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거대한 신전 안.
한 여인이 어두운 눈빛으로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떡하지?’
수정구 속에는 막 10층을 벗어나는 석찬과 이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처음 석찬이 0층을 클리어할 때만 해도 별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녀다.
아니, 사실은 1층 출입 장소를 조작하는 것만으로도 녀석 정도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석찬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속도로 탑을 클리어해 나가고 있다.
탑에 들어온 지 고작 6개월하고 29일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 11층에 올라서다니!
일반적인 인간들이라면 3~4층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었다.
족히 2배, 아니 그 이상은 빠른 속도.
“젠장….”
그녀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10층을 통과했으면 ‘그곳’에 가게 될 터인데, 지금 석찬과 이브의 재산을 볼 때 웬만한 장비들은 전부 구매가 가능할 듯하였다.
‘만약 거기서도 ‘그 등급’을 얻는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너무 안일했다.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윗선에서는… 언제 결정을 내리려나.’
약 1개월 전, 석찬이 막 10층에 도착했을 때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결국 상부에 석찬의 존재에 관해 보고한 참이었다.
물론, 담당 안내자와 함께 대차게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다 자칫 잘못하면.’
이레귤러, 그것도 ‘그것’에 가장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다.
놈이 100층에 도달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만 했다.
‘조금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그 방법을 써야겠군.’
상부의 결정이 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석찬이 탑을 오르는 속도를 줄여야만 했다.
촤아악!
그녀의 등 뒤에서 두 장의 커다란 날개가 펼쳐졌다.
눈을 감은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 * *
[특별 상점에 입장하셨습니다.]
석찬과 이브가 이동한 곳은 어두컴컴한 어느 방 안이었다.
“특별 상점?”
알렉산더에게 들은 적이 있다.
10층 단위로 탑을 클리어할 때마다 나타나는 상점으로, 재화를 이용해 필요한 물품들을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상점이라는 이름치고는 건물은커녕 아무런 물건이나 상인 하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지?”
그때, 석찬과 이브 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 남자가 튀어나왔다.
“꺅!”
그 모습에 이브가 짧게 소리쳤다.
“하하! 안녕하십니까!”
단안경이 인상적인 중년의 남성이 호탕하게 웃었다.
“누구시죠?”
“하하! 저는 특별 상점을 운영하는 상인 케인이라고 합니다!”
특별 상점의 주인, 케인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맞잡고 흔든 석찬은 케인의 겉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는 미중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무색하지 않았다.
조금 주름졌어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으며, 단정하게 정리된 턱시도와 나비넥타이에서는 품위와 절도마저 느껴졌다.
“올킬러 님, 그리고 은발의 천사 님, 두 분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의 말에 석찬이 깜짝 놀랐다.
“저희를 아시나요?”
알렉산더에게 들은 바로는 특별 상점은 인간이 운영하는 것이 아닌 탑의 주인, 즉 신들이 운영하는 것.
“물론이죠.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신님들도 두 분을 인상 깊게 보고 계십니다.”
“그렇군요.”
“서론이 길었군요. 물건부터 보시죠.”
딱!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석찬과 이브의 눈앞으로 메시지 창이 하나 나타났다.
[특별 상점]
[잠재력을 확인 중입니다….]
“잠재력을 확인 중?”
“아, 말씀드리질 않았군요. 특별 상점에서는 잠재력 수치에 따라 상점의 등급이 매겨지고, 그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품질이 결정됩니다.”
‘아하.’
알렉산더에게는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환영합니다!]
[플래티넘 상점을 오픈합니다.]
메시지 창과 함께 백금색으로 빛나는 찬란한 상점 창이 나타났다.
“음!?”
그것을 본 케인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석찬은 그런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상점 창에 뜬 물품들을 살펴보았다.
[특별 상점(플래티넘)]
[플래티넘 상점 특전 : 모든 물건 20% 할인]
[무기류]
*도검류
- 푸른 강철 장검(레어)
- 하이오크의 장도(레어)
- …….
“와우.”
20% 할인. 이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했지만, 상점 창을 아래로 내릴수록 점점 벌어진 석찬의 입이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이건… 대박인데?”
