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17층에 도착한 이후로 석찬과 이브는 폐를 콕콕 찌르는 듯한 공기를 느끼며 몬스터를 사냥해 나갔다.
16층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퀘스트 달성 요구량 때문인지 아무리 몬스터를 잡아도 퀘스트는 클리어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젠장.’
절로 나오는 욕지거리를 집어삼키며 석찬은 포이즌 스네이크의 몸뚱어리를 후려쳤다.
쾅!
[레벨이 올랐습니다.]
143레벨.
레벨이라도 오르지 않았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수도 있었다.
또한 레벨 말고도 성과는 하나 더 있었다.
‘독 내성이 많이 올랐어.’
이전에는 30분만 있어도 독 때문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더욱 강한 독도 두세 시간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모자라.’
샌드웜의 외피를 가볍게 녹여 버렸다는 독에 대항하려면 이것보다 더 독 내성을 길러야 했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때였다.
부스럭.
갑작스럽게 들리는 인기척에 석찬과 이브가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 모습에 정체불명의 후드 사내가 두 손을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요~.”
딱 봐도 수상한 옷차림과 말투. 게다가.
‘마력 감지에 걸리지 않았다.’
마력 감지는 마력이 있는 생물이라면 개미 새끼 한 마리도 피해갈 수 없다.
마력 감지에 걸리지 않으려면 마력이 아예 없어야 하는데, 그 말인즉슨 몸의 마력을 전부 숨기고 있다는 의미.
‘엄청난 마력 컨트롤 실력이다.’
[조심해라. 저 새끼 무진장 강할 것 같으니.]
오랜만에 듣는 라우르의 진지한 경고.
그때, 바람이 살짝 불며 후드 사이로 사내의 선명한 초록빛 눈이 보였다.
‘녹안? 녹안이라면 분명….’
“당신이, 포이그 레바돈인가?”
그 말에 정체불명의 사내가 움찔하더니 이내 폭소하기 시작했다.
“하하!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이야!”
후드를 내린 사내의 모습은 조금 특이하다고 할 수 있었다.
녹안에 녹빛 머리칼. 그중에서도 제일 튀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한쪽 볼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라고 할 수 있었다.
‘인상착의가 일치하는군.’
확실히 저자는 포이그 레바돈이 맞다.
헌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만난다고?’
아무리 마력 운용자라고 해도 스탯 페널티가 존재한다. 때문에 석찬은 적어도 19층 정도에서야 그와 붙을 줄 알았다.
‘젠장.’
독 내성을 최대한 올린다는 계획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 포이그 레바돈이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올킬러, 강석찬. 얘기 많이 들었어. 내 부하들을 모조리 죽이고 샌드웜까지 토벌했다지?”
“…….”
“정말 대단해. 그 나이에 그 정도의 경지라니. 게다가 위쪽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석찬은 긴장을 놓지 않으며 그를 노려봤다.
“너,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한다면 들어올 수 있어?”
그의 물음에 석찬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치, 그렇지. 그래서, 더 크기 전에 내가 직접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던 포이그 레바돈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음….’
마력의 질을 보니 확실하다. 포이그 레바돈은 초록색 마력 저장소를 지니고 있었다.
파란색이 아닌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지만 옆에서 초록색 마력의 위력을 똑똑히 봐온 석찬은 결코 초록색 마력 또한 무시할 만한 게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젠장….”
석찬 또한 마력을 한껏 끌어올렸고, 이브 또한 경각심을 느꼈는지, 평소 숨기고 있던 마력까지 전부 해방했다.
쿠오오오-
세 사람이 일으킨 마력의 폭풍에 주위의 지형이 초토화되기 시작했고, 생물들은 그대로 마력에 압사당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보니 더 대단하군. 몇 달 뒤면 초록색 마력 저장소를 노릴 수도 있겠어. 옆에 계집아이도 엄청나고.”
“칭찬 고맙네.”
