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석찬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커헉!”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석찬.
그 모습을 본 라우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초조라는 감정이 드러났다.
[젠장!]
자신의 화신이 독에 중독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니. 투신이나 되어서는 한심한 실수를 해버렸고, 그 때문에 처음 들인 화신이 죽게 생겼다.
[강신을 써야 하나?]
분명 지금 강신을 쓴다면 석찬은 살아날 것이고, 저 빌어먹을 녀석을 죽여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라는 녀석의 신체 능력이 괴물이었던 거지, 과장 조금 보태서 투신이 강신하면 어린아이조차 어른을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강신은 분명 좋은 수단이지만 그만큼의 페널티가 존재했다.
강신을 사용하면 강신 대상자는 투신의 힘을 그대로 버텨야 하고, 그 와중에 몸에 대미지가 축적된다.
일전의 강신으로 석찬은 육체뿐만 아니라 마력 회로나 몸 안의 내장 또한 엉망이 되었던 전적이 있었다.
만약 지금 몸 상태로 강신을 쓴다고 한다면….
[죽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다.]
문자 그대로 절망적인 상황.
[어떻게 해야 하지….]
수백 년 만에 찾은, 자신의 염원을 이뤄줄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다.
[젠장….]
그때였다.
콰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포이그 레바돈과 라우르의 고개가 돌아갔다.
[아아….]
그리고 보이는 모습에 라우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뭐, 뭐라고?”
레바돈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여졌다.
* * *
푹.
석찬이 쓰러졌을 때.
“오빠!!”
이브는 포이그 레바돈의 공격을 흘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석찬 오빠가 진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그는 강했다. 말도 안 되는 전투 센스와 그것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완벽한 육체를 토대로 그보다 강했던 적도 어렵지 않게 상대했었다.
이번에도 레바돈을 압도하다시피 하는 그를 보며 안심했건만, 이변이 일어났다.
‘안 돼….’
이브에게 있어서 석찬은 아버지인 알렉산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였으며, 어찌 보면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약해서….’
살면서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을까?
그때, 이브의 머릿속에 언젠가 알렉산더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어떤 쓰ㅂ… 아니 아빠의 동료였던 녀석이 말했던 게 있지.’
‘그게 뭔데요?’
‘마력 저장소의 등급을 뭐시기 한다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아빠가 워낙 강했어야지! 하하!’
나중에 알렉산더의 비밀 서고에서 몰래 알아본 바로는 마력 저장소의 등급을 강제적으로 올리는 거란다.
살면서 딱 한 번 가능하지만, 잠시 동안 마력 저장소의 등급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기술이었지만….
‘페널티….’
기술을 사용해도 실패 확률이란 것이 존재했다. 문제는, 실패 확률이 성공 확률보다 현저히 높았으며 실패했을 시의 결과는 바로 시전자의 사망이었다. 만약 죽지 않더라도 마력 저장소가 파괴된다.
그것이 기술의 개발자도 자신이 만든 기술을 쓰지 않는 이유였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석찬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또한 지금은 레바돈의 관심이 오로지 그에게 집중된 상황.
결정을 마친 이브가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간다….’
톡, 톡.
책에서 봤던 것을 떠올리며 순서대로 혈을 짚은 이브.
곧, 마력 저장소로부터 엄청난 격통이 일어나 전신을 감쌌다.
‘크윽!’
비명이 절로 나올 뻔했지만, 이브는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소리를 삼켰다.
‘빨리….’
1초가 1분과도 같은 상황.
그렇게 몇 초가 흘렀을까.
파앗-
몸속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기운을 느끼며.
‘성공했다!’
이브는 그대로 레바돈을 향해 돌진했다.
‘파이어 스피어, 라이트닝 스피어.’
순식간에 발현된 마법들이 레바돈을 향해 쏟아졌다.
콰강!
전보다 몇 배는 빨라진 스피드와 위력.
“크헉!”
그가 휘청이는 동안 재빨리 석찬을 낚아챈 이브는 빠르게 그에게 치유마법을 난사했다.
‘그레이트 힐. 퓨리파이.’
연속적인 고위 치유 마법과 정화 마법의 발현되자 석찬의 혈색이 급속도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됐어.’
급한 불은 다 껐다. 그러니 이젠.
“뭐냐, 그 기운은?”
저 빌어먹을 녀석을 죽이는 일만 남았다.
“기운을 가늠할 수 없다라… 너, 파란색 마력 운용자였냐?”
역시 지부장은 지부장이다. 이브의 마력 저장소 등급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단번에 눈치챘다.
“제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죠?”
“맞나 보군.”
마력 저장소는 등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절대량도 절대량이지만 마력의 질과 위력 또한 큰 폭으로 바뀐다.
‘게다가….’
초록색에서 파란색으로 넘어갈 때부터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벌어진다.
노란색 마력 운용자가 날고 기면 초록색 마력 운용자와 대적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석찬은 레바돈을 조금이나마 압도하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초록색 마력 운용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파란색 마력 운용자를 이길 수 없다. 그만큼 둘의 차이는 엄청났다.
‘믿을 만한 건 독뿐인가….’
수십 년간 독을 다뤄왔고, 이제는 독과 하나가 되는 경지까지 이룬 자신이다. 독 하나만큼은 스페셜리스트라고 자부할 수 있다.
게다가 상대는 마법사. 육체의 내구성이나 독 내성이 일전에 붙은 녀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허약할 터였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레바돈이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기회는 단 한 번.’
엄청난 양의 마력이 레바돈의 손끝에 한 점으로 응축되었다.
‘죽인다.’
그렇게 마력포를 발사하려는 순간.
파밧.
