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절대명령이 뭐지?
그는 내가 의문을 가진 듯 하자 부연설명을 했다.
“절대명령은 플뤼톤님께서 랭킹 3위 이상에 있는 이들에게만 부여한 특별한 권한이지. 말 그대로 3위 밑에 있는 모든 선수와 몬스터들은 우리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뭐 별거 아니네. 그나저나, 아까 고토라는 놈이랑 같이 상대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 전에 넌 현재 콜로세움에 등록된 선수신분. 내 절대명령을 거부할 생각인가?”
“애초에 선수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어. 니들 맘대로 선수로 만든 거니 나도 맘대로 그만둘 거야. 불만은 없지?”
“그거야 상관없지. 허나 다행이군.”
그의 다행이라는 말에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게 왜 다행이라는 거지?”
“플뤼톤님께서 같은 선수끼리는 죽여선 안된다는 규칙도 만드셨는데, 니가 제발로 선수를 그만두겠다니 천만 다행이라고 볼 수 있지!”
그 말과 동시에 드락이 들고 있던 잿빛 창을 가볍게 앞으로 쑥 찔러왔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난 급히 환영보를 사용해 그의 사정권을 벗어나려 했지만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그만큼 그의 공격은 위력적이었다.
덕분에 옷 곳곳이 찢기긴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저놈 대단한 걸! 전엔 몰랐지만 이제 보니 저 놈도 준절대자급의 실력자구나.
단 한 번의 공격이었지만 드락이 어느 정도 실력자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보다는 한수 아래긴 하지만, 아까 말한 고토라는 놈이 온다면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까 말한 고토라는 놈이 랭킹 2위야?”
드락은 내지르고 있던 창을 거두고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다. 고토님이 바로 랭킹 2위지.”
“그럼 1위는 누군데? 1위는 같이 안 오는 거야?”
“그 분은 지금 자리에 계시지 않는다.”
“자리에 없다고? 그럼 지옥에 있는 거야?”
허나 드락은 고개를 저었다.
“랭킹 1위가 되면 특권으로 언제든 본인이 원하면 콜로세움을 떠날 수 있지. 완벽한 자유. 그게 바로 랭킹 1위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릿속에 신기 노인이란 이름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더는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일단 눈앞의 난관부터 헤쳐나가는게 중요하니까.
“근데 플뤼톤은 직접 안 온 거야?”
“플뤼톤님께선 다른 대마신님들과 함께 우리가 길을 닦아 놓은 후에 이곳으로 오실 것이다.”
흠. 결국 그들이 넘어올 만한 차원의 틈은 만들지 못한 거구나. 일단은 다행이야.
그때 드락이 말했다.
“고토님께서도 곧 오실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난 너와 겨뤄보고 싶군. 과연 니가 나와 고토님 둘이서 싸울만한 상대인지 확인해 보겠다.”
그 말을 끝으로 드락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됐다.
그의 주무기는 예상대로 창이었는데 그 위력이 엄청났다.
특히나 연계기가 뛰어나 한 번 찌르고 다음 찌르기 사이에 다른 공격을 섞어, 중간에 틈이 전혀 없었다.
난 최대한 피하려고 했지만 힘뿐 아니라 기술까지 무척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를 입지 않는 나와 달리 드락의 몸에는 점점 상처가 늘어갔다.
그럴수록 그의 공격은 더욱 강하고 매섭게 변했고 나 역시 그에 맞춰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그 때문에 주변에 있던 애꿎은 몬스터들만 수없이 죽어나갔다.
그렇게 한 동안 싸우던 드락은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말했다.
“역시 예상대로 상당한 실력을 가졌군. 절대자들 말고도 너 정도의 강함을 지닌 이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
“뭐 이정도 가지고. 근데 더 안할 거야?”
“해야지. 하지만 이대론 내게 승산이 많이 않을 것 같으니 고토님과 함께 널 상대하는 게 맞을 것 같군.”
“사나이가 자신감이 있어야지.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되겠어?”
난 고토라는 놈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드락을 처리할 생각으로 그를 도발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은 메마른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목숨을 걸고 제대로 싸워보고 싶군. 하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 나 개인의 감정에 휘둘려 플뤼톤님께 피해를 줄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러니 고토님이 오신다면 그때 너와 싸우겠다.”
“그 고토라는 놈은 언제 오는 건데?”
“아직 차원의 틈이 우리 모두를 한꺼번에 받아들일 만큼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 허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 말을 듣고 난 멀리 보이는 다른 문들을 바라봤다.
곳곳에서 치열하게 싸우고는 있지만 대부분 약간씩 밀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아마도 랭킹 10위 아래의 강자들이 합류하면서 밀리게 된 것 같았다.
“니가 안 싸우겠다면 일단 다른 놈들부터 처리할게.”
난 드락을 지나쳐 달려갔지만 의외로 드락이 막거나 하지 않았다.
그를 지나쳐 가던 난 생각외의 반응이라 자리에 멈춘 다음 그에게 물었다.
“나 안 잡아? 니 부하들 내가 다 죽여버릴 수도 있는데?”
“저런 잡졸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지. 그러니 아무리 죽인다 한들 플뤼톤님의 전력엔 아무런 영향도 없다.”
“하지만 랭킹 10위 아래에 있는 놈들은 다를 텐데?”
“물론 그들은 다르지.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강자. 쉽사리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없다. 오히려 저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저들을 더 성장하게 하는 계기가 되겠지.”