“이런 원석들을 내 손으로 깨부숴야 한다는 게 아쉬워, 정말로.”
“걱정 마. 이런 데서 깨질 내가 아니니까.”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석찬의 속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젠장. 뭔 놈의 마력량이….’
확실하게 말해서 순수 마력량이 이브를 가뿐히 상회한 것이, 아마 초록색 마력 저장소의 끝자락에 도달한 듯싶었다.
‘떨지 마라. 강석찬. 떤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인원수를 믿고 싸움을 거는 수밖에 없다.
‘이브, 간다.’
‘네.’
파밧-
순식간에 사라진 석찬의 신형이 포이그 레바돈의 앞에 나타났다.
‘선빵필승!’
“흐아압!”
짧은 시간 동안 꾹꾹 압축한 마력을 그대로 내지른 석찬.
콰광!
엄청난 폭음이 한 박자 늦게 고막을 강타했다.
자욱한 연기가 둘을 감쌌다.
“정말 굉장해.”
‘뭐라고?’
하지만 소리가 무색할 정도로 포이그 레바돈은 멀쩡했다.
“3겹의 방어막을 한 번에 박살 내다니. 정말 대단해.”
‘방어막? 칫!’
그의 손에서 빠르게 순환하는 마력에 바로 거리를 벌리는 석찬.
“파이어 스피어.”
뒤이어 이브가 캐스팅해둔 5기의 파이어 스피어가 포이그 레바돈을 향해 쇄도했다.
“불이라. 쓸데없는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하지만 포이그 레바돈의 손짓 한 번에 무너져 내리는 마법들. 그러나 이브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순간.
콰광!
“커헉!”
폭음과 함께 레바돈의 몸이 앞으로 넘어갔다.
“그게 먹힐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거든요.”
따로 캐스팅해둔 파이어 볼이 제대로 유효타를 먹여주었다.
“애새끼들이….”
화끈한 격통에 레바돈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적당히 상대해 주려고 했건만….”
레바돈에게서 풍기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변했다.
“조심해, 지금부터가 진짜야.”
“알아요.”
흠칫!
“피해!”
강하게 느껴지는 살기에 석찬이 몸을 옆으로 날렸고, 뒤이어 한 줄기의 광선이 석찬이 있던 자리를 갈랐다.
광선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모든 것이 산화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야, 저 위력?’
빠르게 자세를 되찾은 석찬이 그에게 접근하려고 했으나.
퓽! 피슝!
연속해서 뿜어지는 광선에 레바돈을 향해 단 1cm조차 접근하는 게 불가능한 듯 보였다.
타닥, 타닥.
요리조리 광선을 피하며 이브를 살피는 석찬.
하지만 그녀 또한 레바돈의 광선을 막아내는 데 급급한 듯 보였다.
‘젠장….’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강마력을 사용해볼까 했으나, 레바돈의 공격은 집중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고민하는 와중에도 광선은 더욱 빠른 속도로 석찬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싸움을 지켜만 보고 있던 라우르가 입을 열었다.
[멍청아, 전까지 네가 하던 훈련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냐?]
‘훈련이요?’
[그래, 훈련! 네가 그렇게 찡찡댔을 때 내가 알려준 훈련 말이야!]
‘그거라면… 아.’
복싱.
자신의 인생과도 다름없는 스포츠.
라우르의 일갈에 무언가를 깨달은 석찬은 정신을 극한까지 집중해 레바돈의 공격을 살폈다.
‘생각해라, 강석찬.’
저쪽도 급하긴 급한 것일까?
자세히 살펴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레바돈의 공격은 석찬의 머리에 집중되고 있었다.
‘저런 공격 패턴이라면….’
전진 더킹으로 어느 정도 회피가 가능할 듯 보였다.
‘그래, 해보자.’
세 번의 공격은 그 옛날 얻은 록서르의 목걸이 효과로 방어가 가능하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간다.’
