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저 작가랑 군사 말고 다른 놈들이 또 있다고? 혹시 다른 최초의 생명체들을 말하는 건가?
“스승님께서 말씀하시는 건, 저들과 같은 최초의 생명체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엄밀히 말하면 신기 노인을 내 스승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스승님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아마도 진심으로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내 질문을 들은 신기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이 아니다.”
“그럼 대체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바로 저놈이다!”
그러면서 그는 용의 탈을 썼던 히든 보스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아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한 채 멈춰있었다.
“네? 저 놈이라구요?!”
난 놀라서 물었지만 신기 노인은 히든 보스를 가만히 바라보며 나직히 읊조리듯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생각이지? 이제 연기는 그만하는 게 어떤가?”
그 말에 지금까지 정지해있던 히든 보스의 고개가 우리 쪽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편처럼 소름끼쳤다.
고개를 돌린 히든 보스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신기 노인에게 말했다.
“내가 연기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지?”
“허허허허. 오래 살다보면 이곳저곳에서 보고 듣는 게 많아지는 법이지.”
히든 보스도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신기 노인을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어떻게 알았냐라는 건 큰 의미가 없지. 그나저나 넌 곧 사라질 것 같은데 할 말이 있다면 지금 빨리하지 그래.”
그 말에 신기 노인이 날 다시 쳐다봤다.
“내가 네게 힘을 준 건 저놈 때문이란다. 저놈은 절대자였지만 그걸 벗어나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선 놈이지.”
“그래도 저랑 힘을 합하셨다면 저런 놈쯤은 상대할 수 있잖아요!”
난 괜히 버럭하고 화를 냈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그에게서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가 스승이자 친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신기 노인은 화를 내는 날 보고 내 마음이 어떤지 안다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랬다면 네 몸에 있던 그 이상한 것들을 막지 못했을 테지.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단다. 이게 최선이었으니까.”
난 그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보며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아낼 뿐이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구나. 너한테 큰 짐을 맡기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허나 너라면 잘 해낼 것 같아 한편으론 마음이 놓여.”
바로 그때 또다시 내 앞에 있는 공간의 틈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걸어나왔다.
그는 푸른 눈을 가진 대머리 남자였는데 몸 전체에 현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새로이 나타난 이는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 신기 노인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그 앞으로 달려와 소리쳤다.
“스승님!!”
스승님?!
신기 노인을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천의문 계승자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설마 해무율?
그리고 이어지는 신기 노인의 말을 통해 내 예상이 맞다는 게 증명됐다.
“무율이구나. 네겐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야. 내 질투심 때문에 너무 먼 길을 돌아가게 했으니…….”
“아닙니다, 스승님.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얻은 깨달음도 상당하구요. 결국 가장 빠른 길이 가장 좋은 길은 아니란 걸 알게 됐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해무율의 말에 신기 노인 장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허허허. 가장 빠른 길이 가장 좋은 길이 아니다라…… 역시 넌 마지막까지 내게 큰 깨우침을 주는구나.”
“스승님 덕분에 정말 즐겁고 보람된 생을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널 봐서 좋다. 진작 찾아봤어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이렇게 스승님의 마지막이라도 볼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스승님께서 내려주신 가르침,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곤 해무율은 신기 노인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걸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신기 노인은 해무율이 일어나자 나와 해무율을 보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너희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지만 마지막 순간을 너희와 함께 해서 외롭지는 않구나. 참 재밌는 삶이었어. 허허허허.”
말을 하는 그의 몸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는 내 눈에선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고서 앞을 봤을 땐 이미 신기 노인은 사라져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히든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만하면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해?”
약간 비아냥거리듯 말하는 그를 보고 한마디 하려는데 해무율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잠깐 제자와 이야길 하고 싶은데 괜찮겠지?”
해무율이 능글맞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히든 보스에게 말했고 히든 보스 역시 쿨하게 그러라고 했다.
“어차피 이곳은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니 시간이야 얼마든지 쓰라구. 마지막 시간이 될 테니까.”
그리곤 히든 보스는 아직도 휘몰아치고 있는 강기를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작가와 군사를 가두고 있던 강기의 소용돌이가 사라져버렸다.
“난 저들이랑 얘길 좀 할 테니까, 너희도 나름의 시간을 가지도록 해.”
그리곤 그는 작가와 군사를 향해 걸어갔다.
그때 해무율이 다가와 말했다.
“넌 내가 남긴 무의 정수를 얻었구나. 그럼 그 안에 담긴 깨달음은 다 깨달은 것이냐?”
하지만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깨우치기엔 너무 수준이 높아서 아직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내 솔직한 대답을 들은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깨우침을 다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네게서 느껴지는 힘은 그 끝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깊고 거대하구나!”
“그건 다 신기 스승님 덕분입니다.”
