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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3화 (13/200)

제13화

거대한 크레이터 속에서 걸어 나온 석찬은 자신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칠흑의 건틀릿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피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 마력은 몸이 못 버틴다는 건가?’

확실히 마력을 일순간에 폭발시키는 기술은 뛰어나다 못해 경악스러울 수준의 위력을 자랑했다.

고블린 왕의 강인했던 신체마저도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컸다. 오른팔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앞으로 이걸 쓰는 건 자제를 좀 해야겠어.’

다짐하는 석찬의 앞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 창이 나타났다.

[고블린 왕을 처치하셨습니다.]

[300pt가 지급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무려 4개나 올랐다.

[1층의 지배자를 처치하셨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그레모리의 갑주’가 지급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고블린 왕이 입고 있던 갑옷이었다.

‘녀석 이름이 그레모리였나 보군.’

그레모리의 갑주는 전 착용자의 거대한 몸집이나 근력 때문인지, 들었을 때 다소 묵직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레모리의 갑주]

[등급 : 레어]

[방어력 + 200]

[내구도 : 374/500]

[내구 + 10]

‘오 좋은데?’

내구를 무려 10이나 늘려준다.

게다가 무게 또한 보기와 달리 착용을 해보니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사이즈 또한 알아서 몸의 크기에 맞게 조절되었고, 민소매라서 철갑 갑옷임에도 팔을 움직이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진현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석찬은 천천히 진현이 있던 장소를 살펴보았고, 곧 입가에 작은 미소가 달렸다.

결과는 진현의 승리.

얼굴이 피떡이 된 호위 고블린의 시체가 진현 앞에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진현 또한 멀쩡하지는 않았다. 가죽 갑옷 여기저기가 적의 검에 베여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찬의 빠르게 진현에게로 다가갔다.

“김진현!”

석찬의 목소리에 진현의 그의 쪽을 바라보았다.

“어.”

“끝났다. 왕은 죽였어.”

“그래? 잘됐네.”

“뭘. 너도 잘됐나 보네?”

진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가운 시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 조금 위험하긴 했는데, 녀석이 네 쪽에서 일어난 비명소리에 정신 팔린 사이에 한 대 팍!”

“욜.”

“욜은 개뿔. 그거 아니었으면 내가 뒤졌을지도 몰라. 지금 HP 100도 안 남았어.”

진현은 뭔가 우울한 표정이었다.

딱!

석찬의 주먹이 진현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 씨, 뭐야 새꺄?”

“힘 조절 제대로 해서 쳤으니까 엄살 피우지 마라.”

“엄살은 무슨, 방금 걸로 HP 30이나 닳았거든?”

“좀만 더 세게 때리려다 참은 거다.”

“이 새끼가….”

“어쨌든 내 말은, 왜 이긴 놈이 그렇게 얼굴이 죽상이냐는 거야.”

그 말에 진현이 움찔했다.

“그래 보이냐?”

“응. 아주 그냥 오만상을 다 찌푸리던데?”

“그야….”

“뭐, 적이 방심해서 이긴 건 이긴 게 아니다, 이런 거냐?”

“…….”

석찬의 말에 진현이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탑에 오기 전까지 진현의 프로 전적은 23전 7승 16패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30퍼센트를 약간 넘은 저조한 승률이라며 그를 그저 그런 선수로 취급했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그를 만난 선수들은 무조건 그를 은퇴한 강석찬을 대신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렇게 승률이 낮은 데에는 진현은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상대를 철저히 분석한 다음, 평소 경기에서 보이는 상대의 모습과 비교해 컨디션이 저조하다거나 부상이 있다고 느끼면 가차 없이 기권을 해버렸다.

지 딴에는 상대와 동등한 입장에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걸 보는 관원들과 석찬의 입장에서는 고구마 백 개는 먹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현의 이런 특성을 알게 된 상대들은 일부러 부상이 있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복싱 선수 주제에 정말 배우처럼 연기하며 기권승을 따냈다.

그렇게 몇 번 당하고도 진현은 상대가 진짜 부상이었을지도 모른다며 계속 기권을 한다.

