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선녀궁으로 가는 길은 산꼭대기에 있었다.
동굴을 나오자 호량은 다시 산을 타고는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산 정상에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운 우물이 있었고 그 앞에 제단이 놓여있었다.
“여기가 선녀궁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미리 승인된 사람이 아니면 선녀궁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저야 바로 선녀궁으로 갈 수 있지만 은인께선 조금 기다리셔야되는데 괜찮으실지요?”
“기다리는 건 괜찮은데 선녀궁에 가는 방법이 그거 밖에 없어? 복희씨도 맘대로 찾아왔다는 걸 보니까 다른 방법도 있을 거 같은데?”
“물론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직접 선녀궁까지 가는 겁니다. 하지만 선녀궁은 하늘 높이 떠있기 때문에 복희씨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신이 아니고선 접근이 어렵습니다.”
난 그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여기서 곧장 위로 올라가면 되는 거야?”
“그렇긴 한데…… 설마 은인께선 하늘도 날 수 있으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 걱정말고 위에서 보자.”
호량은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곤 제단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곧바로 밝은 빛에 휩싸이더니 사라져버렸다.
“나도 따라 가볼까!”
난 호량이 사라지자 곧바로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마치 중력을 무시하듯 한참을 올라가던 내 몸은 서서히 올라가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때 난 다시 왼 발등을 반대발로 차서 다시 하늘 높이 도약했다.
그런 방법으로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저 멀리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건 아름다운 성이었다.
처음엔 작게 보였지만 가까이 가자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성이라고 하지만 작은 섬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그 크기가 엄청났다.
“헐! 뭐가 저렇게 커! 근데 저게 단군인가?”
선녀궁 맞은편에 한 무리의 군대가 포진해 있는 게 보였는데, 군대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무시무시했다.
절대자급 능력을 가진 자가 분명했다.
지금 선녀궁과 대치하고 있으면서 절대자급의 힘을 가진 인물이라면 단군 밖에 없다.
가까이 가서 인사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일단 선녀궁 안의 상황이 궁금했기 때문에 선녀궁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다행히 외부를 지키는 이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선녀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녀궁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그냥 집들만 가득했다.
수많은 집들 중앙에는 거대한 제단이 보였는데 아마 저곳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모양이다.
아무도 없는 걸 보니 어딘가에 다 모여있나보네. 일단 호량이랑 만나는 게 우선이니 제단이 있는 곳으로 가볼까!
난 즉시 마을을 가로질러 선녀궁 중앙에 있는 제단으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기감을 확장해서 마을을 살폈지만 아무런 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지?
의문을 가지며 달리다보니 어느새 제단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 수많은 선녀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저기 있구나. 근데 다들 뭘 보는 거지?
선녀들은 모두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거기엔 아까 동굴에서 본 것처럼 뱀의 몸을 하고 팔과 머리만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가 호량을 손에 들고 뭐라 말하고 있었다.
뭐라는 거지? 좀 더 가깝이 가볼까.
기척을 죽이고 선녀들 몰래 목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다가갔다.
[……너흰 내게 거짓을 말했다. 분명 이 아이가 죽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냐?]
보아하는 저놈이 복희씨로구나!
선녀들은 복희씨의 호통에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때 그의 손에 잡혀있던 호량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왜 죽어야 되는 건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니가 왜 죽냐고? 그거야 신에 도전하는 불경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이미 힘이 사라졌는데 어째서 절 죽이려 하십니까?”
그 말에 복희씨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중년 남자의 얼굴이긴 하지만 눈썹이 길게 자라있고 뱀처럼 눈이 찢어져 있어 인상을 쓰자 상당히 공포스런 얼굴로 변했다.
[그럼 니가 지니고 있던 그 힘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이냐! 지금은 힘이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도 어떤 식으로 감춰뒀을지 모를 일 아니더냐.]
“하하하!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그 힘은 확실하게 사라졌으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믿냐 이 말이다.]
그때 호량이 날 쳐다봤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라는 것 같았다.
난 그가 신호하자 큰 소리로 복희씨를 향해 소리쳤다.
“그 힘. 내가 가지고 갔는데!”
순간 거기 있던 모든 선녀들이 날 돌아봤다.
“으악! 깜짝이야! 다들 얼굴이 왜 이런 거야?!”
선녀들은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선녀들은 원래 예쁜 거 아니었나?
그때 복희씨가 선녀들 사이를 뚫고 내게로 기어왔다.
가까이서 본 복희씨의 몸은 3미터는 가까이 돼 보였다.
그는 오른 손에 호량을 들고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가 이 놈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 말에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 하지마. 내가 가진 말살자 조각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텐데!”
복희씨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니놈 말대로 니놈에게서 말살자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것도 원래 이놈이 가졌던 것보다 더 큰 기운이 말이야!]
“그치? 그러니까 걔는 내려놓고 나랑 상대하는 게 어때?”
