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이곳에서는 하늘을 날 수 없습니다.]
“뭐?”
당황한 석찬이 육성으로 소리쳤다.
나는 것이 금지되었다니? 그럼 설마 걸어 다니라는 말인가.
이브 또한 그 메시지를 봤는지 어이없다는 듯이 석찬을 쳐다보았다.
“제가 잘못 보는 거 아니죠?”
“제대로 보는 거 맞아.”
석찬은 다시금 마력을 일으켜 보았다.
공격이나 방어 등, 다른 곳에서는 사용 가능한 마력이 꼭 날개를 만들려고만 하면 꿈쩍도 하질 않았다.
“젠장.”
결국 석찬과 이브는 직접 걷기로 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본래 비행이 가능해야 하지만, 천사의 방해로 인해 마력 날개가 봉인되었다는 사실을.
게다가 그녀의 방해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크롸아아!”
달이 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자드맨들의 몸에 울긋불긋한 핏줄이 돋아나 있었고, 전체적인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밤이 되면 강해지는 현상이 지금 나타났다.
“끄아아!”
덕분에 11층을 공략하던 다른 인간들이 맥도 못 추리고 리자드맨에게 당했다.
하지만 천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석찬의 탑 등반을 저지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석찬의 새로운 장비들이었다.
[이름 : 강석찬]
[레벨 : 97]
[HP : 28,600/28,600]
[MP : 2,436/2,436]
[스테이터스]
[힘 : 190 + 38]
[민첩 : 195 + 39]
[체력 : 220 + 66]
[내구 : 245 + 49]
[마력 : 203 + 40.6]
[잔여 포인트 : 0]
[잠재력 : 무한]
새로운 장비들로 인해 석찬의 스탯은 10층에 있을 때보다 더욱 높아져 있었다.
으직!
그의 주먹에 맞을 때마다 리자드맨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처박힌 채 정신을 못 차리다가 머리를 몇 대 얻어맞고 삶을 마감하는 리자드맨들.
“와,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거예요?”
이브의 경악 어린 시선에 석찬은 그저 말없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리자드맨 킹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던 그때, 무언가가 떠오른 듯 석찬이 손뼉을 쳤다.
“맞다, 이브.”
“왜요?”
“날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그쵸?”
눈을 빛내는 석찬을 보며 이브가 살짝 몸을 떨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석찬의 몸에서 200을 넘어가는 대량의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두 다리로 집중되는 마력.
특히 폭발적으로 늘은 내구 스탯 덕분인지 이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마력을 수월하게 몸에 담아낼 수 있었다.
쿠드득-
엄청난 양의 마력에 땅이 움푹 파였다.
“잠시만 뒤로 빠져 있어 볼래, 이브?”
그의 말에 이브가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좋았어, 한번.”
쾅!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석찬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졌다.
“으윽!”
그 폭발력에서 나오는 후폭풍에 이브가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땐 석찬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 * *
“우아아악!”
간신히 몸을 멈춘 석찬은 뒤를 바라보았다.
이미 이브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이거 괜찮은데?”
담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치가 늘어서 그런 것일까? 체감상으로는 기존에 쓰던 마력 날개보다 더욱 속도가 빠른 것 같았다.
“이거면 되겠어.”
다리에 살짝 부담이 가긴 했지만, 그것쯤이야 마력량을 적당히 조절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몸을 돌려 처음 있던 곳으로 뛰어가자 점점 이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브!”
“아, 오빠. 방금 전에 뭐였어요?”
이브는 석찬을 보자마자 방금 보았던 것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거? 별거 없어. 그냥 마력으로 속도를 높여서 달린 거야.”
“무식한 방법이었네요.”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지.”
“그렇네요.”
어쨌든, 좋은 이동 수단을 확보한 석찬은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업혀, 이브.”
“에?”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등을 내 보이는 석찬.
잠시 그를 바라보던 이브는 마지못해 석찬의 등에 업혔다.
