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본사에 도착한 난 조한희에게 말해 탄이 머물 수 있는 연구실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모든 장비도 구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나오기 전에 쿠키앤크림 프라페를 하루에 스무개씩 사서 주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한희와 헤어진 후 밖으로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탄과 헤어지기 전에 그동안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들을 물었다.
“가기 전에 몇가지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뭔데?”
“일단 아까 그 구슬은 어디서 얻은 거야?”
“아! 우연히 신기한 기운이 느껴져서 가봤더니 있더라구.”
“그게 끝이야?”
“그럼 뭐가 더 있는데?”
너무 간단한 그의 대답에 순간 허탈해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다른 걸 물었다.
“그럼 마인 세력에 있던 군사는 본 적 있지?”
“당연하지.”
“그 군사라는 놈은 어떤 놈이었어?”
내가 군사에 대해 묻자 탄의 얼굴이 조금 진지해졌다.
“사실 그놈 정체가 뭔지는 대충 짐작은 가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역시 나 못지 않은 실력자였단 거야.”
“군사가 너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제대로 싸워보진 않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날지도 모르지.”
“그럼 아까 정체가 대충 짐작은 간다고 했는데, 니가 생각하는 그놈 정체는 뭔데?”
허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궁금해 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는 것 같았다.
저 변태 같은 새끼!
하지만 속마음과 달리 겉으론 그를 회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허나 그는 끝까지 그것에 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니가 나한테 줄 수 있는 걸론 그의 정체에 대한 건 알아낼 수 없지. 수지타산이 안맞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말해줄 건데?”
“그건 좀 더 고민해보고 얘기해줄게. 대충 물어볼 건 다 물어본 분위기니 난 이만 실험실로 가볼게. 그럼 나중에 봐!”
그리곤 오른손에 들고 있던 프라페를 길게 빨아들이면서 실험실로 걸어갔다.
한동안 멀어지는 그의 등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쿠키앤크림 프라페를 시키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갑자기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정신이 없긴 했지만, 수학 문제를 풀 듯 차분하게 하나씩 생각해봤다.
지금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말살자보다는 마인 세력을 막는 일이다.
그리고 선계를 이미, 직접 무너뜨렸다는 건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의미했다.
또한 그들은 선계에서 했던 것과 같은 방식을 이용해 우릴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탄의 연구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탄이 검은 액체에 대항할 방법만 알아낸다면, 마인 세력을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그 부분은 탄한테 맡기고 마인 세력이 언제든 쳐들어 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전세계에 일깨워 줘야 하는데 그게 아직 부족하단 말이지. 물론 시기적절하게 콜로세움의 몬스터들이 나와줘서 어느 정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걸로 아직 부족해. 뭔가 방법이 없을까?’
처음엔 콜로세움에서 나온 몬스터들로 인해 사람들의 경각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점차 그 분위기에 적응해 가서 지금은 뉴스에서 몬스터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마인 세력이 쳐들어온다면 제대로 대응도 못해보고 당할 수밖에 없다.
‘잠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경각심은 내가 불러일으키면 되는 거잖아!’
순간 머릿속에 소설 속에서 머물 때 학교에 일어났던 테러를 떠올렸다.
아직은 각성자 학교가 없지만, 미래에 생기게 될 각성자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일어났고 그걸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히든 보스의 공격이 시작됐었다.
나도 똑같이 그걸 이용하는 거다.
세상 사람들이 마인 세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한 사건을 통해 그걸 보여주는 것이다.
‘흐흐흐. 역시 사람들을 자극하기 위해선 학교가 좋겠지? 일단 배우들부터 섭외해야겠다.’
내가 한 생각은 한바탕 연기를 하는 것이다.
준비된 세트장에서 배우들과 함께 테러가 일어난 것처럼 연기를 할 생각이다.
물론 리얼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각성자를 섭외해서 판을 짜야 하겠지만.
그리고 그 광경이 아이즈를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인 세력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군사도 바로 공격을 감행하긴 어려울 거야. 그 사이 난 엠아이라는 회사에 대해 알아보면 되겠지. 말살자는 그 다음에 생각하자.’
근데 이쯤 되자 히든보스가 누군지가 너무 궁금했다.
‘군사 뒤에 누군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히든 보스일까? 아님 다른 누군가? 대체 이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모든 일이 그놈으로부터 시작됐는데, 아직 히든 보스에 대한 윤곽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아니지. 조급해하지 말자. 하나씩 풀어가다보면 알게 되겠지. 그놈이 누군지!’
그때부터 난 배우들을 섭외하기 위해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일단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학교가 좋았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곳보다 큰 이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도심 가운데 있는 학교를 타겟으로 하는 게 좋았다.
* * * * *
드디어 모든 섭외와 연습을 끝내고 작업 당일이 됐다.
난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학생들이 등교한 상태에서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이 혹시라도 다치면 안되기 때문에, 피해가 가지 않게 아이들 주변에 강력한 진법을 쳐놓았다.
겉으론 보이지 않지만 웬만한 공격은 다 흡수하는 강력한 진법이다.
