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무적자.
그는 차원의 벽을 지키는 자라고 했다.
대마녀에게 들었던 대로 마녀의 숲에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 그걸 없애기 위해 나타난 이가 무적자라고 했다.
또한 지난 번 키라가 차원의 틈을 열고 나왔을 때도 나타났었다.
그때 그는 날 보고 자신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존재라고 했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나타난 것이다.
무적자는 나타나자마자 게이트 앞에 가서는 양팔을 앞으로 벌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두 주먹을 꽉쥐고는 빨래를 짜듯이 두 주먹을 비틀어댔다.
그러자 앞에 있던 게이트가 서서히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 즉시 드락과 다른 랭커들이 무적자를 향해 달려갔다.
무적자가 게이트를 없애려 한다는 걸 알고 나 또한, 그들을 막기 위해 달려가려했지만 그 앞을 고토가 막아섰다.
“어딜 가는 거지? 아직 우리 승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간만에 너 같은 강자와 대결을 하니 가슴이 뛰는구나!”
그리곤 다시 미친 듯이 주먹과 발을 휘둘러대며 공격해왔다.
‘젠장. 무적자가 방해받지 않게 막아야 되는데!’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철문 안으로 들어서며 무적자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들을 막아섰다.
그들을 본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토와의 대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방금 철문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바로 몽유도 사람들이었다.
짱짱 길드를 대신해 본사의 경비를 맡고 있던 그들은 이제야 옥상에서 사람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내려온 것이다.
츤츤이와 함께 지옥의 수련을 하고 온 그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번 저들 실력을 테스트 해본 결과 한 명 한 명은 랭커에 못 미치지만 두 명만 되도 랭커 한 명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오십명이 넘게 있기 때문에 무적자를 보호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들 저놈들이 절대 게이트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해! 알겠지?”
“네! 주군!”
그들은 내 외침에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제야 난 고토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제대로 놀아볼 수 있겠는걸! 니 소원대로 어디 한 번 신명나게 놀아볼까!”
하지만 이번엔 고토가 내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게이트쪽을 한 번 힐끔 바라본 뒤 다시 날 보며 말했다.
“나도 더 놀고 싶지만 이대론 조금 힘들겠군. 다음에 기회를 봐서 다시 놀자!”
그리고 순식간에 나와의 거리를 벌렸다.
그렇다고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달려가지도 않았다.
그가 나와 거리를 벌리자마자 모든 곳에 있는 지옥철문이 하나의 목소리로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모두 들어라. 즉각 이제 곧 게이트가 닫힌다. 즉각 흩어져서 랭커를 올려라. 그럼 얼마 후 플뤼톤 님의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몬스터들이 사방에 있는 지옥철문을 향해 물밀 듯이 들이닥쳤다.
지옥철문들 근처에 있던 길드장들과 내가 힘을 합쳐 막았지만 이미 이곳에서 나가는 게 목적인 그들을 모두 막기란 불가능했다.
그건 10위 안의 상위 랭커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이대로 떠나가는 게 못내 아쉬운 듯 했지만, 로코의 절대명령 때문인지 군소리 없이 물러났다.
난 상위 랭커들이 콜로세움을 떠나자 즉각 몽유도 무인들에게 명령했다.
“일단 이 안에 남아있는 몬스터부터 싹 다 잡아 죽여라. 그리곤 사방에 흩어져서 숨어있는 몬스터들을 찾아서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여라! 대신 절대 혼자서 움직여선 안된다. 무조건 이인 일조로 움직이도록 해라!”
내 명령을 듣자마자 그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미친 듯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콜로세움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정리가 됐다.
하지만 죽은 몬스터보다 빠져나간 몬스터가 몇배는 더 많았다.
그때 엄청난 폭음이 어디선가 들려왔다.
쿠콰콰쾅.
고개를 돌리지 무적자가 드디어 게이트를 닫는데 성공했는데 게이트가 아까 그 소리는 게이트가 완전히 소멸하면서 난 소리였다.
난 일단 무적자는 남겨두고 살아남은 길드장들에게로 갔다.
그들 중 천마 길드장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내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오? 설명을 해주시오!”
궁금하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지 다그치는 듯한 눈빛으로 모두 날 쳐다봤다.
‘음……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겠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줘야겠다.’
마음을 굳힌 나는 말살자에 대한 얘기부터 절대자들과 얽힌 이야기들. 그리고 말살자의 추종자에 대한 얘기들을 간단히 해줬다.
“지금 시간이 없기 때문에 길게는 말씀 못 드리지만 지금 말씀드린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래서 절대자인 키라가 저와 함께 있었던 거구요.”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눈앞에 증거가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구…… 이걸 어찌해야 되나…….”
어느 길드장의 혼잣말이었지만 다른 길드장들 모두 공감하는 내용인 듯 했다.
“어쨌든 지금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아까 들으셨겠지만 여기서 나간 수많은 몬스터들이 닥치는 대로 인간과 동물을 죽일 겁니다.”
“그들이 그렇게 마구 죽이는 이유가 뭔가?”
