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어떻게 된 게, 만나는 강한 사람마다 천의문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천의문 계승자는 내가 4대기 때문에 내 위로는 기껏해야 3명의 사람만이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노인은 내 의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계속 공격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방금 전 기술로 자네가 천의문 계승자라는 건 알았지만, 과연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실력자인지는 좀 더 봐야겠네. 어때, 계속할 수 있겠나?”
“저야 좋죠.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네? 조건이라면 어떤?”
갑자기 조건이라고?
“이번엔 자네가 가진 모든 실력을 보여주게.”
“네? 모든 실력이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요!”
“내 말은, 무기를 사용해도 된다는 말이네. 지금 자네는 내가 다칠까봐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이제부턴 그럴 필요 없다는 거야. 자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보여주게.”
“하지만…… 그러다 다치실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허허허, 내가 자네에게 너무 얕잡아 보였나 보군. 자네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날 어찌하진 못할 테니 걱정할 필요 없네. 그래 주겠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간 걱정되긴 했지만, 노인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그럼 갑니다.”
난 말과 동시에 화룡도를 소환했다.
그리고 단월을 사용하며 그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인이 날아오는 단월을 손날로 쳐낸 것이다.
“어?!”
단월은 모든 걸 가르는 기술이다. 그걸 무기도 아닌 손날로 쳐낸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격을 멈추진 않았다.
난 계속해서 단월을 퍼부었고 그가 어떻게 내 공격을 막고 있는 건지 관찰했다.
하지만 한동안 막고만 있던 노인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후욱.
노인의 몸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내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곤 왼손은 등 뒤에 뒷짐을 진 채 오른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찍어눌렀다.
“헙!”
난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급히 환영보를 극성으로 전개해 노인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노인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뒷짐 지고 있던 왼손을 앞으로 쭉 찔러왔다.
순간 노인의 손과 함께 엄청난 압력이 날 덮쳐왔다.
‘이건 못 피해!’
난 즉시 눈앞을 덮쳐오는 거대한 압력을 향해 단월을 사용했다.
하지만 한 번으론 다가오는 공격을 상쇄시키지 못했다.
그걸 본 난 이를 악물고는 쉬지 않고 단월을 사용했다.
“제법이구나, 그런 식으로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 말이야. 하지만 효율이 너무 떨어져!”
말을 마친 노인은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내가 아니다.
난 화룡도를 소환해제하고 즉시 화룡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며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에서 검무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땐, 예전처럼 내 주변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노인은 멀쩡한 모습을 유지한 채 아까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검무를 막아낸 건가?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혜나가 노인을 향해 울면서 달려왔다.
“할아버지!!”
왜 저러지?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때 날 가만히 쳐다보던 노인이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역시 정식 계승자는 달라. 잘 봤네.”
말을 하는 노인의 얼굴은 뭔가 후련해보였다.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근데 천의문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허허허. 얘길하자면 길지만, 지금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짧게 말해주겠네.”
그리곤 자신을 붙잡고 울고 있는 이혜나의 머리를 어루만지면 말했다.
“혜나야. 진정하려무나. 이 모든 게 운명이고 순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 않느냐.”
“그, 그렇지만…… 흑……흑…….”
“잠깐 이야기 할 동안만 진정해주면 좋겠구나. 해줄 수 있겠지?”
노인의 말에 이혜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다.
뭐지? 혹시 어르신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까전과 다름 없는 모습이었다.
혹시나 싶어 노인의 기를 확인해봐도 아까 그대로였다.
그때 내가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안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거 없네. 일단 중요한 얘기부터 시작하지.”
그리곤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신선이 되기 전에, 천의문 계승자를 만난 적이 있다네.”
“천의문 계승자를 직접 만나셨다구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천의문 2대 계승자인 해무율이었지. 그리고 난 그에게 천의권을 배웠다네.”
“네?! 천의권을요?!”
천의문은 일인 계승 문파 아닌가? 근데 어떻게 천의권을 배울 수 있는 거지? 설마 숨겨진 계승자가 있는 건가?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다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네. 천의권을 해무율님에게 배웠지. 하지만 끝까지 배우진 못했네.”
“왜죠?”
“애초에 난 정식 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냥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됐고, 평상시 몸이 허약했던 날 위해 해무율님께서 간단한 무예를 알려주셨지. 그러다, 내게 재능이 있다는 걸 아시곤 천의권까지 알려주셨다네. 하지만 천의권은 너무 난해한데다 난 기반도 부족했기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무예를 익혔다네.”
“그럼 해무율은 어떻게 됐어요?”
“해무율님은 내가 충분히 자립할 수 있게 되자 할 일이 있다면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름 모를 섬으로 들어가셨네.”
아! 몽유도를 얘기하는 거구나!
“어르신은 같이 안가셨어요?”
“난 같이 안갔다네. 그땐 무공에 미쳐 있기도 했고, 날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성공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 해무율님도 그걸 알고 계셨기 때문에 내가 안간다고 했을 때도 아무 말 없이 보내주셨지.”
“그게 해무율과의 마지막 만남인가요?”
“지상에서는 마지막 만남이었지.”
“지상에서는요?”
저게 무슨 말이지?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혹시 선계에서 해무율과 다시 만나신 거에요?”
