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해모수라면 내가 가진 화룡검과 화룡도의 주인이다.
‘근데, 그때 선녀장에게 듣기로 해모수는 이천년도 더 전에 사라졌다고 했는데 신기 노인은 그가 어딨는지 알고 찾아간 건가? 그게 아니면 해모수가 신기 노인을 만나고 나서 사라진 건가?’
각 차원마다 시간의 흐름이 달랐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가능성은 있었다.
“어쨌든 넌 지금 해모수도 그렇고 신기 노인도 어딨는지 모른다는 거지?”
“난 그들이 어딨는지 모르지. 나도 봉인이 풀린 후에 은밀히 흩어진 조각들을 찾느라 바빴으니까.”
그의 말을 듣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니가 말살자 조각들을 모으고 다닌다는데 나한테 있는 조각의 힘은 필요없는 거야? 니가 하려는 계획에 내가 가진 조각의 힘이 꼭 필요한 걸로 아는데!”
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처음엔 필요했지. 하지만 지금은 필요없어.”
“필요없다고? 왜지?”
그 말에 말살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하려구. 난 봉인돼 있는 동안 계속 생각했어. 그 놈들이 왜 날 봉인한 걸까. 뭐가 그 놈들 맘에 안 들었던 걸까를 말이야.”
“그럼 너 말고 다른 최초의 생명체들이 봉인하면서 이유도 말 안해준 거야?”
“물론 이유는 말해줬지.”
“그래? 그 이유가 뭐였는데?”
“너무 깝친대.”
“뭐?!”
난 잘못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하지만 말살자의 대답은 아까와 같았다.
“너무 깝쳐서 봉인한대.”
“뭐 그딴 새끼들이 다 있어?”
“그래서 계속 생각한 거야. 수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그러다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어.”
“그래?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뭔데?”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그를 재촉했다.
“그 놈들이 직접 이 세상을 차지하고 싶었던 거야.”
“뭐? 하지만 그 존재들은 나서는 걸 귀찮아한다며?”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렇게 결론 내리게 된 이유라도 있는 거야?”
내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없는 진중한 얼굴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날 무척 잘 따르던 절대자들이 네 명 있었어.”
“플뤼톤이랑 레비아탄을 말하는 거야?”
난 얼마 전에 싸웠던 플뤼톤과 레비아탄을 떠올리며 물었다.
“맞아. 니가 죽인 그들을 말하는 거야. 하지만 그들 말고도 두 명의 절대자들이 더 있어.”
“안 그래도 그 얘기는 나도 들었어. 널 따르던 추종자들이 네 명 있었다고 말이야.”
“그렇지. 그들은 내 추종자이었지. 아니,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겠네.”
“그 말은, 그들이 널 배신이라도 했단 거야?”
배신이라는 말에 말살자의 얼굴이 좀 더 어두워졌다.
난 그걸 보고 내 추측이 맞다는 걸 직감했다.
‘맞구나. 누군가 배신한 거구나.’
“맞아. 플뤼톤과 레비아탄 말고 다른 두 절대자들이 날 배신했지. 아니, 애초에 날 따른 적이 없다고 봐야겠지.”
“그럼 그들은 왜 널 따른 척 한 거야?”
“그들은 누군가의 지시로 날 따르는 척하며 내 계획을 미리 알아낸 다음 보고를 했던 거야.”
“대체 그들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다는 거야! 이미 절대자인 그들인데 누가 감시 그들을…… 아! 설마?!”
그때 내 머릿속에 말살자가 아닌 최초의 생명체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니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게 맞을 거야. 그 놈들이 내게 첩자를 심어 놓은 거지. 그러면서 날 감시한거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거야? 그냥 너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도 상관없었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앞에서는 아무 관심 없는 척하면서, 뒤에서 나 몰래 날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니 말은 그 존재들이 널 감시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널 봉인했다 이거네.”
“정확해!”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근데 그들이 왜 그런 짓을 벌인 거지? 아까도 물었지만 굳이 그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직접적으로 널 제지했어도 됐을 거 같은데?”
“맞아. 그들이 모두 나섰다면, 나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들 중 가장 강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를 감당할 수는 없거든.”
“잠깐만! 니가 그들 중 가장 강하다고? 그럼 너희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는 거야?”
“아니. 우리 사이에 서열은 없어. 그냥 내가 힘에 특화되어 있을 뿐이야.”
“그 말은 다른 존재들은 다른 능력이 특화되어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힘에 특화돼 있지만, 다른 놈들은 다른 능력들을 가지고 있지.”
“어떤 능력인데?”
“시간을 조절하는 놈도 있고, 작지만 새로운 차원을 창조해 낼 수 있는 놈들도 있지.”
“잠깐! 시간을 조절한다고?”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날 이 꼴로 만든 작가였다.
“그래.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놈도 있어. 과거로 시간을 돌리거나 미래로 갈 수도 있지. 하지만 무한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는 없는 데다, 그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들도 있지. 그런 이들은 과거로 시간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기억과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되기 때문에 이미 이전의 과거라고 볼 수는 없어.”
“그럼 혹시 니 힘이 담긴 조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 존재의 능력에 영향을 안 받는 거야?”
“맞아. 나와 같은 최초의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래서 내 힘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거지.”
그제야 내가 어떻게 과거로 올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럼 그 시간을 조절하는 존재가 작가인건가? 근데 나한테 스킬을 전해준 것도 작가잖아! 그럼 작가는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난 바로 말살자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혹시 그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존재가 스킬도 줄 수 있는 거야?”
