말이야. 세 명이라고 했는데, 은발의 천사와 킹갓코리아좀비 말고도 누구였지? 검을 쓰는 녀석이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잠깐의 고민 끝에 또다른 합격자의 이명을 기억해냈다.

“맞아. 귀검(鬼劍)이라고 했어!”

“귀검이요?”

“올킬러 파티보다는 못하지만, 나름 특급 루키라고 불렸던 모양이야. 저 위쪽의 쾌검(快劍)보다는 못하지만, 검의 속도도 빠르고 어디가 베일지 짐작이 안 갈 정도로 현란한 검술을 구사한다고 하더라고.”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흥미가 갔다.

“그러고보니까, 올킬러가 없네. 이번 시험에 일행이랑 같이 응시했다고 들었는데….”

뜨끔.

석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뭐, 떨어진 거 아닐까요?”

“그런가?”

남자는 몰랐다. 눈앞의 석찬이 올킬러이자 이번 50층 시험의 통과자이며, 이번 시험의 통과자는 세 명이 아닌 네 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쨌든 길 알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 그래. 갈 길 가.”

서둘러 남자와 헤어진 석찬은 이브와 진현이 머물고 있다는 여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술 한 잔 더!”

“그 친구들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야?”

“…….”

남자의 말대로, 여관 안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바닥에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금 빡세겠는데….’

석찬은 양해를 구해가며 여차저차 카운터 앞으로 향했다.

“후우…”

분명 스무 걸음 안팎의 거리인데, 도달하기까지 5분 정도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현재 여관이 얼마나 붐비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서오세요… 죄송한데 지금 방이 하나도 안 남아 있어서….”

여관 직원도 난감한 표정으로 석찬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역시나 빈 방이 하나도 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 아니라. 은발의 천사가 있는 방이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 말에 여관 직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돼요. 그분이 누구도 방에 들이지 말라고 하셔서. 심지어 식사도 안 하고 계세요.”

“밥도 안 먹고 있다고요?”

석찬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여관 직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아래도 내려오지 않으시고, 며칠째 방 안에서만 지내고 계세요.”

석찬이 전해 듣기론 이브가 50층 마을에 도착한 지는 벌써 나흘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 문제가 심각한 거다.

결국 정체를 밝히기로 결심한 석찬이 품속에서 명패를 꺼내 들었다.

“응? 이건….”

명패를 받아 든 여관 직원의 표정이 의문에서 놀라움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금?!”

그녀의 말에 주변의 이목이 순식간에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아….”

급하게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지 오래.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들린 백금색 명패로 향했다.

“저거… 백금색 맞지?”

“맞아. 대박. 저걸 실제로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신분을 증명하는 명패가 백금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였다.

물론 좋은 눈빛만 있는 건 아니었다.

“백금이라니. 가짜 아니야?”

“왜 백금색 명패를 가진 사람이 여길 와?”

사람들의 선망과 질투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석찬이 정체를 공개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올킬러, 강석찬이라고 합니다. 이브에게 안내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올킬러라는 말에 사람들이 더욱 놀라워했다.

“올킬러?”

“진짜냐?”

사람들의 시선이 석찬에게로 집중되었다.

‘하아….’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는 석찬에게 직원이 말을 건넸다.

“올킬러 님이시라고 했죠?”

“예.”

“은발의 천사님은 305호에 계셔요.”

“응? 분명 누구도 안 알려주신다고….”

그 말에 얼굴이 새빨게진 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다른 분들 이야기고요. 은발의 천사님이 그러셨거든요. 다른 사람은 들이지 말되, 올킬러 님이 오시면 꼭 자기 앞으로 데려다 달라고….”

“그렇군요. 305호라고 했죠?”

“제가 안내할게요.”

“고마워요.”

석찬이 직원을 따라 위층으로 사라진 직후, 사람들이 하나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진짜 올킬러 맞아? 사기꾼 아니야?”

“아니야. 아래층에 아는 사람들이 말해줬던 올킬러의 생김새와 똑같아. 명패도 백금색을 들고 다닌다고 들었던 것 같아.”

“그렇지만 녀석, 시험에서 떨어진 거 아니었어?”

“확실히… 조금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너도 알잖아? 세 번째 시험. 오래 걸릴 수도 있지.”

“그렇지. 그럼… 이번 50층 시험의 합격자는….”

“그래, 올킬러까지 네 명이다.”

남자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중 한 명이 일어나 여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이! 합격자가 하나 더 나타났어!”

그날 올킬러가 50층 마을에 당도했다는 사실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여기인가요?”

“네, 그럼 저는 이만….”

석찬은 ‘305’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방 앞에 선 채 숨을 가다듬었다.

이 문 앞에 이브가 있다.

비록 석찬이 이브를 못 본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이브가 저를 걱정하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랬으니까.’

“후….”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힌 석찬은 천천히 방 문을 두드렸다.

똑똑-

“…….”