[하하하하하.]
복희씨는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말살자 조각을 지녔다고 네깟놈이 내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러면서 무섭게 날 노려봤다.
- ‘대격변의 영웅’ 칭호가 발동 됐습니다. 상대의 살기를 무효화 시킵니다.
“왜? 상대하면 안 돼?”
그는 내가 자신의 살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자 의외라는 얼굴로 말했다.
[내 살기에 저항한 걸 보면 그저 그런 놈은 아닌가 보군. 그렇다고 해도 내 상대가 될 순 없지.]
그리곤 오른손에 들고 있던 호량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그 다음 양손에 불타는 구슬을 하나씩 소환했다.
불타는 구슬은 크기가 축구공 만했는데 그걸 든 복희씨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날 향해 불타는 구슬을 던졌다.
후웅. 후웅.
불타는 구슬이 눈으로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날아왔다.
하지만 난 이 전투를 길게 끌고 갈 생각이 없었다.
날아드는 불타는 구슬을 아무렇지도 않게 양팔로 쳐낸 나는 곧장 복희씨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곤 몸 안에 꿈틀대는 호량으로부터 흡수한 힘을 꺼냈다.
쑤욱.
그러자 그 힘은 작은 창으로 변했다.
그리곤 작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길 던져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던져달라구? 그럼 그러지 뭐!’
난 망설임 없이 작은 창으로 변한 그 힘을 가지고 천의권 3식 파천을 사용했다.
쿠콰콰콰.
붉은빛의 작은 창은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채 복희씨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었다.
그 창은 날아가면서 내가 지니고 있던 초열의 불꽃과 내공도 일부 흡수한 채 날아갔기 때문에 그 안에 내재된 힘은 절대자라도 죽일 수 있는 말 그대로 신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나 다를까 복희씨는 갑작스런 내 공격에 당황하며 급히 손을 뻗어 막았지만 붉은빛의 창은 그대로 복희씨의 손을 뚫고 그의 머리마저 꿰뚫어버렸다.
절대자의 죽음이라 보기엔 너무나 허망한 죽음이다.
순간 장내엔 정적만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복희씨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쿵.
그제야 거기 있던 선녀들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복희씨가 죽었다. 이제 자유야!”
“드디어 자유다!”
“은인이시여, 감사합니다!”
선녀들은 자기들끼리 기뻐하기도 하고, 몇몇은 내 손을 잡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난 대충 그녀들을 상대하고는 호량에게 갔다.
호량은 날 보고는 한껏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인께서 이기실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쉽게 이기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뭘, 당연한 거지. 근데 선녀들 얼굴은 왜 저런 거야? 원래 선녀들은 엄청 아름답지 않나?”
“맞습니다. 보통 선녀궁의 선녀들은 늙지 않고 평생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채 살아갑니다. 노화로 죽을 때조차 젊은 얼굴로 죽습니다. 근데 저런 얼굴이 됐다는 건 아마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저주?”
“그것에 대해선 제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난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한 선녀가 서 있었는데 다른 선녀들에 비해 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를 본 호량은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선녀장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저 사람이 선녀장이구나.
난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해서 예의를 갖췄다.
“은인 말씀대로 저희 외모가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호량 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 후 모두 이렇게 변해 버렸지요. 거짓을 말한 건 아니기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꼼수를 부린 데 대한 저주를 받은 거지요.”
“그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건가요?”
허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로서도 되돌릴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대체 저주는 누가 내리는 거죠? 저주 내리는 존재를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저희도 이런 세상의 규칙을 만든 분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그 규칙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요. 이 정도 저주는 감내할 수 있습니다.”
‘창조신인 절대신이 그런 규칙을 만들었을 리는 없는데, 그럼 누가 만든 거지? 누가 있어 절대자들 위에서 저런 규칙을 만들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아까 던진 창이나 회수하자.’
난 곧장 복희씨가 죽어있는 곳으로 갔다.
복희씨의 몸은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아마도 창에 머물러 있는 초열의 불꽃 힘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도 보통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지지만 복희씨는 절대자기 때문에 육체의 강도가 달라서인지 서서히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난 즉시 그의 머리를 꿰뚫고 머리 뒤에 박혀 있는 작은 창을 뽑았다.
응? 어째 더 작아진 거 같은데?
아닌 게 아니라 창의 크기가 아까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아까는 1미터가 채 안되는 길이였지만 지금은 50센티미터도 채 안돼보였다.
역시 이건 사용하는데 정해진 횟수가 있는 거구나!
그때 작은 창이 다시 몸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리곤 새로운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 퀘스트 ‘호랑이의 아이’를 완료했습니다. 선녀들에게 걸렸던 저주가 풀립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선녀궁의 보물창고에 있는 물건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잉? 왜 갑자기 지금 완료가 된 거지?
나 혼자 방어력 무한