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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47화 (47/200)

제47화

구두, 바지, 넥타이, 셔츠, 재킷까지 전부 검은색으로 맞춰 입은 사내가 박수를 치며 알렉산더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수부터 튜토리얼 안내를 맡게 된 안내자 ‘G’입니다.”

친절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네 오는 G.

하지만 알렉산더의 표정은 여전히 사나웠다.

“G? 그럼 네가 I의 후임인 건가?”

“그렇습니다. 그분은….”

말을 하다 말고 석찬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G.

“모종의 사건 때문에 안내자 직에서 물러나게 되어서요. 하하.”

‘뭐지? 나와 관련된 건가?’

안내자의 시선이 석연치 않음을 느낀 석찬이었다.

“하나도 안 웃기니까 웃지 말고, 아직 튜토리얼이 시작할 시기도 아닌데 왜 나타난 거지?”

여전히 사납게 G를 몰아붙이는 알렉산더.

“알겠습니다. 얘기할 테니 걱정 마세요.”

G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위에서 튜토리얼을 더 빨리 열라고 지시했다?”

“그렇습니다.”

“별다른 말도 없이 그냥 통보했다?”

“예.”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믿기 힘드시겠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아니 저게 말이 되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석찬.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니지.]

‘라우르.’

어느새 석찬의 옆으로 다가온 라우르가 입을 열었다.

[아마 위는 신일 거고, 걔들은 항상 지 꼴리는 대로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근데 이번 건 조금 심상치 않은데?]

‘심상치 않다뇨, 게다가 안내자 앞에 이렇게 불쑥불쑥 나타나도 돼요?’

[괜찮아, 괜찮아. 쟤가 알렉산더만큼 감각이 뛰어난 것 같진 않고. 봐봐. 만약 쟤가 날 감지했으면 이미 난리를 치고 있었겠지.]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그건 그렇고, 아마 지금 상황에는 그놈들 변덕도 있겠지만, 네 지분도 어느 정도 있을 거다.]

‘저요? 저는 왜요?’

[자세한 건 아마 말해도 못 알아듣겠고, 그냥 네가 상식 이상으로 강해서라고만 알고 있어라.]

‘나쁜 건가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근데 네가 신경 쓸 거 없다. 그냥 하던 대로 힘을 길러서 탑에 오르기만 하면 될 거다.]

‘그럼 다행이고요.’

혹시 이 상황이 자신을 포함한 주변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하던 석찬이었다.

근데 그렇지 않는다고 한다면.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신들이라는 존재들이 껴 있는 문제는 고민해봤자 해결될 것도 아니다.

그때 마침 G가 석찬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올킬러, 강석찬 씨로군요. 반갑습니다.”

“네, 저도 반갑습니다.”

그가 내민 손을 가볍게 붙잡은 석찬이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탑을 오르고 계시다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고 치부하기엔 실력도 출중하신 것 같군요.”

G가 싱긋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그중에는 지금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좋아하는 동물이나 음식 같은 신변잡기에 대한 질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투머치토커가 따로 없네.’

[그러게나 말이다, 입에 모터를 달았나.]

그렇게 대화가 이어지던 와중,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낸 G가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런, 시간이 너무 지체됐네요.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대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석찬이 환한 웃음과 함께 그를 배웅했다.

“조심히 가보십시오.”

G가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깼고, 그가 있던 곳의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 맞다, 석찬 씨. 전 당신이 탑을 오르는 걸 지지하지만, 괜한 오지랖으로 조언 하나만 하자면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예?”

“그럼 이만.”

파앗!

알 수 없는 말을 마지막으로 빛의 기둥과 함께 사라지는 G.

“방금 말은….”

벙찐 석찬이 멍하니 빛의 기둥이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그때, 알렉산더의 거대한 손이 석찬의 등짝을 강타했다.

짜악!

“악!”

[HP가 535 감소했습니다.]

“또 뭡니까?”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될 것을.”

“그렇긴 하죠.”

그래, 신경 써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굳이 골머리를 썩일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해 봤지만, 머릿속에 계속 G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튜토리얼이 앞당겨지다니.”

알렉산더조차 200년이 넘는 탑 생활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자신은 그저 평소처럼 문의 시험이 끝난 사람들을 안전하게 초심자의 마을로 데려오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돌아가자.”

“…예.”

“경비병! 아까 얘기 들었지? 이번 기수의 튜토리얼이 끝났다. 신입들이 나타나면 잘 설명해 주도록!”

“충!”

“좋아, 가자!”

* * *

G가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네 장의 날개가 달린 사내였다.

“쓸데없는 말을 여럿 하셨더군요.”

“쓸데없는 소리라.”

“마지막에 하셨던 말씀, 상당히 위험했습니다.”

괜한 오지랖에 했던 충고. 확실히 깨질 각오를 하고 내뱉은 말이긴 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자제하도록 하죠.”

“이번 한 번만입니다. 다음부터는 당신 또한 I와 같은 처지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선처에 감사드립니다.”

“이만 가보세요.”

“예.”

그의 방에서 빠져나온 G는 알 수 없는 표정과 함께 유유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 * *

한바탕 큰 사건이 있은 후, 석찬은 평소처럼 생활했다.

“어이 강석찬. 오랜만에 만났는데 대련이나 한판 하자.”

“나야 좋지.”

비록 노란색 등급 초중반 정도에 오른 석찬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지만, 주황색 등급으로 오른 진현의 공격은 절대 무시할 수준이 못 됐다.

후웅-

마력을 겹겹이 쌓아 평소 리치보다 더욱 먼 거리까지 주먹을 뻗는 진현의 공격에 석찬은 혀를 내둘렀다.

“뭐냐, 그거?”

“놀랐냐? 내 신기술이다!”

