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후….”
눈앞에 쓰러진 베테랑 사냥꾼을 바라보며 석찬이 이마를 훑었다. 바닷물 때문에 금방 흩어졌지만, 땀이 살짝 났다.
“오랜만에 살짝 강한 사람이었는데, 아쉽네.”
죽음을 불사르고 석찬에게 덤벼든 베테랑 사냥꾼은 강했다.
20층 이후 제대로 된 적수조차 만나보지 못한 석찬에게 조금은 덤빌 수 있는 수준의 무력을 보유했었으니 말 다 했다.
띠링.
[지존 파티의 파티원이 전원 전투 불가 상태가 되었습니다.]
[기여도를 계산 중입니다….]
[기여도]
[1위 - 올킬러 파티(100%)]
[수정 25개가 올킬러 파티에게 양도됩니다.]
그 메시지와 함께 수정 25개가 석찬의 손에 들어왔다.
“…….”
잠시 그것을 쳐다본 석찬은 말없이 수정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획득 수정 : 45개]
별다른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저들은 자신에게 덤볐고, 그 값을 치른 것뿐이다.
“근데, 저 사람들 그냥 저렇게 내버려 두고 가요?”
“그러게….”
“그건 말입니다. 제게 맡겨주세요.”
“우왁!”
어느샌가 나타난 안내자 G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자 지존 파티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저 사람들은… 무사한 겁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 이벤트 퀘스트.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람이 죽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 말은…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까?”
“뭐, 지금처럼 싸우다가 운이 없어서 죽을 수도 있죠? 참고로 알려 드리자면… 이미 40명 정도 되는 참가자가 신의 품으로 돌아갔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그럼 이벤트 1등 기원하며 저는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파이팅!”
“…….”
G가 떠나가고 얼마 뒤, 석찬 파티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다.”
“여기.”
석찬은 전보다 더욱 빠르게 수정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야! 조금만 천천히 가! 뭐가 이리 급해!”
진현의 외침에 석찬이 작게 말했다.
“그냥…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까 죽었다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거예요?”
“뭐, 조금?”
탑에 들어온 이후로 죽음에 대해 지구에 있었을 때에 비해 굉장히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도 살인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불필요한 것 때문에 의미 없이 사람들이 죽는 건 그리 보고 싶지 않아서.”
물론, 퀘스트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안내자 G의 말처럼 이번 퀘스트에서는 사람들이 하는 것에 따라 아무도 안 죽을 수도 있고,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어디선가 싸움이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퀘스트가 빌미를 쥐여 준 것은 맞지.’
“하지만, 1등으로 클리어한다고 이벤트가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것도 맞지.”
아무도 첫 사람이나 파티가 보물을 찾으면 이벤트 퀘스트가 끝난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에이,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고. 1등으로 보물을 찾아서, 제일 좋은 보상을 먹는 거다. 오케이?”
‘그래, 편하게 생각하자.’
진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석찬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니까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그 이후로 기세는 파죽지세 같았다.
[획득 수정 : 50개]
[획득 수정 : 76개]
[획득 수정 : 91개]
점점 늘어가던 수정은 어느새 90개를 넘어갔다.
“좋았어! 이제 9개만 더 모으면 돼!”
“조금만 더 힘내자.”
“네.”
그렇게 결의를 다지던 도중이었다.
콰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석찬의 옆에 있던 땅이 폭발했다.
“뭐지?”
다행히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바지 끝이 조금 찢어져 버렸다.
‘쳇.’
“다들 괜찮아?”
“네!”
“오야! 그보다 방금 건 뭐냐?”
“그러게 말이다….”
그때, 폭발로 인해 흩뿌려졌던 모래가 걷히고, 거대한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멍?”
“조심해, 밑에서 거대한 마력 반응이 느껴져.”
석찬은 온몸의 털들이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이브와 진현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구멍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이렇게 큰 마력 반응이라면 깊은 바닷속까지 들어오기 전부터 조금이라도 그 힘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구멍이 생기기 전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동감이에요.”
작전상 후퇴.
그렇게 구멍이 난 곳에서 멀어진 석찬 일행은 또 다른 수정을 찾으러 떠났다.
그렇게 30분 뒤.
[획득 수정 : 100개]
[획득 수정이 100개를 돌파했습니다.]
[보물 지도를 지급합니다.]
“됐다!!!!!”
투명한 막에 둘러싸인 채 떨어지는 지도를 낚아채며, 진현이 포효했다.
“빨리 위치부터 확인해 봐.”
“어디 보자….”
지도를 펼쳐 든 진현은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여기는… 아까 왔던 곳 같은데?”
“이런 곳에 보물이 있다고?”
그들이 지나고 있는 곳 아래에는 평평한 모랫바닥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쯤 이동했을까. 어느 한 지점에 도착한 진현이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지점은 석찬과 이브도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어….”
“여긴….”
30분 전, 거대한 폭발이 났던 그곳이었다.
“왜 여기서….”
“여기라고 나오는데?”
“응?”
진현이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밑이래.”
“…….”
그 말을 들은 석찬과 이브가 말없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위치와 보물의 위치가 표기된 지도에는 두 위치가 겹쳐져 있었다.
[-100m]
‘밑으로 100m 가라는 건가….’
석찬은 조심스럽게 구멍 가까이 가 섰다.
휘오오-
‘크윽….’
살이 떨릴 정도로 거대한 기운을 정면으로 쐬자, 자동으로 발이 뒷걸음질 쳤다.
‘그래도….’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가야만 한다.
그렇게 다짐하며 석찬이 구멍 밑으로 몸을 던졌다.
