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어떻게 날 알아본 거지?
난 당황했지만 모른 체하며 말했다.
“박태준이라뇨? 사람 잘 못 보신 것 같네요.”
하지만 그녀는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은 박태준 씨가 확실해요!”
“하하하. 제가 박태준이라는 사람과 많이 닮았나보네요, 그렇게까지 확신하시는 걸 보면 말이죠.”
“아뇨! 하나도 안 닮았어요.”
“네? 근데 왜 절 박태준이라고……?” “그냥 보여요. 당신 안에 숨겨진 진짜 모습이 말이죠.”
“네?!”
난 그 말을 듣고 키라를 돌아봤다.
하지만 키라는 난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있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키라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뭐지?
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키라에게 말했다.
“자기야.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리곤 키라를 데리고 그 여자로부터 떨어진 후 물었다.
“지금 내 외모가 원래대로 돌아왔어?”
“아니.”
“근데 저 여자는 내 본 모습을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 넌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질문에 키라는 이 상황이 무척 재밌는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여기서 ‘진실의 눈’을 가진 인간을 만날 줄은 몰랐는걸!”
“‘진실의 눈’?”
‘진실의 눈’이 뭐지? 처음 들어보는데!
내가 처음 듣는 듯 하자 키라가 간단히 설명해줬다.
“진실의 눈을 가진 이는 어떤 마법이나 주술에도 현혹되지 않고 진실을 볼 수 있어. 그래서 저 여자도 마법에 현혹되지 않고 니 본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거야.”
“그럼 진실의 눈이 각성자의 능력 같은 거야?”
“아니. 그거랑은 달라. 진실의 눈은 태초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어. 그리고 예전에 말살자에 의해 절대자들이 여럿 모이면서 알게 된 건데, 진실의 눈은 차원을 초월해 한 세대에 한 생명체에만 존재하게 돼.”
“차원을 초월한다고? 그럼 전 차원에 한 명만 존재한다는 거야?”
내 물음에 키라가 고개를 저었다.
“한 명이 아니야. 진실의 눈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생길 수 있어.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이 진실의 눈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죽는 경우가 많아.”
“그래? 그럼 저 여자가 진실의 눈을 가져서 내 본 모습을 알아봤다는 거야? 니 마법이 허접한 건 아니고?”
그 말에 키라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흥! 마법으로 날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니 말은 니 마법을 꿰뚫어 봤다면 진실의 눈을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진실의 눈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있어.”
“특징?”
“평상시는 다른 눈과 똑같지만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될 때는 눈동자 색이 황금색으로 변하게 돼. 그리고 아까 널 바라볼 때 저 인간의 눈이 황금색으로 바뀌는 걸 확인했고.”
헐. 지금 전 차원을 통틀어 한 명만 있다는 진실의 눈을 가진 사람이랑 만난거야? 근데 저 사람은 날 어떻게 알지? 분위기를 보아하니 날 아는 것 같은데……
난 더 이상 발뺌하는 걸 그만두고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맞아요. 제가 박태준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모습을 좀 바꾸고 온 거니 이해 부탁해요. 근데 날 알아요?”
내가 시인을 하자 그제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 기억 안나세요?”
“네? 누구……?”
“하긴 시간도 오래 흐른 데다 잠깐 스치듯 만난 사이니 기억하는 게 무리이려나! 전 이혜나에요. 장백파 48대 장문인이죠.”
“이혜나……장백파……아!”
그제야 그녀가 누군지 생각났다.
예전 대격변 때 호텔로 찾아왔던 여자가 이혜나였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기억해냈다는 걸 알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기억 나세요?”
이혜나가 날 바라볼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가 키라 말대로 황금색으로 물드는 게 보였다.
“기억나네요. 예전 대격변 때 호텔에서 봤었죠. 근데 눈썰미 좋으시네요. 그때 잠깐 보고 알아보다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박태준 씨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요? 거기다 제 기억에 박태준 씨가 워낙 강렬히 남아있어서요.”
“네? 강렬히요? 우린 그때 잠깐 인사 정도만 한 걸로 아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그때 사문에 대해 물었을 때 천의문 4대 계승자라고 말했던 것 때문에 오래 기억할 수 있었네요. 그땐 그냥 같은 이름의 문파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진짜 전설의 문파인 천의문 계승자가 맞으신 것 같네요. 제 생각이 맞나요?”
난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아!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요. 그것보다 이혜나 씨는 여기 어쩐 일로 오신 거에요? 아! 이름이 이혜나 맞으시죠?”
“네, 맞아요. 몇 가지 알아볼 게 있어서 왔는데…… 혹시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러죠.”
그리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키라를 바라봤다.
그녀는 우리 대화를 다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진실의 눈을 가진 인간과의 대화라…… 이번 유희는 정말 즐거워. 호호호호.”
이혜나는 웃는 키라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인간이 아니군요. 그 안에 있는 건…… 설마 용……?!”
그제야 이혜나는 키라의 본 모습을 제대로 봤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변했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난 당황하는 이혜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아! 쟤는 신경 쓰실 거 없어요. 해롭거나 해치지 않거든요. 그냥 없다 생각하시면 돼요.”
“아…… 알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대답과 달리 두려움에 더욱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은 나중엔 너무 심해져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난 그걸 보며 가만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약간의 내공을 흘려보냈다.
“윽……!”
그녀는 갑작스레 흘러들어온 내공에 고통을 느꼈는지 깜짝 놀라서는 뒤로 물러났다.