잠깐의 침묵 후, 방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진현 오빠?”

이브의 목소리였다.

“후우….”

갑자기 긴장감이 증폭되었다.

“이브?”

석찬의 물음에 문 앞까지 다가온 인기척이 순간 사라졌다.

“…….”

어색한 침묵 속에서 문이 조금 열렸다.

빼꼼 고개를 내민 이브가 석찬을 노려봤다.

“…늦었네요.”

“그러…게. 하하.”

“들어오세요.”

이브의 허락이 떨어지고, 석찬은 조심스레 그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인실로 설계된 것인지, 두 명이 들어가자, 방이 꽉 찼다.

“…….”

침대에 앉은 이브는 말없이 석찬을 응시했다.

‘하아….’

부담스러운 눈빛을 한가득 받는 석찬 입장에서는 살이 한없이 떨렸다.

[새끼, 그런 거 가지고 쫄고 말이야.]

‘아니, 라우르.’

“그래서, 늦은 이유를 조금 설명해 주시죠.”

라우르에게 항변하려던 석찬이 말을 멈추고 이브 앞에 무릎 꿇었다.

“아, 그게 말이지….”

[큭큭. 고생해라.]

‘진짜.’

“그게 뭐요.”

“그게….”

석찬은 일주일 동안 또 다른 자신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또 다른 자신의 강함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법 수십 개를 동시에 사용하면서 근접 전투까지? 뭐하는 놈이에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마지막에는 파랑 등급으로 돌파하니까… 클리어 되더라. 퀘스트.”

“파랑 등급?”

마지막 석찬의 말에 이브의 눈이 커졌다.

“응.”

“진짜예요?”

“물론이지. 볼래?”

석찬은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푸른색의 마력이 밝게 빛났다.

“진짜 파랑 등급?”

“못 믿겠어?”

이브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니, 초록 등급 된 지 몇 년이나 됐다고….”

“되던데?”

“재수없어.”

“미안….”

의도치 않게 또 한번 기만해 버린 석찬이 작게 사과했다.

“그래도, 그렇게 강했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일주일이나 걸릴 만해 보여요.”

“이브는 세 번째 퀘스트 깨는 데 얼마나 걸렸어? 얼핏 듣기로는 나흘 전 마을에 도착했다고 하던데….”

“맞아요. 오빠는 당연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미안. 화 풀어.”

“응?”

석찬의 말에 이브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화났다니요? 누가?”

[응?]

“응?”

오랜만에 석찬과 라우르가 동시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저요? 저 화 안 났는데요?”

“응?”

석찬은 여전히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그럼 방금 전까지 어둡고 뾰로통한 표정은 대체 뭐였단 말인가.

“아, 그거 말이죠. 오랜만에 보니까 그랬어요. 화난 적은 없어요.”

[허.]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라우르가 기함했다.

“그랬구나. 나는 네가 완전히 화난 줄 알고….”

“아니에요. 물론 첫날에 조금 화나기는 했는데….”

“했는데…?”

석찬이 긴장했다.

“생각해 보니까, 오빠가 이런 적 한두 번이 아니잖아요? 어디 간다 하고 안 오고, 안 다친다 하고 다쳐서 오고. 예를 들면 예전에….”

“윽.”

예시가 나올 때마다 석찬은 심적으로 큰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별로 걱정 안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걱정해봐야 저만 힘들고, 또 무슨 일이 생겨도 오빠는 무사히 돌아올 거니까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말에 석찬이 감동했다.

“날 믿어주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저한테 잘해요. 밥도 좀 사고. 알았어요?”

“당연하지.”

오해가 풀린 이후로는 두 사람은 시험과 관련된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클리어 조건이 여러 개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그럼 이브는 이긴 거야?”

“네.”

듣기로는 두 사람 사이에 숨막히는 마법 대전이 일어났던 모양이다.

다만, 석찬과는 다르게 마법 수준이 엇비슷했고, 어찌저찌해서 퀘스트를 잘 마무리했다고 한다.

기운을 느껴보니, 이브도 시험 이후로 꽤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마력이 늘었고, 기운이 더욱 깔끔하게 정돈되었어.’

아마 자신처럼 싸움 도중 깨달음을 얻은 것이 분명하리라.

“그래서 이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말이야.”

“응? 뭔데요?”

석찬은 또 다른 자신과 싸울 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 마법 좀 가르쳐줄 수 있어?”

“응?”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에 석찬은 천천히 말했다.

“내가 말했지? 또 다른 나. 굉장히 강했다고.”

“아직도 못 믿겠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석찬은 의문에 가득 찬 이브를 보며 조심스레 생각했다.

‘이쯤되면 이야기해도 되겠지?’

[남자답게 시원하게 질러!]

이브는 수년간 함께 활동한, 이제는 진현과 함께 둘도 없는 절친이자 동생이다.

언젠간 비밀을 밝히겠다고 맹세했고,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다.

석찬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이브, 나 사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