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차원의 통로를 열어둔다고? 하지만 그건 차원의 벽을 지키는 이들 때문에 불가능할 텐데?”
리치킹이 내 의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거라면 걱정마. 그건 내가 해결할 테니까. 너희가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고 나면, 너희 차원과의 통로를 열어둘 거야. 너흰 그 통로를 통해 언제든 이곳으로 올 수가 있을 거고. 대신 힘의 제약이 있긴 하겠지만 말이야.”
내 말에 키라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싸우러 오는 것도 아닌데 힘의 제약이야 있어도 상관없지.”
“그건 그렇지. 근데 정말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거야?”
“그렇게 만들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너희가 있던 차원으로 돌아가.”
“그럼 원래 우리가 데리고 온 부하들은 어떻게 하려고?”
“걔들은 놔두고 가도 돼.”
“놔두고 가라고?”
“그래. 걔들은 따로 활용할 데가 있으니까.”
난 그들에게 내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난 걔들을 이용해 포탈 안이 아닌 밖에 던전을 만든 생각이야.”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몇몇 절대자들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말은 우리 부하들을 사냥감으로 삼겠다는 뜻이야?”
하지만 난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가 틀렸음을 알렸다.
“그게 아니야. 아마 내가 던전이라고 말해서 오해를 했나본데, 이건 지극히 인간적인 시선에서 말한 거니까 오해는 말아줬으면 해. 난 걔들이 살 곳을 마련해 줄 거야.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정복하려 할 테지. 또 너희 부하들도 통제하는 너희가 사라진다면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고 인간들에게 피해를 줄 거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충돌이 일어나겠지. 그러면 인간들은 너희 부하들이 있는 곳을 던전으로 지정하고 공략하기 시작할 거야. 그래서 던전이라고 부른 것뿐이니까 오해는 말라구.”
하지만 여전히 몇몇 절대자들은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내가 말했듯이 난 그들에게 머물 장소를 제공해 줄 거야. 그리고 완벽한 자유 또한 보장할 거야.”
“완벽한 자유를 보장해준다고?”
한 절대자의 질문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너희 부하들은 살고 있는 영역을 넓힐 수도 있을 거야.”
“그 말은 우리 부하들이 자유롭게 영역 전쟁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말인 거야?”
“맞아. 대신 그 과정에 너희가 개입하면 안 돼. 순수하게 그들만의 전쟁이 되어야 돼. 어때?”
내 말을 끝까지 들은 그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 그럼 이제 다들 돌아가서 내가 말한 말들을 너희 부하들에게 전해. 난 그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있을 테니까.”
내 말에 절대자들은 공간을 열고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호루스와 키라까지 돌아가고 나자 자리에 남은 건 용의 탈을 쓴 남자와 군사밖에 없었다.
난 그 둘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어때? 둘 다 재밌었어?”
“그게 무슨 말이지?”
군사 역시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하하. 어지간히도 재밌나봐. 끝까지 발뺌하는 걸 보니 말이야.”
그제야 군사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진짜 말살자의 힘을 다 받은 모양이네. 내 존재를 알아챈 걸 보면 말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끝까지 연극이네. 그건 그렇고 너도 그 답답한 가면은 벗지 그래?”
내 말에 용의 탈을 쓴 이가 탈을 벗었다.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예상 외로 상당히 수려했다.
길게 기른 윤기있는 흑발과 맑고 깊은 눈이 매우 인상적인 미남이었다.
난 그를 보고 나서 둘을 향해 말했다.
“이제야 알겠네. 니가 바로 히든보스였어.”
난 용의 탈을 보며 말했다.
그리곤 군사를 보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넌 말살자와 같은 창조신이 만든 최초의 생명체겠네. 능력은 아마도 스킬 부여일 테고. 맞지?”
내 물음에 군사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호오. 거기까지 파악한 건가? 맞아. 니 말대로 내가 너희 모두에게 스킬을 부여했지. 그리고 이 친구는……흠…… 그건 저 친구가 설명하는 게 더 빠르겠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원이 열리며 세상의 시간이 멈춘게 느껴졌다.
그리고 누군가 걸어나왔다.
그는 꾀죄죄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나오자마자 날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아! 넌 날 보는게 처음인가?”
난 그를 보자마자 그가 누군지 짐작이 됐다.
“니가 설마 작가야?”
“하하하하. 맞아. 내가 바로 작가야. 널 이 판에 끼어들게 한 장본인이지.”
“드디어 만나는구나. 안 그래도 물어볼게 많았는데 말이야.”
“하하하하.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물어보라구. 어차피 넌 오늘 죽을 테니까.”
그 말을 듣고도 난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일단 궁금한 거 몇 개 물어볼게. 왜 하필 나야?”
“그거라면 지난 번에 얘기했잖아. 그냥 니가 걸린 것뿐이야. 특별한 이유는 없어.”
“좋아. 그럼 저 히든 보스는 어떻게 된 거지? 원래부터 같은 편이었던 거야?”
“그건 아니지. 원래는 적이었지. 하지만 뜻이 맞아 함께하게 됐지.”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작가는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하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충이 된 것 같아 맘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설명을 좀 해줄게. 저 친구는 원래 말살자를 없애기 위한 결사대의 멤버였어. 그리고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른 생명체의 힘을 흡수해 본인의 힘을 키우는 거였지. 저 애는 말살자를 쫓으면서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했고 힘을 계속 키웠어. 하지만 말살자가 우리에 의해 봉인되고 난 후 목표가 사라지자 회의감이 밀려오기 시작한 거야. 말살자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생명을 학살했는데 그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자 허탈감이 밀려온 거지.”
