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65화 (65/200)

제65화

“진현이?”

몇 번을 봐도 재수 없지만 친근한 저 미소와 얼굴, 그리고 다부진 몸.

겉모습은 영락없는 진현이었다.

‘하지만.’

진현은 약 1년 전부터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헌데 그가 어떻게 30층에 있단 말인가.

“너 누구야.”

자연스럽게 적대감이 생겼다.

“어이, 어이.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나 진짜 진현이 맞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진현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철로 이루어진 낡은 건틀릿이었다.

“이건….”

“기억나지? 안 나?”

석찬은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분명 눈에 익는 건틀릿이다.

‘저걸 어디서 봤었지….’

한 3분 정도 생각하자, 석찬은 건틀릿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그레모리의 건틀릿?”

1층의 고블린 왕, 그레모리를 죽이고 얻었던 전리품 중 하나였다.

“쉐키! 기억하는구나!”

석찬의 떠올림에 진현이 활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헌데 어째서 네가 진현이가 가지고 있던 건틀릿을 가지고 있는 거지?”

석찬의 몸에서 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어… 야. 뭐야? 나 진짜 진현이라고!”

“안다.”

“어?”

“그냥 장난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시작부터 장난질이냐….”

씩 웃는 석찬의 모습에 당했다는 표정을 지은 진현이 미간을 움켜쥐었다.

“오랜만이다.”

“그래.”

두 사람이 오래간만에 손을 맞잡았다.

* * *

30층 마을의 한 카페 안.

빨대가 꽂힌 코코넛을 중앙에 둔 채, 세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라온 거야?”

“누구와는 달리, 난 천재라서 말이야.”

“오랜만에 한판 붙을까?”

“심판은 제가 보면 되는 거죠?”

“이… 이브 씨. 이브 씨까지 왜 그러세요….”

“두 분이서 싸우시는 거 재밌을 거 같네요.”

“이… 이브 씨. 왜 내 편은 없어….”

“다 네 업보다.”

“젠장.”

“그나저나, 어떻게 이렇게 빨리 30층까지 올라온 거야?”

그 말에 진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힘은 네가 나보다 더 위잖아. 근데 왜 더 느리지.”

“아마… 퀘스트의 차이 때문일 거예요.”

진현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이브의 입에서 나왔다.

“응? 퀘스트의 차이?”

“네. 오빠 29층 퀘스트가 뭐였죠?”

“나… 뭐였지? 씨 스네이크 1,000마리, 더블 헤드 씨 스네이크 500마리에 트리플 헤드 씨 스네이크 킹 처리였지.”

그 말에 진현이 놀라 되물었다.

“내가 뭘 잘못 들은 건가.”

“아뇨.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보통 퀘스트는 0층 문의 시험에서 지정된다고 하죠. 저같이 탑에서 자란 이들도 시스템을 부여받고 나서 필수적으로 문의 시험을 받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렇다. 문의 시험에서 받은 시험의 색깔. 그것은 퀘스트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장 보라색 시험을 받은 이브와 플래티넘 테스트를 받은 석찬의 퀘스트만 해도 상당한 차이가 나 이브가 퀘스트를 완료해도 석찬이 퀘스트를 끝마치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저희는 두 명이 함께 다녀서 아무래도 속도 면에서는 홀로 다니는 진현 씨보다는 못하겠죠.”

“그래. 그렇구나.”

“그렇다고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요. 이 속도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엄청난 수준이니.”

다른 사람들은 한 층을 건너기 위해 1~2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측면에서 5개월 만에 10개 층을 돌파한 석찬과 이브나 1년 만에 30개 층을 돌파한 진현은 괴물이라고 불려도 무방했다.

“그나저나, 언제 또 노란색이 됐대?”

“봤냐?”

진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노랗게 빛나는 마력을 선보였다.

“열심히 하니까 되더라.”

“맞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라.”

“그게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닐 텐데요….”

“되던데?”

“되던데?”

빠직-

두 남자의 자랑 아닌 자랑에 이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니, 석찬 오빠는 그렇고, 진현 씨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돌파를 하는 거예요?”

“그러게.”

“잠재력 차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진현의 잠재력이 70대이고, 이브는 90 언저리라고 했다.

“맞다. 그동안 말 못 했는데, 나 잠재력 올랐어.”

“응?”

“에?”

갑자기 저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브는 무언가 알고 있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진짜 잠재력이 올랐다고요?”

“네. 진짠데. 내가 예전에 70 몇이었지… 기억이 잘 안 나네.”

“어쨌든, 올랐으면 몇으로 올랐는데.”

“어디 보자… 지금이 100.”

“100?”

예전에 이브에게 들었던 그녀의 잠재력이 96. 진현의 잠재력이 이브보다 높아진 것이다.

탕!

“100이라고요?”

탁상을 박차고 일어난 이브가 이내 주변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아세요?”

“당연하죠. 애초에 잠재력 확인해 보라고 시키신 것도 사부님이신데.”

“예전에 아버지께 들었던 적이 있어요. 탑에는 간헐적으로 잠재력이 오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물론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고는 하지만… 설마 진현 씨가 그런 부류일 줄이야….”

“잠재력 오르니까 좋더라고. 수련 효율도 나아지고, 마력 회복률도 상승하던데?”

끄덕.

잠재력과 마력 회복률의 관계는 무한의 잠재력과 마력 회복률을 가진 석찬이 가장 잘 알았다.

“그나저나, 축하한다.”

“그러게요. 축하드려요.”

“고맙네.”

그 외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갔다.

“슬슬 방을 잡아 봐야겠다.”

“어디서 있게?”

“그거야 이제 슬슬 찾아봐야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말과 함께 진현이 주머니에서 키를 하나 꺼내 흔들었다.

