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보스 룸에 입장했습니다.]
[히든 보스 몬스터 ‘잊힌 어인족의 왕’이 등장했습니다.]
[도망을 적극 권고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도망 권고 메시지다.
‘고블린 왕 이후로 처음인가?’
고블린 왕 이후로는 충분히 강해진 뒤 보스에 도전했기에, 도망 권고 메시지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같은 도망 권고 메시지여도 그 느낌이 고블린 왕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때보다 더….’
훨씬 더 위험한 느낌이었다.
한껏 긴장한 순간, 어인족의 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네 녀석인가? ■■들의 미움을 받는 자들이?”
“뭐라는 거야?”
석찬의 물음에 어인족의 왕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30층의 녀석들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원….”
그 말과 함께 어인족의 왕이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쿠구궁.
그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공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마력이 떨리고 있어….’
오싹- 오싹-
덩달아 온몸의 털들이 곤두세워진다.
‘먼저 공격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더 할 말 없으면, 싸움을 시작하지.”
그 말이 있음과 동시에.
팟-
어인족 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디냐!’
녀석의 기척을 탐지하려는 순간.
콰직-
오른쪽 허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통증. 그와 동시에 석찬의 시선이 차가운 돌바닥을 향한다.
털썩.
“커헉!”
바닥에 쓰러진 석찬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한 박자 늦게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크악….”
“약하구나, 인간이여.”
어인족의 왕은 상처 부위를 부여잡고 있는 석찬을 벌레 쳐다보듯 내려봤다.
“어떻게 내 부하들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야.”
‘이 자식이… 커헉….’
명백히 조롱이 섞인 말투. 분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물고기 자식이….”
비아냥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진현의 주먹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강마력이라고?’
끊임없는 수련으로 강마력을 꽤 오랜 시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진현. 그런 그에게 있어서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으아아!”
그에게서 풍기는 강한 기운에 어인족의 왕은 방어보다는 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인간… 그 힘은….”
“죽어라, 새꺄!”
진현이 어인족의 왕을 몰아붙이는 동안, 이브는 급하게 석찬을 향해 치료 마법을 쏟아부었다.
“괜찮아요?”
“난, 괜찮아. 그보다, 진현이 혼자 두면 위험해.”
첫 일격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인족의 왕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상대보다 위험한 상대였다.
‘어떻게 잡으라고 보스 몬스터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해.”
통증이 나름 가신 석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똑같이 강마력을 일으켰다.
“이브, 지원 사격을 부탁해.”
“알겠어요.”
탓!
어인족의 왕을 향해 달려드는 석찬. 이브 또한 곧장 마법을 시동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다를 줄 알았건만… 너도 약하구나. 인간.”
“큭.”
처음에는 밀리는 듯싶었지만, 어인족의 왕은 어느새 페이스를 되찾고 오히려 진현을 압박하고 있었다.
“슬슬 질린다. 죽어라 인….”
녀석의 주먹이 진현을 강타하려는 순간.
“누구 보고 죽으래!”
콰직!
석찬의 주먹이 어인족의 왕의 옆구리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크흠?”
옆으로 쭉 밀려난 어인족의 왕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더니 멍이 든 옆구리를 어루만졌다.
‘나름 신경 써서 날린 일격이었는데 고작 멍이 전부라니….’
파워도 파워였지만, 맷집도 엄청난 듯하였다.
“인간. 제법 손이 맵구나.”
“계속 인간이라고 하지 마라. 내 이름은 강석찬이다.”
“강 뭐시기 인간.”
“강 뭐시기가 아니라….”
“내 무시를 사과하지. 너의 수준을 잘못 파악했다. 전력으로 가겠다.”
그 말과 동시에 어인족 왕의 눈빛이 돌변했다.
후우웅-
그와 동시에, 한 줄기 바람이 석찬의 볼을 타고 지나갔다.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 속.
“플레어.”
콰아앙-!
이브의 마법이 제대로 된 전투의 서막을 알렸다.
* * *
어두컴컴한 방 안.
천사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수정구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인족의 왕에게 맞서고 있는 석찬, 진현, 그리고 이브.
어인족의 왕은 본래 50층 미만의 존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을 수 없는 존재다.
본래라면 전혀 싸움이 되지 않았어야 정상인 매치업이라는 소리.
하지만, 이 세 명의 이레귤러는 이 싸움을 성립시키고 있었다.
우선 이브의 엄청난 마법.
50층 미만의 존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화력의 마법들이 연이어 발동되며 어인족의 왕에게 꾸준히 대미지를 입혔다.
그 모습에 천사 몇 명이 수군덕댔다.
“역시 알렉산더의 딸인가… 대단하네요….”
“그러게요. 저 정도면 그 당시의 자기 아버지를 이미 능가한 거 같은데요?”
“김진현이라는 이레귤러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회의 이후로 새롭게 이레귤러로 분류된 김진현.
그 또한 다른 두 명보다는 덜했지만, 동층 대비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실력으로 어인족의 왕을 방해했고.
“강석찬. 역시는 역시네요.”
석찬은 기본 스탯, 장비, 그리고 천부적인 전투 센스를 이용해 전력을 다하는 어인족의 왕을 맞상대하고 있었다.
휙- 휙-
- 겨우 그 정도 주먹이냐?
- 빠르군, 인간.
아슬아슬하게 적의 공격을 피해내며 카운터펀치를 날려대는 석찬의 전투 스타일에 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대단하군요. 저 정도의 전투 센스라니….”
“고작 인간이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녀석의 잠재력이 얼마라고 되어 있었죠?”
