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포탈을 나오자 원래 던전이 나타났다.
내 예상대로 그 던전은 최상급 던전이었다.
그리고 이 던전 최초 발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선녀궁을 다녀왔고, 그들이 던전을 만드는 존재와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던전 안 어딘가에서 선녀궁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돈을 벌기 위해 거짓 소문을 흘린 모양이다.
그래서 난 당초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는 동료들과 함께 올 생각이었지만 이미 선녀궁을 다녀왔고 절대자도 만났기 때문에 혼자 클리어하기로 마음먹은 것.
그 다음 이 던전에서 입장료를 받던 길드를 정리하는 걸로 방향을 잡았다.
던전이 최상급 던전이긴 했지만, 지금의 내겐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던전을 클리어해가는 도중 쓸 만한 아이템들은 백팩에 넣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치웠다.
그리고 예상대로 선녀궁의 선녀들은 마지막 보스를 잡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중간 보스로 선녀였지만, 타락해 선녀궁에서 퇴출당한 선녀가 등장하긴 했다.
그 선녀는 요상한 주술을 사용했는데, 가볍게 정리하고 최종 보스까지 잡았다.
최종 보스는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였는데 이름이 겁이라고 했다.
거인족 중 하나라고 본인을 소개했는데 거인답지 않게 굉장히 민첩했다.
처음엔 그 속도를 따라가는데 조금 애를 먹었지만, 적응하고 나자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 최상급 던전 ‘잊혀진 자들’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급 던전은 열리지 않습니다. 신화급 던전으로의 업그레이드에 실패했기 때문에 던전 ‘잊혀진 자들’은 상급 던전으로 다운그레이드 됩니다.
“응? 다운그레이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등급이 오히려 낮아지는 건가?”
- 이제부터 다운그레이드 된 던전 ‘잊혀진 자들’은 당신의 소유가 됩니다. 던전 소유자는 던전을 소멸시킬 수도 있고,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부활시킬 수도 있습니다. 다만 보스 몬스터의 경우는 부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잠깐! 보스 몬스터는 부활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이건 무슨 말이지?”
난 잠시 그동안의 정보를 모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제우스가 죽으면 부활할지, 돌아갈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인가? 내 소유 던전이 되더라도 보스들이 본인 차원으로 돌아가는 걸 선택하면 부활할 수 없다고 가정하면 대충 맞단 말이지……. 그 말은, 보스급들만 던전을 만든 존재와 계약을 한 거고 나머지 잡몹들은 그냥 창조된 존재들인 건가?
제법 설득력 있는 가설을 세우긴 했지만, 아직 확신이 선 건 아니다.
그러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거기다 상위 던전을 열기 위해선 내가 모르는 조건이 더 있는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최종 보스를 죽이지 말고 살려둘 걸 그랬네. 아! 아니지. 지금 한 번 부활시켜 볼까?’
하지만 던전을 클리어한 후 바로 부활은 어려웠다.
일단 던전 밖으로 나간 다음에야 부활이 가능했으니.
난 즉시 생겨난 포탈을 통해 던전 밖으로 나왔다.
헌데 포탈 밖은 아까 들어올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던전 앞에서 입장료를 받던 던전을 최초 발견한 길드원들이 포탈을 둘러싼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선 돈을 내고 던전 안에 들어가려던 이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긴장감 없이 그들을 웃으며 바라봤고, 누군가 그걸 보곤 버럭 화를 냈다.
“이 새끼, 너 대체 누구야?! 그 던전은 어떻게 클리어 한 거지?”
그 소리에 난 소리친 이를 바라봤다.
그는 나보다는 좀 어려보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는데, 옷에 걸친 것들이나 분위기로 봤을 때 상당한 부자로 보였다.
“어떻게 클리어 하다니. 그냥 다 죽이고 클리어 했는데?”
그는 내 말에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걸 나보고 믿으란 거야? 여긴 최상급 던전이라고! 상급도 아닌 최상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했단 걸 믿으란 거야? 구라치지 말고 대체 무슨 사기를 친 건지 말해!”
