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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방어력 무한-174화 (174/196)

174화

카페로 들어온 인물은 탄이었다.

그는 날 보더니 활짝 웃으며 걸어들어왔다.

10대 초반의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탄이 웃으며 내게 걸어오자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아마도 날 탄의 아빠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탄은 오기 전에 카운터에서 음료까지 주문한 다음 내 맞은편 소파로 와서 털썩 주저앉았다.

“니……니가 여긴 어떻게……?”

내가 당황해서 묻자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왜? 내가 못올 곳이라도 왔어?”

“헛소리하지 말고 왜 왔는지나 말해.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너까지 길게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내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을텐데…… 아니야?”

난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그를 노려봤다.

사실 탄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마인 세력을 이끌고 있는 군사의 정체다.

그가 어디까지 아는지 모르지만 일단 그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낼 생각이다.

둘째는 진짜 무적자가 얘기한 대로 말살자 조각을 소유하고 나서 정신이 이상해졌는가이다.

하지만 급하게 그에게 궁금한 걸 묻지는 않았다.

조급해 보이고 싶지도 않았고 일단 그가 찾아온 이유가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 탄이 주문한 쿠키앤크림 프라페가 나왔다.

그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음료를 길게 쭉 빨아들였다.

“캬! 인간들은 대단하단 말이야.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어내다니!”

그는 감탄하며 연신 음료를 마셔댔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액션을 취하진 않았다.

탄이 먼저 날 찾아왔다는 건 내게 묻고 싶거나 요구하고 싶은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가 먼저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하게 하는 것이 내가 좀 더 유리한 지점에 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탄도 그걸 알기 때문에 자꾸 딴소리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탄은 그 많던 프라페를 다 마시고는 손으로 슥하고 입을 닦았다.

그리곤 눈을 빛내며 날보고 물었다.

“너, 제법 늘었네. 분명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참을 줄도 알고 말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도 나한테 원하는게 있으니까 찾아왔을 테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길게 끌어봐야 좋을 건 없지.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이거야.”

그리곤 탁자 위에 뭔가를 올려놨다.

그가 올려놓은 건 푸른빛의 작은 구슬이었는데,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이게 뭐야? 난 처음 보는 건데?”

“처음 본다라…… 근데 저게 왜 자꾸 널 찾는 거지?”

“날 찾는다고? 그게 무슨……?”

저건 또 무슨 말이지? 저 구슬이 날 찾는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구슬이 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설명하기 귀찮으니 일단 저 구슬이나 들어봐.”

난 그의 말에 가만히 구슬을 쳐다봤다.

하지만 선뜻 손이 가진 않았다.

구슬이 뿜어내는 푸른빛이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긴 했지만 만지기는 망설여졌다.

그러나 언제까지 망설일수는 없는 일.

난 결국 손을 뻗어 구슬을 잡았다.

화악!

그러자 구슬에 감싸여 있던 푸른 기운이 내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난 깜짝 놀라 구슬을 손에서 놓았지만 구슬은 본드로 붙인 것처럼 손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그때 머릿속에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드디어 찾았구나. 말살자의 기운을 간직한 이여.]

어?! 이 목소린……!

분명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다.

그건 예전 백두산에 갔을 때 날 불렀던 천룡의 목소리였다.

서……설마 천룡……?

[결국 그대와 만나게 되는구나. 이 또한 운명이로구나.]

보아하니 천룡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모양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쉽게도 내게 남아있는 기운이 얼마 없어 길게 얘기하긴 어려울 것 같구나. 내 기억을 전해주마. 이 기억으로 인간 세상에 닥칠 큰 환난을 막아줬으면 한다.]

자……잠깐만! 간단히라도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줘야지!

[내가 있던 곳이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 의해 멸망했다. 난 그들과 싸우던 중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죽기 직전 한 줌 남은 기운을 저 구슬에 불어 넣어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계속 널 찾아다녔다.]

