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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93화 (93/200)

제93화

“쿨럭, 젠장.”

석찬은 죽어가고 있었다.

[괜찮냐? 부분 강신 써야할 것 같은데.]

라우르가 부분 강신 이야기를 꺼냈다.

“아뇨, 괜찮습…니다.”

[뭐가 괜찮아? 잘못하면 너 죽어!

“크윽….”

석찬은 어두운 눈으로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뿔과 날개가 인상적인, 자신을 이 꼴로 만든 녀석을.

조금 전.

“거의 다 온 거 같은데요?”

[그러게.]

탐지로 밝힌 출구까지는 앞으로 벽 하나만 더 넘으면 도달할 것 같았고, 몬스터도 함정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로 클리어다!’

그렇게 생각하며 벽을 돈 순간이었다.

[미궁의 종착점에 도달하였습니다.]

‘나이스.’

이 메시지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에 나온 메시지가 문제였다.

[미궁의 탈출을 위해선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려야 합니다.]

[첫 도전자의 권한이 부여됩니다.]

[보스 몬스터의 등급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의 등급?’

[선택 가능한 보스 몬스터]

[초급]

[초중급]

[중급]

[중상급]

[상급]

[최상급]

[극상급]

[??급]

선택 가능한 보스 몬스터의 등급은 총 여덟 개였다. 게다가 마지막 등급은 무려 등급이 표기되지 않아 있었다.

‘얼마나 강하길래?’

히든 보스 몬스터급일까 싶었지만, 고작 히든 보스 몬스터가 물음표 등급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무슨 등급의 보스 몬스터를 고를지 고민하려는 찰나였다.

[도전자가 플레티넘 등급임을 확인합니다.]

[선택 가능한 보스 몬스터의 등급이 조정됩니다.]

“응?”

[선택 가능한 보스 몬스터]

[최상급]

[극상급]

[??급]

순식간에 상급 이하의 등급들이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어차피 그쪽은 건들 생각 없었으니, 뭐.’

최상급, 극상급, 그리고 ??급. 세 등급 사이에서 짧게 갈등한 석찬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물음표 등급이나 함 상대하자.”

[그래, 좋았어. 패기 넘치는 모습. 나의 화신으로서 아주 보기 좋아.]

라우르 또한 적극적으로 지지했기에, 석찬은 망설임없이 [??급]으로 표기된 칸을 눌렀다.

‘히든 보스 몬스터급보다 더 강해도 상대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무척이나 안일한 생각이란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의 보스 몬스터가 소환됩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만 미궁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최하급 악마가 소환됩니다.]

그 메시지를 본 석찬이 의문을 표했다.

‘응? 악마?’

메시지창이 사라짐과 동시에 출구 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짙은 묵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디선가 많이 느껴본 분위기였다.

‘누구였지. 분명 이런 느낌을 지닌 사람이….’

“한눈파는 것이냐?”

그때 몬스터가 입을 열었다. 인간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히든 몬스터 중에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아는 녀석들이 여럿 있었기에 별로 동요하지는 않았다.

“말도 하네?”

잠깐의 놀라움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석찬과 다르게 라우르는 심하게 동요하는 눈빛으로 몬스터를 쳐다보았다.

‘라우르? 왜….’

[석찬아. 긴장해라.]

‘응?’

라우르는 여인의 흑발 사이에 작게 난 뿔 두 개를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이번 싸움,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넌 죽는다.]

‘예?’

그 순간,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콱!

“컥….”

석찬의 목을 붙잡은 여인이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약하군. 약한 몸으로 감히 이 몸을 부른 건가?”

건방지군.

콰앙!

여인이 무자비하게 석찬을 내던졌다.

“크학!”

등이 아릿하다.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온다.

“쿨럭, 젠장.”

오직 한 합을 겨룬 것 뿐이지만, 석찬은 알 수 있었다.

‘저 여자, 나보다 강해.’

“젠장, 쿨럭!”

