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내 손에 잡힌 건 한 뭉치의 머리카락이었다.
난 바닥에서 꿈틀대는 놈을 무시한 채 내게 머리카락을 던진 사람이 누군지 찾았다.
그때 거기 있던 길드원들이 모두 달려와서는 내 앞을 결연한 표정으로 가로막았다.
그리고 거기서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다급히 내게 소리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제 그만 보내주십시오!”
난 방금 말한 사람의 손을 힐끔 쳐다봤다.
그의 왼손에 머리카락이 들려 있는걸로 봐서, 저 사람이 머리카락을 던진 모양이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싸가지 없는 놈은 맞아야 된다는 게 내 지론이야.”
“이 정도면 충분히 맞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안돼. 너네 말 듣고 물러나면 내가 너네 때문에 물러난 걸로 보일 거 아니야!”
난 되도 안되는 트집을 잡으며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날 설득했다.
“지금 이 상황은 전세계로 생중계 되고 있을 텐데, 이쯤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아량을 베푸는 것이 박태준 씨 명성에도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딴 명성 필요 없어. 그보다 너흰 왜 저 새끼를 그렇게 감싸는 거지? 너 설마…… 혹시…… 취향이…… 남자……?”
내 장난스런 말에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버럭 소릴 질렀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뭣 땜에 저 새낄 그렇게 감싸고 도는 거야?”
“그……그건…….”
하지만 그는 말하길 꺼려했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내 목적은 그냥 니들 조지는 거니까!”
그리곤 은근슬쩍 기운을 방출했다.
압도적인 힘이 날 중심으로 흘러나왔고 날 막고 있던 천마 길드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자 급히 그가 말을 꺼냈다.
“싫다는 게 아니고…… 여긴 사람이 좀 많아서 그런 겁니다. 혹시 자릴 옮겨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그게 자리까지 옮겨서 얘기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얘기야?”
“중요한 얘기라기보다는, 저희한테 창피한 얘기라…… 부탁 드리겠습니다.”
난 잠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뭐. 근데 굳이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뭐 있어?”
“예?”
“그냥 쟤들보고 가라고 하면 되잖아.”
난 그 즉시 하늘로 도약해서 우릴 찍으며 구경하고 있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구경은 끝났으니까 돌아들 가라!”
그 말에 구경하던 이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니가 뭔데 우리한테 가라마라 하는 거야?!”
하지만 난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소리친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가지 않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근데 여기 남아서 죽어도 난 책임 안진다.”
그리곤 유형의 기운을 뿜어내서 악마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냈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압도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구경하던 이들을 압박했다.
“아…… 악마!”
“악마다!!”
하지만 그들은 내 기운에 짓눌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럼 누구부터 죽여줄까!”
내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구경하던 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난 그들을 느긋하게 돌아보다 힘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에이. 기분이다. 그냥 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도망갈 기회를 줄게. 지금 안 가면 진짜로 죽여버릴 거야.”
구경하던 이들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리나케 도망갔다.
난 기감을 확장해 그들이 진짜로 간 걸 확인하고는 그제야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곤 천마 길드원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됐지?”
그는 날 보고 약간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했다.
“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전 천마 길드 소속 제 2팀 팀장인 김길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저 아이는 저희 길드장님 아들인 배찬우입니다.”
난 그가 길드장의 아들일 거라고 어느 정도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찬우가 병적으로 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마찰이 많은 편인데, 이번 일만 해도 우연히 발견한 최상급 던전이지만 저희만으론 깨는 게 어렵기 때문에 정식으로 길드 차원에서 공략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걸 찬우가 막은 겁니다.”
“돈 벌려고 막은 거야?”
“예. 어차피 최상급 던전을 깰 수 있는 이가 있을 리 없다고 판단해서 입장료를 받고 던전에 입장하게 한거죠.”
“분명 그런 일에 불만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있었을 텐데?”
“물론 있었지만 아까도 보셨다시피 찬우가 인성은 저래도 SS 등급 각성자다 보니, 웬만한 각성자는 찬우한테 상대가 안됩니다. 혹시 단체로 항의할 때는 저희가 대신 나서서 처리하기도 했구요.”
거기까지 말을 들은 난 어이없다는 얼굴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똑같이 나쁜 놈들이네. 니들도 좀 맞아야겠다.”
그러자 그가 다급히 말했다.
“저희도 충분히 말렸습니다. 근데 저희 힘만으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흥. 길드장이라면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을 텐데?”
“맞습니다. 하지만 찬우가 외동아들이라 길드장님도 찬우가 떼를 쓰면 웬만한 일들은 다 들어주는 편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 이번 일도 길드장이 알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김길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일은 길드장님도 모르고 계십니다. 저희도 불법이라 극구 말렸었는데 결국 이 사단이 났네요…….”
길드장이나 아들이나 똑같은 놈들이구만. 나중에 만나면 제대로 교육을 시켜줘야겠어! 그나저나 안 그래도 키라가 요새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징징거렸는데, 저놈을 데리고 가면 되겠다.
“그러니까 니 말은 저놈 버릇 때문에 그렇단 거잖아. 그치?”
“네. 맞습니다.”
“그럼 내가 친히 저놈 버릇을 고쳐줄게.”