“됐어?”
“빨리 출발이나 해요.”
“알았어, 꽉 잡아.”
석찬의 몸에서 푸른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쾅!
석찬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나갔다.
“꺄아악!”
이브의 비명이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 * *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석찬은 몬스터도 착실하게 사냥하며 리자드맨 킹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고작 80마리 정도인가?”
리자드맨들은 최대 3마리 이상으로는 몰려다니지 않았고, 그마저도 굉장히 띄엄띄엄 있었다.
“오빠, 아공간 주머니에 빈자리 있어요?”
“없어. 너도?”
“네.”
석찬은 방금 막 잡은 리자드맨의 사체를 짊어졌다.
“그럼, 1층에 한번 다녀오자.”
“네.”
몬스터의 사체를 거래할 수 있는 마을은 10층에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진현과 알렉산더의 얼굴도 볼 겸 1층에 있는 마을에 가기로 결정한 석찬이었다.
“층 이동.”
명령어를 읊자 허공에 커다란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이동하시고자 하는 층을 고르십시오.]
[11층]
[10층]
[….]
[2층]
[1층]
탑 모양으로 생긴 메시지 창은 1층부터 10층까지 이동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1층.”
[1층으로 이동합니다.]
그 순간, 1층 칸이 반짝이더니 석찬과 이브가 있는 곳의 바닥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팟!
곧이어 둘의 눈앞에 친숙한 1층 초심자의 마을의 모습이 나타났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거의 2개월 만인가요?”
“그렇지.”
두 사람은 곧장 몬스터 사체 거래시장으로 향했다.
“아니, 하이오크 시체가 고작 이 정도라고?”
“아, 이 정도 이상은 못 쳐준다니까? 싫으면 10층으로 가시던가?”
“에이 씨팔! 내가 더러워서 10층 간다!”
언제나처럼 활발하면서도 약간의 욕설이 오가는 시장 풍경에 석찬이 미소 지으며 평소에 거래하던 상인에게로 향했다.
그는 에브릭과 알렉산더의 추천으로 알게 된 상인이었다.
인품도 선한 데다가 사체 값도 톡톡히 쳐줬다.
안 지는 얼마 안 됐지만 가끔 에브릭네 가게에서 밥도 먹으며 친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헌데 무슨 일인지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어? 항상 이 자리에 계신댔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석찬은 옆 가판대에 자리를 잡은 상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예? 거래하러 오셨어요?”
“그건 아닌데, 여쭤볼게 있어서요.”
거래가 아니라는 말에 상인이 약간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래 아니면 꺼….”
그 순간, 석찬이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 안에서 도축이 완료된 수십 마리의 리자드맨 시체가 쏟아졌다.
“어?”
“제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신다면 이 사체들 전부를 거래하도록 하죠.”
그 말에 상인이 찌푸렸던 얼굴을 순식간에 바로잡았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고객님!”
석찬이 텅 빈 가판대를 가리켰다.
“여기서 일하시던 상인 분, 오늘은 안 나오셨나요?”
“아, 한 사흘 전부터 안 나오고 있습니다.”
“사흘이나요?”
“네. 7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출근하더니 갑자기 안 와서 개꿀… 아니,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그의 말에 석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잠시 다녀올 데가 있으니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정말입니까?”
“약속했지 않습니까? 가격 후리기만 하지 마십시오.”
“하하… 물론이죠.”
석찬이 뿜는 미약한 살기에 상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미소 지었다.
“좋습니다. 이브, 가자.”
“네.”
팟!
둘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래?”
홀로 남겨진 상인은 천천히 리자드맨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언뜻 봐도 40마리 정도 돼 보이는 리자드맨의 시체.
‘11층 녀석들 같은데, 단둘이서 이 정도 수의 리자드맨을 사냥했다고?’
그러던 와중, 상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흑발에 건틀릿. 그리고 은발에 백안의 미소녀?’