이브와 진현도 그를 뒤따라 구멍 밑으로 떨어졌다.
* * *
“후우….”
가엔은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수정구 안을 바라봤다.
수정구 안에는 구멍으로 몸을 던지는 석찬의 모습이 비쳤다.
“그래… 그거다….”
이벤트 퀘스트.
말 그대로 이벤트에 불과한 퀘스트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릇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법.
따라서 모든 이벤트 퀘스트에도 항상 적들이 존재했다.
보물찾기도 마찬가지.
보물찾기 이벤트에는 항상 보물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했다.
‘원래의 보스 몬스터였다면 절대 올킬러 녀석들을 당해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천사들이 조금 힘을 썼다.
이름도 모를 천사가 마력 날개를 금지시킬 때 썼던 방법과 동일했다. 다만, 이번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다른 천사들과 함께했기에 효과는 더욱 컸다.
원래 보스 몬스터 대신 소환된 보스 몬스터. 녀석은 50층 아래의 인간들이 절대 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의식에 참여한 천사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후후… 고통 속에서 죽어라, 올킬러!’
가엔은 죽어가는 석찬의 모습을 볼 생각에 신나 수정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구멍에 몸을 던진 직후. 석찬의 눈앞으로 여러 가지 메시지가 떠올랐다.
[올킬러 파티의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수정의 개수를 확인 중입니다….]
[확인되었습니다. 수정이 100개 차감됩니다.]
[이벤트 던전 어인족의 무덤에 입장합니다.]
‘어인족의 던전?’
메시지가 사라지자, 어두웠던 주변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렇게 펼쳐진 구멍 안의 모습은 신기했다.
마치 고블린 왕의 궁전처럼 돌로 쌓아진 벽과 상당히 오래되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횃불.
“대박이다. 무슨 신전 같아.”
진현이 감탄하며 벽을 쓸었다.
“이브, 너도 메시지 봤어?”
“물론이죠. 어인족의 무덤이라고 하던데….”
“어인족이라… 말 그대로 물고기 인간 같은 건가?”
“글쎄요. 어인족에 관한 건 저도 못 들어봐서요. 잘 모르….”
“키에엑!”
그 순간, 어두운 복도 너머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이 소리는….’
상당히 구슬픈 울음소리였다.
‘적인가….’
곧이어.
“끼에에엑!”
거대한 무언가가 가장 앞에 서 있던 진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녀석의 기본적인 외형은 인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인간에 비해 족히 두 배는 더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오우거가 이와 비슷한 크기일까 싶었다.
게다가 인간의 피부 대신 물고기의 비늘이 몸 곳곳에 나 있었으며, 귓가에는 아가미로 추정되는 것이 달려 있었다.
‘저 녀석이 어인족인가!’
“피해!”
“알아!”
전투에 돌입하자, 진현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후웅-
어인족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진현이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쾅!
애꿎은 바닥을 강타한 어인족의 주먹.
“뭐야, 저 녀석은? 뭐 저렇게 생겼어?”
어인족의 생김새는 굉장히 이상했다.
“끄어어….”
축 처진 눈까지는 괜찮았다. 인간 중에도 얼마든지 처진 눈을 한 자들은 많았으니. 하지만, 녀석의 몸 상태가 문제였다.
마치 좀비를 보는 듯한 썩은 살점과 군데군데 드러난 뼈들. 또한 악취도 심했다. 꽤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생선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이래서… 무덤이라고 한 건가?’
“키에엑!”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석찬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녀석을 처치하는 것이었다.
석찬의 몸이 어인족을 향해 쏘아졌다.
탓!
가벼운 점프로 자신의 키의 1.5배 가까이 되는 어인족의 눈앞까지 다가온 석찬이 주먹을 꽉 쥐었다.
“죽어라.”
콰앙!
주먹 한 방에 어인족의 머리가 사라졌고,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쿵.
“윽.”
주먹에서 나는 썩은 내를 간신히 참아내며 석찬이 어인족의 시체로 다가갔다.
여타 다른 몬스터와는 달리, 어인족의 시체는 가루화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체라서 그런 건가?’
궁금한 점이 조금 있었지만, 생각할 틈이 없었다.
“키에엑!”
“키에엑!”
어인족을 죽인 시점부터 생겨난 소리들. 마력 탐지를 시전해 보니 방금 어인족과 비슷한 기운들이 여럿 포착되었다.
“가자.”
우선 녀석들을 처치할 때였다.
* * *
몇 시간 동아 어인들을 사냥한 걸까. 석찬 파티는 어느새 거대한 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긴가….”
구멍 너머에서부터 느껴지던 거대한 기운이 문 앞에 다다르자 몇 배는 거대해진 채로 석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석찬은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문 손잡이를 건드렸다.
[보스 룸에 도달했습니다.]
[보스 룸에 도전하려면 보물 지도를 삽입해 주세요.]
그 메시지와 함께 손잡이 위로 보물 지도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후우… 들어간다? 쉴 만큼 쉬었지?”
“네.”
“응.”
공간 속에 보물 지도를 넣자, 거대한 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드러나는 문 안. 수백 명은 수용해도 될 법한 거대한 공간에는 오로지 한 인영만이 존재했다.
“끼에에…?”
여태껏 봐왔던 거대한 어인과 비교해서는 상당히 다른 작은 놈이었다.
하지만, 석찬은 녀석을 무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무슨 기운이….’
문이 열리기 전보다 수배는 되는 강력한 기운이 석찬을 짓눌렀다.
‘먼저 공격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어인족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
그와 동시에.
콰직!
“커헉!”
의문의 공격에 당한 석찬이 바닥에 쓰러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