“그건 이곳이 콜로세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긴 1000위까지 랭킹이 매겨져 있는데 예전엔 이곳에 소속된 이들끼리 싸워서 랭킹을 올렸지만 지금은 콜로세움의 주인이 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이느냐에 따라 랭킹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그럼 정말 큰일인 걸.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빨리 대책을 세워야겠어!”
“맞습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각자 길드에 연락을 해서 지금의 상황을 알리고 서둘러 사람들 사이로 파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전세계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혹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하지만 다들 그에 대해선 묵묵부답이었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일단 각자 길드에 연락해서 몬스터들부터 처리하라고 말씀해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그리곤 다들 흩어지며 어디론가 연락을 했다.
그들이 가는 걸 본 난 즉시 프랑수아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프랑수아는 연락을 받았다.
간단히 안부를 물으니 일이 잘 풀려 석방됐다고 했다.
아마 SSS급 각성자다보니 가둬놓는 것도 지금 같은 시국에 전력 낭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난 즉시 그에게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알겠네. 즉시 유럽 연합 각성자 회의를 소집하지. 핫라인을 가동해서 전 세계에 있는 다른 길드들에도 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말했다.
[지난 번 일은 고마웠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난 진작에 죽었을 거네. 로빈도 옆에서 대신 고맙다고 전해달라는군.]
“그런 건 나중에 일 다 끝나면 만나서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맨입으로 고맙다고 하면 누가 믿습니까! 맛있는 거나 잔뜩 사주면서 그런 말씀 하셔야죠!”
[그거라면 걱정말게. 몸조심하고! 조만간 또 연락하세나.]
프랑수아와 전화를 끊은 난 그제야 소멸된 게이트 앞에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고 있는 무적자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내가 가까이 오자 무심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가진 말살자의 힘이 더욱 강해졌구나. 분명 다른 이의 조각을 흡수했을 테지. 하지만 그 힘은 모든 걸 파괴하는 힘. 아직은 그대가 균형을 흐트러트리진 않지만 조만간 그대가 그릇된 길을 갈 것이라는 걸 난 확신할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니 말대로 내가 그 힘을 가지고 이상한 짓을 한 적은 없는 걸로 아는데.”
“그렇지. 아직까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진작 다시 만났을 테지. 허나 지금까지 말살자의 힘을 가진 이치고 균형을 흐트러트리지 않은 이는 없었다. 다만 시기만 다를 뿐. 그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테지.”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지. 진짜로 내가 예외일수도 있잖아?”
그는 야수같이 헝클어진 그의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그의 눈에선 형형한 푸른색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가 모두 그런 말을 했지. 하지만 모두 잘못된 길을 걸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아. 지금 너랑 그런 문제로 말싸움하고 싶진 않고. 그보다 왜 이제야 나타난 거지?”
“그게 무슨 소리지?” “너, 지금 지옥에서 말살자를 따르던 추종자들이 차원의 벽을 뚫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알고 있으면서 왜 그들이 차원의 벽 뚫는 걸 가만 놔두냐 이 말이야?”
“우린 태초부터 차원의 벽을 지켜오며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차원의 벽이 열릴 때마다 그들을 제거하고 차원을 막았지. 허나 아무리 우리가 차원의 벽을 막아도 바퀴벌레처럼 언제나 다른 놈들이 나타나서 차원을 열려고 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린 그 원인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았지.”
“해결책?”
난 그들이 찾았다는 해결책이 뭔지 궁금해 급히 물었다.
“결국 차원을 넘나다닐 수 있는 존재는 말살자의 힘을 얻은 이들 밖에 없다. 하지만 조각을 가진 이들을 하나하나 없애고 조각을 회수해도 문제는 있었다.”
“문제?”
“그렇다. 얼마 전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던 말살자 조각을 누군가 가져가는 사건이 있었다.”
“뭐? 이 미친 새끼야! 결국 니들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였구만!”
갑자기 말살자의 의지와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난 게 이상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차원의 벽을 지키는 이들이 모아놓고 있던 말살자 조각의 힘을 가져갔기 때문에 갑자기 그가 수면위로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모든 의문이 풀리게 된다.
허나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말했다.
“그게 왜 우리 때문이지? 벌레 같은 너희가 자꾸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을.”
난 모든 걸 우리 탓으로 돌리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 같아서 더는 말을 끌지 않고 다른 걸 물었다.
“뭐 됐고, 그래서 니들이 생각한 해결책이 뭔데?”
그는 내 질문에 물끄러미 날 바라보다 말했다.
“우린 말살자 조각이 모두 모이길 기다리기도 했다.”
“말살자 조각이 모두 모이길 기다린다고? 그 말은 말살자의 힘이 완벽히 부활한다는 건데, 그걸 너희가 감당할 수 있다는 거야?”
허나 그는 내 질문에 대답 대신 자기 할 말만 했다.
“우린 말살자 조각이 모두 모이면 그 소유자를 죽이고 그가 모은 완벽한 말살자 조각을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할 건데?”
“그런 다음, 우린 완벽한 말살자 조각을 부숴서 없애버릴 것이다.”
“뭐?! 말살자 조각을 부순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