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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85화 (85/200)

제85화

탈리야와 동행이 결정된 후, 그녀는 빠르게 필요한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중간중간 먹을 식량이나 옷가지가 전부라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럼, 얘들아. 내가 없는 동안 레어를 잘 부탁한다.”

“맡겨만 주십시오. 주인님.”

탈리야 부하들의 배웅과 함께 마을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어디 보자… 마을 방향이….”

보안을 위해 탈리야의 레어 주변에는 마력의 탐지를 방해하는 마법이 여러 개 걸려 있었고, 때문에 석찬은 마을의 방향을 찾는 데 꽤나 애를 먹어야 했다.

“저쪽인가….”

“아니, 저쪽이다.”

“그래?”

탈리야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가기 직전이었다.

“잠시만.”

“왜 그래?”

탈리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근처에 침입자가 있다.”

“침입자?”

“내가 설치해둔 함정에 인간이 침입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곳을 먼저 들러야 할 것 같다.”

“그래.”

그냥 내버려 두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기에, 석찬은 탈리야를 따라 침입자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이 있었다.

“너희들이 왜 여기 있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현과 이브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문이었다.

말 그대로 왜 두 사람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신을 잃은 두 사람은 답이 없었다.

“아는 자들인가?”

“내 친구들이야. 아무래도… 내가 오랫동안 사라져 있어서 내 마력의 흔적을 찾아온 듯싶은데.”

그게 아니면 두 사람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 함정에 걸려 며칠 동안 제자리를 맴돌았어.”

“그럼 식량이 떨어져서 굶었겠네.”

굶으면서까지 자신을 찾으러 오다니, 갑자기 미안해졌다.

“기다려 봐라.”

탈리야의 손이 새하얗게 빛난다.

화아아-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진현과 이브의 안에 스며들었다.

“그건….”

“원기 회복 마법이야. 이걸로 이 둘이 죽을 일은 없을 거다. 그래도 빨리 뭐를 먹여야 하긴 하겠지만.”

“이렇게 추운 곳에 오래 놔둘 수도 없으니, 일단 마을로 가자.”

“그래? 그렇다면 기다려 봐.”

탈리야가 서서히 본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소녀는 사라지고,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났다.

“타. 친구들도 태우고.”

“그래도 돼?”

“괜찮으니까 빨리.”

탈리야의 권유에 석찬은 두 사람을 실고 그녀의 등에 올라탔다. 딱딱한 비늘의 감촉이 느껴졌다.

“출발할게. 꽉 잡아.”

펄럭, 펄럭.

웅장한 날갯짓과 함께, 탈리야가 비상했다.

“와우.”

눈으로 덮인 새하얀 산과 들판 사이로 빠르게 비행하는 탈리야. 그녀 덕분에, 석찬은 오랜만에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력 날개를 못 쓰게 된 이후로 처음인가?’

확실히 나는 게 이동속도도 빠르고 편했다. 약 세 시간 만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탈리야, 여기서 내려줄 수 있어?”

만약 탈리야가 본체의 모습으로 마을에 도착한다면, 꽤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아니,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응? 물론이지.”

다행히 그녀도 별다른 불만 없이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와 함께 눈 위를 걸었다.

“두 사람 업는 거 불편하지 않아? 도와줄까?”

“그럼 고맙지.”

탈리야는 진현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길을 마저 걸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석찬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친구의 흑역사 추가를 기록할 사진기가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마을 앞에 다다르자, 경비병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혹시, 올킬러 님 아니세요?”

“맞습니다만….”

“역시 살아계셨군요! 다른 분들은….”

“다 멀쩡합니다. 잠깐 자고 있는 것뿐이에요.”

“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경비병이 진현을 들고 있는 탈리야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분은… 누구?”

“아….”

생각해보니 탈리야를 마을에 데려가려면 신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다.

‘강석찬, 이 멍청아.’

“그… 사정이 조금 있는데, 이번 한 번만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을까요? 신원은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어….”

“부탁이다!”

탈리야 또한 두 눈을 빛내며 경비원을 바라봤다.

“으으….”

경비원은 잠시 고민하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올킬러 님이니까 뭐. 이번 한 번만 봐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옆 분도 무조건 명패 만들어 오세요.”

“감사합니다.”

“고맙다!”

“올킬러 님은 마을 들어가시면 명패 발급소 들르셔서 명패 받아 가세요. 분실함에 넣어달라고 부탁했으니, 얘기하면 그쪽에서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마을로 들어선 석찬은 두 사람을 탈리야에게 맡겨놓은 뒤 갱신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에리카 누나!”

“응?”

자신을 부른 손님의 얼굴을 확인한 에리카가 화들짝 놀라 달려갔다.

“석찬이? 진짜야?”

“그럼, 진짜지. 가짜겠어?”

석찬의 모습을 확인한 에리카가 눈물을 글썽였다.

“어디 갔던 거야… 갑자기 사라져서 며칠 동안이나 안 보이고… 우린 너 어떻게 된 줄 알고….”

“어떻게 되긴 무슨. 그냥 잠깐 볼 일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게 늦어졌어.”

“어쨌든 무사해 보여서 다행이다. 진현이랑 이브도 만났지? 두 사람도 괜찮고?”

“어. 다 별일 없으니까 너무 신경쓰지 말어.”

“다행이네… 그나저나 갱신소에는 무슨 일로 왔어?”

“아, 내 명패가 여기 있다고 해서.”

“아, 그거. 잠깐만 기다려. 가지고 올게.”

눈물을 훔친 에리카가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곧 백금색 명패를 꺼내 왔다.

“이거 맞지?”

