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난 너무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 그 둘이 관련이 있다구요?!”
내가 소리치자 이혜나가 날 급히 진정시켰다.
“진정하고 일단 앉으세요.”
그제야 난 머쓱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흥분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았다.
“정말 마인 세력과 말살자가 연관이 있다구요?”
“그래요. 그 둘은 확실히 연관되어 있어요. 정확히는, 군사라는 자가 연관되어 있다고 봐야겠죠.”
“군사가요?”
군사 뒤에 누군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게 그럼 말살자란 말이야?
난 사실 군사 뒤에 있는 이가 히든 보스라고만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군사 뒤에서 그를 조종하는 자가 말살자의 의지를 이은 자라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돼. 근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안 거지?’
“와! 이건 진짜 놀랐네요. 근데 그 사실은 어떻게 안 거죠? 그것도 진실의 눈이 가진 능력인가요?”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세히 설명해 주진 않을 모양이다.
하지만 진실의 눈을 가진 그녀가 하는 말이니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그럼 오늘 여기 온 건 뭣 때문에……?”
“이곳 역시 마인 세력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고 들렸어요.”
“아! 그거라면 제가 이미 확인했어요.”
내 말에 그녀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안 그래도 태준 씨를 보고, 그들 역시 마인 세력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냥 보기만 해도 그런 것까지 알게 되나요? 그럼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왜 제가 천의문 계승자인 걸 몰랐던 거에요?”
“사실 이런 능력이 생긴 건 오래되지 않았어요. 한 육개월 전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생겼죠.”
갑자기? 원래 그런 건가?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키라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건 저 인간 여자 이전에 진실의 눈을 소유했던 이가 죽었기 때문일 거야.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진실의 눈 소유자가 죽으면 눈은 그 즉시 다른 생명체에게 옮겨가게 되거든.”
난 갑자기 끼어든 키라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의 대답이 내 의문을 해소시켜 줬기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혜나 씨는, 제가 말살자를 막아주길 원하는 건가요?”
허나 이혜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태준 씨한테만 그런 힘든 짐을 지게 할 수는 없죠. 저희도 도울 거에요.”
“저희라면 어떤……?”
“여기서 말하긴 곤란하구요, 나중에 저희 문파에 한 번 놀러 오세요.”
“혜나 씨 문파라면 장백파 말인가요?”
“맞아요. 아! 말 나온 김에 지금 같이 가보면 어떨까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거기서 내게 보여줄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좋죠. 마침 별다른 일도 없고 하니까요. 근데 얘도 같이 가도 되나요? 절대 떨어질 것 같진 않은데…….”
난 오른팔에 달라붙어 있는 키라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을 거에요. 저나 저분의 정체를 알아보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그녀의 말에 내 팔에 붙어 있던 키라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럼 뭐하고 있어. 얼른 가자!”
저건 왜 저리 신난 거야?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어서 가자며 재촉했다.
“너, 왜 그렇게 신난 거야?”
“호호호. 너랑 있으면 재밌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니 신날 수밖에! 마치 신이 너한테만 재밌는 일을 몰아주는 것 같잖아!”
“너도 신을 믿어?”
난 키라가 신이란 말을 하자 살짝 놀라며 물었다.
내 질문에 키라가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믿냐구? 신을 왜 믿는다고 하는 거지?”
“왜 믿는다고 하냐니. 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정말 인간들 사고 방식은 재밌단 말이야. 너희 인간들 눈엔 지천에 깔려 있는 신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거야?”
“신의 손길?”
저게 무슨 소리지?
“쯧쯧! 사방을 둘러봐. 신이 만들어낸 수많은 창조물들을 보라구. 멀리 보지 않아도, 너희 인간 자체가 바로 증거잖아!”
허나 난 곧바로 그 말에 반박했다.
“인간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거지, 그게 어디 신이 만든 거야?”
내 말에 키라의 얼굴이 한심하다는 듯 변했다.
“너 정도 되는 인간도 그 정도 밖에 생각을 못하는 거야? 물론 니 말대로 교미 활동을 통해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자신의 종족을 늘려가지. 하지만 그걸 거슬러 올라가봐. 그럼 최초의 생명체가 존재하겠지. 그 생명체는 어떻게 만들어졌겠어?”
“그거야 오랜 시간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멍청아. 내가 말하는 최초의 생명체는 모든 생명체 중 최초를 말하는 거야. 그 생명체에 진화가 어딨어! 그리고 애초에 이 수많은 차원은 누가 만들었을까.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사실 아니야?”
난 그녀의 말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그리고 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야. 신이 자기를 믿어달라고 생명을 만들었겠어?”
“그럼 뭐하러 만들었는데?”
“그야 나도 모르지. 심심해서 만들었거나, 우연히 만들어졌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믿음의 대상은 아니란 거야.”