[괜찮냐? 부분 강신 써야할 것 같은데?]

탈리야와 겨룰 때도 동요하지 않던 라우르가 한껏 동요된 목소리로 석찬에게 부분 강신을 권유했다.

‘괜찮아요… 그보다 저 녀석, 정체가 뭔지 알아요?’

[저 녀석은 악마다.]

‘악…마?’

분명 보스 몬스터의 이름이 최하급 악마이긴 했다. 자세히 보니 머리에 난 뿔이며 등 뒤에 조그맣게 난 박쥐 날개가 정말 악마인 듯했다.

‘악마… 뒤지게 쎄네요.’

[그럼 강하지. 게다가 인간형이라니, 젠장. 어쩔 수 없어. 강신을 써야 해.]

라우르가 강신을 논할 정도라니.

라우르가 억지로 석찬의 몸에 강신을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석찬은 이를 거부했다.

[왜? 죽을 수도 있다고! 강신은 필수야!]

‘일단 한 합만 더 겨루게 해줘요. 한 번만 더 이 꼬라지면 강신하는 거, 안 말릴게요.’

석찬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끌고 일어났다.

[젠장… 답답하네.]

라우르의 한탄이 들려왔다. 하지만 석찬은 묵묵히 악마를 향해 나아갔다.

[그래, 알아서 해라. 대신 명심해라. 한 번만 더 쓰러지면 바로 강신이야. 알았어?]

‘감사합니다.’

다시금 악마 앞에 선 석찬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빈틈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사생결단을 낸 전사의 눈빛이었다.

“뭐야? 죽지 않았던 것이냐?”

그에 비해 악마의 눈빛은 여전히 무심했다. 마치 언제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을 앞에 두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실제로 맞기도 했고.

‘녀석은 지금 방심하고 있다. 그걸 노려야 해.’

한 수. 그것으로 녀석과의 승부가 결정 된다는 것을 깨달은 석찬이 숨을 가다듬었다.

“후우….”

“뭐하는 것이냐?”

“싸울 준비. 보면 몰라?”

석찬의 대답에 악마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 하찮은 인간 따위가 날 공격한다고? 우습구나.”

“우습긴. 잘못하면 너 죽어.”

“하?”

석찬의 말에 악마가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는 듯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인간, 방금 그 말 진심이냐?”

“물론이지.”

“하하. 재밌는 녀석이군.”

그런데 악마는 화를 내기는커녕 흥미를 표하기 시작했다.

“좋아, 인심 넘치는 내가 네 녀석의 공격을 딱 한 번 맞아주도록 하마.”

‘어?’

[응?]

갑작스러운 전개에 석찬과 라우르가 동시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방금 한 말, 진짜냐?”

“물론이지. 거짓말이 아니다.”

[진짜냐?]

악마는 때려보라는 듯이 친절히 양팔을 확 벌리기까지 했다.

‘이럼… 나야 개꿀이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석찬은 악마의 약점을 파악했다.

‘왼쪽 가슴이랑 머리라.’

심장이랑 머리 말고는 약점이 없다니. 엄청나다.

‘좋았어. 해보자.’

석찬이 악마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뭐하는 것이냐?”

“공격이다.”

“이게 무슨…”

그 순간, 석찬의 손에 대량의 마력이 몰려들었다.

“이건?”

석찬의 손에 빛이 일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양을 넘어선 엄청난 양의 마력이 모이고 있다는 증거.

반년간의 수련 성과 중 하나였다.

마력을 모으는 데 걸리는 속도가 이전에 비해 네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빨라졌다는 점. 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일점…”

기술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두근-

콱!

악마가 석찬의 목을 다시금 움켜잡았다.

“손 떼라 인간. 경고한다.”

“큭, 왜지? 분명 네 입으로 그랬잖아? 한 번의 공격을 맞아준다고.”

하지만 악마는 자기 할 말만 반복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손을 떼도록 해라. 아니면 넌 죽는다.”

