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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8화 (8/200)

제8화

푹!

말을 끝맺기도 전에 석찬을 연행하려던 사내의 머리가 화살에 꿰뚫렸다.

머리에 화살이 꽂힌 사내는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곧이어 또 다른 화살들이 석찬을 향해 날아왔다.

석찬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서 모든 화살을 피해냈다.

“이 까짓것 백 번은 쏴도 날 못 맞힌다. 그러니 어서 나와!”

석찬의 호통에 잠시 화살 세례가 멈추더니, 이내 곧 한 무리의 고블린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모습이 좀 남달랐다.

눈이 약간 출혈되고 몸의 핏줄이 약간 도드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튜토리얼의 보스였던 고블린의 기운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크르륵….”

“그래, 한판 붙자 이거냐?”

석찬은 말을 하며 마력을 일으키려했다. 하지만 어찌 된 것인지 마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지?”

“키에엑!”

그사이에 고블린들은 다시금 활에 시위를 메겨 공격 태세를 갖췄다.

“케륵!”

한 고블린의 신호와 함께 일제히 화살들이 석찬을 향해 날아왔다.

석찬은 가볍게 모든 화살을 회피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친, 강석찬! 봉인 수갑 때문에 아마 마력 발동이 안 될 거야! 잠만 기다려!”

주먹을 쥔 채 달려오는 진현의 말에 석찬은 손목을 감싼 수갑을 바라보았다.

‘그런가. 이거 때문에.’

수갑을 끊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훼손시키기가 조금 꺼려졌다.

“그래, 어차피 니들쯤은….”

석찬은 다리에 힘을 준 뒤 빠르게 고블린들 앞으로 달려갔다.

“케… 케륵?”

“마력 따위 없어도 돼!”

당황하는 고블린의 머리와 석찬의 머리가 맞부딪혔다.

콰직.

호두 까지는 소리가 나며 고블린의 머리가 말 그대로 으깨졌다.

“키… 키에….”

순식간에 동료가 당하자 주위의 고블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니들도 일루 와.”

“키, 키에엑!”

그제야 다급히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옆으로 이동한 석찬의 발길질에 고블린 한 마리가 저 멀리 날아갔다. 이어진 발길질에 추가로 두 마리의 고블린이 명을 달리했다.

“케, 케륵!”

세 동료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기회로 남은 고블린들이 화살을 날렸지만, 석찬은 그것들을 농락하듯 피해낸 뒤 나머지 녀석들을 전부 단숨에 처리해버렸다.

아쉽게도 급이 낮은 몬스터들이라서 그런지 레벨이 오르는 일은 없었다.

“야, 야, 야!”

마침 벨트를 거꾸로 찬 진현이 헐레벌떡 다가왔다.

“왔냐?”

“헥, 헥, 미친 놈. 강화된 고블린을 원큐에 보내다니….”

“벨트부터 똑바로 매고 말해라. 그보다 저게 강화된 거였어?”

강화.

밤이 되면 강해지는 몬스터들을 분류하는 단위다.

단계가 총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있었다.

“어디 보자, 미친, 2단계?”

“2단계면 얼마나 센 건데?”

“미친 평소의 1.5배잖아! 와 역시 무친 놈. 그나저나, 이제 막 날이 저무는데 2단계라… 보름이라 그런가?”

“그래? 그럼 나 이거나 풀어줘.”

석찬이 수갑 찬 손목을 들이밀었다.

“그래, 와 잠만, 너 그럼 스킬… 아니 마력도 없이 싸운 거여?”

“어.”

진현은 연신 감탄을 내뱉으며 조심스레 수갑을 풀어냈다. 마법이 걸려 있는 수갑이라 막 다루지는 않았다.

수갑이 풀린 석찬은 제대로 다시 움직이는 마력을 확인하며 바닥에 쓰러진 차가운 시체 하나를 바라보았다.

“아, 가드. 가드면 10레벨일 텐데. 2단계 고블린 궁수였으니 별수 없는 건가?”

진현은 잠시 동안 그를 바라보더니,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잠만, 이 사람은 어떻게 해?”

“고블린 궁수의 화살촉은 맹독을 가지고 있어. 잘못했다 중독되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내가 사람들한테 삽 같은 거 있냐고 물어볼게.”

“…그래.”

잠시 후, 일행 몇 명과 함께 돌아온 진현은 삽으로 구덩이를 파더니 화살을 제거한 사내의 시신을 조심히 구덩이 속에 집어넣고 다시 메꿨다.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줘야지.”

이후, 주위에 적당한 돌을 찾은 진현은 알맞은 크기로 박살 내 무덤 앞에 세워 두었다.

“자, 가자.”

“그래.”