그 말에 난 움찔했지만 지금 당장 급하니 얼른 길드장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도착하자 아까보다 상황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길드장들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그건 일반적인 몬스터를 상대할 때의 얘기다.
지옥의 콜로세움에 있는 10위 내의 랭커들을 상대할 실력은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원이 더 많기 때문에 겨우겨우 버티고는 있었으나, 그마저도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난 지체하지 않고 랭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거기엔 카르멘과 오로치 외에도 내가 처음 보는 랭커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지 일곱 명 중 세 명만 남기고 나머지 네 명은 날 상대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젠장. 너무 많은 걸! 이러다간 길드장들이 더 버티지 못하겠어! 어쩔 수 없지. 실전에서 처음 쓰는 거긴 하지만 기대를 걸어보자!’
그리곤 화룡도를 소환해제하고 화룡검을 손에 들었다.
붉은 검신의 화룡검이 내 손에 들리자 웅웅거리며 작게 울었다.
“어디 한 번 해보자! 7식 검무!”
그리곤 천의권 7식인 검무를 시전했다.
지금껏 그 위력을 버티지 못하고 끝까지 시전해 본 적이 없는 7식이다.
하지만 화룡검은 절대자가 지녔던 검인만큼 천의권을 무리 없이 버텨냈다.
난 검무를 시전하자마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마치 화룡검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며 몸이 검무의 초식을 따라 저절로 움직였다.
검무가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땐 한바탕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온 것 마냥 온 몸에 있던 기가 쭉 빠져 나간 게 느껴졌다.
“후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눈을 뜬 난 깜짝 놀랐다.
내 주위 반경 30미터 정도가 완전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그 안에 있던 몬스터들은 시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내가 한 일이지만 황당해서 길드장들을 보니 그들도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랭커들도 마찬가지여서 나 때문에 그들은 싸우는 중이란 것도 잊고 모두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보아하니 랭커 일곱 명 중 두 명이 없는 걸로 봐서 내 검무에 휩쓸려 죽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등 뒤에서 뭔가가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응? 뭐지?
하지만 돌아볼 틈은 없었기 때문에 급히 몸을 틀어 날아온 물체를 피했다.
무시무시한 소릴 내며 날아온 물체는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다 갑자기 허공에서 선회해서는 방향을 틀어 다시 내게 날아왔다.
그건 드락이 들고 있던 잿빛 창이었다.
아마 내 검무에 랭커들이 두 명이나 죽자 기다리지 못하고 나선 모양이다.
그리고 그 공격에 맞춰 다른 랭커들 모두 길드장들은 무시하고 날 향해 달려들었다.
‘다시 한 번 검무를 써야되나?’
하지만 그러기엔 남아있는 내공이 부족했다.
무리해서 쓸 수는 있겠지만 아직 랭킹 2위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무리하다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다.
그래서 일단은 화룡검을 소환해제하고 일권과 파천을 융합한 기술로 랭커와 드락을 상대했다.
육대 일의 싸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완전히 밀리진 않았다.
물론 내가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방어에 치중하면서 틈이 생길 때마다 치명적인 한 방씩을 날렸다.
그 공격이 워낙 위협적이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랭커들도 쉽사리 공격을 하진 못하고 대치 상태가 지속됐다.
그때 어디선가 거칠고 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듣기 거북할 정도의 목소리에 난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거기엔 난쟁이가 서 있었는데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수염 때문에 얼굴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넌 뭐지?”
“난 고토다. 넌 17위였던 자로구나.”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어?”
내가 신기해하며 물었지만 그는 내 질문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드락에게 다가가 몇 마디 했고 드락도 작은 소리로 그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분위기를 보아하니 일어난 상황에 대해 얘기해주고 있는 듯 했다.
드락의 이야기를 다 들은 고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놈이 그렇게 강하단 말이지? 좋아. 그럼 나랑 한 번 붙어보자.”
드락은 그 소리에 그를 만류하려다 멈칫하곤 그만뒀다.
아마 말려도 듣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거기다 고토는 랭킹 2위라고 했으니 필요하다면 그냥 명령만 내리면 됐다.
“진짜 나랑 일대일로 붙으려구?”
“왜, 안되나?”
“안되긴. 나야 좋지.”
그 말을 끝으로 우리 둘의 격돌은 시작됐다.
콰쾅. 콰콰쾅.
굉음과 함께 콜로세움 곳곳이 파괴됐고, 미처 공격 반경에서 피하지 못했던 몇몇 길드장과 몬스터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하지만 우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고토는 완벽한 무투파였는데 그의 주먹과 발이 드락의 창보다 훨씬 날카롭고 강했다.
그의 주먹 공격은 평범한 일권을 상회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의 주먹을 상대하려면 파천에 일권을 섞은 기술을 사용해야지만 버틸 수 있었다.
콰쾅. 쾅. 쿠콰쾅.
역시 2위라 그런가. 이놈은 실력이 더 뛰어나네. 이럼 내가 더 불리해지는데……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지?
그때 뭔가가 빠르게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어? 누구지? 분명 어딘가에서 만난 적이 있는 기인데!
그 사이 정체모를 기를 가진 이는 엄청난 속도로 콜로세움 철문을 통과해 우릴 지나쳤다.
그리곤 곧장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드디어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결계를 지키는 자인 무적자였다.
“어? 무적자?”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