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97화 (97/200)

제97화

악귀처럼 일그러진 진현의 얼굴을 보며 석찬은 생각했다.

‘저 녀석, 야마 돌았네.’

지구엔 그런 말이 있다. 평소에 한없이 착하고 모자라 보이던 사람이 막상 화나면 그 누구보다 무섭다고.

진현 또한 그랬다.

평소에 순하다라는 인상을 넘어 약간 멍청해 보인다는 인상까지 주는 진현이지만, 한번 화가 나는 순간, 가장 친한 석찬조차 말리기 어려웠다.

킹갓코리안좀비.

현 시점에서 탑에서 진현의 명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별명이다. 이 별명이 붙은 것도 진현의 이런 성깔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한번 폭발했을 때 뿜어내는 괴력이나 끈질긴 생명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그리고 몇 번을 버텨도 다시 달려드는 끈기까지.

이 모든 행동이 좀비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좀비. 거기에 진현이 수식어를 조금 덧붙여 탄생한 것이 바로 ‘킹갓코리안좀비’이다.

평소에는 진가를 잘 드러내지 않던 킹갓코리안좀비의 진심은 굉장했다.

“다 뒤져!”

강마력을 두른 채 수십의 몬스터들 사이에 과감하게 달려든 진현이 마력을 폭발했다.

콰광! 쿠구궁!

거대한 폭음과 함께 1차로 중간 보스급 몬스터들이 쓸려나갔다. 보스급은 그의 공격을 한 차례 버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크윽….”

팔이 잘려 나가거나, 온몸이 피 칠갑이 되는 등, 보스급 몬스터들도 상당한 데미지를 입고 진현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디 가냐!”

하지만 진현은 끈질기게 녀석들에게 달라붙어 하나하나 몬스터를 도륙내기 시작했다.

“쿠어!”

결국 보스급들의 지휘 아래 도망치던 중간 보스급들도 모여 진현을 다구리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마력을 발동한 진현은 강했다.

중간 보스급들을 벌레 취급하듯 학살한 진현이 재차 보스급에게 달려들었다.

“크륵!”

이에 보스급들도 그냥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대형을 갖추며 진현을 상대했다.

여섯 마리가 죽고 남은 네 마리의 보스급 중 근육질에 검과 창을 무장한 오크와 스톤 골렘이 진현을 막아 세웠다.

쿵-

하지만 아무리 날카롭고 잘 벼려진 검도 강마력을 뚫지는 못했다.

“쿠륵….”

그럼에도 오크들은 당황하지 않고 검을 버린 뒤 주먹을 휘둘렀다.

시퍼런 마력이 둘러진 주먹은 맞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뜩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다.

후웅-

진현은 가볍게 허리를 꺾는 것만으로도 주먹을 전부 피해낸 뒤 녀석들의 급소에 잽을 한 방씩 넣어주었다.

팍, 팟!

“꾸어어….”

가벼운 잽일지라도 강마력을 두른 순간 어지간한 스트레이트보다 강력했고, 보스들은 각자 타격 부위를 붙잡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드럽게 단단하네. 골렘 새끼.”

“끼에엑!”

그 모습에 후방에 있던 마법사 리자드맨과 암살자 어인이 각자 마법을 쓰고 단도를 투척했다. 하지만 녀석들의 공격은 진현에게 도달하지 못했다.

“디스펠.”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마법이 한순간에 산화되어 사라진다.

“제가 있는 걸 까먹으셨나봐요? 역시 몬스터들은 전부 멍청한 건가….”

어느새 생겨난 장벽으로 단검 마저 허공에서 멈춘 뒤 힘없이 떨어졌다.

“크륵?”

당황한 녀석들에게 이브는 친절하게 익스플로젼을 먹였다. 화려하게 불타 사라지는 보스들과 함께 이브는 진현을 향해 브이를 내보였다.

“고맙습니다, 이브 씨.”

싸움이 끝난 후, 귀신같이 원래 모습대로 돌아온 진현이 짧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홉 번째 웨이브 종료.]

“수고했다.”

웨이브 종료 메시지가 출력되자, 석찬은 진현과 이브에게 다가갔다.

“잠깐만, 움직이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이브가 석찬을 앉히려고 했지만, 석찬은 손을 내저으며 두 사람 곁으로 왔다.

“괜찮아. 마력 회로는 모르겠는데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어.”

사실이다. 자연 치유에 기대야 하는 마력 회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수 시간에 걸친 무한의 치유 마법으로 70% 이상의 컨디션을 회복했다.

‘마력을 잘 못 쓴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물론 잘 사용하지 못한다고 마력을 아예 못 쓰는 것도 아니고, 지금 상태도 도움이 안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석찬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브와 진현은 여전히 걱정에 찬 눈빛으로 석찬을 응시했다.

“괜찮아, 얘들아. 나 강석찬이야.”

“방금 대사, 굉장히 못 미더운거 알죠?”

“윽.”

이브의 직격탄에 석찬이 몸을 움츠렸다.

“하하. 그런가?”

[저 애가 역시 뭘 잘 아네.]

‘라우르는 또 왜 그래요?’

[맞는 말에 맞다고 대답하는 거다만?]

‘젠장.’

“석찬아.”

그때 가만히 있던 진현이 입을 열었다.

“응?”

“도와주려는 마음 잘 알았어. 근데, 이번 퀘스트는 이브 씨랑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다.”

“그래?”

“처음에 한 말 기억하지?”

“처음에 한 말… 물론이지.”

