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화려한 산호초와 수많은 물고기들이 주변을 누비는 바다 안.
“이쪽이다.”
“확인했어요.”
“드가자!”
석찬, 이브, 진현 세 사람이 수영복 차림으로 차가운 바닷속을 누비고 있었다.
산호초 사이로 보이는 작은 수정 조각 하나를 꺼낸 석찬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걸 100개 모아야 한다는 거지?”
“그쵸?”
“벌써부터 피곤하네.”
세 사람이 왜 100개나 되는 수정 조각을 찾아야 하는가.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잠시 시간을 돌릴 필요가 있다.
* * *
네 시간 전. 석찬의 방.
“오랜만에 쉬려니까 할 게 없네.”
전날, 이브는 그동안 힘들게 탑을 올랐으니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석찬 또한 그 의견을 수용해 일주일 정도만 각자 할 거 하면서 쉬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쉬려고 보니 뭘 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다.
‘라우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석찬은 텅 빈 라우르의 영혼 조각을 바라봤다.
‘쉬는 거면 나도 어디 좀 갔다 오련다.’
‘어디 가시게요?’
‘몰라도 돼. 난 간다!’
그 음흉한 표정을 보아 어딜 갈 건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만, 굳이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진짜 심심하네….”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그냥 휴식이고 뭐고 탑이나 오를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똑똑.
“누구세요?”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수영복 차림의 남녀가 보였다.
당연하지만, 진현과 이브였다.
“근데 뭐냐? 그 옷차림은?”
“보면 모르냐? 수영복이잖아!”
“석찬 오빠 성격상 놀라고 해도 놀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같이 놀아주려고 찾아왔죠.”
“…….”
갑작스러운 팩폭에 당황한 사이, 진현이 옷더미를 던졌다.
지구는 물론 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하와이안 스타일의 셔츠와 바지였다.
“뭐야?”
“눈치 없네, 새끼. 빨리 갈아입고 나와! 오랜만에 해변이나 가자!”
“으응?”
“빨리요! 내가 이런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그래.”
두 사람의 등쌀에 떠밀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석찬.
“키야~”
옷을 환복한 석찬을 본 진현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 얼마나 보기 좋냐. 저 엄청난 크기의 대흉근과 복근, 팔도 장난 아니네. 그동안 훈련을 어떻게 한 거야?”
석찬의 몸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주물러 보던 진현.
“그만해라. 좋은 말로 할 때.”
“그, 그치만… 이런 근육량과 근질을 보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어… 네가 그러고도 운동선수야?!”
“응, 은퇴한 지가 언젠데.”
억울한 듯 소리치는 진현의 개소리를 가볍게 무시하는 석찬이었다.
“쳇, 장난도 안 먹히네. 그나저나 몸은 진짜 좋네.”
“각설하고, 해변 간다며. 갈 거면 빨리 가자.”
“그래.”
해변에 갈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어딜 가나 활짝 웃고 있는 사람들. 가끔 아름다운 이브에게 들이미는 남자들이 있긴 했지만, 석찬과 진현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고마워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꼬이는지 원.”
그녀의 한탄에 진현이 정색하며 말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진짜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죠?”
이브는 본래부터 넘사벽 수준의 외모를 소유한 여자다. 게다가 수영복을 입어서 그런지 로브에 가려졌던 사기적인 몸매까지 드러난 상태. 안 반하는 남자가 이상할 수준이었다.
“와, 사람 많네.”
마을 옆의 해변에 도착한 세 사람은 이미 휴식을 즐기고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짧게 감탄했다.
마치 한여름의 해운대 해수욕장을 보는 느낌이다.
“빨리 자리 잡자!”
“예!”
빈자리로 달려가는 두 사람을 석찬은 차분한 발걸음으로 따라갔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던 와중이었다.
턱-
갑자기 누군가가 석찬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누구….”
그때, 한 남자의 음성이 귓가에 작게 스쳐 지나갔다.
“조용. 말하지 마십시오.”
“…….”
남자의 목소리. 무언가 익숙했다.
‘내가 이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봤지.’
“일단 이렇게 찾아뵙게 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이어진 말을 듣고 나서야 석찬의 머릿속에 그의 정체가 떠올랐다.
“당신, 혹시….”
“거기까지. 더 이상 말씀하시면 제가 아무리 당신에게 호감이 있어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역시….’
과거, 1층에서 만났던 그였다.
‘안내자 G.’
그런데 안내자가 갑자기 왜 이곳에?
그가 무언가 중요한 말을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석찬이 흔적을 지우는 마법을 발동했다.
“눈치가 빠르신 분이시군요.”
“용건이 있으면 빠르게 말씀해주시지요. 저는 마법에는 그닥 소질이 없어… 얼마 못 버틸 겁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다시 한번 이렇게 불쑥 찾아뵌 점,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할 타이밍이 지금밖에 없거든요. 게다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이면 천사분들이 못 알아챌 수도 있거든요.”
“천사? 갑자기 그들을 왜….”
석찬의 입에서 ‘천사’라는 단어가 나오자 G는 놀란 표정과 함께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천사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하신 겁니까? 역시 훌륭하군요.”
“감사합니다.”
“본론은 이겁니다. 1층에서의 돌발 퀘스트 기억하십니까?”
“1층? 아.”
고블린들의 습격을 말하는 듯했다.
“갑자기 그건 왜….”
“곧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예? 설마 마을이 침략당하는 겁니까?”
