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는 내게 최현제는 웃는 얼굴로 다시 한 번 말했다.
“하하하. 웬만하면 대충 마무리 짓고 끝내려고 했는데, 의심이 끝도 없으신 분이셔서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난 내심 무척 기뻤지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우릴 죽인다는 건가요?!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네. 너무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고통없이 한 방에 보내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그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어느새 소환한 검을 내 목을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그제야 난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며 날아오는 칼을 맨손으로 잡았다.
“하하하하! 웃음 참느라 혼났네. 이제 시작해.”
“그럴까?”
내 말에 뒤에 있던 키라가 최현제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아직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난 그를 보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마.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편하게 있으면 돼.”
“그……그게 무슨……?”
말을 하던 그의 눈이 서서히 흐리멍텅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키라가 마법을 사용한 것이다.
정확히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하게 하는 마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나 정신력을 보호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사람에겐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마법이 잘 통하는 걸 보니 방어 마법은 걸려 있지 않나 보네. 이제 물어보면 되는 거야?”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물어봐도 돼. 이건 무의식의 영역까지 들출 수 있기 때문에 본인도 모르는 기억까지 알아낼 수 있으니 제법 유용할 거야. 대신 지속 시간이 30분밖에 안되니까, 그 전에 알아낼 게 있으면 빨리 알아내.”
“마법이 풀리면 다시 걸면 되는 거 아니야?”
허나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에휴. 이 마법은 조금 독특해서 한 번 걸린 상대에겐 다시 걸 수 없어! 그러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빨리 물어봐.”
“그런 거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난 투덜거리며 최현제를 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희 마인 세력과 연관돼 있지?”
“네. 저흰 마인님 휘하에 소속돼 있습니다.”
“너희가 엠아이라는 보안 회사를 차린 이유는 뭐지?”
“그건 군사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분의 생각을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군사가 그냥 보안 회사를 차리라고만 지시내린 거야?”
“네. 그리고 적자는 입어도 상관 없으니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가입시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역시 군사가 이 회사를 가지고 뭔가 일을 벌이고 있구나!
조한희 예상대로 이 회사는 마인 세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 적자를 입어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한 달간 무료 서비스까지 하고 있는 거야?”
“네, 맞습니다.”
“그럼 아까 날 죽이려 한 건 뭐 때문이야?”
“그건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게 짜증나서…….”
“짜증나서 사람을 죽인다고?!”
“가끔 필요 이상으로 귀찮게 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처리했습니다.”
난 어이가 없어 그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 참았다.
아까 키라가 충격을 받으면 정신을 차릴 수도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후, 좋아. 그건 그렇다치고 너희 회사에서 보안 요원들은 어떻게 충원하는 거지? 각 가정마다 개별적으로 배치될 정도의 인원을 확보하고 있는 거야?”
“네. 군사께서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하셨는지 보안 인원은 충분합니다.”
“충분하다고? 그 많은 인원을 각성자로 확보하고 있다고? 그게 가능한건가?”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 허나 인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 후에도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마인 세력이 있는 곳의 위치 등을 물어봤다.
하지만 그는 회사에 대해서는 알지만 마인 세력이 어디 있는지는 그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고 바로 윗사람에게서 모든 명령을 받기 때문에, 하나하나 추적하지 않는 한 본거지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충 궁금한 게 모두 해결되고 난 후 키라에게 말했다.
“물어볼 건 다 물어본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제일 편한 건 죽여버리는 건데 그러면 조금 시끄러워질 테니, 기억을 조금 조작하지 뭐.”
“기억을 조작한다고? 그런 것도 가능해?”
“호호호호. 내가 누구야. 그런 것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그럼 어떤 식으로 기억을 조작할까?”
“아까 니가 말한 조건을 들어주는 걸로 만들어. 근데 기억은 어떤 식으로 조작하는 거야?”
그 질문에 키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정확하게는 가지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재배치한다고 보는 게 맞아. 새로운 기억을 넣는 거 보다는 그 편이 거부감이 덜하거든. 필요없는 기억은 지우고 필요한 기억들로 재배치를 하는 거지. 그럼 깼을 때 약간의 이질감은 있겠지만, 원래 있던 기억을 가지고 재배치 한 것이기 때문에 평생 그 기억을 진실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야.”
알면 알수록 놀라운 것이 마법의 세계다.
“그런 거라면 아까 니가 요구 조건을 말하고 저 놈이 승낙한 순간까지의 기억만 남기고 다른 건 다 지워버려. 근데 그 사이에 있는 시간 공백은 괜찮은 거야?”
그 말에 키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처음엔 약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곧 자신이 착각한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거야. 이건 기억을 재배치하는 거라 마법 탐지에도 절대 걸리지 않거든.”
“좋아. 그럼 깨지 전에 얼른 시작해줘.”
