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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45화 (45/200)

제45화

“으윽….”

푹 쉬어서 그런 것일까? 이제는 몸을 움직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웃차차차.”

기지개로 몸을 푼 석찬의 시선이 아직 잠들어 있는 이브에게로 갔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많이 피곤한가 보네.’

반쯤 흐트러져 있는 이불을 잘 덮어준 석찬은 노인과 사내가 묶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미동도 안 한 채 죽은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으로 강화한 석찬의 눈에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둘의 눈꺼풀이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어이, 깨어 있는 거 아니까 일어나지?”

여전히 미동도 없는 둘.

“맞고 일어날래, 그냥 일어날래?”

번쩍.

그의 말에 노인, 그레이가 빛의 속도로 눈을 떴다.

“옆의 놈은 언제 뜰 거야?”

석찬의 물음에 그레이가 사내의 옆구리를 찔렀고.

“에이씨, 영감… 그냥 뻐기자니까.”

사내, 크레미가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이제 일어났냐?”

석찬이 은연중에 살기를 흩뿌리며 둘을 압박했지만, 크레미는 오히려 씩 웃으며 반문했다.

“하, 네가 날 잡아서 뭘 어쩌려고?”

“…….”

“나는 자랑스러운 암부. 적에게 입 따윈… 쿠엑!”

석찬의 주먹에 크레미는 말을 전부 잇지 못했다.

쿠당탕!

바닥에 쓰러진 크레미. 석찬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암부면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어.”

앞서 라이너와의 대화를 통해 석찬은 암부라는 곳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암부는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라이너 때는 함정으로 대화가 됐지만, 그 함정이 이자에게도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정보가 필요해.’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빨리 입을 열게 해야 한다.

퍽! 퍽!

신명나게 두들겨 맞고 있는 크레미를 보며 그레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엄청나구먼.’

자신과 싸울 때도 강했던 펀치력이 체력을 회복하니 몇 배는 더 강해진 것 같았다.

“끄윽….”

어느새 얼굴이 피로 물든 크레미가 앓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역시 아직까지는 답이 없군.’

1층에서처럼 이브의 치료를 빌려 계속해 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잘 자고 있는 애 깨울 필요는 없겠지.’

이번 일은 혼자서 처리할 생각이었다.

휙.

고개를 돌려 그레이를 본 석찬이 싱긋 웃었다.

섬뜩.

‘뭐지?’

그레이의 눈에는 그 웃음이 마치 사신의 웃음처럼 보였다.

“당신도 맞고 얘기할래? 아님 그냥 얘기할래? 내가 늙은 분들은 때리기가 조금 그래서.”

그 물음에 그레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좋네, 좋아. 뭐든지 말해주겠네.”

비밀 엄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그레이의 선택은 옳았다.

“두 번 말 안 하게 해서 좋네.”

탁!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석찬이 말을 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빠짐없이 불어.”

* * *

“크헉!”

머리가 뒤틀려지는 것과 같은 고통과 함께 크레미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그의 눈에 보인 장면은.

“그래서, 그 포크 뭐시긴가 하는 놈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레이를 취조하고 있는 석찬과.

“포크가 아니라 포이그 님일세. 그분은 약 두 달 전에 의뢰를….”

겁에 질린 채 그에게 수많은 정보를 불고 있는 그레이였다.

‘그레이, 저 영감탱이가!’

감히 적에게 임무에 대한 정보들을 전부 토로하다니!

‘늙어서 노망이 난 건 아닐 테고.’

역시 올킬러의 주먹이 원인인 듯했다.

‘저 녀석, 주먹은 매워가지고.’

인정한다. 근접전으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 녀석을 이기지 못한다.

‘방법은 기습뿐.’

실제로 그는 그레이와 대화하느라 이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의 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레이와 눈이 마주친 크레미.

‘영감, 내가 이 새끼 뒤통수를 친다! 맞춰서 공격해!’

고개를 흔들며 신호를 보낸 그는 그레이가 눈빛으로 긍정하는 것을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어라, 올킬러!’

화악!

크레미가 빠르게 석찬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고.

뻑!

그대로 석찬의 주먹에 나가떨어졌다.

“꾸에엑!”

“뻔하다, 뻔해.”

이미 마력장을 얇게 펼쳐놓은 석찬이었다.

아무리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움직인 순간부터 마력장에 전부 감지된 상태였다.

바닥을 대여섯 바퀴 정도 나뒹군 크레미의 입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크윽….”

바닥에 떨어진 누런 이를 본 그의 눈이 분노로 가득 찼다.

“올…킬러!”

“이빨 하나로는 부족했나?”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석찬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너… 이 새…끼!”

“일단 한숨 자고 다시 일어나라.”

쾅!

꿈틀거리던 크레미의 몸이 동작을 정지했고, 석찬이 다시금 그레이의 앞에 섰다.

“미안, 날벌레가 잠시 날뛰어서. 당신도 뭐, 덤빌 생각 있어?”

그의 물음에 그레이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닐세. 하던 얘기나 마저 하세.”

“좋아, 어디까지 했더라?”

다시는 석찬에게 개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그레이였다.

* * *

“흐아암.”

잠에서 깬 이브가 하품과 함께 눈을 떴다.

“으음?”

이미 텅 빈 석찬의 이부자리를 확인한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이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석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찬 오빠… 응?”

헌데 살짝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이까… 지…우당이….”

퉁퉁 불어서 원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수준의 사내 한 명과.

“그니까 지부장이….”

그의 말을 번역하고 있는 노인.