“네?! 그게 무슨……?”
그는 생각지도 못한 내 말에 당황해서는 눈만 껌뻑거렸다.
“말 그대로야. 내가 저놈 버릇을 고쳐준다니까. 그렇게 알고 다들 돌아가봐. 길드장한테도 그렇게 말하고.”
“하……하지만…….”
“됐고. 죽이진 않을 테니까 걱정말고 돌아가봐. 어서!”
하지만 그는 나와 배찬우를 번갈아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뭘 고민하고 있어? 너희 길드장도 아들 버릇 고치고 싶어할 거 아니야? 안 그래?”
“그렇긴 한데…….”
“그럼 됐네. 어서 꺼져. 나 바쁘니까.”
그리고는 곧장 배찬우에게 가서 그의 뺨을 몇 대 때렸다.
짝. 짝.
“야야. 일어나봐.”
그걸 보고 길드원들이 달려들려 했지만 내가 한 번 눈길을 주자 주춤거리며 달려들길 망설였다.
그 사이에도 난 계속 그의 뺨을 때리며 그가 정신 차리길 기다렸다.
“으으윽…….”
잠시 후 겨우 정신을 차린 배찬우는 눈앞에 내가 있는 걸 보곤 화들짝 놀랐다.
너무 많이 맞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낑낑거리며 급히 뒤로 물러나서는 소리쳤다.
“너…… 뭐야……!”
난 그런 그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재수가 좋네. 오늘부터 나랑 같이 지내게 될 거거든. 생각보다 재밌을 거야. 같이 다니는 내 친구들이 엄청 재밌거든.”
“그……그게 뭔……?”
하지만 난 그의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를 들쳐 메고는 곧장 그곳을 빠져나왔다.
몇몇 길드원들이 급히 내 앞을 막아섰지만 난 유유히 그들 사이를 피해 키라와 호루스가 있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들쳐메고 있던 배찬우를 키라 앞에 던져놨다.
키라는 갑작스런 상황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와 배찬우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뭐야?”
“선물. 요즘 계속 시중들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준비 좀 해봤지! 근데 아직 길이 덜 들었으니까 죽이지만 말고 잘 길들여봐.”
“호호호호. 그건 또 내가 전문이지.”
그 사이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배찬우는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이 미친 새끼들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니들은 다 뒤졌어!”
하지만 여기서 그가 하는 말에 신경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일단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
그러자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그가 하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분명 입은 벌려서 말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안들렸다.
당사자도 당황했는지 몇 번 발악을 하더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자포자기해서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최우혁과 해준우가 그에게 가서 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난 그 사이 호루스와 키라에게 선녀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키라가 날 보며 물었다.
“근데 우리한테 말 안한 게 있는 거 같은데.”
“말 안한 거라니?”
내가 시치미를 떼자 키라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러실까. 우리가 니 안에 있는 말살자의 기운도 못 느낄 거라고 생각한거야? 원래 니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기운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게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거든!”
그렇게까지 몰아붙이자 난 더는 숨기지 않고, 호량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어떻게 말살자 조각을 흡수하게 됐고, 절대자급인 복희씨를 죽이게 됐는지도 말이다.
거기까지 듣고 나자 호루스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말살자 조각끼리는 서로 흡수할 수 있는 거군. 그렇담 말살자의 의지를 이은 자가 널 찾아올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어. 니가 가지고 있는 게이트를 여는 힘은 그에게 꼭 필요한 힘일 테니까!”
키라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니가 하는 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키라의 물음에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해왔던 대로 해야지. 일단 너흰 최상급 던전을 더 찾아봐. 그리고 보스들을 만나면 어떻게 계약을 맺게 된 건지 그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물어보고. 아무래도 던전을 만들고 있는 존재가 말살자와도 관련이 있을 거 같으니까.”
“그럼 넌 어떻게 하려구? 말을 들어보니 넌 우리랑 같이 안가겠다는 거 같은데?”
키라가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흰 말살자에 대한 문제가 급하겠지만 내 입장에선 그것보다 마인 세력에 대해 대비를 하는 게 더 급해. 그래서 이쯤에서 찢어졌으면 하는데…… 어때?”
내 말에 호루스가 적극 찬성했다.
“난 찬성! 넌 인간이니 인간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를 처리해야지. 그렇지?”
호루스가 키라에게 묻자 키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우리가 너무 우리 생각만 했네.”
이것들이 갑자기 왜 이러지?
“니들 갑자기 왜 그래?”
“우리가 왜?”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한테선 절대 안 떨어지겠다고 하더니 지금은 너무 쉽게 떨어진다고 하니까 너무 수상하잖아!”
“수상하긴. 그런 거 없어. 그냥 니 말대로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니까! 안그래?”
키라가 급히 호루스의 동의를 구했다.
“그래, 키라 말이 맞아. 우리가 그 동안 너무 우리 생각만 한 것 같아서 그렇지. 편하게 일보고 와! 우린 니 말대로 던전을 돌고 있을 테니까!”
뭔가 찝찝했지만, 일단 마인 세력에 대한 대비부터 하는 게 순서라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난 동료들에게도 이같은 사실에 대해 말해 준 다음 즉시 피앤씨컴퍼니 본사가 있는 서울로 향했다.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