“훅, 훅.”
거친 호흡 소리와 함께 광선을 하나둘 피하며 레바돈에게 접근하는 석찬.
“이익….”
그 모습에 레바돈이 더욱 빠른 속도로 광선을 난사했지만, 석찬 또한 마력으로 전신을 강화해 모든 것을 피해냈다.
결국 레바돈의 지척까지 다가선 석찬.
촤악!
그때, 레바돈의 광선 하나가 석찬의 다리 쪽에 적중했다.
공격에 성공한 레바돈이 씩 웃었다.
“어떠냐, 새꺄!”
하지만.
[‘록서르의 목걸이’의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쨍그랑.
석찬의 몸을 덮고 있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하나 깨져나갔다.
“흐하압!”
당황해하는 레바돈의 얼굴을 향해 석찬이 주먹을 날렸고.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레바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콰직.
게다가 공격에서 벗어난 이브가 날린 마력 화살에 다시 한번 정타를 허용하는 레바돈.
“커헉!”
바닥에 쓰러진 레바돈을 보며 이번엔 석찬이 웃어 보였다.
“어떠냐, 새꺄?”
“이, 이 어린 놈의 새끼들이….”
본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어 화났는지, 레바돈은 코피가 줄줄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다시금 마력을 운용했다.
“조금 전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콰과광!
이번에는 광선 공격 말고도 여러 종류의 공격이 석찬과 이브를 향해 쏟아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석찬은 새로운 스타일의 복싱 기술과 함께 레바돈을 농락했다.
탕!
석찬에게 다시 한번 턱을 얻어맞은 레바돈의 다리가 풀리며 몸이 축 늘어졌다.
“크헉….”
“고작 이게 끝인가?”
분명 레바돈의 극독은 위협적이었다. 한 방만 잘못 맞아도 자칫 잘못하면 사망에 이를 정도의 위력이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런 극독도 적중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석찬이 모든 것을 회피한다는 가정하에 그의 극독은 전혀 위협적이지가 않았다.
“크윽….”
조금 의아한 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레바돈의 눈빛이었다.
벌써 여러 번 정타를 허용하고 경기로 치면 다운까지 여러 번 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뭔가 불안한데.’
[저 새끼, 뭔가를 숨겨두고 있다. 빨리 처리해.]
‘그러게요.’
라우르의 의견에 동의한 석찬이 마력을 머금은 주먹을 치켜올렸다.
“죽어.”
그렇게 마무리를 하려던 순간이었다.
두근-
“크윽….”
갑자기 느껴지는 격통에 석찬이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크큭….”
그 모습에 레바돈이 실실 웃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르륵.
갑작스럽게 코피까지 흘리는 석찬.
‘뭐지?’
독에 중독된 건가? 하지만 어떻게? 분명 그의 독은 전부 막거나 피했고, 싸우기 전에 퓨리파이 마법도 받았던 상태라 대기 중의 독에 중독되었을 리도 없을 텐데.
“궁금한가? 왜 네가 독에 중독되었는지?”
마치 석찬의 생각을 꿰뚫고 있기라도 하듯 레바돈이 입을 열었다.
“극독은 닿지 않아도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중독이 되지.”
[젠장!]
그의 말에 라우르는 욕을 내뱉었고, 석찬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아뿔싸, 기본적인 걸 까먹고 있었다.’
독은 가까이만 두고 있어도 중독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하지만 생각을 한 곳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이브를 바라보았지만, 레바돈은 이브를 향해 맹공을 뿜어댔다.
“크윽, 오빠! 잠시만, 기다, 려요!”
한 손으로는 이브를 견제하며, 레바돈은 석찬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바닥에 웅크려 있는 석찬을 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묻지.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나? 만약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지금 당장 해독약을 주지.”
“…….”
석찬은 말없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래, 그럼 죽어라.”
독을 잔뜩 머금은 손이 석찬의 가슴을 갈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