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차원의 벽을 열고 나온 이는 하얀색 두루마기를 걸친 백발의 노인이었다.
얼굴 전체는 온통 주름으로 뒤덮여 있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현기는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할 정도였다.
신기 노인이 어떻게 여길……?!
난 그가 나오는 순간부터 신기 노인이란 걸 알았다.
그를 만난 게 처음이기 때문에,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안에 갈무리 되어 있는 내공이 내 내공과 굉장히 흡사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차원의 벽을 열고 나온 신기 노인은 내 외침에 현기 가득한 눈으로 날 슬쩍 바라봤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이 순간 별처럼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작가와 군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방금 신기 노인의 눈이 반짝였던 거 같은데…… 잘못 봤나?
그때 신기 노인이 군사와 작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니들이냐?”
두서없는 물음이지만 그 말을 들은 군사와 작가의 얼굴이 굳어졌다.
“니가 어떻게 여길……?!”
군사의 말에 신기 노인이 피식하고 웃었다.
“니들이 이렇게 설쳐대는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상황을 보아하니 저들은 서로 알고 있는 사이 같았다.
뭐가 뭔지 모르지만 일단 이것부터 막아보자!
난 오른팔을 타고 빠른 속도로 올라오는 검은 선들을 막기 위해 말살자의 힘과 내가 가진 내공을 하나로 합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천의심법이 몸의 위협을 느끼고, 내공을 소모해서 검은 선들에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젠장! 이러면 안되는데!!
천의심법이 내공을 소모하면서 검은 선들에 저항하자 말살자의 힘과 함께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검은 선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란 걸 알고 있다.
시간이 지나 내가 가지고 있는 내공이 다 소모되게 되면, 결국 말살자의 힘만으로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말살자의 힘만으로 과연 저 검은 선들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바로 그때 신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쯧. 멍청한 놈. 어쩌자고 저런 놈이 내 후인이 되었을꼬!”
고개를 들어 신기 노인을 바라보자 그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내공을 소모해서 검은 선들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대화할 여유가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왜 천의심법을 그런 식으로 활용하냐는 말이다.”
그 말에 난 약간 발끈하며 그에게 말했다.
“저라고 뭐 이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아세요? 제멋대로 써지는 걸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쯧쯧쯧. 천의심법은 천부경의 묘리를 함축해 만든 심법이다.”
그때 작가와 군사가 신기 노인을 공격해 들어왔다.
어마어마한 격전이 시작됐다.
난 서둘러 신기 노인을 돕기 위해 싸움에 끼어들려 했으나, 신기 노인이 날 저지했다.
“넌 거기 있거라! 거기서 내가 하는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그리곤 치열한 격전을 벌이면서 계속 내게 천의심법에 대해 설명했다.
직접 본 신기 노인의 실력은 정말 엄청났다.
최초의 생명체라는 작가와 군사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데도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압도하지도 못했다.
‘역시 말살자 말대로 저 둘의 실력은 말살자보다는 많이 떨어지는구나. 그래도 둘이 합치면 말살자를 능가할 텐데 그걸 막아내는 신기 노인도 대단하네!’
그사이 신기 노인은 치열한 공방 속에서도 계속해서 내게 천의심법과 천의권에 대한 심오한 내용들을 말해줬다.
“아까도 말했듯이 천의심법은 천부경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만들어진 심법이다. 그래서 천의심법은 모든 것을 하나로 융합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보아하니 이미 한 번 천의심법의 그런 효과를 경험한 듯 하니, 잘 기억해보거라!”
내가 경험한 적이 있다고? 언제?!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초열의 꽃송이를 먹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마지막 순간 정신을 잃었지만, 정신을 잃기 직전 내 입에서 천부경의 구결들이 흘러나왔던 게 기억났다.
‘아! 그럼 설마 초열의 불꽃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게 천의심법 때문인 건가?’
신기 노인은 싸우던 와중에도 내 얼굴을 보곤 내가 뭔가 알아챈 걸 눈치 챘는지 그 뒤로 계속 천의심법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천의심법을 익혔다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네가 가진 힘을 자세히 들여다 보거라.”
난 신기 노인의 말대로 내 안에 있는 힘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런 해결책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쩌란 거야?!’
만약 지금의 상황이 평상시처럼 여유있는 상황이라면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깊은 명상에 빠져서 내 안에 있는 힘을 들여다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서 깨달음을 얻은 다음 이 상황을 해결해야했다.
‘젠장! 어떻게 해야 되지?’
바로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떠오른 생각 하나.
‘잠깐!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굳이 검은 선이 퍼지는 걸 막을 필요가 있는 건가?’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상황을 알고 내 속마음을 들었다면, 날 더러 미친 놈이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검은 선이 온몸에 퍼지면 육체에 대한 소유권이 검은 선에 넘어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은 저 검은 선들이 한 곳에 뭉쳐있다보니 이기기 버거울 뿐이다.
만약 저 검은 선들이 온 몸에 퍼진다면 힘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막아내기 쉬울 것 같았다.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 일단 한 번 해보자.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다른 대안은 없었다.
