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1층, 영주성 앞.
석찬, 이브, 그리고 진현은 반년간의 수련을 끝내고 50층 시험을 보기 위해 정들었던 영주성을 다시 나왔다.
“이브, 너라면 할 수 있다. 힘내야 돼.”
“아가씨, 화이팅입니다!”
“진현 군도, 석찬 군도 힘내게나.”
여러 사람의 기대와 축복과 함께 세 사람은 50층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도착한 50층의 외관은 0층과 비슷했다. 통로가 하나 있고 세 벽면이 막힌 동굴. 각 벽면마다 횃불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벽 한쪽에 시험 시작 전까지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다는 점?
‘한 시간 정도 남은 건가.’
방 안에는 이번 시험의 응시자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이목은 석찬 일행에게 집중되었다.
“저기 봐, 올킬러야.”
“저 녀석들… 벌써 50층이라고? 탑에 온 지 10년도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
“10년이 뭐야, 난 7년도 안 된 걸로 알아.”
“굉장한 녀석들이야…”
하지만 그들의 관심도 이내 식었는데, 석찬 일행을 의식하기보다는 각자 본인의 시험 준비로 열정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석찬 일행도 시험이 시작하기 전 마지막 점검을 실시했다.
“후… 긴장되네.”
비단 진현뿐만이 아니었다. 석찬과 이브 또한 상당히 긴장한 채 시험 시작 시간을 기다렸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시험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띠-
알람 소리와 함께, 횃불이 전부 꺼졌다.
“뭐야?”
“조심해!”
어두컴컴해진 방 속, 사람들은 동요하기보다 침착하게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했다.
‘역시 이쯤 오면 어중이떠중이는 없다는 건가.’
고조된 분위기 속, 익숙한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누구냐!”
“G입니다! G가 돌아왔어요!”
유쾌해 보이는 G의 모습에 석찬을 포함한 동굴 속 사람들이 눈을 찡그렸다.
‘그보다 G가 왜 여기에?’
“크흠… 안녕하십니까. 이번 기수부터 시험 감독관을 맡게 된 안내자 G입니다.”
자기소개와 함께 G가 남몰래 석찬에게 윙크를 날렸다.
[우욱. 더러워.]
‘동감입니다.’
“안내자 G. 또 저 사람이네요.”
“이벤트 때 봤던 놈이다.”
30층 이벤트 퀘스트에서 G를 봤던 진현과 이브와는 달리 다른 이들은 G를 처음 보는 눈치였다.
“새로운 안내자? 전임은 짤린 건가?”
“시험 내용이 달라지는 건가, 젠장!”
“모두 조용.”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질 때쯤, G가 힘을 개방해 사람들을 압박했다.
“시험장은 원래 정숙해야 하는 법입니다. 쓸데없는 말은 삼가주세요.”
“칫.”
튜토리얼에서부터 안내자의 힘을 실감한 사람들은 쓸데없는 저항 따위 하지 않고 순순히 G의 말을 따랐다.
“좋아요. 역시 튜토리얼 때와 다르게 말을 잘 알아듣는군요. 아주 좋습니다. 그럼 이번 50층 시험에 대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퀘스트 창을 열어주시죠!”
“퀘스트 창.”
퀘스트 창을 열자, 새로운 퀘스트 알림이 와있었다.
[메인 퀘스트 - 50층-1(플레티넘)]
[미궁을 탈출하시오(미완료)]
퀘스트의 내용은 간단했다.
‘미궁이라…’
“보시다시피, 이번 시험의 첫 번째 과제는 바로 미궁을 탈출하는 겁니다! 미궁은 제가 서 있는 곳 바로 뒤에 있는 이 문으로 나가면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 한 남자가 G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선착순입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제 재량이 아니라 말이죠.”
“그 말은….”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의 수가 정확히 오백 분이십니다. 이야, 이렇게 딱 맞추기도 힘든데, 대단하네요. 그래서 결론은, 정확히 절반! 이백오십 분만이 미궁을 통과하시면 나머지는 ‘자동 탈락’입니다.”
그 말에 몇몇 사람이 탄식했다.
“젠장!”
“또야?”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죠, 이번 시험은 조금 어려워서요. 제가 감히 말씀드리건데 첫 번째 과제에서 떨어지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과 함께 G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석찬 일행 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뭔데 계속 저렇게 말하는 거지.’
알 수 없으니 정말 궁금해 미칠 노릇이었다.
“미궁은 총 10개. 그러니까 오십 분씩 한 미궁 안에 들어가게 되실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 미궁당 스물다섯 분밖에 통과하지 못하는 거고요.”
G는 말했다.
미궁 안에는 함정과 몬스터가 득실거린다고. 정신 안 차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뭐, 설명은 대충 끝난 거 같고. 이제 미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문으로 나가시면 자동으로 미궁에 배치되실 겁니다! 그럼, 모두 건승하시죠!”
안내자의 미소와 함께 사람들이 일제히 문으로 달려갔다.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번 시험은 선착순. 그렇다면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판단이었다.
“우리도 가자.”
“오케이.”
석찬 일행도 사람들을 뒤따라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팟-
층을 이동할 때와 비슷한 느낌의 메스꺼움과 함께, 석찬은 홀로 한 미궁에 도착했다.
“떨어진 건가.”
가능한 한 명이라도 같이 있는 게 좋았겠지만, 미궁이 열 개씩이나 있으니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실제로도 석찬은 미궁에 홀로 떨어졌다.
“좋았어, 가자.”
그렇게 미궁 입구로 움직이려는 순간.
