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잠재력 무한-10화 (10/200)

제10화

펑!

한 대에 한 마리.

퍼벙!

쓰러지면 또다시 상대를 찾아 한 대에 한 마리.

석찬의 패턴은 한결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보이는 족족 몬스터를 사냥했고,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포인트는 무려 451포인트. 2위와도 무려 200포인트가 넘는 압도적인 격차였다.

장장 2시간을 넘어가는 전투에 많은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초심자의 마을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소탕할 수 있었다.

“와아아!”

몬스터들을 몰아냈다는 기쁨에 사람들이 환호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강석찬!”

진현도 꽤 열심히 싸웠는지 갑옷은 군데군데 찢겨나가고 그을렸으며, 건틀릿에는 고블린의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키햐, 아주 그냥 날아다니더구만? 우리 석찬이. 저기 저 사람들 보이지? 쫄아가지고 오지도 못하네.”

주위를 둘러보니 눈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긴, 조금 전 석찬의 모습은 마치 전장에 강림한 전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고블린들을 학살했었다. 두려워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나저나 아직 퀘스트가 끝나지 않았어.”

퀘스트의 클리어 요구 조건은 두 개.

고블린 왕을 죽이거나, 제한 시간 동안 무사히 마을을 지키는 것.

이대로 쭉 시간을 보낸다면 아마 무난하게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석찬은 이대로 퀘스트를 끝낼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진현아.”

“응?”

“우린 고블린 왕을 친다.”

“뭐? 고블린 왕?”

석찬의 말을 들은 진현이 기겁한 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왕이라니!”

“왕을 잡으면 뭘 줄지 기대되지 않아?”

미끼를 던졌음에도 진현은 걸려들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기대는 무슨. 너 고블린 왕이 어떤 몬스터인 줄 알고 말하는 거야?”

진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말로는 최근 30년 동안 초심자의 마을에서 고블린 왕을 토벌하려고 토벌대가 꾸려진 적이 딱 다섯 번 있었다.

하지만 고블린 왕과 그 호위들은 1층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는 괴물이었고, 다섯 번의 토벌 모두가 실패로 돌아갔다.

“생환자들 말로는 막 오크처럼 거대한 덩치에 한 발짝 걸으니까 땅이 울렸다나 뭐라나?”

“넌 1층 온 지 2주밖에 안 됐다는 놈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훗, 내 정보력이 이 정도야.”

“꼴값 떤다.”

자신에 심취해서 진상을 떠는 진현을 뒤로하고 석찬은 여기저기가 무너진 방벽 주변을 걸었다.

마을 밖에는 치열한 전투를 벌인 듯한 흔적과 가드와 고블린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새꺄, 거서 뭐 해!”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진현을 바라보며 석찬은 옆에 있는 횃불을 하나 집어 들었다.

“받아!”

“어, 어!”

석찬이 던진 횃불을 받아든 진현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와.”

석찬은 빨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며 벽 밖으로 서서히 걸어 나갔다.

“미친놈아! 진짜 나가게?”

진현의 외침에 사람들의 관심이 전부 석찬의 쪽으로 쏠렸다.

“뭐야? 지금 벽 밖으로 나가려는 거야?”

“설마 왕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저놈의 주둥아리를 확.”

“앗, 쏘리 쏘리.”

석찬은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무시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지금 뭐 하는 거냐?”

금발에 벽안을 지닌 그는 2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 거대한 키에 자신의 몸만 한 대검을 등에 메고 있었다.

“누구신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을 하십니까?”

석찬의 정중한 대답에 남자가 기가 막히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 나를 모른다고? 내 이름은 에드워드 크릴이다.”

“에드워드 크릴… 아.”

에드워드 크릴. 퀘스트가 시작된 이후, 현재까지 총 247포인트를 기록해 2등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사나이였다.

“이름이 강석찬이었나?”

“그렇습니다만.”

“그래, 나도 네 녀석이 고블린들을 학살하는 모습, 아주 잘 봤다. 400포인트가 넘는다니. 1층에서 나보다 강한 녀석은 정말 오랜만이야.”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하실 말씀이?”

