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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6화 (16/200)

제16화

알렉산더가 떠나고 하루가 지나자 석찬의 몸은 어느덧 완쾌되어 있었다.

“이정도면 이제 퇴원해도 되겠네요. 회복력도 빠르시고, 부럽네요.”

이브의 허락에서 병상에서 일어난 석찬과 진현은 문밖에서 기다리던 찰스의 안내에 따라 알렉산더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오, 상처는 이제 다 나은 건가?”

“예. 이브… 아니, 따님 덕분에.”

‘이브 씨’라고 말하려고 했던 석찬은 말을 아꼈다.

왠진 모르겠지만 알렉산더는 자신의 딸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그럴 때마다 노골적인 살기를 방출하곤 했다.

“하하! 우리 이브가 치료 실력 하나는 기똥차지. 누구 딸인데 암.”

예전에 봤던 위엄 있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의 알렉산더에게서는 전형적인 딸 바보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크흠. 그래도 고작 하루 만에 병상에서 일어나다니! 역시 젊은 게 좋군.”

알렉산더는 찰스에게 마실 것과 다과를 가져오라고 명한 뒤, 조그마한 상에 앉았다.

“편히들 들게. 뭐, 처음에 도발한 거랑 살기를 쏜 건 미안했네. 오랜만에 강자를 보니까 내 전투 본능이 되살아나서 말이야, 하하!”

알렉산더는 석찬과 진현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비록 날 이기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그건 바라지도 않은 거였고. 상처도 입혔으니까 내가 아는 건 모두 말하도록 하지. 고맙게 여기라고.”

“얘기하실 거면 빨리해 주시죠.”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고. 네가 제일 궁금한 건 나에 관한 것이겠지?”

석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제 말했듯이 나 또한 자네처럼 이레귤러였네.”

이레귤러. 석찬은 그게 제일 궁금했다.

“어제부터 계속 말씀하시는데 도대체 이레귤러가 뭡니까?”

“이레귤러는 말 그대로 이레귤러, 탑의 권한을 벗어나거나 그럴 수 있는 강자들을 일컫는 말일세.”

“그렇군요. 헌데 이레귤러였다뇨? 지금은 아니라는 소립니까?”

그의 물음에 알렉산더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다네.”

“도대체 어쩌다….”

“우선 마력 운용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야겠군.”

알렉산더가 말하길, ‘마력 운용의 비서’는 석찬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귀중한 보물이라고 했다.

“탑의 강자들은 대부분이 마력 운용을 익힌 자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야. 그건 효율 면에서나, 위력 면에서나 여타 다른 스킬보다 뛰어나지.”

“그렇군요.”

“과거, 나는 마력 저장소를 보라색까지 단련시켰었네.”

보라색의 마력 저장소. 그 말에 석찬은 알렉산더의 강함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뭐, 그래 봐야 지금은 1층에서 영주 노릇이나 하고 있는 패배자에 불과하지만 말이야.”

“패배자? 당신이?”

“그래. 이게 얘기하자면 조금 긴데….”

“상관없습니다. 해주시죠.”

“그래, 과거. 그러니까 한 100년 전? 나는 동료들과 함께 탑의 96층을 공략하고 있었지.”

96층.

현재 고작 1층에 머물러 있는 석찬과 진현으로서는 아득하고도 먼 곳에 불과했다.

“내 동료들 중 일부도 나와 같은 이레귤러였네. 나는 녀석들과 함께 96층 클리어를 목전에 두고 있었지.”

알렉산더는 천천히 자신의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 * *

역사상 최고의 인간.

탑의 희망.

자신의 위상은 당시 탑 내에서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탑이 세워진 이래 최단 시간으로 94층을 공략. 이후로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최초로 95층 클리어.

그리고 마침내 96층.

당시 공략대에서 가장 강했던 알렉산더를 필두로 그의 동료, 부하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채 97층을 위한 마지막 산을 목전에 앞두고 있었다.

‘좋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모두들….’

하지만.

푹!

상황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커헉!’

거대한 검날이 알렉산더의 등을 뚫고 가슴으로 튀어나왔다.

* * *

“누가 당신을 찔렀죠?”

석찬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가슴팍에 나있는 흉터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알프레드 올가.”

“올가라면, 설마….”

“그래, 내 형이다.”

“형이면 왜….”

“지금 얘기하고 있잖냐.”

* * *

‘형님, 왜….’

알렉산더의 물음에 그의 형, 알프레드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알렉산더.’