한참을 설명하던 그는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이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친구는 자신이 생명체를 학살한데 대한 이유를 어딘가에서 찾아야만 했어. 그 정도로 마음이 여린 친구였지. 그러다 서서히 말살자의 생각에 동화되기 시작했어. 그러던 중 말살자가 저 친구를 찾아왔지.”
“말살자가 찾아왔다고? 왜?”
“그건 저 친구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조각 때문이었지. 그러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함께하자고 제안했어. 그때부터 저 친구도 같은 편이 된 거지.”
“그럼 넌 어떻게 같이 하게 된 거야?”
난 옆에서 웃고 있는 군사에게 물었다.
“난 말살자가 봉인 풀고 나온 건 안 다음부터 줄곧 이 모습으로 저 친구랑 만남을 가지고 있었지. 물론 그에겐 내 진짜 정체를 숨기고 말이야. 언젠가 자신의 조각을 찾기 위해 말살자가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말살자를 위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고? 미친 거 아니야?!”
허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좀 지루하긴 했지만 괜찮았어. 이래서 드래곤들이 유희라는 걸 하나보다 싶었지.”
“말살자가 혹시라도 널 알아보면 어쩌려고 그럼 생각을 한 거야?”
“그럴 일은 없어. 그가 완벽한 힘을 찾지 않는 한, 우릴 알아보지 못할 거라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저 히든 보스는 어떻게 된 거지? 너희가 말살자를 배신했다는 걸 알고도 같이 행동하는 거야?”
“하하하. 아직은 모르지. 아마 영원히 모르게 될 거야.”
“영원히 모른다고?”
“그래. 조금 있다 네가 죽으면 그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되는데 저 친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안 그래?”
결국 저 히든 보스도 내가 죽는다면 끝까지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난 마지막으로 궁금한 한 가지를 물었다.
“근데 이런 일들은 왜 벌이는 거지? 너희 동료인 말살자를 봉인하면서까지 말이야. 그리고 숨어서 그런 일들을 벌인 이유는 뭐야?”
“워워. 진정하고 하나씩 물어봐. 지금은 시간이 넉넉하니까. 일단 우리가 그런 일을 벌인 건 마치 말살자가 우리의 대표처럼 인식되는 게 싫어서야.”
“뭐? 이유가 그거 하나야?”
“다른 이유가 뭐가 필요하지. 그가 하는 행동이 우리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것처럼 인식되는 게 싫었어. 그래서 그의 힘을 갈라놓고 그를 봉인한거지.”
‘이 미친 새끼들. 고작 그딴 이유로 일을 이만큼이나 벌였다고?’
난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침착하게 다른 궁금한 것들까지 물었다.
“그럼 지금 너희가 원하는 건 뭐야? 그리고 왜 숨어서 몰래 이런 일들을 벌이는 거지?”
내 질문에 작가가 어깨를 으쓱하고 들어올렸다.
“우리가 원하는 거라…… 글쎄. 그냥 세상이 좀 더 재밌어졌으면 좋겠어.”
“고작 그딴 이유 때문에 수많은 생명체가 고통받게 한 거란 말이야?”
“고작 그딴 이유라니? 우리한테는 이보다 큰일이 없어. 영원을 산다는 게 얼마나 지루한 일인 줄 알아?”
그 말을 들은 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지만 꾹 참고 다른 걸 물었다.
“그럼 왜 숨어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거야? 이 세상엔 너흴 막을 수 있는 존재란 없는 거 아니었어?”
“그렇지. 하지만 그럼 재미가 없잖아. 거기다 자칫 창조신의 의지가 개입하게 되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뒤에서 조용히 움직인 거지.”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말살자가 나대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말살자를 봉인했고, 심심해서 대격변을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는 거지? 몰래 숨어서 활동한 건 창조신의 의지가 개입하는 걸 막기 위해서고. 맞지?”
“오, 생각보다 똑똑한걸. 정확히 봤어. 그럼 이제 질문은 다 끝난 거야?”
“끝났지! 그럼 오붓한 시간을 가져볼까. 니들이 죽을 시간 말이야.”
그 말에 작가와 군사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웃던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이 똑같이 웃음을 멈추고는 말했다.
“말살자의 힘을 온전히 이어받았다고 해서 우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알고는 있다.
하지만 2대 1로 붙어도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니가 가지고 있는 그 스킬.”
“스킬? 니가 준 내 방어력 무한 스킬 말이야?”
“그래. 그 방어력 무한 스킬. 그것도 이젠 가져가야겠어. 그 동안 유용하게 썼을 테니까 괜찮지?”
“뭐?!”
내가 놀라는 사이 작가가 손바닥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이마에서 황금색의 야구공만한 구체가 튀어나오더니 곧장 군사의 손바닥 안으로 사라졌다.
- 신급 스킬 방어력 무한이 사라졌습니다. 방어력 무한 스킬로 인해 받던 혜택들이 모두 사라집니다.
이렇게 갑자기 스킬을 가져간다고?
스킬을 가져갈 건 예상했지만 그건 좀 더 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스킬이 사라져 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스킬이 사라져버리자 말살자의 힘에 밀려 손끝으로 밀려나있던 검은 선들이 다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방어력 무한 스킬이 사라져 버리자 그 힘의 공격을 노리고 다시 밀고 올라오는 모양이다.
난 즉시, 말살자가 본래 가진 힘과 내가 가진 내공의 힘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노력하면서 검은 선들의 힘에 저항했다.
그때 내 오른편에서 차원의 틈이 열리더니 누군가 걸어나왔다.
그리고 난 그를 보는 순간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말살자의 힘과 내 내공을 합치던 것도 잊은 채 놀라서 소리쳤다.
“신기 노인?!!”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