* * *

방벽 앞에서 석찬의 명패가 또다시 말썽을 일으킬 뻔했지만, 진현이 가드들에게 돈주머니를 슬쩍 건네면서 어떻게 잘 넘어올 수 있었다.

“에효, 가드 새끼들. 내 피 같은 돈.”

“내가 나중에 갚을게.”

“꼭 갚아.”

“알았어, 그나저나 우리 이제 어디 가냐?”

“시장. 잡은 거 팔아야지.”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초심자 마을에서 제일 거대한 시설이자, 없는 게 없다는 몬스터 부산물 도매 시장으로 향했다.

“쌉니다, 싸요! 1등급 자칼 갈빗살이 고작 15실버!”

“마석 사요!”

“쪼금만 더 깎아줘!”

도매 시장이라는 이름답게 꽤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후딱 해치우고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야, 그나저나 마석이 뭐냐?”

“마석? 말 그대로 마력이 깃든 돌. 무기 만들거나, 동력에 쓰는데?”

“그래? 어떻게 얻는데?”

“강화된 몬스터를 잡으면… 아!”

말을 잇던 진현이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주위의 시선이 한 번에 집중되었다.

“미친 새꺄, 갑자기 소리를 왜 질러?”

“니가 잡은 2단계 고블린 궁수들! 아씨 잠만, 12마리였으니까, 2단계면 최소 3갠데 미친.”

“그게 뭐 어때서.”

“미친놈아, 마석 3개면 돈이 얼만데!”

“얼만데?”

“하나당 최소 1골드야!”

“1골드?”

당연한 말이지만, 탑에서도 화폐가 있었다. 1브론즈가 100개 모이면 1실버, 그리고 그 실버가 100개 모이면 1골드다.

1브론즈가 한화로 약 100원 정도의 물가라 했으니 1골드면….

“100만 원?”

“그래 이 미친놈아! 넌 지금 300만 원을 버리려는 거다! 잠깐만, 나 야간 사냥 명패 있거든, 당장….”

“그 돈 내가 줄 테니까 닥쳐라 진현아.”

“엥? 니가 돈이 어디 있다고?”

석찬은 조용히 축복받은 랜덤박스에서 얻은 10골드 중 3골드를 떼어 진현에게 건넸다.

“에엑? 너 이 돈 어디서 났어?”

“0층 깨고 얻었다.”

“미친, 대박. 내가 3주 동안 피땀 흘리면서 번 돈을 한 번에… 갑자기 때리고 싶어지네.”

“때릴 수 있음 때려 보시든가.”

“아오, 이걸 진짜!”

진현은 주먹으로 석찬의 머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어쨌든 돈 고맙고! 기념으로 내가 밥이나 쏜다. 따라와!”

진현은 석찬을 데리고 한 여관 겸 식당으로 데려갔다.

[카이젠 여관]

[식사 가능]

허름하지만 나름 깔끔한 디자인의 간판.

띠링~ 띠링~

가게 안은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저 왔어요!”

“진현이냐?”

주방에서 한 거구의 수염 난 아저씨가 걸어 나왔다.

“누구…?”

“아, 석찬아, 이쪽은 나 여기 오고 나서 많이 도와준 아저씨, 아저씨, 얘는 탑에 오기 전까지도 저랑 제일 친했던 베프예요.”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에브릭 구스트먼이다. 진현이 친구라면 말 놔도 되겠지? 편하게 에브릭이라고 부르게나.”

“편하게 하시죠, 에브릭 씨. 강석찬입니다.”

“진현이랑 다르게 예의가 바른 친구구먼.”

“아 쫌! 이상한 소리하지 마쇼.”

“허허, 들어오게나.”

자리에 앉은 석찬과 진현 앞으로 에브릭이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자넨 오늘 처음 왔으니 식사류 하나는 공짜로 내주겠네.”

“오, 아저씨 나도!”

“넌 돈 내고 먹어라.”

“쳇.”

“감사합니다.”

“석찬아, 아무거나 골라. 저 아저씨가 저렇게 생겼어도 요리 솜씨는 기깔난다.”

“음… 그럼 자칼 고기로 만든 숯불바비큐랑 톡 쏘는 블루 레몬 소다? 이거 주세요.”

“알겠네.”

“난 늘 먹던 거로 주쇼.”

“쥐꼬리 무침 말하는 건가?”

“헛소리 말고! 자칼 양념갈비. 맥주랑 해서 빨리 주슈.”

“알았다.”

메뉴판을 챙긴 에브릭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진현이 입을 열었다.

“아우, 쥐꼬리 무침은 얼어 죽을 쥐꼬리 무침이냐.”

“그래도, 좋으신 분인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그동안 저 아저씨 덕 많이 봐서, 고마운 게 많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에브릭이 완성된 요리를 가지고 왔다.

