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촥!
다크니스 길드원에게서 뿜어지는 살기에 이브가 침착하게 방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공격받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이상함을 느낀 이브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이브의 눈앞에는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흩뿌려진 붉은 피와 함께 차가운 바닥을 구르는 말단 정보원의 머리.
같은 길드원을 공격한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이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 뭐 하는….”
“죄송합니다. 겁도 없이 함부로 길드의 정보를 유출한 녀석에게는 벌이 필요했거든요.”
그는 피가 묻은 단검을 닦은 후, 이브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먼저 들어가시라고 한 건데, 제 설명이 부족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일도 마무리되었으니, 저는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들어오시면 됩니다. 이후에도 전혀 위해가 없을 것을 약조드리죠.”
다크니스 길드원은 그 말과 함께 벽 안으로 들어갔다.
“…….”
이브는 말단 정보원의 시체와 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흠….’
다크니스 길드는 음지의 길드다. 그 때문에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 이브는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봐서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고, 위해를 가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방어 마법을 두 겹 정도 추가로 두른 이브는 그제야 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 * *
석찬은 벽 안의 세상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떨어진 곳은 20층의 번화가와 비견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어떻게 벽 안에 이런 곳이….”
“놀라셨습니까? 사실 별거 없습니다. 간단한 환각 마법과 텔레포트 마법이죠.”
“텔레포트?”
텔레포트는 잠시나마 푸른색 마력 저장소에 발을 담갔던 이브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최상급의 난이도를 지닌 마법이다.
그런 것이 20층 지부에 이용되다니?
궁금증이 가득 담긴 그의 눈빛에 앞서가던 다크니스 길드원이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음지의 길드다 보니, 주인님께서 조금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뭐?’
‘주인님’이 사냥꾼 길드의 지부장일 것이라고 생각한 석찬이었다. 그런데 텔레포트를 사용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그 말인즉슨 ‘주인님’이라는 자는 이브나 포이그 레바돈을 능가하는 실력자라는 것이다.
‘포이그 레바돈이 아니라 다른 자인가?’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쯤, 이브 또한 벽을 통과해 이곳으로 넘어왔고, 다크니스 길드원들은 석찬과 이브를 이끌고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쳐 손님이 하나도 없는 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술집?”
“거의 다 왔으니, 걱정하지 마시죠.”
웨이터를 부르며 자리에 앉는 길드원. 이어서 사람 좋은 표정을 한 웨이터가 다가왔다.
“날이 참 덥습니다, 그쵸?”
“그렇지요. 뭐 드시렵니까?”
“얼음 가득 담은 맥주.”
“맥주용 얼음이 다 떨어졌습니다만….”
“상관없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는 그들. 이내 웨이터는 길드원을 향해 손짓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오시죠.”
석찬과 이브는 길드원을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 있는 술통을 치우자, 마법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텔레포트 마법진?”
이브는 마법진을 보더니 놀란 눈빛으로 그것을 살펴보았다.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역시 대단하십니다. 주인님이 계신 곳으로 향하는 텔레포트 마법진입니다. 시간이 없으니 모두 마법진 위로 서 주십쇼.”
길드원의 말대로 마법진 위로 서자 웨이터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마법진에 빛이 일기 시작했다.
곧이어 공간이 일렁였고, 석찬 일행은 처음 보는 장소로 와 있었다.
“여긴?”
“주인님의 별장 안입니다.”
별장의 복도는 화려했다. 바닥에는 멋들어진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벽에는 여러 점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여깁니다.”
한 문 앞에 도착한 길드원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럼, 즐거운 대화 나누시길.”
고개를 짧게 숙인 길드원이 모습을 감추었고, 석찬은 심호흡을 한 번 내쉰 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 후.
“들어오세요.”
듣는 것만으로도 매혹될 것만 같은 우아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흘러나왔다.
“들어갑니다.”
예상하지 못한 광경의 연속에 긴장한 석찬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벌컥.
방 안은 여타 다른 곳들과 같이 화려했다. 벽에는 마찬가지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비싼 원목으로 만든 것 같은 테이블 위에는 은초들이 놓여 있었다.
석찬은 테이블 뒤에 있는 한 여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 사람이….’
여인은 아름다웠다. 비록 이브나 미쉘 그레이스보다는 못했지만, 어떤 남자가 오더라도 홀릴 만한 아름다운 외모에 매혹적인 미소를 장착한 여인이 석찬과 이브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강석찬 님, 그리고 이브 님. 다크니스 길드의 20층 지부장, 엘리자베스 살리나스입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엘리자베스가 석찬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석찬입니다.”
석찬 또한 예의상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의 활약상은 정말 잘 듣고 있었어요.”
다짜고짜 둘의 칭찬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석찬과 이브에 대한 칭찬들을 늘여놓았다.
하지만, 석찬에게는 그 칭찬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저 여자, 강하다.’
바로 엘리자베스에게서 느껴지는 막대한 양의 마력 때문이었다. 마력 운용자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력 운용자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왜인지 꺼림직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녀의 강함에 금방 묻혀버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상해.]