보는 입장으로서는 진짜 전력으로 명치에 스트레이트를 한 방 꽂아버리고 싶었다.

“으휴, 답답한 놈. 하여간 이럴 때마다 진짜 뚝배기 깨버리고 싶다니까?”

“…….”

“이겼잖아? 원래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는 놈이 장땡이야. 너 산체스 브리타 기억나지?”

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당연히 기억나지. 더러운 새끼.”

산체스 브리타. 전성기 때는 WBA에서 미들급 챔피언을 하던 녀석이자, 상대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기를 하는 남자로 유명했다.

“녀석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너 같은 놈은 걔를 보고 좀 배워야 돼.”

석찬의 말에 진현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 쓰레기한테서 뭘 배우라는….”

“쓰레기는 맞지. 하지만 네 모습을 봐라. 아니, 기습해서 이겼다고 우울해져 있는 새끼가 세상에 어디 있냐?”

“…….”

“그래, 프로 때는 그래도 됐어. 경기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석찬은 진중한 분위기로 말을 이었다.

“이건 경기 따위가 아니야. 이기지 못하면 죽어. 그게 우리 처지야. 그리고 여기서 규칙 따위는 없어. 아마 산체스였으면 별짓을 다하면서 싸웠을 거다.”

석찬은 어느새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약하면 잡아먹힌다.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고블린 백인장부터, 플래티넘 테스트를 거치며 만났던 몬스터들, 그리고 이번에 상대한 고블린 왕, 그레모리까지.

지는 순간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석찬이었다. 그랬기에 친구인 진현에게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진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 중인 듯했다.

“생각 좀 해봐.”

“그래.”

“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석찬이 네 말이 맞아. 앞으로 더 강한 상대도 만날 텐데, 이런 마음가짐으로 있으면 안 되겠지.”

진현의 눈은 다시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좋았어,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그래, 그런 의미에서 자랑 좀 하자면, 방금 혼자 놈 잡은 걸로 레벨 2개나 올랐다.”

“풉.”

“뭐가 풉이야?”

“난 4개 오름.”

“젠장.”

다시 자신이 알던 모습으로 돌아온 진현의 모습에 석찬의 입가에 웃음이 짙게 피어났다.

[누군가가 고블린 왕을 처치했습니다.]

[돌발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순위를 집계합니다.]

[1. 강석찬 : 1,171pt]

[2. 김진현 : 250pt]

[3. 에드워드 크릴 : 241pt]

[4. 크툴라나 : 237pt]

[5. 찰스먼 주니어 : 233pt]

“2등이다!”

진현이 포효했다. 솔직히 이건 몬스터들이 전부 석찬과 진현 둘에게 달라붙은 게 컸다.

‘1,171포인트라니. 많이도 모았구나.’

2위와 거의 1,000점 가까이 차이나는 압도적인 점수 차. 그렇게 돌발 퀘스트가 끝이 났다.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3개나 더 올랐다. 게다가.

[‘그레모리의 건틀릿’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테이터스 상승의 비약’을 획득하셨습니다.]

하늘에서 거대한 건틀릿 한 쌍과 물병 하나가 떨어졌다.

[그레모리의 건틀릿]

[등급 : 레어]

[공격력 + 80]

[내구도 : 149/250]

“휴, 이것도 크구만?”

봉인된 건틀릿을 벗고 그레모리의 건틀릿을 한번 착용해 보았다.

[그레모리의 갑주와 건틀릿을 동시 착용하셨습니다.]

[세트 효과 적용!]

[모든 스테이터스가 3% 상승합니다.]

‘세트 효과!’

“…….”

세트 효과라는 말에 처음에는 기대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봉인된 건틀릿 효과의 하위 호환이었고, 착용감이 달라 무언가 이질감이 들었다.

‘흠. 굳이 쓸 필요는 없겠는데.’

석찬은 옆에서 실실거리며 쪼개고 있는 진현을 바라보았다.

“야.”

“어?”

진현은 대답하면서도 입꼬리를 움찔거렸다.

“뭐 좋은 거라도 나왔냐?”

“흐흐….”

