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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44화 (44/200)

제44화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눈을 질끈 감은 석찬.

하지만, 칼에 찔렸어야 할 목은 멀쩡했다.

‘무슨 일이지?’

살짝 눈을 뜨자, 떨리는 노인의 동공이 보였다.

“어, 떻게….”

그 말과 함께.

[‘록서르의 목걸이’의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쩌저적-

석찬의 목에 얇게 씌워진 방어막에 금이 가더니 공중으로 산화했다.

석찬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록서르의 목걸이? 아.’

[록서르의 목걸이]

[등급 : 에픽]

[방어력 + 150]

[내구도 50/50]

[체력 스탯 + 5%]

[60분마다 1회 마법 방어막 생성. 최대 3개의 보호막을 저장 가능. (0/3)]

본래 쿨타임은 30분이었지만, 페널티로 인해 60분마다 사용 가능해진 마법 보호막.

실제로 석찬은 이 아이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리자드맨 메이지들에게 공격당해서 전부 사라졌었는데, 샌드웜이랑 싸우면서 쿨타임이 다 돈 건가?’

정말이지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그보다, 마력을 사용한 공격도 마법 공격으로 간주하는 건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석찬이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석찬은 멍때리고 있는 노인의 뒤로 빠르게 이동해 주먹을 날렸다.

퍽!

“크헉.”

쿵.

바닥에 쓰러진 노인 위에 올라타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하는 석찬.

‘지금 끝내야 한다!’

체력이나 부상 등 여러모로 자신이 불리한 상황. 승기를 잡았을 때 한 번에 승부를 봐야 했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난 후.

“허억.”

땅바닥에 쓰러진 석찬은 피투성이가 된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멀었다….’

미약하게 느껴지는 노인의 마력에 석찬이 다시금 그의 위에 올라탔다.

주먹을 휘두르려는 그때.

“이만, 됐네….”

작게 소리를 내는 노인.

하지만 석찬은 멈추지 않았다.

쾅!

그는 자신을 공격한 적.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자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콰앙!

전심전력을 다한 일격에 그대로 고개를 떨구는 노인.

“허억!”

바닥에 대자로 뻗은 석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겠어.’

아무리 전신의 가호를 받은 석찬이었지만, 강적들과 이어진 수 시간의 전투 앞에는 장사 없었다.

‘빨리 이브한테 가야 하는…데….’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석찬의 의식이 끊어졌다.

* * *

“이런 이런.”

네 장의 날개를 지닌 사내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샌드웜이 잡힐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그는 수정구 속에 비친 석찬의 모습을 보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샌드웜은 탑 내에서도 최상위 포식자로 분류된 몬스터 중 하나. 비록 새끼라고 하지만, 15층의 사람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잡을까 말까 한 몬스터였다.

‘20층에 도달한 녀석들도 잡기 힘든 걸 둘이서 잡다니….’

예상 밖의 변수에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었다.

“하필이면 샌드웜의 가죽 주머니까지 드랍되다니….”

하필이면 샌드웜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아이템이 나와버렸다.

게다가.

‘옆에 같이 다니는 여자도 심상치 않아.’

비록 석찬의 활약에 많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녀 또한 상당한 강자였다.

‘조건만 갖춰진다면 강석찬보다 더 강해.’

이번 전투에서는 상성 때문에 애를 먹었다만, 확실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과 질이 심상치 않았다.

‘이래서야 원, 계획에 차질이 생기겠군요.’

사내가 피식 웃었다.

‘확 저질러 버릴까?’

현재 자신의 권한이라면 석찬에게 꽤 많은 제약을 가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사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녀’ 같은 꼴을 당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강석찬, 이브 올가.”

‘그보다, 지금쯤이면 아마….’

새로운 기수의 튜토리얼이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본래 튜토리얼이란 1년에 한 번씩 있는 것이었지만 올해부터는 그 기간을 줄인다고 했다나.

‘그럼,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볼까나….’

곧이어, 노인을 쓰러트리고 의식을 잃은 석찬을 비추던 수정구에 다른 사람이 비쳤다.

“어디 한번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죠.”

* * *

번쩍.

눈을 뜬 흑발의 여인, 1급 천사 에바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른 잔디가 펼쳐진 초원. 어리바리한 표정의 사람들. 그리고 작은 단상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안내자까지.

“여, 여긴….”

“자, 모두들 잠시 여기로 집중해 주십시오.”

아니야.

“우선 저에 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닐 거야.

“저는 여러분들의 튜토리얼을 도와줄 안내자라고 합니다.”

이곳이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장소라는 사실을 인지한 에바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야!”

“…….”

모든 사람의 이목이 한순간에 그녀에게 집중됐고, 안내자 또한 하던 말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이건 아니야! 분명 뭐가 잘못, 커억!”

하지만 에바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미간을 찌푸린 안내자가 공중에 손을 뻗은 채 그녀를 응시했다.

“타임 스탑.”

시동어가 펼쳐짐과 동시에 사람들의 움직임, 풀의 흔들거림 등등이 일제히 정지했다.

부우웅-

공중으로 이동한 안내자가 에바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꽉.

“끄윽….”

그녀의 목을 세게 조른 안내자의 입에서 살기 어린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천사였다죠?”

“아니야, 아니야….”

안내자의 물음에도 에바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니야’를 연발할 뿐이었다.

“흠, 정신이 완전히 나간 건가?”

