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난 탄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당사자인 탄은 오히려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좀 더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도 여기까진가보네.”
“그게 뭔 소리야?!”
난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탄은 피식하고 웃으며 날 쳐다봤다.
“넌 끝까지 멍청하구나! 그 검을 손에 넣고도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그 물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 물체가 내게 말을 걸었지.”
“말을 걸었다고?”
나한테 한 것처럼, 탄한테도 그렇게 한 건가?
아까 탄의 팔이 잘린 후 들었던 소리가 떠올랐다.
“그렇지. 내게 무한한 힘을 주겠다고 말을 걸었다. 난 제법 많은 수의 자아를 가진 무기를 만져봤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치려했어. 그런데 그 물체가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일 얘기를 하는 거야!”
“눈이 번쩍 뜨일 얘기?”
“그래. 그냥 지나치려는 내게 그 물체가 건넨 말은, 무한의 방어력을 뚫게 해주겠다는 거였지.”
“뭐?! 그 검이 그런 얘길 했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이 단검이 어떻게 방어력 무한 스킬에 대해 알고 있는 거지?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날 보고 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정 나도 잘 알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물체는 내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듯 했어.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한 거겠지. 물론, 지금도 그 물체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 말을 듣고 난 주저없이 그 물체를 손에 들었어. 그러자 그 물체는 순식간에 칠흑의 단검을 만들어냈지. 그리고 그 단검으로부터 뻗어나온 검은 선들이 내 몸을 휘감았고, 네 그 오른팔처럼 말이야.”
그의 말에 난 다시 한 번 검게 변한 오른팔을 바라본 후 탄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니가 단검을 취하자마자 이게 너도 먹어치우려 했단 말이지?”
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다음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 후에 네 말대로 단검으로 변한 그 물체가 내게 제안을 했다.”
“무슨 제안?”
“무한의 방어력을 뚫을 수 있는 힘을 줄 테니 자신에게 먹이를 달라고.”
“먹이라고?”
놀라서 묻긴 했지만 단검이 무슨 의미로 말했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방금 전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리고 난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 헌데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단검의 힘을 보고 내가 실수했음을 알았지. 하지만 그런 건, 널 다시 만난 후 니 몸에 상처를 낼 수 있게 되자 아무 상관 없었다.”
“이런 미친 새끼! 그걸 말이라고……!”
말을 듣다보니 어이가 없어서 버럭 소릴 질렀다.
하지만 탄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지. 새로움에 대한 탐구. 사실 널 만나기 전까지 너무 무료했거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하고 싶은 건 다하고 살았지. 그리다 보니 궁금한 것도 더는 남지 않았고. 헌데 너란 존재가 갑자기 나타나 내 탐구욕에 다시 불을 질렀다. 그래서 니가 나한테 소중했던 거야.”
“니 사정은 알겠는데, 몸은 왜 그런 거야?”
이미 검은 선들이 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보아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서둘러 이유를 물었다.
“이건 그냥 내가 약해졌기 때문이지. 아니면, 그 단검이 너무 강해졌거나.”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그 단검은 언제나 숙주가 필요해. 그리고 그전까지 내가 숙주 역할을 했던 거고. 하지만 이제 나보다 더 뛰어난 숙주를 찾았으니 난 필요없게 된 거야.”
“그래서 널 먹으려한다는 거야? 하지만 넌 단검에 찔리거나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널 먹을 수 있는 거지?”
“고놈이 영악하게도 아주 은밀하게 내 몸에 작은 조각을 심어놨더라구. 그러니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사이 검은 선이 목을 지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아무리 원수 같은 놈이라도 죽음을 눈앞에 둔 이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탄은 그런 날보며 오히려 크게 웃어제꼈다.
“크하하하하핫.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어! 정말 즐겁고 재미난 인생이었으니까! 그동안 정말 즐거웠다. 크하하하핫!”
그리곤 검은 선들이 그의 얼굴을 완전히 뒤덮었다.
검은 선들은 탄의 몸을 뒤덮자마자 발끝과 손끝부터 탄의 몸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워보였지만 탄은 검게 변한 얼굴로 미소를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팔다리가 다 먹힐 때쯤 탄이 뭔가 생각났는지 내게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그걸 말 안해줬네.”
“뭔데?”
탄은 자신의 몸이 먹히고 있는 상황에서도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니가 부탁했던 그 검은 액체를 없애는 해독제 말이야. 그거 이미 완성했어.”
“이미 완성했다고? 진짜?”
사실 탄이 없어지면 가장 큰 걱정이 그거였다.
“연구실에 가면 비커에 담겨 굳어 있는 하얀색 덩어리가 있을 거야. 그게 해독제야.” “그걸 어떻게 쓰면 되는 건데?”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핫. 그게 내가 너한테 남기는 숙제야.”
“숙제? 이 미친 새끼야, 빨리 말해.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고?!”
탄은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곤 더욱 크게 웃어제꼈다.
“크하하하핫. 좋아좋아. 마지막으로 니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게 죽을 수 있겠어. 정말 좋은 생이었다. 그럼 나 먼저 간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얼굴까지 완전히 검은 선에 의해 잡아먹혔다.