주위의 자들을 둘러보았지만, 그들도 알렉산더의 눈을 피하기 바빴다.

‘설마… 다들….’

‘이제 그만하자.’

‘그게 무슨….’

‘너는 항상 네 멋대로야. 저 녀석들을 한 번도 너의 동료라고 생각한 적 있어? 말이 동료지, 너한테 있어서 우리는 탑을 클리어하기 위한 장기 말에 불과했어.’

믿었던 형의 독설에 알렉산더의 동공이 흔들렸다.

‘우리는 너와 목적이 달라. 너는 행성 게르만으로 돌아간다 했지만, 우리는 아냐. 우리는 탑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형님….’

‘내 검의 효과는 너도 잘 알겠지.’

* * *

“마검 카세타쥬. 그 능력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 능력은 믿기지 않겠지만 마력 저장소 파괴야.”

석찬은 놀랐다.

“마력 저장소를 파괴해요?”

“그래. 검을 정확히 마력 저장소에 찔러 넣어야만 능력이 발동되지만, 마력 운용자들에게 있어서 그 능력만큼은 그 어떤 다른 스킬보다 위협적이었지.”

마력 운용자들에게 있어서 마력 저장소란 어찌 보면 자신의 어떤 신체 부위보다 더욱 소중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것을 파괴시키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임이 틀림없었다.

“설마 그러면….”

“그래, 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네.”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는 말은 어제의 대련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은 모두 순수 신체 능력이라는 말이었다.

‘마력을 썼을 때의 모습이 상상도 가지 않는군.’

만약 알렉산더가 마력을 사용하면 어떤 느낌일까? 보라 등급이었으면 아마 마력의 절대량과 위력, 그리고 순도 또한 자신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난 마력을 잃었네.”

알렉산더는 아직도 형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를 똑똑히 기억했다.

‘혈육의 정을 생각해 죽이지는 않으마. 어차피 그 몸으로는 탑을 오르지 못할 터. 밑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아라.’

“뭐, 그렇게 돼서 난 반강제적으로 1층에서 살고 있는 걸세.”

“층간의 이동도 가능한가요?”

“그래. 자네도 곧 알게 되겠지만 탑의 사람들은 자신이 클리어한 층을 오갈 수 있지.”

“그래요? 그럼 분명 힘에 대한 밸런스가….”

아래층으로 오갈 수 있다. 그 말은 즉 90층을 클리어하던 자도 1층으로 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힘의 균형이 어긋날 것이다.

“아, 아래층에 내려가면 그것에 맞게 힘이 봉인된다네. 물론 우리 같은 마력 운용자들도 페널티가 생기고. 오, 고맙네.”

마침 찰스가 가져다준 다과를 한 입 베어 물며 알렉산더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영주 노릇이나 하면서 가끔씩 치기 어린 애송이들 중에 시비 거는 놈들이나 두들겨 패면서 지내고 있지.”

“그렇군요.”

“뭐, 원한다면 위층으로 등반할 수도 있지만… 형님과 다른 녀석들이 나한테 감시 마법을 걸어놔서 말일세. 내가 탑을 올랐다간 위에서 나를 죽이러 올 수도 있어.”

“그런가요.”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남은 생은 그냥 이브나 키우면서 살 걸세.”

“그렇다면 복수는….”

“마력 저장소를 빼고도 어차피 몇십 년이나 세월이 흘렀으니, 형님이랑 싸우면 백 퍼센트 질 걸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알렉산더의 눈에는 위층에 대한 미련이 조금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게나. 이레귤러든 위층이든 내가 아는 건 뭐든 말해줄 테니.”

“그럼 말씀 하나 여쭙죠.”

“좋아, 뭔데?”

“이 탑은 도대체 뭡니까? 만들어진 이유는 도대체 뭐고요?”

탑에 들어온 이후부터 제일 궁금했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 탑은 무엇이고, 왜 만들어졌는가. 탑을 96층까지 올라가 봤던 알렉산더라면 왠지 알 듯했다.

“내가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 같은데?”

“예?”

“■■■■■■■■■.”

‘어?’

알렉산더는 분명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무언가가 막는 것처럼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마치 튜토리얼에서 떴던 정체 모를 알림창과 같은 상황.

“자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석찬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방금 건 도대체….”

“탑에서 정보를 통제하는 거지. 너무 많은 사실을 아는 건 독이 되니까.”

그의 말에 석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과 같이 탑의 고층까지 오른 존재와 마주한 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간단하네. 탑을 오르게. 탑을 오르다 보면 자네도 이 탑에 대해 깨닫는 날이 올 걸세.”