쾅!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알렉산더가 씩 웃어 보였다.

‘저건 아무리 너라고 해도 애먹을 거다.’

마력을 특정 물질 위에 겹겹이 쌓아 층을 만들어 강화시키는 기술, 강(强)마력.

강마력은 이름 그대로 일반적인 마력보다 한층 강한 마력이었다.

이것은 위력도 위력이지만, 굉장히 익히기 어려운 난도 때문에 탑 안에서도 익힌 자가 10,000명이 채 안 되는 최고급 기술이었다.

‘나도 50층 정도 가서야 겨우 구현한 걸 고작 주황 등급에 도달한 애송이가 익히게 될 줄이야.’

몇 달 전에 처음 기술을 익힌 진현은 이제 와서는 어느 정도 실전에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저 녀석, 기본적인 재능은 석찬이 녀석이나 나보다 떨어질지 몰라도….’

마력을 컨트롤하는 능력만큼은 발군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본 모든 자들 중에 마력 컨트롤 능력만큼은 가장 잠재력이 높았다.

‘3년에서 5년 정도만 더 수련하고 마력 저장소가 노란색이 된다면 강마력을 자유자재로 다루겠어.’

쾅! 쾅!

알렉산더의 예상대로 석찬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젠장.’

어느 정도 익숙해질까 싶으면 달라지는 리치.

‘확실히 저 마력은 상대하기 까다롭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현의 센스와 궁합이 잘 맞는 까다로운 기술.

게다가 위력 또한 준수해 여러 대 맞아주면서 싸우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

짝!

그때, 석찬의 옆에서 순간적으로 길어진 마력 뭉치가 그의 왼쪽 뺨을 강타했다.

“나이샤~!”

진현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우리 석찬이~ 15층까지 갔다면서 뭘 한 거냐? 응~?”

어찌나 신이 났는지 필요 이상으로 석찬을 도발하는 진현.

주륵.

입가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은 석찬의 이마에 한 줄기 힘줄이 솟아났다.

‘이 자식이, 적당히 봐주려고 했더니 말야.’

석찬의 몸에서 피어오르던 마력이 한층 강해졌다.

“넌 뒤졌다, 새꺄.”

갑자기 달라진 석찬의 분위기에 진현이 살짝 뒷걸음쳤다.

후웅-

콰직!

순식간에 생성된 얼음의 창이 진현의 옆을 지나가 대련장 벽에 꽂혔다.

“어어….”

‘좆됐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느낀 진현이 빠르게 항복을 선언하려고 했지만.

“하, 항….”

슈슉.

탁!

“웁! 웁!”

어느새 그의 앞에 다가선 석찬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쫄지 마, 우리 진현이. 내가 설마 친군데 죽이기라도 하겠어?”

도리도리.

마음 같아선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 마. 딱 한 대만 맞자.”

석찬의 주먹이 서서히 하늘로 치솟았고.

“우우우우우우웁!”

쾅!

거대한 폭음과 함께 진현의 몸이 쓰러졌다.

“후우….”

잠시 후, 진현의 정수리에 생긴 거대한 혹을 본 석찬이 씩 웃었다.

‘꼴좋다, 새끼.’

그가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한 석찬이 멀찍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알렉산더를 불렀다.

“알렉산더!”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석찬에게 달려온 알렉산더가 재빠르게 진현의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내 제자 죽인 건 아니지?”

“안 죽었어요. 제가 친군데 죽이겠습니까?”

“아까 모습만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만.”

“조절 잘했어요. 숨도 쉬고 있고.”

“그럼 다행이고.”

“그보다, 진현이가 쓰던 그 사기적인 기술은 도대체 뭐예요?”

“아, 그건 말이다.”

알렉산더에게서 강마력에 대한 설명을 들은 석찬.

“강마력이라.”

석찬은 머릿속으로 강마력의 메커니즘을 되새겨 보았다.

“설마 강마력에 도전해 볼 셈이냐?”

“예.”

그의 대답에 알렉산더가 피식 웃었다.

“아서라. 강마력이 괜히 강마력이겠냐? 그만큼 엄청난 노력과 재능이 필요… 어억?”

말을 잇던 알렉산더의 동공이 한순간에 지진이 난 듯 심하게 흔들렸다.

그의 앞에 선 석찬은 주먹에 강마력을 두른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뭐야, 이거. 마력을 꽤 많이 잡아먹네요?”

팟.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강마력.

“게다가 유지하기도 힘들고.”

약 10초가량 유지된 강마력.

‘이, 이게 무슨….’

알렉산더는 순간적으로 사고 회로가 정지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뭘 본 거지?’

분명 석찬의 주먹을 감싸고 있던 건 강마력이다.

‘단 한 번 겨뤄본 것만으로… 강마력을 완전히 이해하고 구현했다고?’

저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아니, 적어도 알렉산더 본인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자신이 최고의 재능이라고 극찬했던 진현을 돌이켜보자.

‘진현이조차 강마력을 10초 유지하는 데까지 3개월 정도가 소요됐건만.’

잠시 후, 알렉산더가 허탈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내가 석찬이 녀석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예? 뭐라고요?”

“아니다.”

‘진정한 재능충은 진현이 따위가 아니라 강석찬 저 녀석이었구만.’

정말 까면 깔수록 계속 무언가가 나오는 양파와 같은 재능.

부러움을 넘어서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왜 저러셔?’

석찬은 오랜만에 상태창을 켜 몸 상태를 점검해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상태창 가장 밑에 쓰여 있는 한 줄이 들어왔다.

[이름 : 강석찬]

.

.

.

[잠재력 : 무한]

그렇다.

석찬이야말로 탑의 시스템이 인정한 최고의 재능충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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