“그렇다네. 해무율님께서 내가 선계로 간 후 날 한 번 찾아오셨다네.”
그리곤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해무율님과 헤어진 후 계속 정진해서 결국 깨달음을 얻어 선계에 들었네. 그렇게 속세의 모든 일들을 잊고 지낼 무렵, 선계에 있던 날 해무율님께서 찾아오셨네. 그리곤 몇 년간 함께 지내며 내게 당신의 깨달음을 알려주셨지.”
“그럼 해무율도 깨달음을 얻어서 선계로 온 건가요?”
허나 그건 아니라는 듯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라네. 하지만 해무율님께는 선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걸 아는 선계의 존재 몇몇이 시험해보기 위해 해무율님을 찾아오기도 했지.”
“시험이요? 대체 무슨 시험이죠?”
“사실 선계라는 곳이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이 머무는 곳이긴 하지만, 그들도 완벽히 이 세상의 굴레를 벗어난 건 아니라네. 그들도 기본적인 몇가지 감정들은 가지고 있지. 단지 컨트롤을 잘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네.”
난 그의 말에 집중하며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무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이 해무율님의 강함을 알고 대련을 요구했네. 해무율님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계속 귀찮게 했기 때문에 결국 해무율님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처참하게 패했지.”
도전한 이들이 패했다는 건 별로 놀랍지 않았다.
천의문의 무공은 중원의 모든 무공까지도 제패한 최고의 무공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나요?”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 그만큼 그들과 해무율님의 실력차는 상당했네. 그리고 그때부터 무슨 생각이신 건지, 내게 당신이 깨달음을 얻은 천의권을 알려주기 시작하셨다네.”
“네? 천의권을 다시 알려줬다구요? 왜죠?”
“그 이유는 해무율님께서 선계를 떠나기 전에 알려주셨지.”
“대체 그 이유가 뭔가요? 왜 갑자기 천의권을 어르신께 다시 알려준 거죠?”
내가 재촉하자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해무율님께선 선계를 떠나기 전날 내게 천의권을 가르쳐 주신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셨지만. 그건 바로 천의문 정식 계승자 때문이라고 하셨지.”
“네? 정식 계승자 때문이요? 그게 무슨……?”
“해무율님은 선계로 오기 전에 천의문 정식 계승자를 뽑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예를 알려주셨다고 하셨다네. 하지만 3대 계승자는 머리가 그다지 영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깨달음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아쉬워 하셨어. 그래서, 내게 천의권을 알려주신 거지. 나중에 천의문 계승자를 만나게 되면 당신의 깨달음을 알려주라는 의미로 말일세.”
그제야 해무율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알았다.
신기 노인의 말대로 해무율이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라면, 그의 깨달음을 다른 이가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럼 어르신께선 해무율의 깨달음을 완전히 다 이해하신 건가요?”
“아니. 나도 그 분의 깨달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 했다네. 어느 정도는 따라갈 수 있었지만 그 어마어마한 깨달음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
“그럼 어떻게 전수를 한다는 거죠?”
내 물음에 노인은 더욱 맑아진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해무율님께서 내게 무의 정수를 남기셨네.”
“무의 정수요? 그게 뭐죠?”
“해무율님의 깨달음이 담긴 정수라고 보면 되네.”
“그런 것도 가능한가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에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
“해무율님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다네.”
“그럼 그 무의 정수는 어디있죠?
“허허허! 마음은 알겠지만 한가지 내 질문에 대답해 주겠나?”
“질문이요?”
“그래. 해무율님께선 무의 정수를 계승자에게 전달하기 전 두 가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셨다네. 그 첫 번째가 무공 수준이야. 일정 수준 이상 올라야지만, 무의 정수를 받아들였을 때 바로 적용하고 깨달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어.”
‘아, 그래서 나한테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라고 했던 거구나!’
“그럼 두 번째는 뭐죠?”
난 궁금해서 얼른 두 번째도 물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천의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나?”
뜬금없이 천의문이 생긴 이유에 대해 묻는다고?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난 아는 대로 대답했다.
“네. 천부경에 적혀 있는 글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신기노인이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정확히 알고있군. 그럼 그 천부경에 적힌 글자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나?”
“아뇨.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릅니다. 근데 왜 갑자기 이런 걸 물으시는 거죠?”
“그럼 앞으로 천부경에 적힌 글자에 대해 연구할 생각은 있나?”
“해야죠. 지금 당장은 못하지만 마인 세력이나 말살자에 대한 일이 정리가 되면 해볼 생각입니다.”
“그거면 됐네.”
뭐가 됐단 거지?
내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해무율님이 두 번째로 확인해 달라고 했던 거네.”
“네? 천부경에 대해 물으신 걸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렇네. 해무율님은 계승자가 무예 수준 뿐 아니라 천부경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했네. 그게 천의문의 뿌리라고 말이지. 그리고 천부경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줄 것을 부탁하셨다네.”
그리곤 갑자기 두 손바닥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잠시 후 그 손바닥 위로 따스한 노란 빛의 야구공만한 구슬이 나타났다.
“설마 그게……?”
“이게 바로 해무율님이 전해주신 무의 정수라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