진현은 들고 있던 텅 빈 물병 하나를 석찬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하하! 스테이터스 상승의 비약이래! 무려 모든 스탯을 5나 증가시켜 줬다고! 하하하!”

그 말에 석찬은 자신의 스테이터스 상승의 비약을 꺼내보았다.

“이거? 나도 받았는데?”

“에?”

“그리고 애초에 내가 1등이야. 네 것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쁠 리가 있나?”

“…젠장!”

석찬은 병의 마개를 따 냄새를 한 번 맡아보았다.

“냄새는 좋네.”

꿀꺽.

석찬은 단숨에 비약을 들이켰다. 달달한 맛의 비약이 목구멍을 타고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띠링.

[스테이터스 상승의 비약을 섭취하셨습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10 상승합니다.]

“오?”

하지만.

[육체의 힘이 비약을 뛰어넘습니다.]

[비약의 효과가 하향 조절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1 상승합니다.]

“아. 씨X.”

가슴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10에서 1로 하향 조절이라니? 50스탯 받을 거를 5스탯밖에 못 받았다.

“왜?”

“모든 스탯 10 상승에서 1로 바뀜.”

“으읭?”

“나도 모르겠다. 육체의 힘이 비약을 뛰어넘다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푸하하하!”

진현이 배꼽을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미친! 크하하하하!”

이젠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다.

‘죽일까?’

그런 생각이 들던 도중, 석찬이 무언가를 생각해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리 진현이, 내가 보상 덜 받은 게 그렇게 웃겨?”

“푸하하하! 당연한 거 아냐?”

그 말에 석찬이 씨익 웃었다.

“흐음, 내가 우리 진현이한테 보상으로 받은 건틀릿을 주려 그랬는데….”

미친 듯이 웃던 진현이 웃음을 멈추었다.

“뭐? 보상으로 받은 건틀릿을 준다고? 나한테?”

“아냐아냐. 그냥 내가 쓰지 뭐.”

“잠시만요. 석찬 형님.”

“에이, 뭐가 형님이야? 그냥 마저 웃어.”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형님.”

“에이, 우리 진현이가 뭘 미쳐?”

“죄송합니다! 제발 자비를.”

한순간에 진현이 순해졌다.

‘역시 이놈은 다루기 쉽다니까? 그래도 괘씸하니.’

석찬은 이후로 몇 번을 더 형님 소리를 듣고 나서야 진현에게 건틀릿을 넘겼다.

진현은 마치 신성한 물건이라도 만지는 듯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어 건틀릿을 받았다.

“우오오! 미천한 제게 이런 귀한 것을…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라 그럼. 내가 앞으로 평생 니 형이다?”

“어…?”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인지, 진현의 얼굴이 붉어졌다.

“크흠… 에이, 그래도 평생 형님은 좀….”

“나도 평생 형님 소리는 듣기 싫다.”

“그렇지? 그럼….”

“그래도 한 일주일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젠장.”

“뭐? 젠장?”

“크흠, 아니야.”

“아니야? 하늘 같은 형님한테 반말을?”

“아닙…니다….”

“그렇지. 이제 해도 떴을 거 같으니 마을로 출발하자꾸나, 아우야.”

“예, 예….”

‘젠장….’

“속으로 욕하지 마라, 다 들린다.”

‘젠장!! @#*&$%(^%’

진현은 속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은 전부 내뱉었다.

그래도 새로운 건틀릿 덕분인지 입에서 미소는 떠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고맙다, 석찬아.’

* * *

“밖이다.”

고작 하룻밤 햇빛을 보지 못한 것뿐이었는데, 거의 2주 동안 자연광을 보지 못했던 0층에 있었을 때보다 더 햇빛이 반가웠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석찬의 뒤로 진현이 키의 몇 배나 되는 거대한 보따리를 싸매고 궁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진현이 메고 있는 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자신들이 물리친 몬스터들의 시체들이었다.

“거 빨리 빨리 좀 움직여라!”

석찬의 거드름에 진현이 억지 미소를 한껏 장전한 채 답했다.

“예… 예! 갑니다, 가요!”

‘젠장, 고맙다는 말 취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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