그럼 넌 죽는 거야?

[난 이미 소멸했다. 지금 너와 대화하는 난 생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지일 뿐. 부디 내 기억이 인간 세상에 도움이 되길……]

어……어……?

하지만 더는 천룡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의 말대로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이 머릿속에 밀려들었다.

“으윽!”

내 의지와 달리 머릿속에 기억이 밀려드는 경험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기억의 내용이 날 더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억이 모두 들어온 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어? 너 왜 우냐?”

“응? 운다고?”

탄의 말을 듣고서야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난 급히 냅킨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천룡이 전해준 건 기억뿐만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감정까지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에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인간들에게 가진 애정 역시 고스란히 전해졌다.

천룡이 전해준 기억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 세상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승천한 용들과 우화등선한 도사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곳이 있다.

혹자는 선계라고 부르는 그곳은 이미 깨달음을 얻은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큰 다툼 없이 모두 조화롭게 지내왔다.

그런데 갑자기 몇몇 도사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건 전염병처럼 퍼져, 결국 대부분의 도사들이 공격적으로 돌변하더니 그곳에 있던 깨달음을 얻은 다른 종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저항하던 대부분의 이들은 죽고 천룡 역시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치명상을 입었다.

거기까지가 천룡이 전해준 기억의 전부다.

그리고 그걸 본 난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건 얼마 전 프랑스 파리의 각성자들에게 있었던 일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인 세력이 선계까지 손을 뻗은 거구나! 이 미친 새끼들!

그때 가만히 기다리던 탄이 물었다.

“보아하니 대충 정리가 된 것 같은데. 이제 저게 뭔지 말해줄 수 있겠지?”

그의 말에 난 탄을 보며 되물었다.

“너 지금도 마인 세력이랑 연락하고 지내지?”

“마인 세력? 아니. 그 놈들이랑은 지난 번 너랑 헤어진 다음 만난 적 없는데.”

“그래? 그럼 니가 개량했다는 그 검은 액체는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지?”

“내가 그때 얘기했듯이 애초에 예방하면 모를까 일단 몸 안에 들어오면 없애기가 쉽지 않아.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지?”

난 그의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이걸 탄한테 얘기해 ,말아?

아무리 생각해도 탄 밖에는 검은 액체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대마녀에게 부탁을 해도 되지만 해결책을 찾으리란 확신도 없고. 찾는다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탄은 다르다.

당장 그가 개량한 검은 액체만 보더라도 확실히 이전보다 발전해 있었다.

그렇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도 빠른 시간에 가능할 것이다.

지금 마인 세력이 선계를 쳤다는 건 확실하게 인간 세상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다.

아무래도 선계는 인간 세상에 호의적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이 위기에 처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했으리라.

그리고 선계 공략이 끝난 지금 그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존재들은 절대자들 밖에 없다.

헌데 절대자들은 지금 말살자로 인해 정신이 없는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인 세력에게 지금보다 좋은 기회는 없는 것이다.

저 새끼한테 부탁하는 게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생각을 정리한 난 그에게 그 구슬이 뭐였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말해줬다.

난 그가 시큰둥하면 어쩌나하며 말한 거였는데 의외로 말을 다 들은 그는 버럭하고 화를 냈다.

“뭐? 그 새끼들이 그런 실험을 벌였다고? 나도 빼고 말이야?! 이 미친 새끼들이 감히 날 빼고 그런 짓을 저질렀단 말이지?!”

뭔가 흥분하는 포인트가 나완 달랐지만 아무렴 어떠랴.

일단 저놈이 내 얘길 듣고 흥분하기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날 좀 도와 줄 수 있어?”

“도와달라고? 어떻게?”

“그 새끼들이 널 빼고 그딴 짓을 저질렀는데 가만 둘 순 없잖아. 나도 그 새끼들한테 볼일이 있고 말이야.”