“하하하하. 사기라니? 진짜로 그냥 다 죽이고 클리어 했다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날 노려보고 있는 길드는 첫 번째 보스한테도 가지 못하고 좌절을 했기 때문이다.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죽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일 정도다.
그런데 그런 곳을 혼자서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했단 걸 어떻게 믿냐, 이 말이다.
“개소리 하지마! 우리 천마 길드도 못한 걸 니깟 놈 혼자서 해냈다는 걸 믿으란 말이야?!”
천마 길드라…… 어디서 들어봤는데 어디였지?
그러다 얼마 전 보고 받을 때 스타더스트에 새로이 가입한 길드 이름이 천마 길드였던 걸 기억해 냈다.
흠…… 스타더스트에 들어갈 정도의 길드가 최상급 던전의 첫 번째 보스도 못 깼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초창기라면 몰라도, 대격변 후 꽤 시간이 흘러서 각성자들 실력도 많이 업그레이드 됐을 텐데…….
일단 그들이 천마 길드라는 걸 안 이상 몰살시키려던 생각은 거뒀다.
원래는 일벌백계의 본보기로 다 죽여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스타더스트에 소속될 정도의 길드라면, 나중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직 라시나 조직과의 싸움이 끝난 것도 아니고 마인 세력과의 결전도 남았기 때문이다.
“니들이 천마 길드였어?”
내가 놀란 듯 묻자 소리친 남자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흥! 이제야 뭔가 잘못됐단 걸 안 모양이지? 그래도 이미 늦었어. 너 따위 새끼가 어떻게 던전을 클리어 했는지 모르지만, 그 던전은 이제 우리한테 넘겨줘야겠어!”
“그래. 니 말대로 잘못되긴 했지. 스타더스트에 소속된 길드라면서 그 따위 실력 밖에 없다니 말이야. 정말 실망이 큰 걸! 그래도 스타더스트에 소속돼있다니까 전치 8주 정도로 끝내줄게.”
“뭐?! 이 개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아아. 오해하지는 마! 원래는 다 죽여버리려고 했던 건데, 그 정도로 끝내주는 거니까. 알겠지?”
“이…… 이…….”
그는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말까지 더듬었다.
그때 뒤에 있던 누군가가 날 보고 소리쳤다.
“바…… 박태준이다!”
“어……! 진짜잖아?”
그 말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내 이름이 터져나왔다.
아마도 누군가 날 알아보자, 다들 아이즈로 온라인에 올라온 내 얼굴과 비교해본 모양이다.
그리고 천마 길드 내부에서도 날 알아보는 이들이 나타났다.
“찬우야. 저 사람 진짜 박태준인거 같은데!”
누군가 다가와 내게 소리치던 이에게 내가 박태준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보며 말했다.
“흥! 그딴 게 뭔 상관이야! 지가 박태준이면 어쩔 건데? 저 새끼가 절대자급에 맞먹는다는 소린, 다 지어낸 얘기인거 몰라? 그냥 마케팅일 뿐이라구. 그리고 나도 제대로 하면 절대자까진 아니더라도 준절대자급은 될 거야. 빌어먹을 각성자 측정에선 SS가 나왔지만, 그건 잘못됐어. 흥, 나 정도면 SSS등급이 나와야 하는 거라구!”
보아하니 저놈 이름이 찬우인 모양이다.
거기다 SS 등급 각성자고 말이다.
‘근데 SS 등급 각성자가 있는데도 첫 번째 보스를 못 이겼다고?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최상급 던전이 어렵다고 해도 SS 등급 각성자가 있는 길드라면 첫 번째 보스까지는 비벼볼 만 할 것이다.
그건 예전 ‘익시온의 무덤’과 이곳 ‘잊혀진 자들’을 클리어하면서 직접 적들을 상대해 봤기 때문에 안다.
