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어두운 방 안에서 하나밖에 없는 팔로 미친 듯이 푸시업을 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강석찬.
석찬은 고아였지만 운동에 한해서는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한 체육관 관장이 그를 거두었고, 훈련시켰다.
이후 초등학생이 된 석찬은 자신보다 한 체급 높은 상대마저 케이오를 만들어낼 정도로 실력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여러 TV 프로그램에서 천재 권투소년으로 그를 취재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석찬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아왔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그는 천부적인 재능과 중학생이라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련된 몸을 가지고 올림픽 선수가 되었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첫 금메달을 딴 뒤부터는 8년간 나가는 대회란 대회는 올림픽이고 뭐고 간에 전부 우승을 해 올포디움을 달성했으며, WBA 챔피언도 할 정도로 엄청나다 못해 경악을 내지를 만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던 강석찬.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래야만 했을 그에게 어느 날 큰 시련이 닥쳐왔다.
교통사고.
인간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강철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이길 수는 없었다.
꼭두새벽부터 로드워크를 하고 있던 석찬에게로 비틀거리던 승용차가 한 대 돌진했다.
뻔하다면 뻔한 원인이었다.
음주운전.
하지만 그 뻔한 이유로 인하여 그날 세계, 아니 역대 최고라 자부할 수 있던 복서는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쪽 눈과 팔을 잃게 되었다.
당연히 그 사건은 전 세계에 대서특필이 되며 사람들은 음주운전을 한 운전자를 강력히 처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는 가해자가 초범이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작 집행유예에 사회봉사에 그치는 판결을 내렸다.
당연히 석찬은 반박하며 항소를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저 사고를 낸 놈의 아버지이자 모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석찬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넨 것이 다였다.
이후 수개월의 입원 생활로 인해 20년을 단련한 석찬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고. 그리고 결국, 선수 생활 은퇴로 이어졌다.
복수심으로 활활 불탄 석찬은 다시 한번 자신을 정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석찬은 굉장히 오랜만에 외출했다. 거의 4개월 만의 외출이었다.
3년이 흐르는 동안, 뼈와 살을 깎는 단련을 통해 석찬의 몸은 전성기 시절, 아니 그 이상으로 굳건해져 있었다.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몸을 단련한 결과였다.
짝눈과 외팔은 여전히 그에게 큰 페널티였지만, 지금 몸으로도 충분히 세계 챔피언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이었다.
‘뭐, 이젠 딱히 챔피언에도 관심은 없다만.’
이미 한 번 해봤던 챔피언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까진 들지 않았다.
‘내가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생각을 마친 석찬이 천천히 집을 나섰다.
음주운전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지나자, 석찬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다.
과거 매일 그의 집 앞에서 텐트까지 쳐가며 창문을 주시하던 기자들도 한두 달이 지나자 떠나버린 지 오래였다.
동네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아저씨처럼 후드 티와 트레이닝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간 석찬은 그의 팔과 눈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인 강남의 한 고깃집에 도착하니, 먼저 와있던 석찬의 친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여기야, 여기!”
그의 이름은 김진현. 어렸을 적 자신을 거둬준 체육관 관장의 아들이자, 석찬의 동갑내기 절친이었다.
석찬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재활 치료에 전념하던 당시, 관장과 함께 항상 병문안을 와서 그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석찬이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석찬의 곁을 떠나갔지만, 오직 진현만이 석찬에 곁에 남았다.
석찬은 복수를 꿈꾸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하던 와중에도, 가끔 진현이 부르는 술 약속은 빠짐없이 나갔다.
관장님이 말기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한 달 내내 병문안을 가기도 했었다.
“오랜만이다, 야. 잘 지냈냐?”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새끼, 몸이 옛날보다 더 좋아졌는데?”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냐, 새꺄? 와 씨, 미쳤네. 강석찬, 이정도면 어지간한 챔피언보다 더하겠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몰라, 계속 훈련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확….”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서로 사이좋게 소주를 한 잔씩 주고받던 그때, 가게 벽면에 붙은 TV 뉴스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속보입니다, 어제 오후 10시경, 휴화산으로 알려진 후지산이 폭발했습니다.
“뭐야, 후지산이 폭발했다고?”
“에에? 진짜야?”
화면에는 화산재가 뿜어져 나오는 후지산과 피난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끔찍하네. 세계가 망하기라도 하려는 건지 원.”
“그러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도 동남아 쪽에 슈퍼 태풍으로 난리였다던데.”
“그래?”
전혀 몰랐다는 석찬의 어투에 진현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뉴스 좀 보고 살아라, 새끼야. 요즘 자연재해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도 아니란다.”
“뉴스 볼 시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훈련 좀 적당히 해라. 어떻게 현역인 나보다 더 운동을 빡세게 하냐, 넌.”
“하하. 술이나 마시자.”
띠링.
순간, 술잔을 든 석찬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하나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소환되기에 앞서 본인의 이름과 나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파랗게 빛나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
순간 석찬은 자신이 술김에 헛것을 본 줄 알았다.
갑자기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보이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현상인가?
하지만 자신이 본 것이 절대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증명해 주었다.
“뭐야, 이거?”
“저기… 혹시 당신도?”
“뭐야! 누가 장난치는 거야?”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때, 진현이 석찬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술기운인가…? 석찬아, 너도 혹시 이거 보이냐?”
그의 물음에 석찬은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을 했다.
“어, 아마도 여기 있는 모든….”
순간 말을 하던 석찬의 앞으로 또 다른 창이 나타났다.
[10초 안에 대답하지 않으시면 영혼이 소멸됩니다.]
[10]
[9]
천천히 줄어드는 숫자를 본 주변 사람들은 좀 전보다 더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석찬은 진현에게 하던 말을 이었다.