내 말을 들은 키라는 멍하니 서 있는 최현제 앞으로 가서는 그의 양 관자놀이에 두 손바닥을 올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손바닥을 뗐다.
“다 된 거야?”
“다 됐어. 이제 깨우기만 하면 돼.”
“그럼 깨워봐.”
그러다 급히 그녀를 제지했다.
“아! 자……잠깐만!”
“왜?”
난 아까 최현제가 소환해서 손에 들고 있는 검을 뺏어 들었다.
“기억을 지웠는데 검을 소환해 들고 있는 걸 알면 이 상황을 의심할 수도 있으니 이것부터 처리하자.”
그리곤 낚아챈 검을 입에 넣고 씹었다.
까득. 까드득.
철 씹히는 소리와 함께 최현제의 검이 내 입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키라는 그걸 보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건 또 무슨 기술이야? 내가 굉장히 오랜 시간 살았지만 그런 기술은 또 처음 보는 걸!”
“까득. 신경 끄세요. 까드득.”
난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검을 씹어서 잠시 후 다 먹어치웠다.
“꺽! 이제 깨워도 돼.”
내 말에 키라가 손가락을 탁하고 튕기자 멍하니 초점 없던 최현제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럼 아까 말씀 드린 조건대로 들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어떠십니까?”
키라가 기억을 잘 조작했는지 그의 기억은 키라가 조건을 얘기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닙니다. 그냥 저 사람이 화가 나서 되는 대로 말한 거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파손된 부분만 복구시켜 주시고 대신 계약은 해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다보니 좀 찝찝하네요.”
“아! 그러신가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저라도 그런 일을 겪었다면 고객님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겁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또 원하시는 사항이 있으신가요?”
난 일부러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키라를 쳐다봤다.
그녀도 일부러 토라진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요구사항은 없는 것 같네요. 깔끔하게 처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 말로 불편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파손된 것 복구하는 것 말고도 위로금으로 회사 차원에서 약간의 코인이 지급될 겁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그는 다시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미팅룸을 나갔다.
“그럼 우리도 나갈까!”
지금 생각해보니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키라랑 남들 몰래 잠입해서 윗대가리한테 방금 전 키라가 사용했던 마법을 쓰면 됐었다.
하지만 그때는 키라가 그런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계획 자체를 세울 수가 없었다.
일단 회사를 나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엠아이가 마인 세력이라는 건 알았어. 하지만 정작 왜 보안 회사를 설립했는지는 못 알아냈단 말이야. 어디서 알 수 있는 방법 없을까?
그때 머릿속에 호랑이탈인 류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전화나 한 번 해볼까!
난 회사를 나오며 즉시 류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긴급 연락 요망!]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류호에게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야?!]
“뭐 하나 물어보려고 메시지 보냈는데 괜찮지?”
[그런 거면 메시지로 보내도 되잖아!]
“그래도 되지만 겸사겸사 목소리도 들음 겸해서.”
[흥. 물어볼거나 말해. 나 지금 바쁘니까!]
“너 혹시 엠아이라고 알지?”
내 질문에 류호가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난 그의 침묵을 통해 엠아이에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잠시 후 류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엠아이라면 잘 알지. 군사가 요즘 신경을 많이 쓰는 사업인 것 같던데.]
“그래? 군사가 신경을 쓴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나저나 니가 한 짓 때문에 며칠 동안 난리가 났었어.]
“내가 한 일? 무슨 일을 말하는 거야?!”
[그새 잊은 거야? 니가 학교에서 벌인 일 말이야.]
“뭐야,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지. 그 때문에 우리만 개고생했다고!]
“안 그래도 그걸 노리고 한 건데. 잘 먹혔다니 다행이야.”
류호가 모두 다 알고 있는 듯해서 군사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류호 역시 그 일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는 듯 했다.
[나도 그건 자세히 몰라. 대신 내가 알 만한 사람을 한 명 알고 있어.]
“알 만한 사람? 누군데?”
[바로 용탈이야.]
“용탈?”
[그래. 그 놈이라면 군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빌어먹게 강한 놈이긴 하지만 그만큼 군사와 가장 가깝게 지내거든.]
“그래서 용탈은 지금 어딨는데?”
[요즘 해외로 돌아다닌 다고 바빠. 내가 알기로 지금은 중국에 가 있는 걸로 알아.]
“중국? 그걸로 끝이야?”
[내가 그 놈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정확히 어디 있는지까진 모르지.]
난 그 소리에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그것만 가지고 내가 그 넓은 중국에서 그 새끼를 어떻게 찾냐고?!”
내가 짜증을 내자 류호도 같이 짜증을 냈다.
[몰라. 내가 아는 건 거기까지야. 찾던가 말던가 맘대로 해!]
그리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짜증이 나서 씩씩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박태준 씨?”
그 소리에 난 깜짝 놀라 말을 건 사람을 쳐다봤다.
내게 말을 건건 처음 보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였다.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