“여기서 너 기다리느라 며칠을 있었는지 알아? 숙소쯤이야 이미 잡아놨지. 따라와라.”

진현을 따라 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자 근사한 숙박 집이 하나 나왔다.

여타 할 곳과 다름없이 이곳도 1층은 투숙객들을 위한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슬슬 출출할 때 됐지. 뭐 먹을래?”

“아무거나. 네가 더 잘 알 거 아냐.”

“그치, 이브 씨. 제가 알아서 시켜도 돼요?”

“네.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좋았으. 이모! 여기….”

“누가 네 이모야, 진현!”

“하하! 그런 의미 아닌 거 아시면서. 하여튼….”

능숙하게 주문을 마친 진현 일행은 빈자리에 가 앉았다.

“그나저나, 너 장비 안 바꿔? 목걸이 말고는 하나도 안 바뀐 거 같은데?”

“난 괜찮다. 장비 얘기 하지 마라.”

“왜?”

“속이 쓰려서 그런다.”

20층을 벗어난 직후. 본래였으면 특별 상점을 이용했어야 할 석찬과 이브였다.

실제로도 특별 상점에 당도했던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모종의 이유로 두 분께는 물건을 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이번 이후로는 특별 상점으로도 이동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럼 이만….’

그 말과 함께 특별 상점 이용이 종료되었었다.

‘특별 상점을 이용하지 못할 거라더니… 그녀의 말이 맞았어.’

엘리자베스가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린 석찬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참… 5개월 전 일로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말이야.’

마음을 훌훌 털어낸 그가 진현의 몸에 걸쳐진 장비들을 살폈다.

“뭐냐. 진짜 좋아 보인다.”

“놀랐냐? 이게 바로 ‘유니크’ 등급의 장비다.”

“유니크?”

“그래! 처음 보지? 이게 말이야….”

‘하하….’

석찬은 굳이 11층부터 유니크 등급 장비를 썼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능 면에서도 보다 고층에서 얻은 진현의 유니크 장비가 더 좋을 것이 분명했다.

끊이질 않는 진현의 무용담을 다 들을 때쯤, 주문했던 음식들이 도착했다.

“친구들 온 거 같아서 많이 넣었다.”

“아이고, 감사해라. 잘 먹을게요! 이모, 그보다. 술 한 병만 주실 수 있나?”

“술? 친구들 왔으니까 내가 특별히 공짜로 준다. 고마워해라.”

“이모, 사랑해!”

“징그럽네, 친구분들은 많이들 먹으셔요.”

“감사합니다.”

음식을 건네고 돌아가는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석찬이 작게 읊조렸다.

“진짜, 네 그 친화력은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알 수가 없다. 무슨 며칠도 안 본 분이랑 이렇게 친해졌냐.”

“다 내가 잘난 탓이지!”

“그건 아닌 듯.”

“동감.”

“크흠… 어쨌든, 이 형님이 쏘는 거니까 편하게 먹어라.”

“그래, 잘 먹으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날이 저물어갔다.

곧 닥쳐올 재앙도 모른 채 말이다.

* * *

어두컴컴한 방 안. 중앙에 놓인 작은 수정구 하나에서 나오는 빛이 기다란 탁상을 밝게 비췄다.

“…….”

“…….”

탁상 주위에 앉아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인간 같으면서 인간 같지 않았다. 외모는 인간과 흡사했지만, 그들의 등 뒤에 달린 날개가 그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천사.

신들의 심부름꾼인 그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수정구에 비치는 두 사내를 살펴봤다.

강석찬과 김진현.

지구라는 행성에서 온 두 남자.

“…….”

정체기에 들어선 탑을 뜨겁게 달군 둘은 천사들에게도 주시 대상 1호였다. 실제로 그를 맡았던 중급 천사 하나와 안내자가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아 한낱 인간이 되어 탑을 오르는 벌을 받았으니, 그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탁상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6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저들에 대해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천사의 계급은 총 다섯 가지로 나눠진다. 하급, 중급, 상급 천사, 천사장, 그리고 단 4명뿐인 대천사.

6장의 날개를 가진 그는 천계를 통틀어서 100명도 안 된다는 천사장 중 하나였다.

“…….”

대답이 없자, 천사장은 언성을 조금 더 높인 채 질문을 반복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습니다. 입이 없나요?”

쿠우우-

미지의 기운이 천사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천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드디어 말을 할 줄 아는 분이 나오셨군요. 이름이 뭐죠?”

그 물음에 네 장의 날개를 단 천사, 가엔이 입을 열었다.

“상급 천사, 가엔입니다.”

그는 중급 천사를 천계에서 추방시키고 직접 석찬을 지켜본 장본인이었다.

“확실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견제라… 왜 그렇게 생각했죠?”

“놈 곁에는 알렉산더 올가와… ‘그녀’가 있습니다.”

“그녀?”

“엘리자베스 살리나스 말입니다.”

그 말에 천사장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그년이 왜….”

“강석찬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입니다. 어쨌든 그 둘이 있는 이상 저희에 관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탑의 존재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던 눈치고요.”

“탑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불렸던 남자와 그년이 옆에 있다면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요.”

“게다가 김진현. 그자는 본래 별 볼 일 없었는데, 알렉산더 올가에게 수련을 받은 후 잠재력이 100으로 올랐습니다.”

“그건… 조금 골치 아프군요. 새로운 이레귤러라….”

“따라서 저는 둘에게 확실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천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수용하죠, 가엔. 좋은 의견 고마웠어요. 대천사님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죠.”

그 말에 가엔이 활짝 웃으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해산하죠.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

안내자 G는 동정심이 담긴 눈빛으로 석찬과 진현의 얼굴을 보더니, 이내 가엔을 따라 회장을 벗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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