“맛있게 드시게나.”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진현의 말이 허풍이 아닌 듯 음식의 맛은 훌륭했다. 진현은 갈비를 통째로 잡은 채 사나운 기세로 물어뜯고 있었다.

“좀 천천히 먹어라.”

“어우 마이어(너무 맛있어.)”

“다 큰놈이 입에다 음식이나 물고 말하냐?”

그때, 에브릭이 술과 함께 의자를 하나 가져오더니 옆에 앉았다.

“움, 어비으?(음, 서비스?)”

“내꺼다. 그보다, 합석해도 되겠지?”

“물론이죠.”

“하, 저놈도 너처럼 예의 바르면 얼마나 좋을까.”

“@#%*&$#^!”

“뭐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 말에 진현이 입안의 음식을 다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아저씨. 얘 제 친구예요!”

“버르장머리 없게 말대답은.”

“쳇.”

이후로 진현은 계속해서 혼자 먹고 마시더니 금세 자리에서 곯아떨어졌다.

“커어어어!”

의자에 앉은 채 자는 진현을 보며 취기가 오른 에브릭이 석찬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석찬이 자넨, 저 녀석이랑 절친한 친구라고?”

“그렇죠.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그럼 둘이 안 지 몇 년이나 됐나?”

“어디 보자, 한 20년?”

“20년밖에 안됐나? 아, 지구에서는 한평생이 100년이라고 진현이 녀석이 그랬었지?”

“혹시 에브릭 씨는 다른 행성에서 오신 분이신가요?”

“그래.”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이라니. 석찬은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몰랐나? 이 탑 안에는 수십, 아니 수백 개의 행성에서 온 인간들로 가득하다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에브릭 씨께서는 어느 행성에서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못 말할 것도 없지. 난 행성 카이젠에서 왔다네.”

“카이젠?”

“그래. 위대한 전투 민족의 행성이지. 그곳에서는 어린 녀석도 바위 하나는 거뜬히 들 수 있다네.”

“그렇군요. 대단하네요.”

“하하. 그렇지. 내 아들도 지금 열심히 탑을 오르고 있을 거야!”

“아들도 계셨어요?”

“그래. 녀석은 천재야. 무려 보라색 시험을 통과했지.”

보라색 시험이라니. 대단했다.

하지만 왠지 말을 하는 에브릭의 모습이 자부심이 들면서도 무언가 쓸쓸해 보였다.

“지 어미가 없는데도 잘 자라주었어.”

“혹시 아내분이….”

“내가 카이젠 행성에 있었을 때, 하늘의 별이 됐네.”

“그렇군요. 괜한 걸 여쭤봤네요.”

“아닐세. 이미 50년도 더 지난 일. 더는 미련 없네.”

이후로도 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허, 0층에서 오늘 막 올라왔다고?”

“예.”

“진현이 녀석 말대로라면 지구의 0층 시험이 시작한 지 3주가 넘었을 텐데?”

“보라색 시험이라 그런지 애 좀 먹었습니다.”

아무래도 플래티넘 테스트란 것을 밝히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보라색 테스트를 봤다고 대충 둘러댔다.

에브릭이 눈을 빛냈다.

“호오? 보라색이라. 자네 대단한 사람이었구만.”

“하하, 대단할 것까지는….”

“아니, 대단한 것이네. 들어보니 지구의 인간들은 타 행성보다 신체적 조건이 많이 부족하던데. 보라색 시험을 통과했다라…. 혹시 같이 시험을 본 동료도 있나?”

“아뇨. 저 혼자 치렀습니다.”

“허허. 보라색 시험은 우리 아들놈도 죽을 뻔한 곳인데 그걸 혼자서 통과하다니. 탑 역사를 둘러봐도 그런 자는 몇 없을 것이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자네들은 내일은 어디에 갈 건가?”

“그러게요. 아 맞다, 명패란 거 어디가면 만들 수 있나요?”

명패. 그것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많았기에 최대한 빨리 명패부터 만들 생각이었다.

“음? 자네 명패 없나?”

“없습니다.”

“그럴 리가, 초심자 마을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무조건….”

“아, 설명하자면 긴데, 저는 초심자 마을 입구에 이동되지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떨어지질 않나, 남들은 다 주는 명패가 없질 않나. 생각해보면 석찬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애초에 잠재력이 무한하다는 것부터가 가장 특이했다.

“뭐?”

“저도 잘 모르겠는데, 제가 눈을 뜬 곳은 숲 안이었습니다. 우연히 다니다가 진현일 마주쳤고요.”

“허허. 자네 같은 사람이 거짓을 말하지는 않을 거고, 신기한 일이구만.”

“하하….”

“그럼 우선 내일 명패부터 만들러 가게나. 내가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괜찮을 것이네.”

“감사….”

그때였다.

쾅!

그때, 엄청난 폭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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