무기류부터 시작해서 방어구, 기타 물품 등, 상점의 모든 품목을 본 석찬이 놀람을 토해냈다.
장비류는 죄다 레어 등급 이상이었고, 에픽, 심지어 그 위의 등급인 유니크 등급의 장비도 한두 개 있었다.
게다가 게임에서나 볼 수 있었던 포션도 살 수 있었다.
석찬은 당장 가지고 있는 돈을 확인해 보았다.
여유 자금을 제외해보면 약 2,700골드 정도를 사용할 수 있었다.
무기는 충분하다고 판단한 석찬은 방어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레어부터 에픽까지 수많은 종류의 방어구가 있었지만, 석찬은 단 하나의 방어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키지)서리 거인 세트]
[등급 : 유니크]
[투구, 갑옷, 장갑, 바지, 신발]
[세트 효과가 존재합니다.]
[가격 : 3,000골드(2,400골드)]
“와아….”
석찬은 구매 버튼을 누르려는 손가락을 간신히 저지하며 방어구 파츠를 하나하나 상세히 살펴보았다.
[서리 거인의 투구]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600]
[내구도 : 800/800]
[내구 + 20]
[3%의 확률로 발사체의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적의 치명타 확률을 8% 감소시킵니다.]
[서리 거인의 갑옷]
[등급 : 유니크]
[방어력 +1000]
[내구도 : 1500/1500]
[체력, 내구 + 30]
[모든 물리 피해를 10% 경감시킵니다.]
[적의 치명타 확률을 10% 감소시킵니다.]
[서리 거인의 장갑]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500]
[내구도 : 700/700]
[힘, 내구 + 15]
[모든 물리 피해를 7% 경감시킵니다.]
[적의 치명타 확률을 7% 감소시킵니다.]
[서리 거인의 바지]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800]
[내구도 : 1000/1000]
[체력 + 20]
[3%의 확률로 적의 공격을 회피합니다.]
[적의 치명타 확률을 9% 감소시킵니다.]
[서리 거인의 신발]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600]
[내구도 : 800/800]
[민첩 + 20]
[이동 속도 + 10%]
[적의 치명타 확률을 7% 감소시킵니다.]
장비 하나하나의 퀄리티가 10층에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꼭 사야 해.’
석찬은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허공에서 얼음처럼 푸른 방어구가 쏟아졌다.
방어구를 모두 장착하자, 새하얀 빛이 일며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5세트 효과 발동.]
[공격에 얼음 속성이 부여됩니다.]
“오.”
속성 부여는 어려운 기술이다. 석찬조차 아직 기본적인 4대 원소밖에 다루지 못했다.
헌데 얼음 속성이 부여된다니, 말 그대로 사기였다.
“좋았어.”
석찬은 기타 물품 중에서 조금 전에 찜해놓았던 물건을 찾아보았다.
[HP 회복 포션(대)]
[10,000의 HP를 즉시 회복합니다.]
[가격 : 50골드(40골드)]
일회용치고는 가격이 살짝 부담되긴 했지만 회복할 수 있는 HP는 대략 50% 정도.
이 정도면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MP 회복 포션도 있었지만, 무한의 마력을 지닌 석찬에게는 있으나 마나였다.
넉넉하게 HP 회복 포션(대) 5개와 그에 준하는 효과를 지닌 HP 회복 포션(중)을 10개 구입한 석찬은 이브를 바라보았다.
“이브, HP 회복 포션 샀어?”
그 말에 이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지금 사려고요.”
“그거 내가 샀으니까 넌 MP 포션만 사.”
“아녜요, 저도 돈 많아요.”
“그… 그래.”
돈주머니를 짤랑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석찬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케인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왜 이리 돈이 많아?’
유니크 장비를 봤을 땐 식겁했지만, 솔직히 가격 때문에 살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석찬은 유니크 장비를, 그것도 세트 아이템을 사버렸다.
이브라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니크 등급의 지팡이와 로브라니.
“허허허….”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저기요?”
그때, 충격에 빠져 있던 케인을 이브와 석찬이 깨웠다.
“아, 전부 구매하셨습니까?”
“네.”