올킬러와 은발의 천사.
둘의 정체를 깨달은 상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격 후리지 말아야겠다.’
수개월 전, 1층 사람들은 올킬러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1층에서 올킬러에게 사기를 친다? 이 말은 1층에서 장사를 접겠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그나저나 둘이서 리자드맨 40마리라니, 소문대로 괴물이구만.’
하지만 상인은 알지 못했다. 석찬의 아공간 주머니에는 아직 40마리 이상의 리자드맨 사체가 남아 있다는 것과, 대부분의 리자드맨을 그 혼자 처치했다는 것을.
* * *
거래 시장을 빠져나온 석찬과 이브는 우선 에브릭의 가게로 향했다.
벌컥!
“에브릭!”
하지만 불이 꺼진 가게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에브릭!”
가게 안을 쥐 잡듯 뒤졌지만, 에브릭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납치라도 당한 것인가? 하지만 누가? 도대체 왜?
“영주성으로 가자, 이브!”
석찬은 빠르게 건물을 빠져나와 마을 중앙에 있는 영주성으로 향했다.
“알렉산더! 김진현!”
영주성 내부로 들어서자, 무거운 표정의 알렉산더가 모습을 드러냈다.
“알렉산더!”
“아버지!”
“아, 이브랑 석찬이 왔나?”
“네.”
“그 모습은, 에브릭과 굴로한테 가본 건가?”
굴로. 사라진 상인의 이름이었다.
“네, 무슨 일이에요?”
알렉산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한 말이다만, 나도 잘 모르겠네.”
그의 말로는 에브릭 또한 사흘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진현이는 괜찮고요?”
“아, 따라와 보게나.”
알렉산더가 석찬을 데리고 지하로 향했다.
“여긴… 감옥인가요?”
“그래.”
어둡고 습한 감옥 내부에는 10명 남짓한 죄수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2분 정도 더 이동하자, 철로 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여기는?”
“우리 감옥의 자랑, 고문실이지.”
문을 열자,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둘이 감히 진현이 녀석과 나를 습격했다네.”
“히익!”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그의 눈을 보자 두 남자의 몸이 벌벌 떨렸다.
‘누군지 모르지만, 불쌍하군.’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알렉산더의 강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10층을 클리어하기 전까지만 해도 석찬은 알렉산더를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군.’
여러모로 전성기 시절의 알렉산더가 위대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근데 이놈들도 참 징하지. 사흘 동안 고문했는데 아무것도 실토를 안 했어.”
“그래요?”
석찬은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오, 올킬러.”
“날 아나?”
“알고말고. 크큭.”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석찬이 얼굴을 찡그렸다.
“너희, 에브릭이랑 굴로 씨의 행방에 대해 알고 있나?”
“우리가 얘기해줄 것 같나?”
“알고 있단 소리네?”
그 말과 동시에 석찬이 두 남자의 명치를 후려쳤다.
퍼벅!
“카학!”
피를 토하며 고개를 숙이는 두 남자.
“고작 그거 맞고 고개를 숙여? 이브.”
“네, 네?”
“이리로 와볼래?”
석찬의 불음에 이브가 엉거주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 두 사람, 치료해 줄래?”
“치, 치료요?”
“그래, 최대한 말끔하게 부탁해.”
이브는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두 남자를 치료해 주었다.
치료가 끝나자마자 석찬의 주먹이 다시금 두 남자의 명치를 후려쳤다.
“쿠에엑!”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안 보여? 때리고 있잖아.”
“그러니까 왜, 치료하라면서요?”
“치료를 안 하면 죽으니까 그렇지.”
“예? 그럼 설마….”
“맞아.”
그제야 석찬의 의도를 파악한 이브가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석찬은 고개를 돌려 무심하게 구타를 이어나갔다.
탑에 들어와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석찬은 소중한 자들을 건드린 놈들을 가만히 놔둘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