계속 응시하고 있던 마법사의 모습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뭣?’
‘오른쪽? 왼쪽? 위?’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았지만, 이브의 신형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뒤인가?”
확신하며 뒤를 돌아본 레바돈은 그대로 마력포를 발사했지만, 역시 헛발을 짚었을 뿐이었다.
콰과광!
엄청난 위력의 마력포가 숲 한가운데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브는 그곳에도 없었다.
“젠장! 어디 숨은 거냐!”
레바돈이 허공에 소리친 순간.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나타났다.
“익스플로전(Explosion).”
‘뭣?’
파란색 등급의 마력으로도 1분가량을 캐스팅하고 많은 양의 마력을 쏟아부어야 시전할 수 있는 고위 마법이 이브의 손에서 펼쳐졌다.
콰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정통으로 마법에 맞은 레바돈의 몸이 저 멀리 튕겨 나갔다.
그 틈을 타 석찬을 챙긴 이브는 빠르게 층 이동 명령어를 읊었다.
“포그. 층 이동, 6층.”
슈숙.
명령어와 동시에 사라지는 이브와 석찬.
잠시 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나타난 레바돈이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을 파헤치며 석찬과 이브를 찾았지만, 이미 떠난 그들이 그곳에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젠자앙!”
레바돈의 분노에 찬 포효가 17층에 울려 퍼졌다.
* * *
파앗.
6층, 정글 지대 한복판에 나타난 이브는 석찬을 안은 채 마력 날개를 생성했다.
‘이쪽이다.’
빠르게 점찍어둔 곳으로 이동하는 이브. 곧 그들의 앞에 풀숲에 감춰져 있던 한 구멍이 나타났다.
그 정체는 바로 석찬과 이브가 6층에 있었을 적 발견했던, 알렉산더의 흔적이 남아 있던 동굴이었다.
‘이곳이라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을 거야.’
동굴은 과거에 방문했을 때도 순전히 우연으로 찾았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곳에 있었으며, 입구 또한 낮고 좁아서 발견될 확률은 극히 낮았다.
또한 마력이 새어 나가는 것 정도는 방어막을 여러 겹 겹쳐놓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두근-
“크윽….”
그때, 기술을 사용한 반동이 오기 시작했는지, 마력 저장소에 큰 격통이 느껴졌다.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해.’
빠르게 석찬을 안으로 옮긴 이브는 동굴 입구에 지팡이를 가져다 댔다.
‘베리어(Barrier).’
파랑 등급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극강의 베리어가 동굴 입구를 감쌌다.
‘혹시 모르니….’
“하이드(Hide).”
혹시 몰라 추가한 연막 마법.
아마 동굴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숲속에서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다.
그 위로도 보험용으로 방어막을 몇 겹 더 쳐놓은 이브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그래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있겠….’
계속해서 놓지 않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
털썩.
이브의 눈이 천천히 감기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 * *
“허억!”
눈을 뜬 석찬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데, 분명히 꿰뚫렸을 가슴이 멀쩡했다.
‘뭐지?’
옷을 들춰보니, 가슴 한가운데에 크게 나 있는 흉터가 보였다.
‘꿈은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그때, 석찬의 눈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브가 들어왔다.
“이, 이브!”
당황한 석찬이 빠르게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고.
‘그냥 잠든 거군.’
다행히도 이브는 목숨에 큰 지장은 없었으며 별다른 상처랄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여기는….’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들로 어렴풋이 이곳의 정체를 깨달은 석찬. 바깥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동굴 입구로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멈춰라.]
‘라우르? 왜 그러시죠?’
[저 꼬맹이가 기껏 살려놨더니 다시 죽으려고 하니까 말리는 거 아니냐.]
‘살려놔? 이브가?’
이브와 라우르를 번갈아 살펴본 석찬이 좀전과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라우르에게 되물었다.
“제가 쓰러지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죠?”
* * *
“…….”
진실을 알게 된 석찬은 무거운 눈빛으로 이브를 바라보았다.
‘그랬구나.’
이브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하고 레바돈과 싸웠다는 라우르의 말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다.
‘날 위해서….’
“슬립.”
이브에게 수면 마법을 추가로 걸어준 석찬은 동굴 한구석에 들어가 앉았다.
‘또….’
다시 한번 나는 패배했다.
‘젠장….’
주변에서 강하다고 하면 뭐 하는가. 이번에도 자신을,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할 뻔했다.
‘더욱 강한 힘이 필요해.’
그리고 이를 위해선 ‘복싱’이라는 기본기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최대한 내 능력을 활용해야 한다.’
포이그 레바돈은 자신의 주 속성인 독을 자유자재로 마력에 담아 사용했다. 아니, 애초에 독과 한 몸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서리 거인 방어구 세트의 얼음 속성과 건틀릿의 불 속성 말고는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속성이 없었고, 그와는 다르게 속성을 추가 부여하는 것조차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강마력도 더 익숙해질 필요가 있어.’
마력 등급의 차이를 잠시나마 무시할 수 있는 강마력은 말 그대로 히든 카드이자 비장의 수였다.
비록 아직까지는 컨트롤이 미숙해 이번 싸움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다음번에도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우르.”
[왜?]
“마력 저장소가 초록 등급이 되면 당신의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고 하셨었죠?”
[음… 분명 그랬었지?]
석찬의 눈동자가 사납게 빛났다.
“다른 말 하기 없으십니다.”
더욱 강한 힘을 갈망하는 그의 모습에 라우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 그러니까 초록 등급부터 달성하고 얘기하셔.]
“예.”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내 손으로 직접 결판을 낸다.’
가부좌를 튼 석찬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