난 신기 노인을 뭐라 불러야 좋을지 몰라서 신기 스승님이란 호칭으로 불렀다.
그리곤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간략히 말해줬다.
내 말을 다 들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네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고 짐작은 했다. 그리고 스승님의 결단이 맞았다는 걸 널 보니 확신할 수 있겠구나.”
그리곤 푸른색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지금 내 실력으론 저들 중 한 명 정도만 겨우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을 네게 맡겨도 되겠느냐?”
해무율이 살짝 미안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저들은 절대자들이 아니고 그들을 초월한 실력자들이다.
그런 그들과 상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대자들을 뛰어넘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저 놈이랑 저 놈은 제가 조져도 괜찮을까요?”
난 히든 보스와 작가를 가리켰다.
“그럼 난 저놈을 맡으면 되겠구나.”
그리곤 해무율은 이미 대화를 끝낸 후 우릴 바라보고 있는 히든 보스를 향해 말했다.
“대충 얘기는 다 끝난 것 같으니 이제 시작해야지?”
그의 말에 히든 보스가 여유있는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거 좋지.”
그의 말이 끝나자 난 자연스레 히든 보스와 작가를 번갈아 바라보며 걸어갔다.
그런 날 보고 히든 보스가 말했다.
“너 혼자 우리 둘을 상대할 생각인거야? 쉽지 않을 텐데?”
“쉬운지 어려운지는 직접 붙어봐야 아는 거고! 잔말 말고 덤벼!”
그때부터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신기 노인의 말대로 히든 보스의 실력은 엄청났다.
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힘은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말살자보다도 말이다.
‘저놈이 어떻게 말살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거지?’
싸우면 싸울수록 그에 대한 궁금증이 심해졌다.
콰쾅.
한바탕 강하게 충돌하고 난 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숨을 돌리며 히든 보스에게 물었다.
“넌 그냥 절대자였을 뿐인데, 어떻게 그만한 힘을 가지게 된 거지?”
내 질문에 히든 보스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 그게 궁금하다니…….너도 참 별종이군.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니 대답해주지.”
그때 옆에 있던 작가가 버럭하며 화를 냈다.
“대답은 무슨 대답! 그냥 어서 죽여버리자!”
하지만 히든 보스는 그의 말은 무시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지?”
그러나 히든 보스의 그런 태도가 작가를 더 화나게 했는지 작가는 아까보다 더욱 크게 화를 냈다.
“이게 대체 뭐하자는 거야?! 같이 협력하자면서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되는 거야?!”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들 사이에서 뭔가 합의를 본 듯했다.
하지만 히든 보스가 일방적으로 그들의 행동하는 걸로 봐서, 칼자루를 쥔 쪽은 히든 보스 쪽인 듯 싶었다.
작가가 화를 내자 히든 보스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까 얘기는 모두 끝난 걸로 아는데. 모든 건 내 결정에 따르는 걸로 말이야. 아닌가?”
히든 보스의 차가운 목소리에 작가의 얼굴에 긴장감이 살짝 감돌았다.
하지만 작가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랬지. 하지만 저놈들은 적이라구. 그런 놈들과 더 이상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거야?”
“하. 거참 시끄럽구만! 넌 도저히 시끄러워서 안되겠다. 그냥 죽자.”
“죽…… 뭐?!”
그 말과 동시에 그의 손이 작가의 가슴을 꿰뚫었다.
“커컥! 이……이게 무슨 짓이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나중에 죽일까 했는데 시끄러워서 도저히 안되겠어. 그냥 죽어.”
하지만 작가는 고통 속에서도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우린 불사의 존재야. 완벽히 죽일 수 없다는 걸 잘 알텐데?”
작가의 말에 히든 보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너흰 불사의 존재지. 그리고 난 너희로 인해 불사의 존재가 될 테고 말이야.”
“……? 그게 무슨……?”
순간 작가의 가슴에 박혀있던 히든 보스의 팔이 빠르게 검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걸 보자마자 난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저…… 새끼가 어떻게 저걸……?
그 사이 검게 물든 히든 보스의 팔을 통해 작가의 모든 에너지가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작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히든 보스의 팔에 의해, 완전히 먹혀버렸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니가 어떻게 그걸 가지고 있는 거지?!”
내 외침에 히든 보스가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하하하하. 이게 궁금한 거야?”
그러면서 그의 오른 손 위로 검고 기분 나쁜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만 웃고 어떻게 된 건지나 말해!”
그는 자신의 손 위에 있는 기분 나쁜 덩어리를 요리조리 움직였다.
검고 기분 나쁜 덩어리는 마치 슬라임처럼 히든 보스의 손 위를 움직였다.
한동안 검은 덩어리와 놀던 히든 보스는 날보고 말했다.
“이건 원래부터 내 거야.”
“뭐? 원래부터 네 거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