“아, 이브 일어났어?”

이브가 다가오자 싱긋 웃으며 그녀를 반기는 석찬.

그 웃음에 몸을 흠칫 떠는 두 남자는 덤이었다.

* * *

“그러니까… 이게 다 둘한테 얻은 정보들이라고요?”

“그래.”

석찬이 말한 정보를 들은 이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렇게 많은 정보라니!’

그중에는 20층 내의 지형지물이나 몬스터, 결정적으로 20층 지부장의 상세 능력치까지, 알짜배기 정보들도 여럿 존재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의문도 들었지만, 퉁퉁 부은 사내의 얼굴을 보고 납득하는 이브였다.

“그래도 너무 굴리셨어요, 사람 얼굴이 이게 뭐예요?”

“저 녀석이 어지간히 말을 안 들어야지.”

“그대로 그렇지, 참.”

사내, 크레미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이브.

“우웁….”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는 그를 본 이브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해치려는 거 아니니까 잠깐 얼굴 좀 대봐요.”

부릅.

‘히익….’

석찬의 살벌한 눈빛에 재빠르게 얼굴을 가져다대는 크레미.

“힐.”

따스한 빛과 함께 조금씩 붓기가 가라앉는 그의 얼굴.

석찬은 그저 말없이 치료를 지켜봤다.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10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다시금 본래 얼굴을 되찾은 크레미였다.

‘어….’

욱신거리던 고통이 한순간에 없어지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크레미.

‘저 여자가 쓴 마법, 힐이 아니었나?’

분명 힐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러졌던 이빨도 다시 났어….’

효과가 거의 상위 치료 마법 그레이트 힐 수준이었다.

“어… 엄청나.”

“고마워요.”

‘크윽.’

싱긋 웃는 그녀의 모습에 심장에 강한 타격을 받은 크레미.

말없이 자신을 조졌던 악마(?)와 달리 말없이 다가와서 상처를 치료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여신과도 같았다.

“그리고 다시 나 좀 보지?”

하지만 다시금 찾아온 악마, 올킬러.

“히…히이익!”

반사적으로 얼굴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나는 크레미.

그 모습에 석찬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바한다. 오바해.”

‘내가 왜 이러는데!’

…라고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맞고 싶지 않아 말을 아끼는 크레미였다.

“어휴, 사람을 얼마나 갈궜기에 저렇게 망가져. 이 정도로 끝내요.”

‘오, 나의 여신님.’

이미 자신을 처음 때려눕힌 것이 이브, 그녀였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 그였다.

“그럴까?”

확실히 정보도 확실하게 얻어냈고, 더 이상 그들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죽일까?”

석찬의 물음에 그레이와 크레미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죽일 건가요? 그렇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지금이다!’

이브의 반발에 크레미가 재빠르게 그녀의 앞으로 달려갔다.

“이브 위험해!”

그녀를 해치려는 줄 알고 빠르게 그를 제압하려는 석찬.

하지만 예상외로 크레미는 이브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털썩.

냉큼 무릎을 꿇는 크레미.

“살려 주십시오, 여신님!”

“에엥?”

벙찐 석찬과 이브의 감탄사와 함께 한동안 적막이 네 사람을 감쌌다.

“제 일생일대의 소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여신님! 앞으로 다시는 암부 같은 나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착하게 살도록 하겠습니다.”

“저 여신 아닌데….”

“부탁드립니다. 여신님!”

쿵.

아예 머리까지 박는 크레미의 모습에 이브가 손사래를 쳤다.

“왜 그러세요. 상처 벌어져요.”

“역시 당신은 여신….”

탁.

그때, 석찬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시만, 암부 일을 안 해? 착하게 살아? 어떻게 장담할 거지?”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까지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의 말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정말입니다. 제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어느새 옆으로 온 그레이 또한 고개를 푹 숙였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확실하게 가자면 죽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석찬도 어지간하면 불필요한 살생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둘은 20층의 최고 전력 중 하나. 이참에 라이너와 같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흐음….”

그런 석찬을 바라보는 크레미와 그레이의 속은 타들어만 갔다.

‘정말 우리를 죽이려는 건가.’

약 5분 후. 석찬이 입을 열었다.

“좋아, 둘 다 살려주지.”

그의 말에 두 남자가 다시금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조건이 있다.”

“무엇입니까?”

“첫째는 좀 전에 했던 말을 무조건 지킬 것. 두 번째는 앞으로 1층 영주성 안에서만 지내도록 해. 이브, 괜찮아?”

“괜찮아요.”

영주성에서만 지내게 하는 것은 알렉산더 덕분에 낼 수 있는 발상이었다.

‘알렉산더라면 만약 저 둘이 흑심을 품어도 빠르게 제압할 수 있겠지.’

그리고 다행히 영주성의 주인 중 하나인 이브의 허락도 받았다.

“아버지라면 확실히 두 사람을 통제할 수 있겠네요. 아니면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교육도 해달라고 해볼까요?”

“나야 좋지.”

‘아버지? 통제? 교육?’

‘설마 1층의 영주가 우리를 통제한다는 건 아니겠지?’

물론 1층에 가서 개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건….

“참고로 영주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강하시다는 것만 알아둬라.”

“옙.”

자존심쯤이야 얼마든 상할 자신이 있었다.

샌드웜의 시체를 한 번 바라본 석찬이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짐 싸라, 10분 뒤에 1층으로 이동한다!”

“옙!”

기합이 가득 찬 두 남자의 목소리가 부서진 부락 사이로 크게 울려 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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