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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46화 (46/200)

제46화

알렉산더 올가.

1층 초심자의 마을의 영주인 그는 현재 굉장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녀석들을 맡아달라는 말이냐? 영주성에서?”

“예, 생각나는 곳이 이곳뿐이라. 부탁드립니다.”

“부탁드릴게요, 아버지.”

갑자기 덥석 나타나더니 다섯 명의 남녀를 맡아달라는 석찬과 이브.

“크흠….”

미간을 주무른 알렉산더가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둘 살펴보았다.

‘우선….’

후드를 입고 있는 남자. 라이너였다. 그의 옆에는 10층에서 데려온 모녀도 있었다.

“옆에는 아내와 딸인가?”

“그렇습니다.”

“오케이, 일단 잠시 기다리시고.”

옆에 서 있던 노인, 그레이로 시선이 옮겨졌다.

“염치없지만 신세를 져도 되겠습니까.”

‘예의 있군.’

“합격, 마지막으로….”

크레미.

“흐음….”

심상치가 않았다.

‘내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찮아.’

그렇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그에게서 느껴지는 눈빛은 사랑 그 자체였다.

“탈락.”

“예?”

예상외의 대답에 크레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여, 영주님. 저는 왜….”

“우리 딸한테 흑심이 너무 많아, 탈락.”

그의 대답에 크레미가 두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흑심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요! 단지 아름답고 자비로우신 여신님의 미모에 잠시 넋을 잃었던 것뿐입니다요. 흑심은 정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대답에 석찬이 피식 웃었다.

‘저 녀석, 전형적인 간신배 타입이군.’

그래도 대답은 마음에 들었는지 알렉산더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흐음… 그래? 좋아.”

하지만, 크레미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신님께 어울리시는 분은 오로지 올킬러 님 한 분이십니다.”

“!!!”

그의 말과 함께 방 안에 짙은 침묵이 도래했다.

‘좆됐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알렉산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말해보겠나?”

‘하지 마.’

“예? 여신님께 어울리시는 분은….”

‘제발….’

“오로지 올킬러 님 한 분이십니다, 라고 했습니다만?”

‘하지 말라고 이 눈치 없는 새끼야!’

속으로 고함을 내지른 석찬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마음이 크레미에게 전달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

멍한 표정으로 살짝 얼굴을 붉히는 이브까지.

‘젠장.’

“알았네, 그럼 전부 저기 있는 찰스한테 가보게나. 그가 묵을 방을 정해줄 걸세. 가서 짐 풀고 1시간 정도 뒤에 저녁을 들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다섯의 남녀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고, 알렉산더 또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전사들이 이들처럼 1층 영주성에 머물게 되겠지만, 그것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이 틈에 빨리….’

석찬은 알렉산더 몰래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스윽.

어느새 목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팔.

“석찬이 자네는 잠시 나랑 어디 좀 가지.”

“…예….”

‘좆됐네.’

결국 석찬은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으며 지하 대련장으로 내려갔다.

“수고해라, 친구.”

옆에 서 있던 진현은 짧게나마 절친의 명복을 빌어주고 영주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 *

“크하아아!”

대련장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석찬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쯧, 아직도 그렇게 약해서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알렉산더 또한 온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상태였다.

‘괴물 녀석. 아마 1년 정도만 더 지나면 날 압도하겠군.’

2년 만에 전(煎) 보라색 등급 마력 운용자이자 탑의 최강자였던 자신을 뛰어넘다니. 역시 마력의 유무가 크긴 했다.

‘착잡하구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석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게요, 전 아직 너무 약해요.”

“…….”

딱!

“악! 뭡니까?”

딱밤 한 방에 300 정도의 HP가 닳다니.

석찬의 이마에 강한 딱밤을 놔준 알렉산더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얌마, 아직 탑에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녀석이 뭘 그렇게 걱정해?”

“…….”

확실히 그렇다. 석찬은 아직 탑 0년 차. 약 3개월 정도만 더 있으면 탑에 들어온 지 딱 1년이 된다.

