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25화 (25/200)

제25화

쾅!

큰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가 사람들의 시야를 감쌌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링 위의 상황이 보이지 않자 흥분한 사람들이 마구 소리를 내질렀다.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석찬과 그의 팔을 내리친 레이놀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커헉!”

석찬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HP : 7,835/16,830]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HP.

게다가 방금 전 공격을 막고 나자, 건틀릿이 완전히 갈라지더니 조각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방어 수단도 없고, 지속된 대미지로 정신적 피로도 꽤 쌓여 있었다.

‘이대로 지는 건가.’

하지만 그때.

청량한 알림 소리와 함께 메시지창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띠링.

[봉인된 건틀릿의 1차 봉인이 풀립니다.]

[‘봉인된 건틀릿’이 ‘1차 봉인이 풀린 건틀릿’으로 변화합니다.]

[건틀릿의 등급이 오릅니다.]

[건틀릿의 스탯이 상승합니다.]

[특수 효과가 강화됩니다.]

[건틀릿의 특수 효과 하나가 잠금 해제됩니다.]

‘뭐?’

순간, 조금씩 떨어지던 건틀릿 파편이 우수수 떨어지며 그 속에 잠들어 있던 건틀릿의 본래 모습을 드러냈다.

[1차 봉인이 풀린 건틀릿]

[등급 : 에픽(봉인)]

[공격력 + 500]

[내구도 : 1000/1000]

[모든 스탯 + 20%]

[10번 공격 시 다음 공격에 3배의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봉인됨]

순식간에 몇 배는 오른 장비의 성능. 게다가 새로운 특수 효과까지 생겼다.

3배의 공격력 적용.

그것도 10번 공격 시 확정적으로 3배 공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점.

‘모든 스탯 20% 상승!’

[힘 : 170 + 34]

[민첩 : 170 + 34]

[체력 : 170 + 34]

[내구 : 170 + 34]

[마력 : 200 + 40]

늘어난 스탯과 함께 몸에서 흘러나오는 힘을 느끼며 석찬이 미소 지었다.

“쿠어어!”

레이놀드가 석찬을 향해 주먹을 내리찍었다.

‘큭!’

여전히 빠른 주먹이었지만 스탯이 올라서 그런지 전보다 피하기 훨씬 쉬웠다.

“크아아아!”

훙-훙-

다시 한 번 시작된 공방전.

석찬은 공격들을 피하며 다시금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피하기 수월해진 주먹들. 그 틈 사이로 석찬이 조금씩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훙-퍽.

휙-훙. 퍽!

“큭.”

조금씩 박히는 주먹에 레이놀드의 공격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후웅-

어느덧 현저하게 줄어든 공격 속도와 늘어진 호흡.

하지만 석찬도 거의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지금이다!’

팟!

레이놀드의 뒤로 이동한 석찬이 남은 마력을 전부 짜내 오른손에 담았다.

“이걸로 끝이다.”

석찬이 주먹을 내리꽂으려는 순간이었다.

슈슉.

“이만 여기까지 하지.”

갑자기 나타난 한 노인이 석찬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안대가 잘 어울리는 노인. 올레드 그리젤이었다.

“올레드 그리젤이다!”

“지부장님!”

그의 등장에 관중들이 또다시 떠들썩해졌다.

석찬은 자신의 주먹을 부여잡고 있는 그를 노려다 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게나.”

탁!

손을 놓은 올레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애가 졌다네.”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올레드.

“졌다고?”

“그래, 이번 승부. 자네의 승리일세.”

그의 말에 옆에 와있던 이렐리아가 크게 소리쳤다.

“승자가 났습니다. 승자는 올킬러 강석찬!”

“와아아아!”

승리 선언과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장내를 감쌌다.

‘이러니 마치 지구에 있었을 때 같군.’

선수 시절에도 원 펀치로 상대를 K.O 시킬 때마다 이런 우레와 같은 함성이 튀어나오곤 했다.

‘비록 원 펀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 이겼으니까.’

그때,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의 힘이 풀리며 석찬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석찬 오빠!”