꽈아악-

“컥…”

목이 졸린 석찬의 손이 떨어졌다. 일었던 빛도 흩어졌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석찬을 뒤로하고, 악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냐, 이 인간.’

비록 자신이 최하급 악마라지만, 자신은 평범한 인간에 비해 수 배, 수십 배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나온 자신감이었다. 공격을 한 번 맞아준다는 건 결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이 공격을 시도하자, 본능이 외쳤다.

‘이건 위험하다.’

악마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석찬을 내려다 보았다.

‘이 녀석은 위험해.’

죽여야 한다.

그렇게 마음먹은 악마가 손을 곧게 뻗었다. 그러자 검은 마력이 그녀의 손 위에 씌워졌다.

‘죽어라, 인간.’

석찬의 머리를 관통하려는 순간.

탁.

이변이 일어났다.

석찬의 손이 악마의 손을 꽉 붙잡았다.

“뭐냐 인간, 정신을 잃은 게 아니었….”

두근-

그때 조금 전과 같은 느낌이 석찬에게서 풍겨났다.

파밧-

빠르게 거리를 벌린 악마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안심시키며 석찬을 노려봤다.

“뭐냐, 인간… 그 힘은… 그 모습은!”

석찬의 모습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새하얗게 바뀌어 있었고, 눈은 짙은 초록빛을 내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이 느낌.”

석찬, 아니, 라우르는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악마를 노려봤다.

“감히 최하급 악마 따위가 이 몸을 죽이려 들다니, 망상이 지나쳐.”

“인간….”

“네 눈엔 아직도 내가 조금 전에 상대하던 인간으로 보이냐? 한심하군.”

라우르가 뭐라 말했지만, 악마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공포와 빠르게 눈앞의 인간을 죽여야겠다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죽어라, 인간!”

악마가 빠른 속도로 라우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라우르는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렇게 간단히 막힌다고…?’

“음, 단련을 열심히 시킨 보람이 있어. 이 정도 출력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라우르가 왼팔을 들어 가볍게 악마의 얼굴을 겨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가벼운 잽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공격만으로 악마는 코와 입술에서 피를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뭐냐, 그 힘은… 케엑….”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지만, 악마는 조금 전의 공포 때문인지 쉽사리 라우르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석찬아, 석찬아. 자고 있어서 못 듣고 못 보겠지만, 내가 너를 위해 친히 한 수를 보여주겠다.”

“뭐라고 하는 것이냐, 인간.”

라우르는 대답 대신 악마의 앞까지 친히 움직여 그녀의 미간에 살포시 손가락을 얹었다.

“뭣….”

그 순간, 라우르의 손가락 끝에서 빛이 났고, 주변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잠시 후.

콰과광!

거대한 폭음과 함께, 미궁이 무너져 내렸다.

“뭐야? 도망쳐!”

“으악!”

열심히 미궁을 공략하던 사람들은 난데없이 일어난 천재지변에 대비해 보호 스킬을 펼쳤다.

“으아악!”

“살려줘!”

그마저도 막지 못해 미궁 잔해에 쓸려나간 사람까지 존재했다.

“쿠어엉!”

“키에에엑!”

몬스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수한 육체 능력 따위 파도처럼 몰려오는 돌덩이들에게 그리 통하지 않았다.

한 합만에 거대한 미궁을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만든.

신의 기술, 일점폭발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너무 심했나?]

정작 사달을 낸 라우르는 강신을 풀고 뻘쭘하게 뒤통수를 긁으며 사태를 방관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라우르는 시선을 돌려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 쓰러져 있는 석찬을 바라보았다.

[언젠간 너도… 이 정도로 강해졌으면 좋겠네. 나의 후계자로서 말이지.]

화신에게 하는, 진심 어린 말이자 부탁이었다. 물론 지금 석찬의 귀에 닿진 않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저런 일 끝에, 첫 번째 시험이 무사히(?) 끝이 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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