“크흠, 그럼 지금부터 11층으로 전송시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웅얼거리자 석찬과 이브의 발밑에 커다란 마법진이 나타났다.
“전송!”
그 말과 함께 석찬과 이브의 신형이 사라졌고, 어두운 공간에는 케인 혼자만 남았다.
“아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일까? 케인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도 이제 모르겠다.”
그의 혼잣말이 빈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 *
휘이잉-
[1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11층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모래바람이 석찬과 이브를 반겼다.
그들의 앞에는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었다.
“이번엔 사막인가?”
10층까지 돌파하며 유추해본 결과, 5층 단위로 탑의 지형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1~5층은 숲.
6~10층은 정글.
‘그렇다면… 15층까지는 쭉 사막이겠군.’
다행히 물이나 식량은 10층에서 잔뜩 사 온 터라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크롸아아!”
그때, 등 뒤쪽에서 괴성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도마뱀의 형상을 한 인간들이 보였다.
“저것들은?”
“리자드맨이네요. 책에서 본 적 있어요.”
“쟤들, 세?”
“기록된 바로는 몸에 뒤덮인 비늘이 오크의 가죽에 비해 단단하다고는 하는데, 오빠라면 또 모르죠.”
빠직.
“크롸아아아!”
자신들을 무시하는 석찬과 이브의 모습에 도마뱀 인간, 리자드맨들은 창을 붙들고 그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디 한번.”
석찬도 리자드맨을 향해 달려갔다.
슈욱!
자신을 향해 내지른 창을 몸을 회전해 가뿐히 피한 석찬은 회전력을 이용해 녀석의 턱에 훅을 꽂아 넣었다.
콰직!
단 한 방에 으스러지는 리자드맨의 턱뼈와 비늘.
파스스.
게다가 장비의 세트 효과 때문인지 타격 부위가 조금씩 얼어붙었다.
그대로 숨통이 끊어지며 바닥에 허물어지는 동료의 모습에 다른 리자드맨들이 엉거주춤 물러났다.
“조금 단단하긴 하네.”
석찬은 주먹에 묻은 비늘을 탈탈 털어낸 뒤 녀석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씨익
“크롸아아!”
그의 비웃음에 빡친 리자드맨들이 그에게 창을 휘둘렀다.
탁!
자신에게로 향한 창날을 그대로 붙잡은 석찬.
“흐읍!”
그대로 창날을 잡아당긴 석찬.
“크롸?”
마력을 첨가한 석찬의 힘에 리자드맨들의 몸이 맥없이 석찬에게 끌려들어 왔다.
쾅!
어퍼컷에 턱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리자드맨들이 공중으로 붕 떴다 바닥에 추락했다.
텅.
[‘리자드맨의 강철 창’을 획득했습니다.]
“오!”
[리자드맨의 강철 창]
[등급 : 노멀]
[공격력 + 100]
[내구도 : 199/200]
비록 노멀 등급이긴 하지만 아이템을 획득했다.
공격력도 100으로 상당한 수준이었다.
‘좋네.’
내구도도 거의 안 닳아서 이 정도면 적어도 3~5골드쯤은 받아낼 수 있을 듯했다.
창과 사체를 챙긴 석찬은 퀘스트 창을 켜보았다.
[메인 퀘스트 - 11층(플래티넘 전용)]
[리자드맨 처치 150(미완료)]
[리자드맨 전사 처치 30(미완료)]
[리자드맨 킹 처치 1(미완료)]
‘뭐, 괜찮네.’
“이브, 너는 어때?”
“저는… 리자드맨 80마리만 처치하면 되네요.”
방금 전 3마리의 처치로 이제 147마리의 리자드맨을 더 처치해야 한다.
“어디….”
마력을 흩뿌려 탐색을 시작한 석찬.
잠시 후, 그의 마력에 엄청난 크기의 마력이 감지되었다.
‘킹 발견.’
대충 세어보니 전사급으로 추정되는 마력이랑 일반 리자드맨들도 다수 포착되었다.
“이쪽 방향으로 5시간 정도 거리인가?”
방향을 확인한 석찬이 마력 날개를 펼치려는 순간, 전혀 예상치도 못한 메시지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