“딴 놈이 만약 너 정도의 강함을 지녔잖아? 이런 재능을 줘서 감사하다고 넙죽 절한다니까?”

“하지만 이런 힘이 있으면 뭐 합니까? 다른 사람들이나 몬스터들한테 맨날 얻어터지고 이브한테 치료나 받는 신센데.”

“허….”

석찬의 대답에 알렉산더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너 이 새끼.”

딱!

“악!”

단번에 1,000 정도 깎이는 HP.

“또 왜….”

“내가 얼탱이가 없어서 그런다. 왜.”

갑자기 얼탱이가 없다니?

“그게 무슨….”

“얌마, 너 15층이나 20층에 있는 놈들이 탑에 들어온 지 몇 년이나 됐을 거 같아?”

“…글쎄요?”

“평균적으로 10년이다.”

“…….”

“역사상 가장 탑을 빨리 주파했다는 녀석도 최소 3~4년은 걸려야 올라가는 곳을 너는 고작 1년 만에 올라간 거라고, 이 빡대가리 녀석아.”

알렉산더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아… 그리고 샌드웜? 아무리 새끼라고 해도 말이야. 15층 오른 놈이 샌드웜 잡았다고 하면 보통 허언증이라고 의심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이 말이야.”

샌드웜을 잡았다고 했을 때 알렉산더가 처음으로 했던 말이 딱 저거였다.

‘어디서 어른한테 구라야? 어린 놈의 자식이.’

뭐, 그 뒤로 힘겹게 자른 샌드웜의 머리를 보여주자 바로 입을 쩍 벌린 그였지만.

“그러니까 조금 자부심을 가지라는 뜻이다. 너는 지금 충분히 강하고, 앞으로 더욱 강해질 여지가 있다.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어.”

“감사…합니다.”

역시 탑의 최강자. 무력도 무력이지만 연륜에서 나오는 멋과 리더십이란 것이 알렉산더를 빛나게 했다.

“짜샤, 그보다 진짜 우리 딸이랑 그런 사이 아닌 거 맞지?”

‘있기는 개뿔. 저 팔불출 성격.’

“예,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됐다. 그럼 이만, 저녁 먹기 전에 목욕탕 가서 몸이나 지지자.”

“아, 그 전에.”

“뭔가?”

“크레미, 그러니까 이브보고 여신님이라고 했던 남자를 불러 주시겠습니까?”

“왜? 대련하게?”

“너무 맞았더니, 몸이나 풀게요.”

살기 어린 석찬의 눈빛에 알렉산더가 피식 웃었다.

“살살해라, 살살해.”

“예.”

* * *

새로운 가족들을 환영하는 기념으로 벌어진 저녁 만찬.

수많은 산해진미들이 식탁 앞에 올랐고,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들었다.

“끄어어억.”

그 와중에도 석찬에게 대련을 빙자해 신명나게 두들겨 맞은 크레미는 앓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폭풍 흡입했고.

“아빠, 이거 드셔보세요.”

“어이구, 우리 딸 고마워요.”

“꺄르륵!”

자유를 되찾은 라이너의 가족도 행복하게 식사를 즐겼다.

“하하! 모두 오늘은 즐기도록 하게나! 악!”

“아버지, 창피해요!”

알렉산더도 신났는지 술을 진탕 마시다가 이브에게 연신 등짝을 얻어맞았고.

“이브 술버릇이 아버지 쪽이랑 닮은 거였….”

쾅!

“닥쳐요!”

“하하하! 달려라, 올킬러! 달려!”

“이 새끼가….”

이브의 마법을 피해 달아나는 석찬을 응원(?)하는 진현 등등.

오랜만에 만끽해보는 평화로운 밤이었다.

* * *

“으어어….”

부스스한 몰골로 침대에서 일어난 석찬이 깨질 듯이 아픈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 어제 너무 많이 마셨나?”

어제 이브와의 술래잡기를 마친 뒤 진현과 함께 맥주를 들이켠 이후로 기억이 없다.

오랜만의 자유라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이 화근인 듯했다.

“힐.”