“이……이게 무슨 짓이죠? 어?!”
그녀는 놀라 소리치다 자신의 몸이 떨리지 않는 걸 깨닫고는 약간 민망해 하며 날 쳐다봤다.
“너무 떨고 있길래 제 내공을 조금 넣어드렸어요. 이제 쟤 때문에 떨거나 할 일은 없을 거에요.”
“……제가 너무 추태를 보였네요. 도움, 감사드려요.”
그리곤 가볍게 목례를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뭘 이정도 가지고요. 근데 진실의 눈이란 게 대단하긴 한가보네요. 이혜나 씨도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그 정도로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는 건 쟤가 가진 힘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거니까요. 안 그런가요?”
그녀는 대답 대신 키라를 한 번 쳐다본 후 날 보고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에요. 힘 때문이라면 박태준 씨를 보고도 같은 반응을 보여야겠죠. 박태준 씨가 가지고 있는 힘도 저 분 못지 않으니까요. 물론 저 분이 더 강하긴 하지만요…….”
그러면서 다시 한 번 키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뭣 때문에 그렇게 떠신 거에요?”
“그……그건…….”
이혜나가 대답하길 망설이자 키라가 대신 말했다.
“호호호. 그 인간은 내 힘뿐만이 아니라 내 속에 내재된 파괴본능까지 본 거지. 맞지?”
키라의 말에 이혜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긴 쟤가 좀 성질이 더럽긴 해요. 그래도 지금은 괜찮으니까 안심하세요.”
이렇게까지 말해도 이혜나는 키라의 눈치를 봤지만 아까처럼 몸을 떨거나 하진 않았다.
난 그런 그녀를 보다 키라에게 말했다.
“야, 이제 할 일도 다 끝났는데 그만 돌아가지 그래?”
“싫어. 여기가 더 재밌어. 자기랑 같이 있으니까 재밌는 일이 너무 많이 생기잖아, 너무 좋아!”
젠장. 애초에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어.
괜히 조금 편해보겠다고 그녀를 끌어들인 걸 후회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대신 혜나 씨랑 얘기할 때만 자리 좀 피해줘. 그 정돈 해줄 수 있지?”
키라는 내키지 않는지 애꿎은 이혜나를 노려봤다.
“어딜 노려봐! 좋아. 그럼 커피숍에 가면 자리만 따로 잡아서 앉아. 이 이상은 양보 못해.”
그제야 날보고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좋아. 그 정돈 괜찮지. 그럼 갈까!”
그러면서 키라는 자연스레 내 오른팔에 팔짱을 꼈다.
난 이혜나가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키라의 팔을 풀었지만 정작 이혜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 순간 난 이혜나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아. 진실의 눈은 키라가 장난치는 것까지도 알 수 있는 건가?
진실의 눈은 그냥 숨겨진 힘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 모든 감춰진 진실을 다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흠. 만약 내 생각대로라면 생각보다 쓰임새가 많겠어.
그녀 뒤를 따라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커피숍에 도착했다.
키라는 약속대로 다른 자리에 혼자 앉았고, 나와 이혜나는 키라로부터 조금 떨어진 구석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시킨 음료가 나오자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지금 말하려는 내용은 박태준 씨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거에요.”
“왜죠? 그리고 박태준 씨 말고 그냥 편하게 태준 씨라고 부르세요. 성까지 붙여서 부르니까 이상하네요.”
“아! 그런가요? 알겠어요. 그보다 제가 태준 씨한테만 말할 수 있다고 한 이유는, 태준 씨가 마인 세력과 대치하고 그들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마인 세력이요? 뭐, 그들에 대해서라면 내가 좀 알고 있긴 하죠.”
“사실 얼마 전에 일어난 테러도 태준 씨가 꾸민 일이란 걸 알아요.”
그 말을 듣고는 난 민망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진실의 눈인가? 알고 있었네요. 아무도 마인 세력에 대해 믿지를 않아서 극약 처방을 쓴 거죠.”
“그 부분은 오히려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태준 씨 덕분에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인 세력에 대해 알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바로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약간 뜸을 들였다.
뭘 말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마인 세력이 아니에요.”
“네? 마인 세력이 아니라니요?”
“지금 정말 중요한 건 바로 태준 씨 안에 있는 그 힘의 주인인, 말살자에요.”
난 그녀가 말살자까지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내 안에 들어있는 힘에 대해선 그녀가 알 거라 생각했지만 정확히 그 힘의 존재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말살자라는 말을 듣고 놀라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진실의 눈을 얻는 순간부터 말살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 놀라실 필요 없어요.”
“그건 그렇고 말살자가 왜 중요하단 거죠? 물론 저도 말살자의 힘과 의지를 이어받은 자와 그의 추종자들이 쳐들어올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에 대비하기 위해 절대자들과 계획도 세워놓은 상태죠. 하지만 절대자들은 인간들 일에 대해선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어요. 마인 세력이 곧 쳐들어올 텐데 말이죠. 그래서 마인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거구요. 근데 말살자가 마인 세력보다 더 급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네요.”
내가 길게 말을 쏟아내는 동안 이혜나는 가만히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내 말이 다 끝난 듯하자 입을 열었다.
“태준 씨 말이 맞아요. 하지만 거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이 하나 빠졌어요.”
“네? 그게 뭐죠?”
“바로 마인 세력과 말살자가 연결돼 있다는 거죠.”
“네?! 뭐라구요?!”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