“하지만, 그래도 고블린 왕은 무리라고 말해주고 싶은 거다. 그 녀석은 절대 1층에 있을 수준의 몬스터가 아니야. 그 녀석은… 재앙(災殃)이다.”

“재앙?”

“그래, 3년 전, 난 녀석을 죽이기 위한 토벌대에 참여했었지. 그리고….”

에드워드가 자신의 상의를 풀어 제쳤다.

그의 몸에는 화상과 자상 등의 흉터가 여럿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돋보이는 것은 가슴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나 있는 거대한 이빨 자국이었다.

“이 꼴이 됐지.”

공동 내에 정적이 흘렀다.

“그때 녀석의 상처 때문에 난 거의 죽을 뻔했다. 그리고 너, 에브 그 양반 알아?”

“에브요? 혹시 에브릭 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양반. 그 양반도 한때 이 마을을 주름잡는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에브릭 씨가 사냥꾼이었다니. 하긴, 그 정도의 근육은 단련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지.’

에드워드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흥분해 에브릭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해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다 못한 석찬이 그의 입을 막을 정도였다.

“그래서, 제게 말씀하시고 싶은 요점이 뭡니까?”

“크흠, 흥분했군. 들었다시피 그 양반 전성기 시절은 정말 대단했지. 너처럼 보름달의 기운을 받은 고블린들도 곧장 베어내며 그 위명을 떨쳤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양반도 당했다. 15년 전에 나섰던 토벌에서 말이지.”

“예?”

“뭐 나야, 상처가 얕아 지금도 싸울 수 있긴 했지만, 그 양반은 사람들 구하려고 무리하다 전투가 불가능한 몸이 되었지.”

‘그런 사연이….’

어두워진 석찬의 표정을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말을 이었다.

“괜한 노파심에 하는 얘기였어. 지금 내 얘길 듣고도 가려면 가라. 아무도 신경 안 쓰니까. 뭐, 우리야 네가 죽으면 순위 하나씩 공짜로 올라가고 좋은 거지.”

에드워드는 풀어 헤친 상의를 정리하며 유유하게 자리를 떠났다.

“…….”

“저기, 석찬아?”

“어?”

“진짜 갈 거야?”

“…가야지.”

“뭐? 방금 얘기 들었잖아.”

“그래도 갈 거야.”

“도대체 왜?”

“보스 몬스터라면 당연히 경험치도 엄청나겠지. 게다가 포인트도 엄청날 거고.”

“고작 경험치 때문에 목숨을 날리려고?”

“내가 일부러 이러겠냐? 다 생각이 있으니까 넌 걱정 붙들어 매고 있어.”

“…진짜지?”

“물론. 나 못 봤어? 고블린 정도는 한 방이야.”

“음… 에이씨 모르겠다. 그래, 가자!”

진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자신감에 가득 찬 석찬의 얼굴을 보고 결국 그의 제안을 승낙했다.

“좋아, 그럼 당장 출발하자.”

“그래.”

“잠깐만!”

큰 소리와 함께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거구의 사내가 걸어왔다.

“에브릭 씨.”

“너희들, 진짜 고블린 왕을 잡겠다고?”

“예.”

석찬의 확신에 찬 대답에 에브릭의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위험하단 건 잘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그래, 석찬이 자넨 강하니까, 전성기 시절의 내가 철부지 꼬맹이처럼 느껴질 만큼 말이야.”

전 1층 최강자의 충격적 발언에 주위가 금세 어수선해졌다.

“가려면 가게. 아무도 자넬 막지 못하니까.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주게.”

“무엇이죠?”

“진현이 녀석이랑 꼭 살아서 돌아오게나. 저 녀석한텐 못 받은 음식 값이 있거든.”

그 말에 석찬은 피식 웃었다.

“그 정도쯤이야 뭐. 알겠습니다.”

에브릭이 석찬에게 주머니 하나를 던졌다.

“이거 받게나!”