진현과 이브는 석찬을 수정 옆에 앉혀 두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이 앞으로도 석찬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이 퀘스트,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완수해야 한다.”

“맞아요.”

드물게 이브가 진현의 말에 동의 의사를 내비쳤다.

석찬도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말을 이었다.

“뭐, 너희가 정 그렇다면. 그래, 알았어.”

석찬은 생각보다 쉽게 싸움을 포기했다.

[너답지 않네?]

‘뭐가 저답지 않아요?’

[아니, 평소 너였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라든지, ‘아니, 내가 미안해서 못 버티겠어.’ 같은 말이나 하면서 같이 싸울 줄 알았지.]

‘큼.’

라우르의 정곡에 석찬이 속으로 헛기침했다.

‘저라고 그냥 저 둘만 보내고 싶은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 둘이 전투에 있어서 저렇게 강력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적이 있던가? 석찬의 기억으로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웨이브를 봐서 다음 웨이브가 아마 마지막일 것이고, 몬스터는 분명 히든 보스급이었다.

‘히든 보스급이라면 두 사람도 어렵지 않게 잡아내겠죠. 그런데 제가 굳이 두 사람 마음 상하게 하면서 싸움에 끼어들 이유는 없다고 봐요.’

[그래? 뭐, 네 생각이 그렇다면, 알아서 해라.]

‘예.’

한 시간 후, 10번째이자 마지막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석찬의 예상대로 몬스터는 히든 보스급 한 마리가 전부였다.

4-5m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집에 목 위에 달린 세 개의 머리. 트리플 헤드 오크였다.

탑을 오르며 수십 마리의 히든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해온 이브와 진현에게 트리플 헤드 오크는 일반 몬스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빨리 잡아 족치고 쉬자고요.”

“그러죠.”

결과는 진현과 이브의 승리였고, 50층 시험 두 번째 퀘스트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 * *

구름 위에 지어진 천상 낙원, 천계, 에피르의 방. 본인의 성격을 드러내듯 깔끔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방에는 에피르 말고도 한 남자가 더 있었다.

안내자 G.

50층 시험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려고 에피르의 방에 찾아온 그는 무미건조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강석찬 일행이 조금 전 막 두 번째 과제를 통과했습니다.”

“벌써?”

에피르의 눈에는 경악이 깃들어 있었다. 두 번째 과제를 이렇게 일찍 통과하다니.

“아직 하루도 안 지났는데?”

“휴식 시간을 포함해 11시간 정도 걸렸군요.”

G의 말에 에피르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11시간이라니. 지금까지 최단 기록 아니야?’

“녀석들이 두 번째 과제를 잘 이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천사장씩이나 되는 분이 그것도 모르십니까?”

뼈를 때리는 말에 에피르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방금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라.”

G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두 번째 과제 내용이 뭔지는 아시죠?”

“물론이지. 협동 퀘스트라고 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협동 퀘스트죠. 누구든지 자유롭게 파티를 맺어 주어진 과제를 클리어할 수 있는 게 두 번째 과제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난이도 조절을 위해 두 번째 퀘스트에는 숨겨진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밸런스 조절을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란 바로.

“파티원의 수나 강한 정도에 따라 몬스터의 수나 강도도 증가한다. 이건가?”

“옙. 사실 이게 안내자한테밖에 주어지지 않는 정보란 말이죠. 이걸 안 천사는 당신이 처음입니다.”

빠직.

그 말에 에피르의 고운 이마에 작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럼 처음부터 내가 몰랐던 내용이란 거잖아!’

그녀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G는 설명을 이어갔다.

“큼. 그런 의미에서 강석찬 씨와 친구분 들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죠. 파티원이 단 세 명밖에 없어서 몬스터 웨이브의 난도가 그렇게 많이 올라가진 않았으니까요.”

석찬의 부상 때문에 퀘스트의 난도가 꽤 하락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큭.”

두 번째 퀘스트를 역대 최단 기록으로 클리어한 강석찬 파티의 모습에 에피르는 오랜만에 두통이 도지는 걸 느꼈다.

“으윽….”

머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을 내는 그녀를 보며 G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소리냐?”

“50층 시험, 그 세 번째 과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 번째라면… 그거 말이냐?”

“옙. ‘그거’ 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에피르는 두통이 조금씩 가시는 걸 느꼈다.

사실 50층 시험의 세 번째 과제에 비하면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과제는 장난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기나긴 탑 역사에서 수많은 시험 응시자들이 고배를 마신 건 다름 아닌 세 번째 과제 때였다.

쭉정이를 걸러내기 위한 작업으로 쳐낸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탈락하는 것이 바로 세 번째 시험이다.

‘게다가 다음 과제는 개인전.’

이번 과제처럼 동료에게 기대는 행동 또한 불가능하다.

사실 G도 조금은 걱정되었다.

‘마력 회로를 회복해도 녀석이 세 번째 과제를 통과할지는 미지수이다.’

풀 컨디션의 석찬조차 긴장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 번째 과제라는 산이었다.

‘뭐,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해주겠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지금 G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험 감독관의 권한으로 휴식 시간을 늘려주는 것뿐. 그동안 석찬의 마력 회로가 최대한 회복되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뭐, 그래도 어려우면서도 생각보다 쉬운 것이 세 번째 과제의 묘미이기도 하니.’

G는 잡념을 떨쳐낸 뒤 에피르에게 인사하고 그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조금만 기다려라.’

수년 이내, 천사는 반드시 멸망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G는 비장한 눈빛과 함께 천계에서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탑 내부. 목적지는 당연히 50층이었다.

50층의 시험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