“아뇨. 침략은 아니고, 30층에서 이벤트 퀘스트라는 것이 발생할 겁니다.”
‘이벤트 퀘스트?’
뭔지는 몰랐지만, 중요한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걸 저에게 알려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애초에 이런 정보를 미리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그 말에 G가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안 되죠. 다만… 당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불쌍하고 딱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불쌍하다?”
“그 이유는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G는 모습을 감추었다.
“…….”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그런가 어안이 벙벙했다.
“저게 무슨 말….”
“석찬아! 언제 오냐!”
그때, 진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니 진현과 이브가 팔을 흔들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을 즐기자.
그렇게 생각한 석찬이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뭐 하다가 이렇게 늦었어?”
“그러니까요.”
“미안, 화장실 좀 갔다 오느라.”
“미리미리 다니지, 거참.”
“미안하다. 그나저나, 뭐 할 거야?”
석찬의 물음에 진현이 씩 웃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바닷가에 왔으니 수영을 해야지!”
“수영 좋네요.”
“이브 씨도 좋다네. 갑시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바닷가로 달려드는 진현.
“쟤는 물만 보면 아주 애가 돼요. 애가 돼.”
“하하. 그래도 진현 씨의 저런 모습은 보기 좋네요.”
“뭐 해! 빨랑빨랑 들어와라!”
“오냐. 간다.”
셔츠를 벗어 자리 위에 던져둔 석찬은 시큰둥한 발걸음을 옮겼다.
* * *
세 시간 넘게, 세 사람은 정말 신나게 놀았다.
“받아라, 강석찬이!”
“고작 그 정도로?”
손에 마력을 집중한 석찬이 진현을 향하는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우왁! 새꺄, 마력은 반칙이지!”
“꼬우면 너도 쓰던가.”
“오야,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뒤졌어.”
처음에는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석찬도, 진현에게 물싸대기를 몇 번 맞자 전투적으로 변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물놀이에 임했다.
촤아악-
“푸하!”
간간이 이브가 날리는 물벼락이 느슨해진 물놀이에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꺄하하!”
오랜만에 활짝 웃는 세 사람. 그렇게 정신없이 놀던 와중,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다.
띠링.
“응?”
진현과 이브는 물론, 바닷가에서 놀던 모든 사람들이 바삐 놀리던 손을 멈추고 눈앞에 뜬 창을 바라봤다.
[이벤트 퀘스트 발생!]
[퀘스트 창을 확인해 주세요.]
그 문구에 모두가 놀란 가운데, 오직 석찬만이 올 게 왔다는 듯한 눈빛으로 설명을 바라봤다.
[이벤트 퀘스트 - 보물찾기]
[보물찾기(미완료)]
[보상 : 보물]
‘보물찾기?’
내용은 간단했다. 보물을 찾아라.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이 어떻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허공에서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G.”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석찬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알 도리가 없었기에 고개만 갸우뚱했다.
“G?”
“G가 누구예요?”
“새로운 안내자야.”
“안내자? 튜토리얼 때 봤던 그?”
“그래. 저번에 1층에서 봤어. 너흰 모르겠구나.”
“안내자도 바뀌는구나.”
“자, 모두 집중!”
안내자의 외침에 30층의 마력이 요동쳤다.
“정말 오랜만에 열리는 이벤트 퀘스트입니다. 그리고 피치 못한 일로 퇴임한 안내자를 대신해 이번 이벤트 퀘스트의 새로운 진행자를 맡게 된 안내자 G입니다.”
“그래서, 이벤트 퀘스트가 대체 뭐야?”
아직 이벤트 퀘스트를 해본 적이 없는 석찬, 진현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벤트 퀘스트가 뭔지 아는 눈치였다.
“이벤트 퀘스트는 탑에서 간헐적으로 열리는 말 그대로 이벤트성 퀘스트예요. 이벤트라 위험성도 적고 보상도 있죠.”
“그럼 좋은 건가?”
“좋은 거죠. 아버지께 들었었는데 순위권에 들어가면 보상이 장난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럼, 지금부터 이벤트 퀘스트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인 내용은 보시는 그대로 보물찾기입니다. 모두 보물찾기 아시죠?”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이 바다에는 단 10개의 보물 상자가 숨겨져 있습니다. 보물 상자 안에는 굉장한 보물들이 숨어 있으니 모두 파이팅해 주십시오. 참고로 이번 이벤트에는 특별히 파티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파티 시스템?”
말 그대로 파티를 맺는 시스템인 듯했다.
“설명 끝났으면 빨리 시작하지?”
한 남자의 재촉에 G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설명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보물찾기에는 수정이라는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그 말과 함께 G는 주머니에서 작은 수정을 하나 꺼내 들었다.
“바닷속에 뿌려진 이 수정을 100개 찾으시면 보물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가 지급될 겁니다.”
“우와!”
거기까지는 좋았다.
“참고로, 바다에 뿌려질 수정은 단 1,000개입니다. 그리고 이벤트 참여자에 한해 서로 수정을 뺏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퀘스트가 그렇게 쉽게 진행될 리가 없었다.
역시 경쟁성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보물 수가 열 개라 1,000개뿐인 건가?’
많아 보이지만, 현재 이곳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오히려 적은 숫자였다.
‘잘못하면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는걸?’
합리적으로 드는 의심이었다.
“그럼, 설명이 끝났으니, 지금부터 보물찾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과 우려 속에서 석찬의 탑생 첫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