한 천사의 물음에 가만히 앉아 있던 천사장이 입을 열었다.
“측정 불가.”
그녀의 발언에 소란스러워지던 방 안이 일순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천사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처음 그의 잠재력을 확인했을 때의 놀라움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측정 불가]
처음에는 잠재력 측정기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잠재력을 측정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잠재력 측정기는 탑이 생겨나기도 전에 있었던 보물.
길고 긴 탑 역사 속에서도 한 번도 오작동을 낸 적이 없는 장치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측정 불가의 잠재력에 대해 알아보았고, 천 년도 더 된 고문서에서 이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라우르. 잠재력 측정 불가. 집중 관심 필요.]
그 기억을 떠올린 천사장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자’와 같은 케이스라니….’
인신 라우르.
먼 옛날, 탑이 세워지기도 전, 고작 인간의 몸으로 결국에는 신이 되어 나중에는 천계에 큰 파란을 불러왔던, 천계의 존재들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신, 아니, 인간이었다.
천사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수정구 속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봤다.
‘만약 저 녀석이 그와 같다면….’
지금보다 더욱 센 압박을 가해야 한다. 특별 상점 규제? 그런 것으로는 부족하다.
‘전과 같은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돼.’
비장해진 눈빛과 함께, 천사장의 시선이 어인족의 왕에게 치명타를 날리려는 석찬에게 고정되었다.
* * *
“커헉….”
옛말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단단한 철옹성 같았던 어인족의 왕은 어느새 온몸이 피 칠갑이 된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허억, 헉.”
과도한 강마력의 사용 때문일까? 석찬 역시 떨리는 다리를 겨우 붙잡으며 어인족의 왕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스 스피어.”
이브 또한 마력이 많이 줄었는지, 위력이 한 층 떨어지는 마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꼴이 말이 아니군, 인간….”
어인족의 왕이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꼴이 말이 아니다라… 너도 마찬가지야.”
“강석찬이라고 했던가?”
“오, 드디어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가? 이거 영광인데?”
“우리 어인족은 강자를 무시하지 않는다. 강석찬. 내 이름은 우베. 위대했던 푸른비늘족의 13대 왕이다.”
그 말과 함께 어인족의 왕, 우베의 기운이 한층 강해지기 시작했다.
“전력이라며… 거기서 더 강해진다고?”
“강자에 대한 예우를 담아, 빠르게 끝내주겠다. 쿨럭.”
우베의 입에서 각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몸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력과는 달라, 저게 뭐지?’
석찬의 궁금증에 답한 것은 이브였다.
“저 녀석…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우고 있어요!”
“생명력.”
“네. 저 기운. 생명력이 틀림없어요. 죽을 작정인 거 같은데….”
‘회광반조인가?’
회광반조(回光般照).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가장 환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우베는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울 생각인 것이었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다.’
우베의 강력한 기운에 몸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저 새끼가….”
진현이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우베를 노려봤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석찬의 머릿속에 생각이 쌓이기 시작했다.
저 녀석을 상대한다고 생명력을 불태울 수는 없었다. 이브의 말처럼 생명력을 불태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하지만, 그 방법이 아니면 녀석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젠… 어?’
많은 생각이 오가던 와중, 석찬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있었어….”
“뭐가요?”
“저 녀석을 상대할 방법.”
방법을 생각해낸 순간, 석찬의 머릿속에 더 이상의 망설임은 존재하지 않았다.
석찬의 눈빛이 변했다.
“준비는 끝난 것이냐?”
“그래, 기다려줘서 고맙다.”
“서로 전력으로 부딪혀 보자꾸나.”
“오냐. 들어와라.”
그 말과 동시에 우베가 석찬을 향해 돌진했다.
“후우우-”
“위험해요!”
이브의 외침과 함께 점점 좁혀져 오는 거리. 하지만, 석찬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꾸드드득-
석찬의 팔 근육이 빠르게 압축되기 시작했다.
‘성공 확률은 반반.’
모 아니면 도. 하지만 녀석을 상대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지척까지 다다랐을 때.
“흡!”
짧은 기합과 함께 석찬의 손바닥과 우베의 주먹이 부딪혔고.
콰아앙!
굉음과 함께 생겨난 거대한 파장에 이브와 진현이 튕겨져 나갔다.
“꺄아악!”
“크악!”
어찌나 큰 충격인지, 쓰러진 두 사람은 한동안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으며, 공동 전체에 큼지막한 금이 갔고, 천장에서는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크윽….”
얼마 후, 정신을 차린 둘은 빠르게 격돌의 중심지를 향해 몸을 옮겼고.
“이건….”
“맙소사….”
주먹과 손바닥을 맞닿은 채 서 있는 석찬과 우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누가 이긴 거지?’
그때였다.
푸확!
석찬의 팔 곳곳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석찬아!”
“오빠!”
그 모습에 진현과 이브가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 녀석이….”
곧장 우베에게 달려들려던 두 사람. 그런 그들을 말린 것은 다름 아닌 석찬이었다.
“하지… 마.”
“오빠, 괜찮아요?”
“뭐가 하지 마야? 네가 이렇게 됐는데….”
그 순간.
“좋은 싸움이었다. 강석…찬. 네 녀석의 승리다. 커헉!”
촤아악!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내며, 우베의 몸이 바닥에 허물어졌다.
“다… 끝났어.”
[히든 보스 몬스터 ‘어인족의 왕 우베’를 처치하였습니다.]
그 메시지 창을 봄과 동시에, 석찬의 정신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