“응.”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계속 우리 여관에 머물 거야? 아님… 떠날 거야?”

“아마 며칠 동안은 머물지 않을까 싶어.”

“그래, 그럼. 퇴근하고 보자.”

“알았어.”

딸랑딸랑-

갱신소를 나온 석찬은 바로 여관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갱신소 입구 옆 벽이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저긴 탈리야가 있는 곳인데….’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어 보자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는 남자 둘. 그리고 그 위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는 탈리야.

“으으….”

“더 고개를 숙이도록 해라!”

“으으… 예!”

영문 모를 상황에 석찬은 할 말을 잃었다.

“석찬! 일 다 봤어?”

“그래… 근데 이건 대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짜고짜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남자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말이지. 내가 석찬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건방진 녀석들이 나를 데려가려고 했단 말이지?”

‘데리고 가? 유괴?’

잘못하면 심각한 범죄 현장이 될 수도 있던 상황. 하지만 탈리야는 그냥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드래곤이다.

‘역으로 당한 건가.’

동공의 핏줄이 터지고 불안에 떠는 모습이 정신 마법에라도 걸린 듯싶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착하게 살게요!”

보기만 해도 연민이 느껴지는 꼴.하지만 석찬은 그들이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만약 탈리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했겠지.’

때문에 석찬은 이들을 용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치안부에 넘기자.”

치안부. 말 그대로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으로, 각 마을의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하나씩 존재했다.

“어디 보자, 가까운 치안부가….”

“저쪽 방향이야.”

“어디 있는지 알아?”

“나도 예전에는 여기 많이 와봤어. 건물들이 조금씩 변하긴 했다만… 구조는 같으니.”

“좋았어, 가자.”

“오!”

석찬 일행이 떠난 이후, 자연스럽게 구경꾼도 해산되었고, 갱신소 주변은 다시금 한적해졌다.

하지만 한 남자만은 유심히 석찬 일행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눈에 안대를 낀 남자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되살려 보았다.

건장한 남자 둘을 상대로 겁을 먹기는커녕,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로 엄청난 마법 실력을 뽐내며 두 사람을 제압했다.

“아무래도… 적합한 녀석을 찾은 것 같군.”

씩 웃는 남자의 몸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 * *

“후우…”

배정된 방으로 들어온 석찬이 바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피곤해….”

여관으로 돌아온 직후, 석찬은 몇 시간 동안 후레이와 레아에게 시달렸다. 주된 내용은 뭐, 당연히 말없이 사라졌던 것이었다.

무슨 일 없었냐, 우리가 싫었던 것은 아니냐, 몸은 괜찮냐 등등. 대부분 에리카에게 들은 질문이었다. 석찬은 걱정해준 마음에 감사하며 두 사람과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 진현과 이브도 깨어났고 잔뜩 울먹이는 이브를 달래주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그래도 다 나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불편하기는커녕 고마운 마음만 가득했다.

‘내일 한 번 더 사과하고 고맙다고 해야지.’

거의 하루 종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덕분일까? 금세 졸음이 찾아왔다. 그렇게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예? 들어오세요.”

잠옷 차림의 이브가 뻘쭘해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브?”

“안… 주무셨네요.”

“갑자기 무슨 일이야?”

“그… 오늘은 같이 잘 수 있나 하고…”

“같이?”

“그, 그게… 석찬 오빠가 또 어디론가 사라질 수도 있고….”

이브가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그냥… 오늘 하루만….”

“뭐, 그래. 네가 원한다면.”

미안한 일도 많은데 이런 부탁이면 들어줘야지.

“진짜요?”

완전 예상 밖이라는 듯, 이브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잠시만.”

밖을 나간 석찬이 잠시 후, 새 이불과 베개를 구해와 바닥에 깔았다.

“너가 침대에서 자. 난 바닥에서 잘게.”

“어어… 그럴 필요 없어요! 굳이 저 때문에 힘들게 주무실….”

“괜찮아. 그렇다고 같은 침대에서 잘 수는 없잖아? 그리고 난 바닥에서 자는 것도 편해서. 침대에서 편하게 자.”

“네….”

“졸리다. 먼저 잘게. 잘 자.”

“안녕히 주무세요….”

정말로 피곤했던 석찬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바로 잠들었고, 이브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짧게 중얼거렸다.

“바보. 진짜 바보.”

* * *

한 남자가 창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방 안에는 푸른 머리의 소녀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자고 있군. 좋았어.’

남자는 아공간 주머니에 들어 있던 팔찌를 꺼내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접근했다.

‘후…’

짧게 호흡을 내쉰 남자는 빠르게 팔찌를 소녀의 팔에 채웠다.

철컥.

‘됐다!’

그와 동시에, 소녀의 눈이 떠지더니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남자와 대치했다.

“누구냐, 넌.”

“이런, 깨지 않았으면 더 편했을 텐데 말이야.”

“누구냐고 물었을 텐데….”

“뭐, 너의 새로운 주인이 될 사람이라고 알면 된다.”

그 말에 소녀, 탈리야가 콧방귀를 뀌었다.

“주인? 어림도 없는 소리.”

그와 동시에 탈리야가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마력이 모이지 않았다.

“무슨….”

탈리야는 팔에 채워진 팔찌를 흘끔 쳐다보았다.

‘이거 때문인가?’

아무래도 일종의 마력 구속구인 듯했다.

‘나에게 통하는 마력 구속구라니.’

“자, 네 상황을 알았으면 나를 따라오지 그러냐? 나도 피를 보긴 싫다.”

탈리야는 말없이 주먹을 쥐었다.

“결국 피를 보겠다는 것이냐? 어쩔 수 없구나.”

고조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이 격돌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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