분명히 허점은 있는데 뭐라고 반박해야 좋을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혜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흥미롭고 재밌는지 눈을 반짝이며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래. 니말은 잘 알겠어. 일단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가면서 얘기하자고.”
일단 커피숍에서 나온 우리는 내 차를 타고 그녀가 알려준 주소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도 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나완 비교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온 키라를 이길 순 없었다.
대충 신은 확실히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때쯤, 우린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돼요.”
산을 올라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크기의 암자였다.
“여기가 제가 장문인으로 있는 곳입니다.”
“여기가요?”
크기가 크지 않은 암자였기 때문에 난 의아한 얼굴로 이혜나를 쳐다봤다.
그때 옆에 있던 키라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호오! 이건 마법도 아닌데 꽤나 정교한걸.”
“역시 바로 아시는군요.”
난 그제야 눈앞에 있는 암자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자 미세하게 진법의 기운이 느껴졌다.
‘헐. 진법의 기운을 이 정도까지 숨길 수 있다고? 엄청난데?’
그 정도로 진법은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난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이혜나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로 은밀한 진법이라니! 대체 이건 누가 설치한 거죠?”
내 질문에 그녀는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설치한 거에요. 엄청나죠?”
“할아버지요?”
“자세한 건 들어가보시면 알 거에요. 들어갈 때는, 제 발만 보고 따라오시면 돼요.”
그녀의 주의대로 뒤를 따라가자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호오.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이 정도 공간과 인원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이래서 인간들은 정말 재밌단 말이지.”
나 역시 키라와 마찬가지로 감탄을 하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봤다.
작은 암자라고 생각했던 공간 뒤에는, 엄청난 크기의 저택이 숨겨져 있었다.
그 안에선 생각보다 많은 인원들이 분주하게 맡은 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무공 수련을 했고, 어떤 이들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토론을 하고 있었다.
나도 츤츤이로부터 진법에 대해 배웠지만 이 정도로 완벽하게 장소를 감출 수 있는 진법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
보통 진법은 뭔가를 감추거나 보호하기 위해 많이 설치되는데, 그 진법이 강하면 강할수록 진법 자체가 뿜어내는 기운도 같이 강해진다.
헌데 내가 방금 본 진법은 그런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이 정도로 완벽히 장소를 숨기고 있음에도 진법의 기운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혜나 씨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어서 만나보고 싶네요.”
난 진심을 담아 감탄하며 저택 내부를 둘러봤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이혜나를 알아보고는 와서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근데 이 분들은?”
“제가 모시고 온 손님들이세요. 그보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시죠?”
“어르신은 지금 폭포에 계십니다.”
“또 거기 계시는구나! 고마워요.”
그들이 가고 나자 이혜나가 우릴 보며 말했다.
“그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봐요. 자세한 건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이야기하기로 하구요.”
그리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그녀를 따라 저택 뒤편으로 가서 조금 더 산을 올라가자 멀리서 폭포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올라오면서 안 거지만, 아까 암자부터 산 전체가 전부 진법의 영역 안에 있었다.
이 정도로 대단한 진법이라니……. 대체 어떤 분일까?
그때 눈앞에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가 보였다.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있자니 마음속에 있던 걱정과 불안이 모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
내가 폭포를 보며 감상에 빠져 있을 때 이혜나가 할아버지를 외치며 폭포 앞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난 그곳에 누군가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뭐지? 전혀 감지가 안 됐는데!’
그때 옆에서 키라가 감탄을 했다.
“저 인간. 정말 대단하군. 아니지. 저 정도 경지에 오른 이라면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저 인간은 깨달음을 얻은 존재지.”
“깨달음을 얻은 존재?”
하지만 난 그녀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내 앞으로 희고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이혜나와 함께 걸어오며 말했다.
“허허허. 그건 내가 설명하마.”
긴 수염을 기른 그 노인은 머리 역시 백발이었는데 흰 두루마기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하지만 내 눈엔 그 노인의 외모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바로 앞에 있는데도 전혀 느낄 수가 없잖아!
말 그대로 그 노인은 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그 노인은 존재감이 없는 게 아니라 주변 자연과 완벽히 동화되어 있어서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다.
‘이 정도로 완벽히 동화될 수도 있구나!’
그때 그 노인이 키라를 보며 인사했다.
“고귀하신 분을 이토록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키라는 그의 인사가 싫지 않은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괜찮아, 괜찮아. 봤지? 내가 이 정도야!”
키라는 어린아이처럼 날 보며 우쭐해했다.
난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노인을 보며 물었다.
“어르신. 처음 뵙겠습니다. 전, 박태준이라고 합니다.”
노인은 그런 날 보고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살짝 놀란 듯 말했다.
“자네. 천룡을 만난 적 있나?”
“천룡이요?”
갑자기 걔가 왜 튀어나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