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콰앙-
“카학!”
명치에서 느껴지는 격통과 함께, 석찬의 몸이 멀리 날아갔다.
철퍽-
늪 위에 처박힌 석찬이 붉은 피를 토했다.
“젠장. 뒤지게 아프네.”
분명 맞기 전에 마력으로 몇 겹이나 방어막을 둘렀음에도 이 정도 데미지라니.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일어난 석찬이 날아온 방향을 돌아봤다.
“멀리도 날리네, 새끼.”
가벼운 치료 마법을 사용한 석찬은 숨을 고르며 진현을 향했다.
석찬을 본 진현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외로 멀쩡하네? 살짝은 진심을 다했는데 말이야.”
“멀쩡하긴 무슨, 아파 뒤지는 줄 알았다.”
석찬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피하기만 해서는 안 돼.’
강적을 상대로 계속 아슬아슬하게 피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따라잡힐 것이고, 이는 방금과 같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었다.
‘마법은 위장용으로만, 결국은 근접전이 답인 건가.’
아무래도 그렇게 보였다.
‘최대한 정면 싸움을 피하면서 대미지를 쌓고, 빈틈을 보이면 무조건 공격한다.’
그리고 기술을 아끼지 않는다.
무쇠처럼 단단한 진현을 보며 마력 폭발 같은 위험 기술도 사용을 아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마친 석찬이 스텝을 밟았다.
‘오랜만에 예전처럼 가보자고.’
이후로 석찬은.
후웅- 훙-
유연한 허리 놀림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피했으며.
팡!
가끔씩 들어오는 날카로운 공격은 패링으로 처리하고.
퍽! 퍽! 쾅!
진현의 빈틈을 찾아 공격을 퍼부었다.
화악-
물론 지속해서 마법으로 시야를 방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확실히 쉽지는 않아.’
지금 싸움 스타일은 석찬이 원래 싸우는 스타일과는 확연히 달랐다.
원래 석찬은 복싱을 베이스로 인파이팅을 자주 했다. 마력 또한 신체 강화 목적 외에는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면 대부분의 싸움을 이겼었기에 별로 스타일을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치명적인 페널티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야 했다.
본래의 인파이팅 스타일 대신 아웃복싱으로 데미지를 누적시키며 신체 강화 말고도 마법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활용하는 기술이 많은 만큼 수없이 마력을 사용해야 했고, 정신력 소모도 극심했다.
때문에 타이밍이 달라 위험한 상황이 몇 연출되기도 했다.
“힘드냐? 행동이 굼뜨다!”
후웅-
핏.
‘쳇.’
조금씩 실수를 할 때마다 점점 늘어가는 잔상처들. 하지만, 석찬은 당황하지 않았다.
‘조급하면 지는 거다.’
시간을 끌면 언젠가는 본인의 턴이 돌아온다.
게다가, 대련이 점점 장기화되면서 석찬 또한 현재의 싸움 스타일에 익숙해지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점점 더 부각되기 시작했다.
퍽- 퍽!
마법으로 시야를 교란하며 조금씩 대미지를 누적시키니, 진현의 표정이 조금씩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진짜 쫌생이처럼 싸우네. 야! 싸나이답게 화끈하게 싸우자!”
“응, 아니야.”
저런 시답잖은 도발에 넘어갈 필요는 없다.
퍽- 쾅!
“진짜….”
그렇게 얼마를 더 싸웠을까. 진현의 강마력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몇 분이 더 지나자, 강마력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에 맞춰 주먹을 찔러 넣는 석찬.
쾅!
마력 폭발과 함께 튕겨져 나가는 진현.
“칵! 뒤지게 아프네!”
‘이제 마무리다!’
그 모습을 본 석찬이 은연중에 모아두었던 모든 마력을 해방했다.
쿠구궁-
약해진 자신과는 다르게 한층 더 강한 힘을 선보이는 그를 본 진현이 잔뜩 인상을 썼다.
