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히든 보스는 군사의 배를 꿰뚫었고, 빠른 속도로 그를 먹어치웠다.
내가 막을 틈도 없었다.
그때 군사가 고개를 돌려 달려오는 날 바라봤다.
그의 두 눈엔 분노와 공포, 회의 등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다 먹히기 전에 막아야 돼!’
하지만 잡아 먹히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때 군사가 힘겹게 자신의 왼손을 내쪽으로 들어올렸다.
뭐하는 거지?
그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 사이, 들어올린 군사의 손바닥에서 야구공만한 찬란한 황금빛 구체가 튀어나와 쏜살같이 내게 날아왔다.
어? 저건 설마……?!
날아오는 구체가 뭔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에 난 그 황금빛 구체를 피하지 않았다.
내 가슴 쪽으로 날아온 황금빛 구체는 가슴에 닿자마자 자연스럽게 몸안으로 흡수가 됐다.
- 신급 스킬 ‘방어력 무한’을 습득했습니다. 신급 스킬이 창조신의 의지와 반응해 초월급 스킬로 변형됩니다. 변형된 스킬은 바로 적용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몸 안에서 익숙한 감각들이 느껴졌다.
‘? 창조신의 의지? 그게 왜 내 안에 있는 거지? 거기다 초월급 스킬은 또 뭐야? 스킬이 뭔가 달라진 건가?’
하지만 아직 뭐가 달라진 건지는 알수가 없었다.
일단 붙어보면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있겠지!
스킬을 흡수한 난 히든 보스를 바라봤다.
그 역시 군사를 완전히 잡아 먹은 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날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너에 대한 얘기는 꾸준히 들었다. 어떤 공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다지?”
“대충 그렇지.”
“그럼 이 공격에도 버틸 수 있나 한 번 볼까?”
그는 말과 함께 엄청난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팔은 검게 변해 있었는데, 탄이 가지고 다니던 칠흑의 단검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난 긴장하며 화룡도와 화룡검을 동시에 소환해 막았다.
하지만 모든 최초의 생명체를 다 먹어치운 히든 보스의 공격을 다 막아내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몇 번의 공격은 막을 수 있었지만 결국 그의 공격이 내 몸에 적중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고통이 느껴지긴 했다.
작은 생채기도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걸 본 히든 보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방어력이 무한이라고 하더니 제법 잘 견디는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티고만 있을 수는 없을 거야.”
그의 말대로 엄청난 실력차를 방어력 무한 스킬로 메꾸고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상처들이 늘어났다.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답이 없어. 무슨 방법이든 찾아야 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봐도 히든 보스에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 사이 날 돕겠다고 나섰던 해무율도 히든 보스에게 잡아먹힌 상황이다.
“이젠 너랑 노는 것도 지겹군. 그만 끝내자!”
그의 말과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했지만 곧바로 무슨 일인지 눈치챘다.
히든 보스의 몸이 터져나가듯 확장되며 모든 공간이 검은 선들로 가득 찬 것이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검은 선들은 빠른 속도로 날 공격해왔다.
‘이건 못 피해! 이제 진짜 끝이구나!’
더는 도와줄 사람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서 울림 같은 것이 들렸다.
‘무형!’
저게 내 생각인지 누군가의 목소린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머릿속 울림과 동시에 내 입에선 천부경의 구결이 흘러나왔다.
“일시무시일석삼극무(一始無始一析三極無)…….”
그와 동시에 내 안의 모든 것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무형인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건 신기 노인이 보여준 무형과는 달랐다.
그동안 내가 배운 모든 무공이 하나로 합쳐졌고 내 안의 모든 힘들까지도 하나로 합쳐졌다.
그건 굉장히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졌지만 각각의 개성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곤 까맣던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없었다.
나조차도 말이다.
그때 어디선가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들아. 삶은 재밌었느냐?
“……? 누구……?”
신기하게 말은 할 수 있었다.
몸도 뭣도 없는데 말이다.
- 난 스스로 존재하는 자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 설마 창조신……?”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난 얼른 다른 걸 물었다.
“난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죽은 건가요?”
- 원래 니가 있던 자리로 돌아온 것뿐이다.
“죽었다는 말이네요. 그럼 나와 싸우던 그 새끼는 어떻게 됐죠?”
- 그 아이 역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지.
그 말을 들으니 그나마 안심이 됐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히든 보스도 같이 죽었다니 그걸로 됐다.