내 질문에 말살자는 고개를 저었다.
“간단한 스킬이라면 전해줄 수 있지. 우리들은 서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어느 정도는 사용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특화된 능력을 묻는 거라면 스킬을 전해줄 수 있는 놈은 따로 있어.”
난 그 말을 듣고는 혼란에 빠졌다.
‘따로 있다고? 그럼 나한테 스킬을 준 게 작가고, 시간을 조절한 건 다른 존재가 했다는 건가? 잠깐! 그럼 대격변도 그 최초의 생명체들이 일으킨 일인거야?’
난 말살자에게 즉시 그 부분에 대해 물었다.
“혹시 대격변도 최초의 생명체들이 일으킨 일인거야?”
“맞아! 그것도 그 놈들이 일으킨 일이야. 차원을 만들 수 있는 놈이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 계약을 통해 던전을 만들었고, 다른 놈이 스킬을 만들어서 무작위로 뿌렸어.”
이로써 대격변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건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다른 의문이 남았다.
“근데 왜 하필 여기인 거야? 다른 차원들도 많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들에겐 여기여야 했어.”
“여기여야 했다고? 왜?”
내 질문에 말살자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건 내가 니가 있던 차원을 모체로 모든 차원을 통합시키려 했기 때문이지.”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물었다.
“내가 차원을 통합시켜 놓았기 때문에 이미 차원의 벽이 얇아져 있는 상태야. 차원의 벽을 지키는 이들이 벽을 복원시켜 놓긴 했지만 완벽히 복원하진 못했거든. 그 때문에 내가 없더라도 차원의 벽을 부술 수 있게 된 거지.”
“누가 차원의 벽을 부술 수 있다는 거야? 혹시 너 같은 존재들을 말하는 거야?”
“맞아. 원래 차원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건 내게 주어진 고유 능력이야. 물론 그 놈들도 본인들이 들어갈 정도의 차원의 벽은 열 수 있지. 하지만 대규모 인원을 이동시킬 정도의 능력은 없어.”
하지만 난 말살자의 말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 그 존재들이 왜 그런 일들을 벌이는 거지? 그리고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그들이 널 직접적으로 막지 않은 이유는 또 뭐고?”
“아까도 말했지만 아마 전 차원을 그들이 다스리거나 맘대로 하고 싶어서일 거야. 하지만 그건 추측일 뿐 정확한 건 나도 몰라. 그리니까 니가 직접 만나서 물어보도록 해.”
“뭐?! 내가 왜 직접 만나? 니가 만나서 이미 물어봤을 거 아냐?!”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내가 봉인이 풀렸을 때 그놈들은 모두 어딘가로 숨어버린 상태였어. 그래서 아직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 예전의 나였다면 단숨에 그놈들이 어딨는지 찾을 수 있었지만, 완벽한 힘을 가지지 못한 지금은 그러질 못해.”
“그럼 완벽한 힘을 가지게 되면 그들을 찾을 수 있는 거야?”
“충분히 가능하지.”
“그럼 마인 세력과 히든 보스만 처리해준다고 약속하면, 이 오른팔에 붙어 있는 거랑 내 몸에 들어있는 니 조각의 힘도 줄게.”
내 말에 말살자가 미소를 지으며 날 지긋이 바라봤다.
그 모습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 성장한 걸 보며 흐뭇해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젠 니가 가진 힘은 내게 필요없어.”
“왜 필요가 없어? 너 말고 최초의 생명체들을 만나야 되는 거 아니야? 그래야 이 모든 사태가 해결될 거 아니야.”
“그렇지 그 놈들을 만나야지만 지금 벌어진 일들이 정리가 되겠지.”
“그러니까 니가 완벽히 힘을 되찾아야지. 근데 힘을 다 되찾고 나면 또 예전처럼 모든 차원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건 아니지?”
난 조심스럽게 그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봤다.
내 질문에 말살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내가 수많은 시간을 봉인돼 있으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 대체 뭐가 잘못됐는지 말이야. 그리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하려던 일이 잘못됐다는 거야. 애초에 모든 생명체가 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걸 하나로 묶으려던 생각 자체가 어리석었던 거지. 그리고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럼 전차원을 통합하려던 계획은 이제 완전히 접은 거야?”
말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신기 노인과 만났던 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신기 노인이 내 봉인을 풀어주고 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내게 이런 말을 했어.”
“무슨 말?”
“우린 이미 하나라고. 백이면 백 모두 다른 개성과 성향을 지니고 있지만 우린 창조될 때부터 창조신의 의지 아래 하나라고 말이야.”
말을 하는 그는 마치 깨달음을 얻는 수도자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건 창조신의 의지가 한 말이었을까?”
“모르지. 어쨌든 이제 차원을 하나로 통합하겠다는 생각을 싹 사라졌어.”
“그럼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건 니가 결정 해야지.”
“뭐?!”
이건 또 무슨 말이지? 내가 결정해야 된다고?
“내가 뭘 결정해야 된다는 거지?”
“모든 걸 결정해야겠지.”
“내가 왜?”
“그야 내가 가진 힘을 너한테 모두 전해줄 거거든.”
“뭐?!”
내가 놀라는 사이 말살자에게서 환한 빛이 터져나왔다.
그 빛은 나와 말살자가 있는 공간을 가득 메웠다가 서서히 내 몸 전체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건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전까지 힘을 얻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말살자가 뿜어낸 에너지가 공기와 섞여 천지에 흩뿌려져 있었고 내 몸은 마치 스펀지가 된 것처럼 그 에너지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이……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