SS 등급으로 완전 클리어까진 힘들더라도 첫 번째 보스 정도까지는 어찌저찌하면 비벼볼 수 있다.
근데 저들은 첫 번째 보스까지 도달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뭔가 있나보네.’
그 사이에도 찬우 옆에선 계속 다른 사람들까지 나서서 그를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찬우란 놈은 노빠꾸였다.
계속 꽥꽥거리며 날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난 그런 그를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사내새끼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그만 씨부리고 자신 있음 얼른 들어와!”
내 말에 찬우란 남자는 만류하는 이들을 모두 뿌리치고 씩씩거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는 달려들며 양손에 너클을 소환했는데, 너클 주위가 붉게 물드는 걸로 봐서 원소 감응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보자. 원소 감응 능력인 것 같은데…… 저 정도로 SS 등급을 받은 건 아닐거고…… 뭔가 더 있을 텐데……
난 날아오는 주먹을 슬쩍슬쩍 피하며 일부러 그를 약올렸다.
그는 폭풍처럼 주먹과 발을 사용해 날 몰아붙였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슬쩍 그의 모든 공격을 피했다.
처음엔 내가 아무런 반격도 못하자 의기양양해하며 공격하던 그도 시간이 지나자 내가 일부러 공격을 안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갑자기 얼굴이 험악하며 변하며 소리쳤다.
“어디 이것도 피하나 보자!”
붉다 못해 활활 타오르는 그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왔고 난 슬쩍 고개를 돌려 피하려고 했다.
움찔.
헌데 순간이지만 고개가 움직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주먹이 순식간에 두 배 정도의 속도로 가속하며 내 얼굴을 강타했다.
퍽.
그는 드디어 공격을 성공시키자 득의양양한 얼굴로 주먹을 거두고 날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날보곤 깜짝 놀라서는 뒷걸음질을 쳤다.
난 그를 보고 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다른 능력 하나가 염력이었어? 근데 순간이지만 날 멈췄다는 건 칭찬해 줄만해. 거기다 화염 계열 원소만이 아니라 바람 계열 원소도 다룰 수 있는데, 그걸 염력을 사용하는 순간까지 감췄던 것도 칭찬해 줄만 하고. 전투 센스는 나름 좋네. 근데 몇 가지가 좀 아쉽단 말이지.”
“몇 가지가 아쉽다고?!”
그는 내 말에 발끈하며 다시 소리쳤다.
“일단 상대에 대한 정보 분석 없이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거! 그러다간 죽기 십상이지.”
그리곤 바로 그의 앞으로 달려가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일부러 그가 딱 못피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그는 내 움직임을 어렴풋이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피할 수는 없다고 판단되자 곧바로 날아오는 주먹을 향해 염력을 사용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내게 큰 영향을 줄 수는 없었다.
내 주먹은 곧바로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커헉!”
주먹을 맞은 그는 한참을 뒤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곧바로 벌떡 일어나서는 곧 방어 자세를 취했다.
난 멈추지 않고 곧바로 그의 몸 앞으로 이동해서 가볍게 주먹을 퍼부으며 말했다.
“두 번째는 가지고 있는 능력에 대한 응용력 부족! 내가 전에 만난 친구는 너보다 훨씬 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었지. 하긴 그러니까 너보다 훨씬 강한 걸 테지만.”
“크헉. 끄악!”
하지만 그는 맞느라 내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때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맞던 그는 결국 자리에 허물어져서는 꿈틀거리며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난 쓰러진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발로 밟은 채 말했다.
“마지막으로 넌 싸가지가 너무 없어. 그런 놈은, 죽도록 맞아야지.”
그리곤 밟고 있던 발에 서서히 힘을 줬다.
“끄어어억!”
슈웅.
그때 파공음과 함께 뭔가가 날 향해 날아왔다.
난 날아오는 물체를 낚아챈 다음 일부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날아온 물체가 뭔지 살펴봤다.
“응? 머리카락?!”
나 혼자 방어력 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