“헥, 헥. 미친놈아. 그래, 끝까지 한번 가보자!”
콰앙!
진현의 기운이 순식간에 몇 배로 증폭되었다.
진현은 강마력도 그렇지만 마력도 거의 다 바닥났기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뭐지? 새로운 기술인가?’
“저건 도대체….”
묵묵히 대련을 지켜보던 이브 또한 진현에게 보이는 기현상에 의문을 보였다.
“놀랐냐? 처음 보지? 이게 바로….”
쿠구궁-
진현이 주먹을 쥐자,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간 수련의 성과다!”
진현이 주먹을 뻗자, 허공에 거대한 노란 주먹의 형상이 나타났다. 족히 사람 성인 남자 한 명 크기는 되어보였다.
‘뭐야, 저게.’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절대 웃으며 넘길 정도가 아니었다.
척 봐도 모든 것을 파괴해버릴 것만 같은 마력의 주먹이 석찬을 향해 날아왔다.
‘무조건 막는다.’
물론 피하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피하기만 하려니.
‘아깝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상대한다는 두근거리는 상황 속에서 피하기로 대련을 끝내기에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꾸구국-
오른손의 근육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압축, 압축, 압축…’
모든 마력이 오른손에 집약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태껏 초조하게 두 사람 사이를 지켜보고 있던 이브 또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 그래도 대련이 점점 격해진다 싶더니,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면 승부를 한다고?’
이브는 냉정하게 진현의 새로운 기술을 파악했다.
진현의 모든 마력이 집약된 마력의 주먹.
아무리 석찬이 강하고 끝없는 마력을 가졌다 한들 지금 몸 상태로는 저 정도의 마력이 담긴 주먹을 막아낼 정도는 아니었다.
탁.
지팡이를 집어든 이브가 두 사람 사이로 달려갔다.
‘메가 실드!’
실드보다 몇 배의 강도를 자랑하는 상위 마법. 이걸로 두 사람 사이를 막으려고 했다만, 석찬의 주먹이 이브의 마법보다 조금 더 빨랐다.
콰앙-!
으드득-
석찬의 주먹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크윽.’
부하가 오기 시작한 것.
주먹이 터질 것같이 욱신거렸다.
‘크악.’
몸이 점점 밀리고.
드드득-
뼈가 비틀리기 시작했다.
‘상대할 수 없는 건가….’
힘의 차이가 느껴졌다.
“이 기술은 절대 막을 수 없어. 더 다치기 전에… 패배를 인정해.”
진현이 걱정 가득한 말을 건넸다.
까드득.
하지만 석찬은 그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눈을 더욱 빛냈다.
‘여기까지 와서 피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막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러던 와중, 석찬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 떠올렸다.
‘잠깐만.’
“진현아… 이 기술, 정말 아무 방법으로도 막을 방법이 없는 거냐?”
“응? 물론이지. 같은 기술이 아닌 이상 절대 이 기술을 막을 스킬은 존재하지 않아!”
그 말에 석찬이 속으로 씩 웃었다.
“같은 기술은 가능하다는 말이지?”
“뭐… 너 설마?”
[설마, 저 기술을 사용하려는 거냐?]
내내 가만히 있던 라우르 또한 의문이 가득 담긴 질문을 건넸다.
‘일단 해봐야죠. 방법은 그거밖에 없는 것 같으니.’
석찬은 공격을 막는 와중에도 거대한 마력 주먹을 분석했다.
‘주먹에 응축해 있던 마력을 형상화시키다니. 어떻게 이런 걸 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잘못했다간 팔이 터져나갈 수도 있었다.
“야, 무리야. 무리! 내가 이거 만든다고 일 년 넘게 별짓거리를 다 했는데.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진현이가 한 것을 내가 못 할 리가 없다.
그 생각과 함께 석찬이 마력의 형상화를 시작했다.
쿠구궁-
석찬의 발이 움푹 파였다.
쿠오오-
“크아아!”