그때, 여태껏 가만히 있던 라우르가 입을 열었다.
‘뭐가 이상해요?’
[저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분명 기분 나쁜 기운인데, 왜 기분이 나쁜지를 모르겠어.]
라우르는 얼굴을 찌푸린 채, 엘리자베스 주변을 서성였다.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엘리자베스는 이야기를 계속하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앗, 제가 두 분을 세워두고 계속 제 얘기만 했군요.”
엘리자베스는 석찬과 이브에게 자리를 권한 후,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러자, 문이 열리며 여러 가지 산해진미가 테이블 위로 대령되기 시작했다.
“이 음식들은 도대체….”
“먼 길 오시느라 출출하셨을 텐데, 배부터 채우시는 게 어떨까 싶어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호호.”
엘리자베스는 매혹적인 웃음과 함께 의자에 앉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독 같은 건 없으니 두 분 다 편히 들어주세요, 호호.”
그 말과 함께 엘리자베스는 나이프로 접시 위에 놓인 고기를 한 조각 잘라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석찬과 이브도 천천히 식기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우물우물.
요리의 맛은 하나같이 일품이었다.
‘이브가 해준 것보다 백배는 나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1분 정도 머릿속에 맴돌 정도였다.
이브 또한 입에 맞는지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식사 도중, 엘리자베스는 간간이 석찬을 향해 질문을 던져댔다.
“강석찬 님께서 계셨던 행성은 어떤 곳이었나요?”
“탑에 오고 나서 가장 힘드셨던 점은 무엇인가요?”
석찬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가며 질문에 답했다.
“그러셨군요. 참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뭐, 그렇죠.”
“그래도, 그 경지로 포이그 레바돈을 패배 직전까지 몰고 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네, 그…쵸?”
대답하던 석찬이 고기를 썰던 손을 멈췄다.
‘어, 잠깐만?’
석찬은 곰곰이 엘리자베스가 했던 질문들과 자신이 했던 답변들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그중에 어느 한 개도 포이그 레바돈과 관련된 것은 없었다. 게다가 포이그 레바돈과의 싸움은 알렉산더와 이브를 제외한 대부분이 모르는 것이었다.
“뭐야, 당신. 어떻게 그 사실을?”
당황한 석찬의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눈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저는 20층 뒷세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층에서 20층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을 알고 있죠.”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의 말과 함께 고기를 한 조각 더 썰어 입에 가져갔다.
“오늘 요리사 실력이 괜찮네. 상을 줘도 괜찮겠어.”
태연한 그녀의 표정과는 달리, 석찬과 이브는 얼어붙은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11층에서 20층에서의 일을 전부 알고 있다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6층이 아니라 11층 이상의 다른 곳에 숨었더라면, 그녀가 자신들의 위치를 알 수도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가진 정보는 어지간한 거금을 주지 않는 이상 아무에게도 발설되지 않는답니다.”
그렇다면 거금을 주면 발설될 수도 있다는 거 아닌가.
긴장 때문에 입맛이 뚝 떨어진 석찬은 포크를 냅킨 위에 내려다 놓았고, 이브 또한 마찬가지였다.
“식사 다 하신 건가요?”
“예.”
“더 드셔도 되는데, 아쉬워라.”
잠시 후, 하인들이 다가와 테이블을 싹 치워주었고, 깔끔해진 테이블 위에 다시 모인 세 사람.
“우선 처음에 말했던 대로 제 이름은 엘리자베스 살리나스입니다. 저에 대해서나 이 길드에 대해 궁금한 점 같은 게 있으면 물어보시죠. 두 분께는 무엇이든지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의 질문에 세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만을 바라보았다.
[이상해. 이상해.]
라우르는 여전히 이상하다는 말만 반복했고, 석찬은 엘리자베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결론이 나지 않았고,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엘리자베스, 당신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요?”
석찬의 질문에 엘리자베스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어느새 손에 쥔 커피만 홀짝였다.
후릅.
거피를 한 모금 마신 그녀는 석찬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글쎄요. 제가 말한다고 과연 들으실 수 있을지….”
‘들을 수 있는지라….’
순간, 석찬의 머릿속에 탑의 정보통제 시스템이 떠올랐다.
알렉산더와 처음 대화할 때 마치 필터링이 된 듯 들리지 않던 문구들. 그녀가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 그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였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길래.’
석찬의 궁금증이 가득 담긴 눈빛에 엘리자베스는 그저 말없이 검지로 입을 가렸다.
“그 질문에는 대답해 드리지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다른 거라면 얼마든지 여쭤보시죠.”
그 말에 이브는 불신이 가득 담긴 언짢은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리를 여기에 부르신 이유부터 설명해 주시는 게 어떠신가요?”
“맞죠. 그 이야기가 있었죠.”
그녀의 질문에 엘리자베스가 방긋 웃더니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며 입을 열었고.
“저, 엘리자베스 살리나스는 여러분을 지지하고 싶습니다.”
“예?”
“예?”
그녀의 폭탄 발언이 방 안을 가득 감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