난 즉시 검은 선들과 맞서던 힘을 뒤로 물렸다.
그러자 검은 선들은 거침없이 내 온몸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방어력 무한 스킬이 없어서 그런지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난 정신을 놓지 않고 퍼져나가는 검은 선들에 집중했다.
‘아직 아니야. 조금만 더…… 조금만…….’
난 거둬들인 말살자의 힘과 내공을 단전에 한껏 모은 채, 검은 선들이 온몸으로 퍼지길 기다렸다.
검은 선들은 내 힘이 모여있는 단전만 빼고 온 몸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남은 단전을 향해 검은 선들이 몰려들었다.
지금이다!
난 검은 선들이 단전을 향해 들어오는 그 순간 말살자의 조각과 내가 가진 내공을 전신을 향해 폭발시켰다.
순간 내공이 단전에서부터 엄청난 기세로 온몸으로 퍼져나갔는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가 폭발시킨 내공이 같이 퍼져나가는 말살자의 힘과 융합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내 내공은 온몸에 퍼져있는 검은 선들까지 흡수하기 시작했다.
“저건 대체 뭐야?!”
신기 노인과 싸우던 군사가 내 변화를 보고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리곤 날 향해 달려오려하는데, 신기 노인이 그 앞을 막아섰다.
“아직은 아니지. 좀만 더 기다려! 곧 싸우게 될 테니까.” 하지만 군사를 버럭하고 화를 내며 신기 노인을 공격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저리 꺼져!”
하지만 신기 노인은 여유롭게 군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때 작가마저 날 공격하기 위해 다른 방향에서 달려들었다.
“안돼!”
신기 노인이 급히 나와 작가 사이를 막아섰지만 작가의 공격이 한 발 더 빨랐다.
“죽어라!”
그때 내가 눈을 떴다.
그리고 내 눈에 날아오는 작가의 손끝이 보였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오는 작가의 손을 쳐냈다.
“억!”
작가는 자신의 손끝을 쳐낸 날 보고,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난 그런 작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신기 노인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이들은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내 말에 신기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네게 더 보여줘야 할 것이 있다.” “하지만 스승님은 몸이…….”
“허허허. 난 괜찮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기 노인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있었다.
사실 나도 검은 선을 흡수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신기 노인은 이곳에 온 순간부터 내게 자신의 힘을 나눠주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자신의 힘을 내게 나눠줄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내게 자신의 내공을 나눠줬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몸 전체에 자리잡고 있는 내 내공 안에는 아까 신기 노인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의 내공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워낙 은밀하게 몸 안에 스며들어 나도 방금 전까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가 은밀히 보내준 내공 때문에, 말살자의 힘과 검은 선들까지 하나로 융합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힘을 완벽히 흡수하고 눈을 뜬 나는 신기 노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았다.
그 안에는 이제 남아있는 힘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물러나라고 한 건데,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한 것이다.
난 말리고 싶었지만 신기 노인의 얼굴을 보자 말하려던 걸 포기했다.
그리고 묵묵히 그의 행동을 지켜봤다.
신기 노인은 작가와 군사를 보며 말했다.
“이제 이 싸움도 끝낼 때가 된 것 같군. 아마 이게 내 마지막 공격이 될 테니 니들도 숨겨둔 수가 있다면 보이도록 해.”
그의 말에 작가와 군사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하고는 자세를 잡았다.
신기 노인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슬쩍 날 보더니 말했다.
“잘 보거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술이니까.”
난 그의 말에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해서 쳐다봤다.
“그럼 이제 시작하지. 내가 혼자니까 먼저 공격하겠네.”
말과 함께 신기 노인은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단지 그뿐이다.
헌데 작가와 군사 모두 얼굴 색이 변하며 뭔가에 저항하듯이 낑낑거렸다.
그때 신기 노인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잘 봐라! 이것이 천의권의 8식 무형이다.”
‘뭐?! 무형이라고?’
무형의 위력은 엄청났다.
눈앞에 있던 작가와 군사는 어마무시한 강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주위는 완전히 초토화됐다.
근데 신기한 건, 그 사이 신기 노인에게선 어떠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신기 노인은 무시무시한 강기의 소용돌이를 잠시 쳐다보다 날 보며 말했다.
“어떠냐? 봤느냐?”
하지만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완전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어디까지 봤느냐?”
“강기가 생성되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 말에 신기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도 제법이구나. 일단 거기까지 봤으면 됐다. 넌 계속 천의권을 갈고 닦아서 완벽한 천의권을 완성하거라. 그리고 천부경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말고…… 알겠느냐?”
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나려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마 내게 모든 힘을 준 상태에서 8식 무형까지 사용했기 때문에 육체가 무너지고 있으리라.
“근데 왜 제가 힘을 주신 거죠? 힘만 있으셨다면 저런 놈들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으셨을 텐데요.”
“그렇지. 저들은 이길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놈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단다.”
“그 놈이요?! 또 다른 놈이 있어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