“끄아아악!”
한 남자의 비명이 석찬의 고막을 찔렀다.
“뭐지?”
비명이 들린 곳으로 향하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피 묻은 철퇴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남자의 다리는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윽.”
그 참상에 석찬은 눈을 찌푸리면서도 남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도와드릴까요?”
“뭐야? 올킬러? 같은 조였구만, 젠장.”
남자는 석찬에게 됐다는 손짓을 한 뒤 다리에 치유 스킬을 퍼부었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빨리 안 가고 이런 데 일일이 신경 쓰면 아무리 올킬러 너라도 통과 못 할 수 있을걸?”
남자는 석찬에게 한마디 충고를 내뱉은 뒤 미궁 속으로 사라졌다.
[저 남자 말이 맞아. 지금 남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우선 시험부터 통과해야지. 또 일 년 동안 1층에 짱박혀서 수련할 거 아니잖아?]
‘그쵸.’
[그리고 50층 정도 왔으면 다 어지간한 치유 스킬 하나씩은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 내가 언제부터 남 신경 썼다고.’
석찬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최대한 빠르게 미궁을 클리어한다.’
석찬이 마력 탐지를 사용했다.
‘우선 미궁 구조를 파악하는 게 먼저야.’
괜히 앞서 나갔다가 좀 전의 남자처럼 봉변을 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궁이란 곳이다.
그렇기에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수였다.
‘출구는 대충 2km 정도 떨어졌나?’
직선으로 2km면 실제 거리는 이보다 훨씬 멀다는 뜻이다.
‘근방에 사람이 네 명. 서로 다른 곳에 떨어진 모양이군.’
석찬은 길을 나서면서도 탐지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미궁을 탐사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약점 파악.’
집중력을 끌어올리자 마력 회로가 나타났다.
‘이게 다 함정이라고?’
‘약점 파악’으로 마력 회로를 보면, 함정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내가 말했지? 분명 쓸 곳이 많을 거라고.]
‘그러네요.’
미궁 안으로 깊숙이 가면 갈수록 굉장히 많은 함정이 존재했다.
‘이게 다 함정이라고?’
잘못하면 죽을 거라는 G의 말이 마냥 허풍은 아니라고 느낀 석찬이 조심하면서도 최대한 속도를 내며 출구 쪽으로 달려갔다.
덕분에 함정에 대한 공포를 품은 채 소심하게 나아가는 사람들과 달리 석찬은 마음껏 미궁을 활보할 수 있었다.
타탓!
“뭐야, 방금?”
석찬이 쏜살같이 지나간 곳에는 어디든지 사람들의 의문이 남았다.
‘설마, 저기로 가면 함정이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사람도 몇 있었다.
하지만 함정이 어디서 발동되는지 알고 피해 가는 석찬과 달리, 무작정 석찬을 따라 이동하던 한 남자가 사방에서 날아오는 창과 화살에 몸이 꿰뚫리는 것을 본 뒤로 다시 하나하나 함정을 확인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후…”
대충 출구까지 사분의 삼 정도 남긴 곳에 도착한 석찬은 바닥에 앉아 숨을 골랐다.
“윽.”
눈에서 저릿한 통증이 일었다.
‘역시 아직 약점 파악을 장시간 사용하는 건 무린가.’
라우르의 눈을 사용했을 때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눈 전체에 퍼지는 통증은 도통 익숙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잠시 쉬며 안정을 취한 석찬은 다시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퉁!
눈의 안정을 위해 약점 파악을 사용하지 않자,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함정들이 석찬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석찬은 차분하게 행동했다.
피융-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슬라이딩해 피하고.
훙-
공중에서 내려오는 가시 철퇴를 허리를 가볍게 틀어 비껴내준 뒤.
쾅!
뒤에서 쏘아지는 장창을 쏜살같이 날린 어퍼컷으로 튕겨냈다.
‘간단하네. 없어도.’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분명 이게 끝이 아닐 거야.]
‘그러겠죠.’
“키에엑!”
때마침 일어난 소음을 듣고 찾아온 건지, 자칼을 탄 고블린 무리가 석찬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너넨 뭐냐.”
“키엑!”
대답 대신, 고블린들은 석찬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고블린 따위 만 마리도 넘게 잡아본 석찬은 가볍게 녀석들을 상대했다.
콰직!
우두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동료가 분해되는 모습에 나머지 고블린들은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심지어 도망가려는 모습마저 보였다.
하지만 석찬은 녀석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석찬은 그런 녀석들을 보며 밝은 웃음과 함께 손가락을 까딱했다.
“어딜 가려고, 이리 와.”
* * *
“흠….”
G는 시험 감독관의 필수 임무인 관리 감독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었다.
여러 화면에는 미궁을 선두로 클리어하고 있는 응시자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G는 그중에서도 특출한 모습을 보이는 다섯 명에게 눈길을 옮겼다. G의 눈에 석찬, 진현, 이브 말고도 미궁을 빠른 속도로 클리어하고 있는 남녀가 들어왔다.
- 쿠어억!
그때 화면 속 검은 장발의 남자가 마력을 가득 머금은 검으로 오우거의 목을 내리쳤다.
여자는 흙과 광물로 만든 골렘을 방패 삼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석찬 님이랑 동료 분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분은 의외네요.”
첫 번째 과제는 당연히 세 사람이 압도적으로 클리어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는 실제로 들어맞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선방은 G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두 명이나 말이다.
G가 웃음을 참지 않으며 화면 속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이번 시험은… 꽤 즐겁고 유익한 시험이 될 것 같네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