간단한 힐로 두통을 완화시킨 석찬은 물을 한 잔 들이켜며 1층 마을의 풍경을 감상했다.

‘진짜 평화롭네.’

어제까지만 해도 샌드웜과 죽기 살기로 싸웠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좀도 쑤시는데 바람이나 조금 쐴까?’

옷매무새를 정돈한 석찬은 영주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올킬러 씨! 언제 오셨어요?”

“마을의 영웅!”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석찬을 고블린에게서 마을을 지켜준 영웅으로 대우해 주었고.

“어제저녁에 왔습니다.”

석찬 또한 최대한 성심성의껏 그들의 질문에 답했다.

“킹갓코리안좀비 님은 어디 계시나요?”

킹갓코리안좀비.

진현을 가리키는 그 별명을 듣자마자 석찬의 손발이 쫙 오그라들었다.

“아, 진현이는… 말이죠.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언제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너보고 킹갓코리안좀비라고 하던데, 뭐냐?’

‘아, 내가 하도 스승님께 죽기 전까지 얻어맞다 보니 좀비라는 별명이 붙은 거야. 그래서 자랑스런 한국의 이름을 붙여서….’

‘그럼 그냥 코리안좀비라고 할 것이지 왜….’

‘그건 이미 있는 이름이잖아. 좀 더 간지 나게 킹갓코리안좀비로 했지. 사람들도 좋아하던데? 왜?’

‘내가 쪽팔려서 그렇다, 인석아.’

“올킬러 님께는 저희 가게 음식이 전부 공짜입니다!”

“저희도요!”

“하하, 감사합니다. 나중에 킹갓… 진현이랑 같이 들를게요.”

“예! 하하하!”

다소 소란스러웠던 산책을 마친 석찬은 도망치듯 영주성으로 복귀했다.

‘후우… 진이 다 빠지네.’

산책 한 번 갔다 온 것뿐인데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그래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좋고, 기쁜 일이었다.

‘그래, 적이 더 강하면 뭐 어때. 앞으로 내가 더 빨리, 더 많이 강해지면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석찬이 방문을 연 순간이었다.

쿠구궁!

순간, 엄청난 지진과 함께 영주성 전체가 흔들렸다.

“크윽, 뭐지?”

석찬이 빠르게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저건….”

곧 마을 입구를 전부 덮고 있는 새하얀 빛을 볼 수 있었다.

‘적습인가? 뭐지?’

타앗!

그대로 밖으로 뛰어나간 석찬은 순식간에 빛이 있는 근원지에 다다랐다.

다른 사람들도 빛기둥을 보고 주위로 몰려들어 있었다.

“아, 올킬러 님 이건….”

“잠시 물러나 계세요.”

석찬은 여전히 빛기둥을 경계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멈춰라.”

그때 마침 알렉산더가 나타났고.

“모두 평소처럼 볼일을 보도록 하십시오.”

“하, 하지만 영주님. 저건….”

“저도 압니다. 아직 시기가 아니긴 한데… 맞긴 맞아요. 그러니까 모두 평소대로 행동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영주의 말은 절대적이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석찬만이 남아 알렉산더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건 도대체….”

“튜토리얼.”

그 말에 석찬이 화들짝 놀라 반문했다.

“예? 튜토리얼? 하지만 분명….”

‘튜토리얼은 1년을 주기로 열린다.’

몇 개월 전 알렉산더가 해준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튜토리얼이 끝난 지 약 10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태.

“왜 2개월이나 일찍….”

“그러니까 나도 지금 온 거 아니냐. 그리고 지금 당장 튜토리얼 생존자들이 오지는 않을 거야.”

“예?”

“문의 시험이 있으니까 말이야. 너도 봤을 거 아니야. 아마 생존자들은 시험을 치고, 지금 온다고 한다면….”

“한다면?”

“안내자가 오겠지.”

그 말과 함께, 빛기둥이 서서히 걷혔고.

짝, 짝.

“역시 알렉산더, 정확하십니다.”

정장을 차려입은 한 사내가 박수를 치며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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