“그래서 날 더러 그 개새끼들 치는 걸 도와달라고?”

“아니, 그거 말고 니가 개량한 검은 액체를 없애는 방법을 연구해줘. 기왕이면 몸 안에 들어온 다음에 없애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으면 더 좋고. ……근데 그건 아무래도 좀 힘들겠지?”

난 일부러 그의 자존심을 살짝 긁으며 물었다.

내 말을 들은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말했다.

“감히 날 이용하려고 한다 이거지? 뭐, 좋아. 나도 그 새끼들이 내 창작물을 가지고 지들 맘대로 일을 벌이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리곤 갑자기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다 창작이란 건 부수는 맛에 하는 거 아니겠어. 내가 깔끔하게 부숴주지. 하지만 나도 조건이 하나 있는데.”

“조건?”

난 왠지 그가 무슨 조건을 내걸지 예상이 됐다.

보나마나 실험 대상이 되어 달라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게 하루에 한 번 대련을 요구했다.

“하루에 한 번만 나랑 싸워주면 돼.”

“안 그래도 그말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거면 되는 거지?”

“흐흐흐. 한 가지 더.”

“한 가지 더?”

“매일 하루 스무 잔의 쿠키앤크림 프라페를 제공해 줄 것. 그거면 돼.”

“하루 스무 잔?! 그걸 다 먹는다고?”

놀란 내 표정에 그는 뭘 그리 놀라냐는 듯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그렇게 놀랄 건가? 좋아한다면 그 정도는 먹어줘야지.”

“하아! 그래. 내가 널 일반인의 기준에서 생각해선 안 되지. 좋아, 니 말대로 하루 스무 잔씩 제공할게. 연구는 어디서 할 건데?”

“흠……그동안은 그놈들 연구실을 썼는데 이젠 못 쓸 거고……그렇다고 내 원래 연구실은 차원의 벽을 넘어가야 돼서 좀 위험하고…….”

난 그의 말을 듣다 걸리는 게 있어 물었다.

“잠깐! 차원의 벽을 넘어가는 게 왜 위험해? 지금까지 잘만 넘어 다녔잖아!”

“그렇긴 한데 차원의 벽을 보호하는 존재들이 있어서 그놈들이 몰려오면 좀 귀찮아져. 생각보다 끈질긴 놈들이거든. 너도 차원 넘어 다닐 땐 조심하는 게 좋아, 요즘은 이상하게 잠잠하긴 한데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놈들이거든. 변덕도 심하고 말이야.”

“그럼 어디서 연구할 건데?”

“어쩔 수 없네. 니가 연구실 하나 만들어 줘야겠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뭘 그렇게 시간을 끌어. 당장 만들어줄게! 근데 난 계속 돌아다녀야 되는데 하루 한 번 싸우는 건 어떻게 하지? 내가 가야 되나?”

내 물음에 그는 씨익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마. 처음 만났을 때 너한테 먹인 거 기억하지?”

“마지막에 내 입에 넣은 거 말이야?”

“그래. 그때도 말했지만, 그건 추적기 같은 거야. 니가 어디 있든 내가 찾아갈 수 있지. 더군다나 같은 차원에 있다면 공간 이동으로 찾아가면 되니까 문제 없어. 시간만 정하면 내가 항상 그 시간에 가도록 하지.”

“근데 너 혹시 나랑 계속 싸우고 싶어서 실험을 천천히 하고 그럴 건 아니지?”

그 말에 그가 약간 멈칫하는 게 보였다.

역시 그럴 생각이었구만.

난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연구 다해도 한 달간은 계속 싸워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 연구실은 바로 안내해줄 테니까.”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그럼 가볼까.”

앞장서 카페 문을 나서던 그는 미리 주문해 놓은 쿠키앤크림 프라페를 받아서 들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걸 보고 고개를 저으며 그와 함께 피앤씨컴퍼니 본사로 향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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