그 모습에 이브가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으로 링 위에 올라왔다.

“이브!”

“괜찮아요?”

그녀는 석찬을 보자마자 바로 스태프를 들어 치료 마법을 시전했다.

“하하, 조금 피곤하네.”

“잠시만요.”

잠시 후 이브의 마력이 석찬의 등을 감쌌다.

우웅-

허공 위로 부상한 석찬의 몸.

“어지러울 수 있는데, 조금만 참아요.”

이브는 곧장 허공에 떠오른 석찬을 이끌고 수련실로 향했다.

실려 가는 와중, 석찬은 그녀의 마력 운용을 유심히 지켜봤다.

‘대단한데?’

물체를 허공 위로 들어 올리는 것.

석찬도 연구하고 있는 기술로 상당히 까다로운 컨트롤이 요구되는 고급 기술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력을 운용하는 거구나.’

당장에라도 마력을 운용해보고 싶었지만, 피곤한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졸리다.’

눈을 감은 석찬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번쩍.

눈을 뜨니 익숙한 방의 천장이 눈에 띄었다.

“으윽.”

몸을 일으키던 석찬은 욱신거리는 팔을 바라보았다.

붕대로 칭칭 감긴 양팔.

침대 옆에는 이브의 글씨체로 적힌 쪽지가 있었다.

-대충 치료는 해놨어요. 근데 팔은 대미지가 조금 커서 하루 이틀 더 봐야 할 거 같아요. 전 피곤해서 자러 가요. 밥 옆에 있으니까 드세요.

쪽지 옆에는 샌드위치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석찬은 샌드위치 하나를 들어 입에 가져갔다.

‘맛있네.’

전투를 막 마쳐서 그런지 굉장히 허기가 졌다.

샌드위치 두 개를 금방 해치운 석찬은 자신의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건틀릿을 살펴보았다.

이전의 검정색 건틀릿은 이제 없다.

은색과 갈색이 잘 조화를 이룬 건틀릿만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모습도 심플했던 봉인된 건틀릿의 디자인과는 달랐다.

모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빌런이 착용한 건틀릿처럼 멋들어지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변한 외형과 다르게 착용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아 매우 좋았다.

‘그래도 얻은 게 있으니까 기분 좋네.’

대결이 끝난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10층 내에 대결 결과에 관한 소문이 퍼지면서 석찬은 10층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베테랑 사냥꾼을 물리친 사나이!

이전의 명성과 더해져 10층 내에서 석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또 바뀐 점이 있다면.

“아이고, 석찬 씨. 오셨습니까?”

수련장으로 들어온 석찬을 나이르 칸이 반갑게 맞이했다.

석찬 덕분에 재산을 세 배 가까이 불린 이후, 나이르 칸은 석찬에게 엄청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수리비는 물론 10층에 있는 동안 수련장의 모든 시설을 공짜로 사용하게 해줬을 정도다.

“예.”

“오늘도 대련 한판 하시죠!”

또한, 블루 하이오크의 피를 섭취한 레이놀드를 이기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나이르 칸은 이후로 항상 석찬에게 대련을 제안했다.

석찬도 빚진 것이 있으니 수련도 할 겸 어울려주는 중이었다.

“좋습니다. 대련장으로 가시죠.”

“좋습니다, 하하!”

* * *

대련이 끝난 후.

두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 위에 엎어졌다.

“물 받으시죠.”

“감사합니다.”

나이르 칸이 건넨 물을 마시며 석찬이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나이르 칸은 강했다. 마력을 제외한 순수 육체 스탯만큼은 확실히 석찬을 능가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는 건가.’

잠시 물을 들이키던 두 사람.

석찬이 먼저 입을 열었다.

“칸.”

“예?”

“아마 대련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그 말에 나이르 칸이 살짝 멈칫했다.

“설마 다음 층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석찬은 조만간 원정을 떠날 예정이었다.

‘하이오크 킹.’

11층으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나이르 칸은 비장한 얼굴을 한 석찬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레귤러신 것 같던데.”

그의 말에 석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레귤러에 대해 아시나 봐요?”