‘탑을 올라라….’

석찬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래, 까짓거 얼마든 올라주지.’

“또 질문 없나?”

“마력 회복 속도는 도대체 어떻게 결정되는 겁니까? 보니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듯했는데.”

“마력 회복 속도라면, 아마 잠재력에 따라 결정될 걸세.”

“잠재력이요?”

잠재력에 따라 마력 회복 속도가 상승한다니. 그렇다면 자신의 그 말도 안 되는 마력 회복 속도가 설명이 됐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주황 등급답지 않게 나와 싸울 때 많은 양의 마력을 썼었지. 잠재력이 아주 높은가 봐?”

“뭐, 그렇습니다.”

굳이 무한의 잠재력을 말할 필요는 없었기에 석찬은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좋아. 다른 질문은?”

석찬은 이어서 바로 생각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탑 100층을 오르면 정말 원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겁니까?”

이것은 탑에 들어온 이후로 들었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였다.

탑에 들어오기 전 안내자가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건 너무 두루뭉술했다.

석찬의 말을 들은 알렉산더는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마 맞을 걸세.”

“당신도 제대로 모르는 겁니까?”

“뭐, 애초에 나도 96층까지밖에 못 가봤으니 잘 모르지. 그래도 아마 맞을 거야. 80층인가에서 발견한 고대 서적에 따르면 탑의 꼭대기에 오르면 무슨 소원이든 이룰 수 있다고 하네. 아마 원래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할 게야. 이건 들리나?”

“예.”

그럼 또 의문이 하나 들었다.

“그럼 왜….”

“왜 사람들은 탑을 오르지 않으려 하냐고?”

“맞습니다.”

아직 1층에 온 지 이제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석찬은 느낄 수 있었다.

마을에 있는 자들 중 탑을 오르려는 자들도 있지만, 그저 거주의 목적으로 마을에 머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알렉산더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입을 열었다.

“먼저 질문 하나 하지.”

“뭡니까?”

“내가 96층까지 오르는 동안 걸린 세월은 총 몇 년일까?”

알렉산더의 물음에 잠시 생각해 본 석찬은 조심스레 답을 말했다.

“한 10년 걸리셨습니까?”

그 말에 알렉산더가 피식 웃었다.

“핫, 어림도 없는 소리. 50년이라네.”

“50년이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50년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단순 계산으로만 해도 한 층당 반년 가까이 되는 시간이 소모되었다는 게 된다.

“그래. 그것도 나니까 그런 거지. 보통 50년이면 4-50층밖에 오르지 못한다네.”

석찬은 그제야 탑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50년이라는 기간 동안 많이 올라봐야 50층이라니. 엄청나다 못해 압도적이었다.

올가 같은 이레귤러가 아닌 이상 난도가 이렇게 높으니, 탑 등반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계속해보지.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탑에서 보내다 보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지치겠죠.”

“그래 맞아. 비록 탑의 특수성 때문에 나이는 들지 않지만 심신이 피폐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하긴, 육체와 정신은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리고 의심하게 돼. 과연 진짜 100층을 클리어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만약 아니면 어쩌지? 그렇게 회의감에 빠지고 현재에 안주하며 살게 되는 걸세.”

알렉산더의 말을 들은 석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몇십 년이 넘는 세월을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처음 들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점점 사라질 것이고, 바라던 목표가 멀거나 터무니없게 느끼면 도전보다는 안주를 택할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지금에 안주할 이유는 전혀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저는 탑을 오를 겁니다.”

복수.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이들에게 복수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 왕이나 알렉산더와 맞붙으면서 석찬은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몬스터든 인간이든 새로운 강적이 나타날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새로운 강적은 석찬에게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들과 붙어볼 수만 있다면….’

석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구에 있을 적 적수를 찾지 못했고, 챔피언도 여러 번 달성해 목표가 사라진 석찬이다.

이제야 목표가 생겼는데 그걸 실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 눈빛은… 강한 적들과 싸우고 싶나?”

“그렇습니다.”

“고블린 왕까지 해치웠으니, 지금 자네라면 1층의 클리어쯤이야 누운 채로 수프를 마시는 것보다 쉬운 일일 테지. 바로 2층으로 올라갈 예정인가?”

“그렇습니다.”

“좋아, 행운을 비네. 아 맞다. 자네들이 잡은 몬스터들의 판매 대금이 들어왔네. 이따가 나갈 때 찰스에게 받아가게나.”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그만 나가보게나. 난 조금 쉬어야겠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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