하긴, 절대적인 권능을 발휘하는 천사의 직위와 권능을 전부 박탈당하고 탑으로 떨어졌는데, 정신이 멀쩡할 리가 만무했다.

“아무튼, 당신을 위해서 충고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거예요. 여기는 당신네들이 놀고먹던 천계가 아니니까 말이죠. 그럼 이만.”

쾅!

“커억….”

에바가 바닥에 쓰러짐과 동시에 멈춰 있던 시간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설명을 계속하죠….”

“아아… 아아….”

등에서부터 느껴지는 끔찍한 격통.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에바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다 끝났어.’

하지만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의 고통은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 * *

번쩍.

“크윽.”

눈을 뜬 석찬은 찡 하고 울려오는 머리에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두통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다시 눈을 뜬 석찬은 누운 채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부락을 가로지른 샌드웜의 거대한 시체와.

“이…브?”

자신의 옆에 곤히 잠들어 있는 이브.

도대체 언제 여기까지 온 거지? 게다가 나는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거고.

어두컴컴한 하늘을 보니 최소 4시간 이상은 잠들어 있던 것 같다만.

부스럭.

‘크악.’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끔찍한 격통 때문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들었다.

하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마력을 운용하고 싸워댔는데 정상일 리가 있나.

‘젠장.’

아직도.

‘나는 너무 약해.’

너무 약해 빠져서 미칠 지경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무력감, 박탈감에 안 그래도 없던 힘마저 쫙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때, 부스럭거림을 들었는지 이브의 눈이 조금 떠졌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어….”

옆에 있던 스태프를 집은 그녀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그레이트 힐.”

따스한 마력을 느끼며 석찬이 두 눈을 감았다.

“휴….”

이마에 묻은 땀을 닦아낸 이브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또 무리하셨네요.”

“미안, 어쩌다 보니. 이번엔 어쩔 수 없었잖아?”

“그건 그렇죠. 하지만 아무리 오빠가 강해도 이렇게 계속 싸우고 다치고 하면 언젠가는 분명….”

“알았어, 알았어.”

“…조심하셔야 돼요.”

“알았다.”

그때, 석찬의 머릿속에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싸웠던 노인이 떠올랐다.

‘이런!’

아무리 지쳤었다고 해도 자신과 동수를 이뤘던, 아니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검술로 자신을 몰아붙였던 자다.

“이브, 내 옆에 있던 할아버지 한 분 못 봤어?”

그의 말에 이브가 무뚝뚝하게 스태프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말끔한 차림의 노인네가 마력 봉인 사슬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딱 봐도 적으로 보여서 일단 묶어놨어요.”

“휴… 잘했어. 근데….”

노인, 그레이의 옆에는 처음 보는 사내 한 명이 더 묶여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근육질의 몸매가 부각되는 쫄쫄이를 입은 사내.

“아, 갑자기 저를 공격하더라고요. 크레미 뭐시기랬나. 근데 약하더라고요.”

“그래?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석찬. 하지만 그는 몰랐다.

크레미 조마트.

그가 라이너와 함께 비밀리에 키워지고 있던 20층 지부 암부의 에이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잠시 숨을 돌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다른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어?”

“한 반나절 정도 됐어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주변에 몬스터 같은 거는 없고?”

“없어요. 그리고 주변에 방어 마법도 다섯 겹씩 생성해 놨으니까 만약 온다고 해도 별일 없을 거예요.”

“그렇구나. 잘했어, 역시 이브야.”

“뭐래요.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요.”

“그게 기본이면 탑 오르는 사람 전부 나가 죽어야 될걸?”

“입에 발린 소리여도 감사하네요.”

‘입에 발린 소리 아닌데.’

지금까지 이브 없이 혼자 탑을 올랐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아마 아직까지 10층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만큼 이브의 존재는 컸다.

“매번 말하는 거지만 고맙다, 이브.”

“별말씀을.”

순간 긴장이 풀려서 그런 것일까. 다시금 졸음이 몰려왔다.

“이브, 나 조금만 자도 될까? 너무 피곤하….”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잠에 빠져드는 석찬.

그런 그를 바라본 이브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아공간 주머니에서 이불을 하나 꺼낸 이브가 석찬의 몸을 덮어주었다.

“잘 자요.”

자리에 누운 그녀 또한 어느새 잠에 빠져들었다.

* * *

쾅!

한 사내가 책상을 내리쳤고.

칙-

책상을 이루고 있던 나무가 조금씩 부식되기 시작했다.

“고, 고정하십시오.”

옆에서 그를 말리던 남자 또한 섣불리 그에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찍이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고정하라고? 그게 지금 나에게 할 말인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고함을 내지르는 사내, 포이그 레바돈은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연신 바닥을 발로 내리찍었다.

칙- 치직-

그의 발에 닿을 때마다 땅이 조금씩 부식되는 건 덤이었다.

“그, 그러다 이 탑이 무너지겠습니다. 부디….”

땅을 내리찍던 사내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분노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서, 라이너에 이어 그레이 영감까지 죽었다, 이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예. 정황상으로는….”

“크레미까지 동원했는데?”

“죄송합니다.”

“젠장!”

쾅!

보좌역을 맡은 사내 또한 할 말이 없었다.

그 또한 석찬에 의해 이렇게 많은 고등 병력을 잃을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디서 변수가 난 거지.’

쾅, 쾅!

‘오늘도 장난 아니게 깨지겠네.’

그가 화를 낼 때마다 수십 골드씩 나가는 수리비.

“휴우….”

그의 한숨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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