기합 소리와 함께, 초록빛 주먹이 하나 나타났다. 크기 또한 진현의 것보다 조금 컸다.
“뭐…야?”
말도 안 되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에 진현이 뒷걸음질 쳤다.
“자, 됐네?”
“씨… 씨바….”
물론 마력 주먹은 불안정했다. 금방이라도 흐트러질 것 같이 형상만 간신히 유지하는 주먹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쿠구궁-
석찬의 마력 주먹이 진현의 것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이… 이런…. 씨….”
“바이바이다. 진현아. 장비 잘 사서 쓰마.”
“닥쳐, 이 미친 새끼야! 으아악!”
쾅!
천지를 찌르는 엄청난 파공음이 대련의 승자를 알렸다.
* * *
석찬의 승리로 대련이 끝난 지 몇 시간이 지났다.
“아니, 왜 대련인데 이렇게 싸우는 거예요!”
“하하, 미안, 미안.”
석찬은 이브의 무한 잔소리를 견디며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지막 공방 때 제가 얼마나 살이 떨렸는지 알아요? 잘못했다가는 둘 다 큰일 날 수도 있었다고요!”
“미안해. 잘못했어. 앞으로는 안 그럴게.”
“아주 말만 잘하지, 말만 잘해. 팔 겨우 고쳐 놓으니까 다시 망가트리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석찬이 치료를 받는 동안, 진현은 멍한 표정으로 ‘말도 안 돼’라는 말만 연발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이 몇 달, 몇 년의 시간을 걸쳐 완성한 기술을 남이 금세 보고 베낀다면? 석찬이 생각해도 충격이 클 것 같았다.
오랜만에 풀이 죽어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려니.
‘조금 미안한데.’
[굳이 미안할 필요 없다. 기술을 카피하는 것도 네 실력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리고 저 녀석 멘탈이면 아마 내일쯤이면 괜찮아져서 또 술 마시고 그럴걸?]
‘그럴까요?’
진현을 오랫동안 봐온 석찬도 진현이 그렇게 빠르게 멘탈을 회복할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진현아, 괜찮아?”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아침이 지나고.
“말도 안 돼.”
점심이 지나도 진현은 회복의 기미가 안 보였다.
“상태가 조금 심각한 거 같은데요?”
“그러게. 충격이 컸나?”
평소에 진현과 자주 티격태격하던 이브도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진현을 걱정했다.
“정신 건강 회복에 좋은 포션 같은 거라도 조금 사올까요?”
“그럴까?”
“제가 사 올게요.”
“아냐, 같이 가자.”
친구가 저런 상태인데 그냥 볼 수는 없었다.
원래 같았으면 마을 안에 있는 상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포션을 샀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30층에 거주하고 있다는 유명 포션 제작 장인을 찾아가 거액의 돈과 재료를 지불하고 특제 멘탈 회복 포션을 구입했다.
그렇게 저녁이 늦어서야 여관으로 돌아온 석찬과 이브.
그런 두 사람 앞에는.
“놀아보자고!”
긴 탁자 위에 올라가 춤을 추고 있는 진현이 있었다.
“음.”
“어라.”
두 사람은 멍한 표정으로 술에 취한 채 모르는 남자와 어깨동무를 한 채 마구 날뛰고 있는 진현을 바라봤다.
“이모! 여기 맥주 한 병만 더!”
“이 친구, 재밌네!”
“하하! 한 곡 더 들어갑니다!”
그 모습을 보며, 라우르가 한 마디 거들었다.
[봐봐. 내 말이 맞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 석찬이 나지막이 소리쳤다.
“이러면 걱정한 내가 뭐가 돼.”
“그니까…요.”
파삭-
무언가 깨지는 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포션 병을 밟고 있는 이브가 보였다.
“어… 포션 아까운데.”
“몰라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그래. 들어가서 쉬어라.”
아무래도 두 사람은 영원히 티격태격할 운명일 것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