삶에 미련이 남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돈도 원 없이 벌어봤고 최강자도 되어 봤으니 그걸로 됐다.
그렇다고 미련이 없다는 건 아니다.
제대로 연애도 해보고 싶고 결혼해서 애들도 낳아보고 싶었다.
이제는 물 건너 갔지만 말이다.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 아들아. 넌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선택이요?”
- 계속 내 안에 머물거나 돌아가거나.
“네? 돌아갈 수 있다구요?”
- 난 내 자식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줬지. 그건 자식들이 만든 물건에도 적용되는 얘기다.
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때 뭔가가 반짝하며 앞에 나타났다.
그건 작은 반지다.
그리고 난 그게 뭔지 알고 있다.
“……리말의 회귀 반지……아!”
리말의 회귀 반지는 착용자가 죽으면 한 번에 한해 24시간 전으로 회귀할 수 있었다.
“그럼, 전 24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요?”
-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그리 될 것이다.
“그럼 돌아가겠어요.”
난 망설임없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 네 결정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허나 내가 창조한 첫 피조물들은 그대가 있는 세계로 함께 돌아갈 수 없다.
“그게 무슨……?”
- 그 아이들은 내 의지와 힘을 가장 많이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돌아온 후 다른 피조물들보다 더욱 나와 강력한 일치를 이루고 있지. 해서 돌려보낸다 하더라도 네가 만났던 그 아이들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들이 벌려 놓은 일은 어떻게 되는 거죠?”
난 던전이나 각성 등을 떠올리며 물었다.
- 그 아이들이 없어진다 해도 그 아이들의 능력은 계속 차원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납득이 가진 않지만 그냥 넘어갔다.
말싸움 할 상대는 아니니까.
“그럼 창조되지 못한 것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난 히든 보스를 구성하고 있던 검은 선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 그 아이들은 내 망설임의 잔재들이지. 그들 역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네가 신기 노인이라 알고 있는 아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네?!”
- 그 아이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왜죠?”
- 작별 인사까지 다 했는데 돌아가려니 쪽팔린다고 하더군.
어이없는 이유였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됐다.
“그럼 내가 신기 스승님께 받은 힘은 어떻게 되는 거죠?”
- 그가 줬던 힘 중 내가 남긴 의지에 의해 얻은 힘은 회수될 것이다. 대신 순수한 그의 힘은 네게 남게 될 것이다.
“잘됐네요. 그럼 어서 돌려보내 주세요.”
더 이상 다른 말은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난 골목 한 켠에 서 있었다.
여긴 어디지?
난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어찌된 상황인지 파악했다.
아이즈를 통해 현재 날짜와 위치를 확인했다.
말살자와 있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의 공백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대충 마인 세력과의 격전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인 것 같네. 일단 몸 상태부터 체크해 볼까!’
창조신의 말대로 몸 안에서 말살자의 힘은 사라져 있었다.
신기 노인의 힘도 원래 내가 받은 힘의 반도 안 되는 힘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기 노인은 혼자서 최초의 생명체들을 둘이나 상대하셨던 분이다.
반도 안 되는 힘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절대자들은 압도할 수 있다.
난 즉시 근처에 있는 이동 포탈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조한희에게 연락을 해서 그들이 있는 곳의 위치를 미리 알아냈다.
마인과 대항하는 연합 세력은 내가 오자 뛸 듯이 기뻐했고 사기는 한없이 높아졌다.
난 조한희와 츤츤이, 이혜나를 불러놓고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간략히 말해줬다.
이야기를 듣던 그들의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서 점점 기쁨의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럼 태준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조한희의 물음에 난 씨익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남아있는 절대자들이랑 담판을 지을 생각이야. 마인 세력에는 이제 군사랑 히든 보스가 없으니 내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거야.”
난 간단히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 다음 키라와 호루스를 불러 다른 절대자들을 선계로 불러 모았다.
원래 계획은 이들을 돌려보낼 생각이었지만 말살자의 힘이 사라진 지금, 그들을 돌려보낼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일정한 범위의 땅을 약속하는 대신 25년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내가 있는 동안은 저들을 막을 수 있겠지만 내가 영원히 살 수는 없다.
그러니 결국 인류가 힘을 키워야 한다.