“제가 탑에 들어온 지가 몇십 년인데, 조금은 알고 있죠.”

나이르 칸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레귤러면 0층에서 보라색 테스트를 받았을 테고, 11층 진입 조건도 많이 빡세겠네요?”

“뭐, 그쵸.”

“혹시 무엇을 잡으라고….”

“하이오크 킹이요.”

그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이오크 킹을 혼자요?”

“아뇨. 이브가 함께 갈 겁니다.”

“아, 당신은 은발의 천사와 함께 행동하셨죠.”

잠시 잡담을 나눈 석찬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럼 저는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아, 네. 제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들어가세요.”

“네.”

“떠나기 전에 제 사무실이나 한번 들러요.”

“인사드리러 가죠.”

수건을 걸친 석찬은 수련실을 향해 걸어갔다.

가는 길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수련실에 돌아오자 텅 빈 거실에서 홀로 명상을 하고 있는 이브의 모습이 보였다.

“수련실에 들어가서 하라니까 꼭 거실에서 해요.”

이브를 지나친 석찬은 화장실로 들어가 욕조에 몸을 담갔다.

“크하! 시원하다!”

씻는 것쯤이야 마력을 운용하기만 하면 됐지만, 아무래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 하지는 못했다.

“후우.”

10분 정도가 지나자 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몸을 말린 석찬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하늘.

둥근 보름달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벌써 보름이나 됐나.’

시간은 정말 빠르다.

이전에 있던 시간까지 합치면 10층에 머문 지 거의 한 달이 다 돼간다.

밝은 달을 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진현은 어떻게 지낼까? 알렉산더는 어떨까? 현재 지구의 상태는 어떨까?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빠!”

이브의 부름에 석찬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 명상에 땀을 줄줄 흘리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왜 거기서 궁상떨고 있어요?”

“궁상?”

“창밖 보면서 그러는 게 궁상 아님 뭐예요?”

“크흠.”

“난 씻을 거니까, 오빠도 빨리 씻고 자요. 내일 하이오크 킹 잡으러 간다면서요.”

“그래, 그래.”

“네.”

“이브.”

“네?”

“고마워.”

“뭐가요?”

“그냥 다.”

말을 하며 석찬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이브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뭐, 뭐래는 거야. 저 갑니다!”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석찬이 한 번 더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장내 식당에서 밥을 든든하게 챙겨먹은 석찬과 이브는 나이르 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알렉산더와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돈되고 세련된 사무실이었다.

“석찬 씨, 떠나시나 보군요.”

“네, 인사나 한번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나이르 칸이 내민 손을 붙잡은 석찬이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가시기 전에 받으세요.”

나이르 칸은 책상 위에 있던 자루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뭐죠?”

“열어 보시죠.”

자루를 열어보니 금화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것을 본 석찬의 입이 떡 벌어졌다.

“500골드입니다.”

“이거이거, 너무 신세를 지는데요?”

“에이, 제가 더 신세 많이 졌죠.”

나이르 칸은 자루를 석찬의 손에 쥐여 준 뒤 손을 흔들었다.

“11층 꼭 올라가시길 빌게요.”

“감사합니다.”

그의 배웅과 함께 수련장을 빠져나온 석찬은 썰렁한 바깥공기를 한 번 들이마셨다.

“그럼 가볼까?”

“네!”

마력 날개를 생성한 두 사람이 허공을 가르며 사라졌다.

* * *

지부장실 안.

올레드 그리젤은 천천히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자료를 살펴보았다.

“틀린 건 없겠지?”

“없습니다. 정보 길드에 의뢰한 것이니까요.”

“정보 길드라, 그쪽에서 내 정체를 아나?”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습니다.”

“좋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알지?”

노기 어린 그의 물음에 비서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레이놀드와 같은 일은 한 번이면 족해.”

“명심하겠습니다.”

“빨리 애들 보내서 처리해.”

“옙.”

비서를 내보낸 올레드 그리젤은 환하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았다.

“달이 아름답군.”

그의 얼굴에는 기괴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