그리고 호루스와 키라에게 부탁해 그들의 수하들 중 의사소통이 되는 몬스터들도 수백 마리 빌려왔다.
거기다 몽유도에서 한가닥하는 실력자들에게 십이지신에 속하는 동물 탈을 쓰게 한 다음 몬스터를 이끌고 학교를 쳐들어오게 했다.
들어오는 건 화려해야 했기 때문에 최대한의 화력으로 학교 입구 주변과 학생들이 없는 건물을 폭파시키도록 했다.
거기다 덤으로 주변 건물들까지 마구잡이로 부수고는 학교를 향해 들어갔다.
그때 내가 몽유도의 다른 실력자들과 함께 그들 앞을 막아섰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실시간으로 아이즈를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미리 합을 맞췄고 몬스터들의 경우엔 키라와 호루스가 죽여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리얼리티를 위해 몇 마리는 죽였다.
그러자 남은 몬스터들은 더욱 흥분해 날뛰었다.
덕분에 보는 이들은 그 상황을 완전히 진짜처럼 느꼈다.
마인 세력으로 변장한 이들은 한참을 싸우는 척 하다가 내게 밀려서는 급히 도망을 갔고, 나도 상황이 정리된 다음엔 곧바로 사라졌다.
물론 가기 전에 진법을 해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히 학생들 중 다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됐다.
그리고 학교를 습격한 이들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내게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고, 난 전 세계에 그들의 정체를 알리는 인터뷰를 했다.
그제야 내 의도대로 사람들은 마인 세력이 진짜 있다고 믿게 됐고, 그와 더불어 그에 대한 대비도 하기 시작했다.
가끔 내가 한 작업이 실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들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 일을 벌인지 며칠 후 혼자 심상수련을 하고 있는 내게 누군가 찾아왔다.
방 안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난 은밀하게 접근하는 기를 느끼고는 눈을 떴다.
“누군데 쥐새끼처럼 들어오는 거지?”
그러자 상대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듣던 대로 제법이군. 내가 온 걸 먼저 눈치채다니 말이야.”
고개를 돌리자 가벼운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서서 날 보고 웃고 있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뿐 아니라 그의 얼굴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의 얼굴이 생각이 안났다.
정확하게는 보고는 있지만 얼굴을 떠올릴 수는 없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다.
아마 특별한 기술로 자신의 본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양이다.
난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니가 마인 세력 군사야?”
내 질문에 이번에도 그는 놀란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번에 내가 누군지까지 알다니. 생각보다 더 제법인걸!”
“됐고. 찾아온 용건이나 얘기해.”
“용건이 별거 있어! 그냥 얼굴이나 한 번 봐두려고 왔지.”
사실 난 마인 세력 중 누군가가 찾아올 거라는 건 대충 예상을 했다.
물론 군사가 직접 찾아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당황한 내색은 하지 않고 태연한 척 대화를 이어갔다.
“왜? 내 작품이 맘에 들었나봐?”
“제법 괜찮았어. 설마 그런 방법을 사용할 줄은 예상 못했거든. 아. 정확히 말하자면 예상을 못했다기보단 확률이 매우 낮다고 판단했지.”
“그래서 인간 세상에 침공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하하하.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걸 준비한 줄 알 텐데, 그런 소릴 하는 거야?”
마인을 통해 내가 자신에 대해 알고 있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그럼 뭐 선전포고라도 하겠다는거야, 뭐야?”
“니가 십이지신들을 죽이면서 이미 선전포고는 한 셈 아닌가?”
“흠, 그런가?”
“사실 너만 아니었다면 이미 우리가 세상을 다 쓸어버렸을 거야. 근데 너라는 변수 하나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 됐지. 물론 넌 니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한 일일 테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내가 한 일이 그가 세운 계획에 제법 많은 영향을 줬나보다.
“그렇담 다행이고!”
“근데 손님이 왔는데 이렇게 세워만 둘 건가? 차라도 대접하는 게 예의 아닌가?”
그리곤 한켠에 놓인 소파에 가서 털썩 앉았다.
‘저 뻔뻔한 놈!’
속으론 그를 욕했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이리로 와. 차는 없고 커피는 있는데, 커피라도 한 잔 줄까?”
“커피 좋지. 기왕이면 라떼로 부탁해.”
“……개소리 말고 주는 대로 처먹어!”
그리곤 커피 캡슐을 넣고 커피를 한잔 내려서는 거칠게 군사 앞에 내려놨다.
“자!”
“고맙군.”
그리고 커피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더니 호록하고 한 모금 들이마셨다.
“라떼가 아니라 아쉽지만 커피 맛은 괜찮군.”
“이제 시간 그만 끌고 본론부터 얘기하지 그래!”
그는 내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좀 더 여유를 가져보라구.”
“나 지금 충분히 여유있었거든! 너 때문에 그 여유가 깨진 거니까 어서 용건이나 말하고 돌아가.”
“하하하. 내가 온 이유는 간단해. 너, 우리랑 같이 해볼 생각 없어?”
“뭐? 니들이랑 한 편을 하라고?!”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