난 인류가 힘을 키워줄 시간을 벌어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쉽게 내 말을 듣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힘은 그들을 가뿐히 상회하는데다 내겐 초월급 스킬은 방어력 무한도 있기 때문에 결국 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절대자들과 투닥거리며 의견조율을 하는 사이 연합군도 마인 세력을 수월하게 막아냈다.
하지만 군사와 용의 탈이 사라졌다고 해도 마인 세력은 쉽사리 무너지진 않았다.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만큼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인 세력은 이대론 안된다고 판단했는지 라시나의 일부 세력과 결탁해 음지로 숨어들었다.
난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적당한 위협이 있어야지만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인 세력과 라시나가 다시 음지로 숨어들자 세상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세상이 안정을 찾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각성자 학교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훌륭한 교사들을 찾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겼다.
그렇게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 * * * *
“야! 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몰라?”
“스승 선택하는 날이잖아.”
“근데 그따위 차림으로 나온 거야?”
“내 차림이 어때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학생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말에 앞에서 깔끔한 정복을 차려 입은 여학생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스승님들을 처음 만나는 날인데 그따위 차림이 말이 돼?!”
그러다 제 풀에 지쳐서는 체념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니 니 맘대로 해.”
“하하하. 야! 나 박태준이야. 누가 날 가르칠 수 있겠어. 안 그래?”
“그래. 넌 박태준이지. 천하에 재수 없는 박태준!”
그리고 그런 그들을 몰래 쳐다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바로 나다.
박태준이랑 여윤주. 오랜만이네.
그들은 내가 소설 속에 들어왔을 때 빙의했던 박태준과 그의 단짝 친구인 여윤주다.
저 멀리서 투닥거리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 소설을 읽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말살자가 사라지고 마인 세력이 물러난 후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내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먼저, 난 10년 전 결혼을 했다.
결혼 상대는 다들 짐작할 수 있듯이 조한희다.
그리고 현재 아들 하나와 딸 둘을 키우고 있다.
또한 해무율과도 다시 만났다.
그와 같이 있던 자리에는 츤츤이도 있었는데, 웃긴 건 츤츤이는 해무율이 오랫동안 키우던 개였단 사실이다.
그걸 증명하듯 츤츤이는 해무율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지금도 난 그걸로 츤츤이를 놀리곤 했다.
피앤씨 컴퍼니는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됐고 아이즈는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짱짱 길드는 얼마 전 세계 2위 길드가 됐다.
가끔 절대자들이 와서 대결을 청할 때가 있는데 귀찮긴 하지만 내게 도움이 많이 됐다.
그래서 결국 얼마전 천의권 8식인 무형을 완성했다.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난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박태준과 여윤주를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강당에 모인 학생들 앞에선 교장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스승들을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자 스승들은 마음에 드는 학생들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스승들은 누구도 박태준한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리 찜해뒀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만 선택을 받지 못한 박태준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뭣도 아닌 놈들이 스승이랍시고 나대는 꼴이라니. 재수 없어서 더는 못 있겠네. 퉤!”
그리곤 바닥에 침을 뱉고는 강당을 나가려고 했다.
난 나가는 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너야 말로 뭣도 아닌 놈이 어른들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내 말에 박태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가 지금 뭐하는 거야?! 어디 듣보잡 새끼가 나대고 있어?”
그리곤 즉시 날 향해 주먹을 날렸다.
‘역시! 제대로 배우지 않았는데 저 정도면 S급 각성자랑도 비벼볼만 하겠어.’
난 만족한 미소를 지었고 그 사이 그의 주먹은 내 배에 정확히 꽂혔다.
그는 일그러진 내 얼굴을 상상하며 날 쳐다봤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설마 이게 끝은 아니겠지?”
“이……이 개새끼가……!”
그 후 계속된 박태준의 공격을 난 반격하지 않고 가만히 서서 맞았다.
결국 지칠 때까지 때린 박태준은 헉헉 거리며 질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 괴물 새끼…… 너 대체 뭐야?!”
그의 질문에 난 더욱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니 스승.”
“뭐? 스승?!”
“일단 첫 번째 규칙을 하나 알려줄게.”
“그게 뭔 개소리야?!”
박태준이 악을 쓰며 다시 날 공격했지만 이번엔 그의 공격을 슬쩍 피했다.
그리곤 그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갈기며 말했다.
“첫 번째 규칙은, 싸가지 없는 놈은 맞아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일단 좀 맞자!”
천의권 5대 계승자의 탄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