“이게 뭐죠?”

“열어보게나.”

주머니를 개봉하자, 숲의 자세한 지형이 그려진 지도가 하나 나타났다.

“이건….”

“고블린 왕의 서식지가 나와 있는 지도일세.”

지도를 살펴본 석찬은 에브릭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작 이거 가지고 뭘, 꼭 살아서 봄세.”

“예.”

고블린 왕을 찾아 떠나는 석찬과 진현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혀를 찼다.

“쯧쯧, 고블린 왕을 고작 둘이서? 차라리 탑 100층을 올라간다고 해라.”

“난 저 두 녀석 이름이 30분 안에 랭킹보드에서 사라진다에 1골드 걸지.”

“하! 나는 20분에 10골드 건다!”

그러자 조용히 있던 에브릭이 입을 열었다.

“난 녀석들이 멀쩡히 살아 돌아온다는 것에 내 전 재산과 검을 걸지.”

자신의 검을 건다.

비록 출신 행성은 모두 달라도 검사 중에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전의 발언을 뛰어넘는 초충격적인 발언에 사람들이 흥분해서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반드시 돌아올 걸세.”

* * *

어두컴컴한 숲속.

석찬과 진현은 에브릭이 준 지도를 보며 고블린 왕의 서식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나무가 울창해 어둡던 숲은 밤이 되자 거의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어우씨, 안 보여. 넌 잘 보이냐?”

석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으로 강화시킨 시야는 어두운 숲속도 환한 공터처럼 만들어주었다.

석찬은 빠르게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효. 그나저나 인생 참 신기하다.”

“뭐가?”

“판타지 소설에서나 보던 게 실제로 일어나고 말이야. 와, 복싱하길 잘했다. 그치?”

석찬은 조용히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 일이 일어난 지 3주가 넘은 지금까지도 믿기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잃어버렸던 눈과 팔이 다시 돌아오다니. 복싱을 다시 할 수 있다니.

많은 생각이 석찬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석찬아!”

진현의 목소리가 고막을 강타했다.

“어… 어?”

“갑자기 뭐 해?”

“아무것도 아니야.”

석찬은 고개를 내저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나저나 몬스터들이 한 마리도 안 보이네?”

“그러게. 쫄기라도 했나 짜식들?”

실제로 마을 정문을 지나 숲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숲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동한 지 약 30분. 아직도 몬스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어디 갔냐? 자기라도 하나?”

그렇게 의아함을 가지며 걷던 중, 메시지 창 하나가 떠올랐다.

[고블린 왕의 영역에 침입하셨습니다.]

[모든 몬스터의 공격 대상이 침입자로 변경됩니다.]

“…….”

“…….”

쿠구구궁.

잠시 후, 사방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지?”

“맞는 것 같은데?”

석찬은 팔에 마력을 불어넣은 채 긴장감을 유지했다.

쿵! 쿵! 쿵!

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고, 두 사람의 긴장과 불안감도 더욱 증폭되었다.

풀숲에서 근육이 터질 듯한 자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크롸아아!”

녀석은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진현을 향해 앞발을 내리치려 했다.

“어딜.”

쾅!

하지만 한 박자 빠른 석찬의 주먹이 자칼의 두개골을 단번에 으스러트렸다.

“크롸아아!”

사방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크르르….”

“케륵, 케륵!”

몬스터 군단은 순식간에 석찬과 진현의 주변에 둥그렇게 포진했다.

“젠장!”

퇴로가 막히자, 진현이 욕설을 내뱉으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석찬아, 어떡하냐?”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석찬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싸워야지.”

단호한 그의 대답에 진현도 가드를 들어올렸다.

“젠장, 그래. 오늘 싸우고 뒤지자.”

“너는 최대한 버티는 것에 집중해.”

“씨, 버티는 것도 가능할지나 모르겠다.”

“그래도 최대한 버텨봐.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오키.”

그렇게-

“간다.”

탑 1층의 역사에 길이 남을 석찬과 진현의 첫 번째 전투가 그 막을 올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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