“이……이 미친 새끼야!!”
난 탄이 사라진 곳을 향해 소릴 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다.
“하아. 역시 미친놈은 죽을 때도 미친놈이구나. 어쨌든 완성했다니 사용법만 알아내면 되겠지. 그나저나 결국 다 먹어치우고 저것만 남은 건가?”
탄이 사라진 자리엔 검은 선들이 뭉쳐서는 작은 조약돌처럼 놓여 있었다.
난 몸을 숙여 뭉쳐있는 검은 선들을 오른손으로 집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뭉쳐져 있던 실같은 검은 선들이 몸 안으로 흡수됐다.
그리곤 곧바로 엄청난 힘이 몸 전체에 쌓이는 걸 느꼈다.
난 오른쪽 가슴 부위에서 균형을 이루는 힘들에 집중해 봤다.
그리고 아까와는 균형을 이루는 모양이 달라져 있는걸 알게 됐다.
검은 선들의 힘이 더 강해져서인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말살자 조각의 힘과 내 내공이 서로의 간격을 좁혀서 함께 검은 선들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거 계속 힘만 흡수하다간 나까지 잡아먹힐 수도 있겠어. 뭔가 방법을 생각해내야 돼.’
돌아가면 키라나 호루스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난 게이트를 통과하기 전에 난장판이 된 꽃밭에서 그나마 멀쩡한 꽃을 하나 꺾어 탄이 사라진 자리 위에 올려놨다.
그리곤 게이트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지옥과 한국의 흐르는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돌아온 후에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흐르진 않아 있었다.
난 돌아오자마자 탄의 연구실이 있는 본사로 달려갔다.
연구실 안은 정리가 전혀 안된 채 각종 집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이런 더러운 새끼!’
난 속으로 욕을 하면서 연구실 안을 조심스럽게 뒤졌다.
그러다 드디어 하얀색 덩어리가 들어있는 비커를 발견했다.
“이거구나. 근데 이걸 어떤 식으로 쓰라는 거지?”
전문분야가 아니다보니 전혀 감이 안왔다.
그래서 즉시 마녀의 숲을 찾아갔다.
난 대마녀에게 지금까지의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하얀 덩어리가 든 비커를 내밀었다.
“이게 그놈이 만든 해독제입니다. 근데 사용법을 말해주지 않고 죽어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대마녀가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저희 마녀들이 찾아낼 테니 걱정 안해도 됩니다. 그대는 그대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세요.”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마녀님만 믿도록 하겠습니다. 사용법을 알게 되는대로 연락 주시구요.”
간단히 인사를 하곤 곧장 마녀의 숲을 나온 다음 이혜나에게 연락을 해서 키라를 이곳으로 불렀다.
잠시 후 내 앞에 있는 공간이 벌어지며 키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부른 거……어?!”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날보고는 깜짝 놀랐다.
“너…… 그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몸 안에 뭘 넣고 다니는 거야?!”
응? 이게 저렇게까지 놀랄 정도의 일인건가?
물론 이 힘이 위험한 힘이긴 하지만 키라가 보자마자 저렇게 놀랄 정도의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뭐, 몇가지 일이 있었어. 근데 너 이게 뭔지 알고 있는 거야?”
“그건…….”
하지만 키라는 말을 하려다 멈칫하며 망설였다.
언제나 거침없는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였기 때문에 지금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히 낯설었다.
“뭔데 그래?”
말을 하며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키라가 흠칫하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응? 뭐지?
“야! 너 왜 그래?”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다가가자 키라가 또다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다급히 말했다.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말해!”
‘이게 키라를 저렇게 반응하게 만들 정도의 물건인 거야?!’
“대체 이게 뭔데 그러는 거야?”
내가 계속 다그치자 그제야 키라가 입을 열었다.
“그건 ‘창조되지 못한 원념’이야.”
“뭐? 창조되지 못한 원념?!”
저건 또 무슨 소리지?
그녀는 연신 내 검게 변한 오른팔을 힐끔거리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니 몸에 붙어 기생하는 건 창조신에 의해 창조되지 못한 원념들이야.”
“창조되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거지?”
“그것까진 나도 몰라. 다만 저것들은 창조되지 못했기 때문에 애초에 형태를 만들 수가 없어. 그래서 숙주에 기생해야지만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지.”
“그래? 근데 이것들이 니가 그렇게 반응할 정도로 위험한 존재인거야?”
내 질문에 키라는 불안한 눈으로 다시 한 번 검게 변한 내 오른팔을 바라봤다.
그리곤 다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 창조되지 못한 원념들은 이름조차 갖지 못한 것들. 애초에 존재한다고조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지. 그래서인지 그것들을 움직이는 유일한 감정은 끝없는 욕망이야.”
“욕망? 뭐에 대한 욕망을 말하는 거야?”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이지. 애초에 존재자체가 부정당한 것들이니까. 그래서 존재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을 지우면서 자신의 힘을 키우는 거지.”
“근데 넌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오래전 말살자가 존재할 때 그가 저것들을 가지고 온 적이 있어.”
“뭐?! 말살자가 이것들을 직접 가지고 왔다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