“우선 시키는 대로 하자. 혹시 모르니까.”
고개를 끄덕인 진현과 함께 석찬은 이름과 나이를 허공에 읊었다.
“강석찬, 27살.”
“김진현. 27살.”
[신원 확인 완료.]
그로부터 몇 초 뒤.
[1]
[0]
숫자가 영을 가리켰고 붉은색의 창이 하나 나타났다.
[제한 시간이 초과했습니다. 대답하지 않는 영혼을 소멸합니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들리는 비명에 석찬이 뒤를 돌아보니 몇몇 사람들의 몸이 서서히 재로 변해 하늘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식당 안의 모두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직후 식당 안은 그저 불판 위의 고기가 타는 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찔하군.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석찬은 작게 안도했다.
[그럼 지금부터 소환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동이라고 외쳐 주십시오.]
[10초 안에 외치지 않으시면 영혼이 소멸됩니다.]
반복 학습이라는 걸까? 창을 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로 이동을 외치며 사라졌다.
석찬과 진현 역시 이동을 외쳤고 곧 의식이 끊어졌다.
번쩍.
눈을 뜬 석찬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는 끝이 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이 보였다.
또한, 그의 주변에는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까지 해서 약 100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자 모든 사람이 깨어날 수 있었다.
“큼큼.”
갑자기 들리는 헛기침 소리에 사람들이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작은 단상 위에 서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웬만한 모델이나 배우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비율과 키, 그리고 얼굴을 가진 남자는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고 스탠딩 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며 연신 헛기침을 했다.
“자, 모두들 잠시 이곳에 집중해 주십시오.”
남자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 말을 이으려 했다.
“자, 우선 이….”
“너냐? 우리를 여기로 데리고 온 놈이?”
하지만 그때,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한 사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남자는 이마에 약간의 힘줄을 돋우며 말을 이었다.
“큼. 일단 저라고 해두지요.”
“뭐? 이 새끼가 말 똑바로 안 해?”
근육질의 사내가 호통을 치며 멱살을 잡자, 정체불명의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이를 살짝 갈았다.
그것을 본 근육질의 사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 이 갈면 어쩔 건데? 덤빌래? 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 전, 정체불명 남자의 손이 근육질의 사내를 향했다.
곧이어.
“커헉….”
남자가 몸을 웅크리더니 고통스럽다는 듯한 신음을 쏟아냈다.
“끄… 끄아아아….”
잔디를 꽉 움켜쥔 남자의 손톱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
그 처참한 광경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던 그때.
“커헉! 헉!”
남자에게 가해지던 압력이 멈췄고, 그제야 그는 긴장이 풀린 듯 거치게 숨을 헐떡였다.
그의 눈빛은 이전처럼 사납지 않았다. 오히려 공포의 감정을 가득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자 의문의 남자는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좋아요. 좋아. 처음부터 고분고분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아, 그리고 저에겐 ‘안내자’라는 명칭이 있습니다. 새끼 같은 천박한 소리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
“모두 알아들으신 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딱!
자칭 안내자가 손가락을 튕긴 바로 그때.
쿵!
쿵!
쿵!
쿵!
갑자기 커다란 기둥 4개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땅에 꽂혀 정사각형 모양의 막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무심코 막을 만졌다가 재로 변해 사라졌다.
이전의 악몽이 떠오른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는 중앙 쪽으로 이동했다.
“인간은 항상 생각을 안 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다가 꼭 변을 당하는군요. 쯧쯧.”
사람들은 안내자의 빈정거림을 듣고도 두려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죠. 이곳은 뭐 튜토리얼 장소라고 보시면 됩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 튜토리얼 맞으니까 질문 따위는 받지 않겠습니다.”
이후로 안내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구의 인류는 곧 멸망합니다.”
안내자의 충격적인 발언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조용!”
남자의 외침 한 번에 사람들의 웅성임이 사라지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믿지 않으실 분들은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지구는 곧 망해요.”
그때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호… 혹시, 왜 인류가 멸망하나요?”
“그건 ‘탑’ 안에서 차차 알게 될 것입니다.”
“탑이요?”
“네, 탑.”
안내자는 손가락으로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며 답했다.
“저기, 근데… 탑이라는 것이 어디 있나요? 아무리 봐도 잔디뿐이라서….”
한 사람의 질문에 모두가 귀를 쫑긋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광활한 푸른 들판. 탑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탑의 존재는 튜토리얼 이후 아실 수 있습니다.”
안내자의 대답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수긍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선 마력을 부여하죠!”
곧 안내자가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외쳤다.
“!%@&[email protected]#^&*#%^!&*$”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은 동시에 어지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몇 명은 속이 좋지 않은지 먹은 것들을 잔디 위에 게워내기 시작했다.
석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3년 전 잃었던 눈과 팔에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와 그를 괴롭혔다.
“끄으으윽!”
석찬은 갑자기 나타난 엄청난 고통에 하마터면 정신을 놓을 뻔했지만 겨우 정신을 붙잡고 버텼다.
그 와중에, 석찬은 보지 못했지만 놀라운 일이 그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과거 절단했던 팔의 부위에서 뼈, 근육, 신경 등이 새로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새로운 팔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눈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유리 조각이 박혀 적출했던 오른쪽 눈이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고통의 순간이 지나간 후 눈을 뜬 석찬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왼팔로 오른팔과 오른쪽 눈을 더듬었다.
순간 석찬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게다가 몸에도 전보다 더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크고 작은 상처와 장애, 흉터, 지병 등이 사라지더니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궁금한 눈빛으로 안내자를 쳐다보자 안내자가 입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